민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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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민광훈의 아들이자 인현왕후 민씨와 노론의 영수인 민진원의 아버지. 큰형인 민시중은 대사헌을, 작은형인 민정중은 좌의정을 지낸 명문가 출신이다. 외가는 연안 이씨로 외조부는 지중추부사, 한성판윤, 예조•이조판서 등을 지낸 연평부원군 이광정이다.
본래 동춘당 송준길의 문하였지만 송준길의 딸 은진 송씨를 계실로 맞이함으로써 송시열의 문하로 옮겼다.
그의 차녀는 송준길의 외손녀이자 송시열 문하생의 딸이라는 막강한 서인 인맥을 배경으로 두었기에 후에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되지만 남인과 연계된 궁인 장씨에 밀려 독수공방을 하게 된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민유중을 서인의 영수 혹은 희빈 장씨를 사사건건 방해하는 행동으로 묘사되고, 선민사상이 강하여 복성군과 내통을 한 자신의 딸이 죽을 위기에 쳐하자 온갖 재물을 가져와 도와달라 애원하는 역관 장혁(성동일 분)을 천한 신분 주제에 분에 넘치는 부탁을 한다며 모욕하고 정작 자신의 딸은 귀하게 길러 왕비 자리에 앉히는 이중잣배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 실록에서는 "성품이 강직하고 품행이 올바르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래서 보통 장희빈을 다룬 드라마에서도 민유중은 대체로 실록과 비슷한 행적을 보인다.
다만 뼛속까지 서인이었으며, 송시열의 문하생인데다가 송준길의 사위라는 화려한 정치적 배경을 무기 삼아 홍문관 대교, 사헌부 감찰, 병조좌랑, 사간원 정언, 이조참의, 대사간, 전라도·충청도·평안도 관찰사, 성균관 대사성,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병조판서 등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서울 시장을 거쳐 각종 장관까지 두루 경험한 몇 안 되는 엘리트인 셈이다.
숙종의 장인이 된 이후로는 송시열 쪽에 가세한 여흥 민씨와 광산 김씨, 그리고 남인에 동조한 청풍 김씨 간 붕당이 크게 과열됐다. 그 과정에서 병권과 재권을 장악하고 공사를 임의대로 처리했으며 친인척을 끌어들여 관직을 독점하고 있다는 상소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비판받은 민유중은 숙종에게 "나를 모독한 사람을 처벌해달라" 고 요구했다가 이후 숙종과 만날 수가 없었고, 그 다음해에 사망했다.
2. 사후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딸이 쫓겨나는건 보지 못하고 죽은 것으로, 그의 사망으로부터 2년 후인 1689년에 인현왕후가 폐서인이 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조선 말에 하나같이 조선 정가에 거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남연군 - 흥선대원군 - 고종 - 순종으로 이어지는 4대가 모두 여흥 민씨와 혼인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작은형인 좌의정 민정중의 후손인 민경혁의 딸이 바로 남연군의 부인이자 흥선대원군의 어머니인 군부인 민씨이고, 첫째 아들 민진후의 후손인 민치록의 딸이 '''명성황후 민씨'''이며 셋째 아들 민진영의 후손인 판서 민치구의 딸이 흥선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의 어머니인 여흥부대부인 민씨이다. 그리고 둘째 아들 민진원의 후손인 민태호의 딸은 순종의 정비였던 순명효황후 민씨이다. 이 때문에 흥선대원군과 고종 부자는 모두 외가, 처가, 사돈을 모두 여흥 민씨에서 맞아들이는 진기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