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운

 

'''사무총장'''
''창당''

'''초대
박종운
서성건'''

''당명변경''
[image]
1. 개요
2. 선거이력
3. 소속 정당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이다. 1961년 12월 22일생(63세).
1961년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태어났다. 운호중학교, 청주고등학교 졸업 후인 1981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1]에 입학했다. 이후 반제반파쇼민족민주투쟁위원회(약칭 민민투)에 참여하며 여러 시위에 참여하다 구속될 뻔하자 후배인 박종철의 집에 들렀다 갔다. 당시 민민투 조직원인 박종운을 수배하던 검찰은 박종철이 박종운을 그의 집에 숨겨줬다고 판단해 박종철을 대공분실로 끌고 가 고문하여 숨지게 만들었다. 민민투가 와해된 이후에는 비공개 지하조직인 '노동자해방투쟁동맹'(약칭 노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당시 재야민주화운동을 이끌고 있던 이부영을 따르게 된다.
이후 이부영, 김충환 라인을 따라 활동했고, 자연스레 이들의 지역구 기반인 서울 강동구에서 활동한다. 민선 1기 구청장으로 당선된 김충환의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고, 기타 강동구청에서 몇몇 업무를 본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00년에 정식으로 '''한나라당'''에 입당한다.
사실 이때의 한나라당은 좀 특이한 경우로, 아직 '''민주당계의 물이 다 빠지기 전'''이었다. 한나라당 항목에서 알 수 있듯, 한나라당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자유당의 후신인 보수적통 신한국당과, DJ세력이 모두 빠져나간 反/非DJ 성향의 민주당이 합당한 정당이었다. 이부영, 김충환은 모두 反DJ 성향으로서 한나라당에 합류한 경우였고, 박종운도 자연스레 이들을 따라간 것이라 보면 된다. 다만, 이후의 인터뷰들을 보면 단순히 이들과 함께 움직인 것 외에도 90년대 초반 동구권의 붕괴에 영향을 받아 사상적인 전향이 있었던 듯 보인다. 추후 뉴라이트 활동도 했고.
그리고 동구권의 붕괴에 영향을 받고 사상적 전향을 한 정치인들은 2019년 현재에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전 경기도지사인 김문수도 노동계의 전설이었지만 이후 한나라당에서 활동.
입당 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경기 부천 오정 선거구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새천년민주당 최선영 후보에 밀려 낙선한다.
2003년, 박종운이 가까이했던 이부영-김충환 라인에 분화가 발생한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나라당 내의 反/非DJ 계열 개혁적, 민주계 인사들이 자신들과 과거 뜻을 함께 한 노무현과 정치적 명운을 같이 하기로 하면서 이부영은 한나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에 합류하고 김충환은 한나라당에 잔류한다. 그리고 박종운은 한나라당에 잔류한다. 그의 잔류가 이부영보다 김충환에 더 가까웠던 개인적 이유였는지, 아니면 사상적 전향의 여파였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2003년에 박종운은 이미 강동구를 떠나 부천에서 정치활동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부천시의 한나라당 조직을 김문수, 차명진, 임해규 등 구 민중당 계열에서 활동한 운동권 정치인들이 꽉 잡고있었고, 이들 모두가 한나라당 잔류를 택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들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직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부천시의 터줏대감 원혜영에게 패하고 낙선한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친이계이자 뉴라이트의 주요 인물 중 한명으로서 같은 선거구에 재도전했으나 원혜영에게 또 패했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친이-뉴라이트계의 숙청에 휘말려 공천받지 못했다. 이후 극우언론인 미디어펜의 논설위원으로 재직하였다.
다만, 이러한 정치적 전향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인간적으로는 박종철 열사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하기 전에는 박종철 군의 부모님에게 매일 안부전화에 명절마다 인사를 드리러 찾아가고 결혼인사는 물론 결혼식에서 폐백을 드리고 가족사진을 찍는 정도였다.#
이후 정치활동, 특히 한나라당 계열 정치활동을 하면서 박종철 군의 가족과는 과거처럼 가까이 지내긴 어려워졌지만 매년 박종철 추모회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으며, 2018년 1월 서울 관악구의 박종철 거리 선포식때는 초청도 받지 않았음에도 일부러 찾아와서 말없이 지켜보다 돌아갔다고 한다.# 박종철 추모 관련 행사에는 거의 대부분 참석한다고 보면 된다. 다만, 본인의 입장이 입장이다보니 전면에 나서거나 다른 참석자들과의 교류는 못하고 말 그대로 자리만 지키다 가는 듯.[2]
최근에는 자유시민TV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 그런데 댓글 대부분이 박종철과 관련된 거라 여론이 좋지는 못한 상황.

2. 선거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오정)
한나라당
19,652 (32.81%)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오정)
한나라당
20,216 (28.05%)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 오정)
한나라당
24,831 (42.32%)
낙선 (2위)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0 - 1991
정계 입문

1991 - 1995
합당[3]

1995 - 1997
합당[4]

1997 - 2000
탈당

2000 - 2012
입당

2012 - 2017
당명 변경

2017 - 2020
당명 변경

2020
신당 창당을 위한 탈당

2020
창당

2020
합당[5]

2020 -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1]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MBC의 오보로 사회복지학과 출신으로 알려졌으나 사회학과 81학번이 맞다.[2] 왜 이런 입장일 수밖에 없냐 하면 이 행동에 대한 대답을 썰전 253화에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말했다. "민주화 운동가들이 새로운 정치비전으로 당을 택하고 자기생각을 펼치는 것 자체는 변절이다 뭐다 할 게 아니고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박종운씨 문제는 그렇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것이 박종운이 당시 입당하였을 때. 고인의 유가족이 받은 상처가 매우 컸다. 왜냐하면 종철이를 죽인 그 사람들에게 갔다는 상처가 있어서라고.' 더불어서 '''박종철의 동지인 박종운과 이한열의 동지인 우상호는 선택의 자유가 없다'''고. 동지의 목숨을 짊어지고 살기 때문에 동지의 가족이 싫어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언급하였다.[3] 신민주연합당과 신설 합당[4] 개혁신당과 신설 합당[5] 우리공화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