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Adeline Virginia Woolf '''
'''이름'''
애덜린 버지니아 스티븐 울프
'''국적'''
[image] '''영국'''
'''출생'''
1882년 1월 25일
잉글랜드 런던 사우스켄싱턴
'''사망'''
1941년 3월 28일 (향년 59세)
잉글랜드 이스트서식스 루이스
'''신장'''
170cm
'''직업'''
소설가, 수필가, 비평가
'''학력'''
킹스 칼리지 런던
'''배우자'''
레너드 울프 (1912년 ~ 1941년)[1]
'''서명'''
[image]
1. 개요
2. 생애
3. 대표작
4. 기타


1. 개요


20세기 영미 모더니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이자 의식의 흐름 기법을 고안한 선구자로 평가된다. 20세기 서양 문학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며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26명의 서양 문학 정전(Western Canon)’[2]의 그를 포함시켰다.[3]
1970년대 페미니즘 비평의 대두에 따라, 이전까지는 간과되었던 페미니즘 작가로서의 측면들이 재조명되었고 후대의 페미니즘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친 중심 인물 중 하나로 재평가되었다.

2. 생애



울프의 결혼 전 이름은 애덜린 버지니아 스티븐이며 1882년 1월 25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슬리 스테판은 《18세기에 있어서의 문학과 사회》의 작가였으며 어머니는 줄리아 덕워스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방대한 서재를 이용할 수 있었고 1895년에 어머니가 사망하자 최초의 정신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1897년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역사학그리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1904년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두 번째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며 투신자살 시도를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1912년에 레오나드 울프와 결혼하고 1915년 《항해》를 출판한 뒤 1919년에는 《밤과 낮》을 간행했다. 1925년에는 《댈러웨이 부인》이 큰 인기를 얻었고 1927년에는 《등대로》, 1928년에는 《올랜도》가 호평을 받았다.
1941년 3월 28일에 우즈 강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행방불명되었는데, 강가에 울프의 지팡이와 발자국이 있었다. 시체는 20일 후인 4월 18일 발견되었는데 당시 입고 있던 코트에서 돌이 발견되었고 서재에는 남편과 언니에게 남기는 유서가 있어서 입고 있던 코트에 돌을 가득 채운 후 강으로 들어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 지어졌다. 자살의 원인은 우울증과 허탈감, 환청, 어린 시절 의붓오빠들로부터 받은 성적 학대, 정신 이상 발작에 대한 공포심 등으로 추정된다.
[image]

Tuesday.

Dearest,

I feel certain that I am going mad again. I feel we can't go through another of those terrible times. And I shan't recover this time. I begin to hear voices, and I can't concentrate. So I am doing what seems the best thing to do. You have given me the greatest possible happiness. You have been in every way all that anyone could be. I don't think two people could have been happier till this terrible disease came. I can't fight it any longer. I know that I am spoiling your life, that without me you could work. And you will I know. You see I can't even write this properly. I can't read. What I want to say is I owe all the happiness of my life to you. You have been entirely patient with me and incredibly good. I want to say that—everybody knows it. If anybody could have saved me it would have been you. Everything has gone from me but the certainty of your goodness. I can't go on spoiling your life any longer. I don't think two people could have been happier than we have been. V.

그대에게,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는 것이 확실해요. 그 끔찍한 시간들을 다시 한 번 되풀이 할 수는 없어요. 이번에는 회복하지 못할 거에요.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고 집중력을 잃었어요. 그래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어요. 당신은 내가 받을 수 있는 모든 행복을 주었어요. 누가 했더라도 당신보다 낫지 않았을 거에요. 이 병이 오기 전까지의 우리들 보다 어느 두 사람도 더 행복하진 못했을 거에요. 이제는 견딜 수 없어요. 당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 없이도 잘 해낼 거에요. 곧 알게 될 거에요. 있잖아요 이제 글도 제대로 못 쓰겠어요. 읽을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말은 내 모든 행복을 당신에게 빚지고 있다는 거에요. 지극정성으로 나를 더할 나위 없이 잘 대해 주었죠. 이 말은 하고 싶어요-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누군가 나를 구할 수 있었다면 그건 당신이었을 거에요. 당신이 남긴 상냥함 외에 내게 남은 것은 없어요. 계속 당신의 삶을 망치며 살 수는 없어요. 어느 두 사람도 우리보다 행복할 수는 없었을 거에요. V.[4]

[5]


3. 대표작


  • 1925 댈러웨이 부인 Mrs Dalloway[6]
  • 1927 등대로 To the Lighthouse
  • 1928 올란도 Orlando[7]
  • 1929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8]
  • 1933 플러시 Flush[9]
  • 1937 세월 The Years
  • 1938 3기니 Three Guineas


4. 기타


  •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해 준 남편 레너드 울프는 유대계였는데 정작 울프는 반유대주의자였다. 울프를 비롯한 19세기 ~ 20세기 초 모더니스트들의 반유대주의는 아예 이탈리아로 넘어가 파시스트로 부역한 에즈라 파운드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문학적 성취라는 업적으로 가려져 있다.
  • 1910년에 붕가붕가 사기극으로 불리는 영국 해군 상대의 사기극에 직접 참여했다. 금전적인 피해를 준 것은 아니며 해군에게 망신을 준 사건이다.
  • 버지니아 울프는 양성애자로, 1922년 Vita Sackville-West라는 이름의 여성과 만남을 가졌으며, 1926년 그 여성의 남편이 받은 편지에 둘은 2번 성관계를 가졌었다고 적혀있었다고 한다.
  • 1920년에 울프의 숙모인 메리 비턴이 인도 뭄바이에서 낙마 사고로 숨지자, 숙모의 유언으로 매년 500파운드의 유산을 받게 되었다. 이 500파운드의 연금은 울프가 생계를 위한 일을 그만두고 문학에 몰두하게된 계기가 되었고, 에세이 '자기만의 방'도 이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 제인 오스틴의 팬이었고 그녀에 관한 훌륭한 평론을 남겼다.

[1] 1880년생이다. 1969년 88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둘 사이에 자녀는 없다.[2] 서구 최고 작가들중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 하는 작가들을 일컫는 용어다.[3] #[4] 원문에 비문이 섞여 있어 일부 의역했다.[5] 마지막 알파벳 V는 그녀의 이름 Virginia의 첫 알파벳V의 약자로, 영어권 나라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흔한 줄임법이다.[6]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다.[7] 틸다 스윈튼 주연의 동명의 영화가 있다.[8] 대표적인 페미니즘 에세이로 손꼽히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성에게도 남성과 더불어 자신만의 꿈을 펼치며 살아가는 자립적인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 순수하고 원론적인 페미니즘을 시사한다.[9]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부부의 가상 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