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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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자막은 직역, 하단 자막은 의역
1. 개요
2. 설명
3. 의역의 한계
4. 관련 문서

意譯
liberal translation, thought-for-thought translation

1. 개요


원문의 단어나 구절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리는 번역. thought-for-thought라는 위 영어 표현에서 볼 수 있듯, 단어와 단어의 일치가 아닌 생각과 생각의 일치를 지향하는 번역이라 할 수 있다.[1] 시적 표현이나 문화의 차이가 이해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문장이면 대부분 의역이 필요하며, 언어유희에선 특히 의역이 중요하다. 번역하는 데에 의역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다. 뒤에 설명되어 있지만 좋은 번역은 직역과 의역을 딱 구분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번역하는 것이다.[2]

2. 설명


문제는 의역을 '뜻을 이해하기 힘들거나 직역으로 하려니 매우 이상한 문장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몰라 뭉뚱그려서 번역하는 행위'로 알고 있는 경우다. 하지만 이러는 경우는 의역이 아니라 그냥 오역이다. 제대로 된 의역은 원문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나 숨겨진 뜻 등을 제대로 살리는 번역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 웹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을 통해 일본어를 배우거나 미국 영화와 드라마, 게임 등을 마니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직역이 제대로 된 번역이고 의역은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해야 하는, 엄밀히는 틀리는 번역이다."라며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직역이 기본적으로 우선시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직역이 모든 경우에서 통하는 것은 아니며, 위에도 있듯, 의역도 절대로 비슷한 의미로 뭉뚱그리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간혹 웹상에 번역된 자료를 보게 될 때 뜻을 다 잡아내지 못했다는 의미로 "(오역이나) 의역이 포함되어 있다."라는 사족이 붙어있을 때가 있는데, 이것은 '의역'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오히려 직역도 과도한 직역체, 그러니까 번역체 문장의 범위로 넘어가면 이해에 방해가 된다. 한국 웹에서 번역을 하는 많은 역자들은 표현 아래에 녹아있는 의미체계를 잡아내서 옮기는 수고를 거치지 않고 그냥 문장을 한국어로 '치환하기'만 하곤 한다. 여기에 흔히 '원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한다'는 이유가 붙기도 하는데, 지나친 직역투가 살리는 건 원문의 느낌이 아니라 원문의 형태일 뿐이다. 직역체를 사용해도 의미가 잘 통하면 상관이 없지만 원래 두 언어에서 사용되는 단어와 표현은 아무리 의미가 같거나 비슷해도 일반적으로 용법이나 사용할 수 있는 범위는 딱딱 맞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 단어의 용법을 고려하지 않고 대응하는 단어로 치환하기만 하면 아주 억지스러운 한국어가 된다. 번역은 원문의 단어를 번역할 언어의 단어로 치환하기만 하는 작업이 아니라 문장이 내포하는 의미를 전달하는 작업이다.
대상 언어의 특성을 무시하고 원문 언어를 그대로 치환하는 행위는 직역이 아니라 그냥 해석이고, 원문의 느낌을 살리지도 못한다. 그렇게 나온 문장은 좀 과격하게 표현하면, '한국어의 탈을 쓴 외국어'인 셈이다. 번역은 다른 나라 말을 전혀 모르는 1개 국어 청취자인 대상을 전제로 해야 하는 작업인데, 과도한 직역체 문장이 원문의 느낌을 잘 전달한 것처럼 보이면 그건 웬만해서는 독자가 이미 번역체 문장에 익숙해서 직역을 토대로 원문을 유추해 뜻을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어와 문장 구조 등 많은 면에서 유사한 일본어 번역 시에 가장 자주 나타나는 점이다.
또한, 단편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작업이면 직역을 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등장인물들의 대사처럼 유동적인 것을 번역할 때에는 직역체는 상기한 번역체 문장이 아니라 해도 의역보다도 적절하지 않다. 원문의 형태를 보존하면 의미전달은 잘 될지 모르나 결과물이 심하게 단조로워지기 때문이다. 어느 언어든 똑같은 의미를 전달할 표현은 굉장히 다양한데도 다채로운 번역 가능성을 탐구하지 않고 정형화된 표현으로만 뭉뚱그리는 것은 창의적인 의역으로 더 유동적인 문장을 만드는 것보다 좋은 번역이라고 하기 힘들다. 특히 직역을 한다고 편하게 말하는 대사들을 국어책에서나 나올 법한 딱딱한 문장으로 직역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번역에 지나친 일관성을 적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번역을 하려면 원어(출발어) 실력보다 대상 언어(도착어) 실력이 더 뛰어나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참고)
주의해야 할 점은, 직역과 의역을 무슨 번역의 두 갈래 같은 걸로 인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번역을 할 때 유동적으로 택하는 기법 내지는 효과일 뿐, 둘이 양립할 수 없어 역자가 둘 가운데 하나만 택해 일관해야 하는 그런 건 아니다. 직역과 의역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한 쪽만 고집할 수 없다. 심지어 원문에 따라선 한 문장에 직역과 의역이 둘 다 사용될 수도 있다. 일단 아무리 의역을 선호해도 문장이 굉장히 직설적이면 의역을 할 여지 자체가 없다. 또 예를 들면, "piece of cake"는 굉장히 쉽다는 뜻인데, 이것을 "식은 죽 먹기"로 번역하는 것이 직역인지 의역인지는 아주 애매한 문제다. 어쨌든 원문에 언급되지 않는 '식은 죽'이 들어가니 의역이기도 하지만, 두 문장 모두 쉬운 것을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 것에 비유한 데다 흔히 사용하는 간단한 표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직역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역동적 동의성(dynamic equvalent) 번역'이라고 한다. 결국 의역 직역을 딱딱 구분할 수는 없고,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한 쪽만 일관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며,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가령 직역을 극한으로 몰고가서, 상기한 "piece of cake"을 문자 그대로 "케이크 한 조각"으로 번역하면 가독성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봐라. 역자의 취향에 따라 애매한 문장을 번역할 때 어느 한쪽을 선호할 수는 있겠지만. 다만, 실제로 인터넷 등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번역가들에게서 직역체를 선호하는 경향을 찾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3]
또한 기준 자체는 위처럼 '원문의 뜻을 살리는 번역'이지만, 사실 정확히 따지기는 복잡한 일이다. 애초에 사람마다 언어 감각이 달라서, 일부는 그저 내용(본질)만 옮기면 그 언어(그릇)야 어떻게 되든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이 때문에 일제강점기 시절의 번역체가 아직도 많이 쓰인다.), 의역 역시 초월번역이나 오역과 함께 여러모로 정의하기 어려운 범주다. 비유하면 직역은 번역자의 GG 선언이라면, 의역은 번역자의 해체 및 재구축 작업이다. 사실상 창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애초에 이걸 가지고 뼈빠지게 안 고민할 거 같으면 번역가 직업과 번역 저작권이 없어도 된다.[4]
예를들어 왈도체 같은 발번역의 경우는 의역이 아닌 확실한 오역이며, 발번역 문서에 있는 만갤 번역 짤의 경우는 번역한 표현을 한국식 속어로 바꾸고 몇몇가지를 창작해서 추가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의역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사실 아마추어 번역가들의 문제는 의역, 직역이 아니라 번역 자체를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단어를 빠뜨리거나, 단어를 다른 단어로 듣거나, 그리고 단어에 들어 있는 암묵적인 뜻을 모르거나다. 예로서, <Ellen show>에 등장하는 남자 피겨는 마약을 거래하는 사람인데, 그의 대사 가운데 하나인 "Say hello to my crystal."을 은근히 많은 비디오에서 "내 크리스탈에게 인사해."로 번역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crystal"은 마약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한데, 메스암페타민은 결정(結晶, crystal)을 이루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번역가들이 우후죽순으로 외국곡을 해석하여 블로그, 유투브에 업로드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대로 의미전달을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문 지경이다. 그룹 퀸의 노래 <We Are The Champions> 역시 오역이 자주 나오는 노래인데, 웹상의 아마추어 번역가들이 2절과 후렴을 제대로 해석한 예가 상당히 드물어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노래가 가진 인기에도 불구하고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졌다. 영어권의 비유적 표현, 그리고 각종 고급 문법을 제대로 해석하면 2절 전체가 앵콜 때 팬들에게 하는 감사인사를 하는 내용이지만 많은 국내 번역들에서 "Bed of Roses"를 장미꽃 침대로 오역하고 가사의 연결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해석해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됐다.[5] 이것은 직역으로 인한 오역인데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뭉뚱그리는 걸 의역이라고 생각하고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또 비슷한 예로, 어벤져스에서 로키토니 스타크의 가슴에 치타우리 셉터를 찔러 세뇌하려고 하다가 실패하자 토니가 "Performance issue."라는 개드립을 치는데, 이것이 국내 자막에선 "발기부전"으로 번역되어 이게 오역이다 아니다 논란이 컸지만 실제로 오역이 아니다. "Performance issue"의 직역은 '성능 문제'인데, 여기서 말하는 성능은 남자의 성기의 성능을 의미하기도 하고, 로키가 셉터를 사람에게 찔러 세뇌하는 걸 삽입에 비유해 그게 안 되니 '발기부전'이라고 드립을 친 것이다. 여기에 "중년 남성"이라는 원문에 없던 말이 추가되긴 했지만 이 부분만 제외하면 "발기부전"은 아주 탁월한 의역이고, "성능 문제"로 직역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번역이다.
예를 들어, 일본인 A가 일본인 B에게 말한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다고 해보자. 여기서 번역가가 번역할 대상은 단순히 일본인 A가 한 말이 아니라, A와 B 사이에 오가는 의미체계다. B가 A의 말을 그냥 알아들을 수 있듯이, 번역본을 보는 사람도 번역가의 번역을 그냥 알아들을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번역이다. 그래도 원문의 맛을 살리고 싶으면 반드시 따로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6]
영어 표현 "You can find faith at the end of a sword."는 직역하면 "칼 끝에서 신앙심을 찾을 수 있다."가 된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마치 칼날의 꼭지점이 어떤 형태로 신앙심과 연결된다는 상징적인 표현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문장의 실제 뜻은 "칼 끝이 (코앞까지) 들어오면 믿음이 생긴다"라는 뜻이다. 보다시피 원문에는 '협박'을 직접적으로 의미하는 부분이 전혀 없지만 표현이 그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문장구조 속에 녹아 있는 의미는 직역체로는 놓치기 쉽고, 설령 반영해도 원문 구조에 얽매이면 오히려 더욱 어색하고 장황한 문장이 만들어져서 소위 억지번역이 되기 쉽다. 중요한 건 원문이 정확히 뭐라고 쓰여 있느냐 전에 그 원문에 있는 의미와 영향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과감하게 원문의 구조에서 벗어나 의미전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시적 표현이나 의도적으로 빙빙 돌려놓은 표현을 다 직설적으로 바꾸라는 뜻은 아니다. 원어민에게는 평범한 표현, 숙어 또는 속담이지만, 문화와 언어의 차이로 인해 외국 독자가 즉시 이해할 수 없는 문장과 원어민에게도 직설적이지 않게 돌려 표현한 문장은 명백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뜻의 표현이라도 용법이나 사용 범위가 다르면 두 언어의 차이를 명확하게 숙지해야 한다. 한국어에는 을 '꾼다'고 하는 표현이 따로 있지만 일본어에서는 '보다'의 뜻인 '見る'를 사용한다. '見る'와 '보다'는 같은 뜻이지만 사용범위에 차이가 있음을 감안하지 않고 "夢を見る"를 그대로 "꿈을 보다"로 직역하면 이는 몹시 어색한 번역이 된다. "꿈을 꾸다"로 의역하는 것이 올바른 번역이다.
영어의 예로서는, 'please'라는 표현은 흔히 "제발"로 직역하지만 사실 'please'의 용법은 좀 더 넓다. "제발"은 애걸한다고 할 정도로 진지하게 부탁할 때에나 쓰는 표현이지만, 'please'는 단순히 부탁을 정중하게 하는 높임말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영화에서 종종 나오는 "You forgot to say please."는 "제발이라고 말하는 걸 잊었잖아."로 번역하면 곤란해진다. 'Please'가 빠지면 명령조와 실질적으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부탁을 하는 데에 예의 바르지 않다고 지적하는 말이기 때문인데, 한국어에선 보통 단어 하나의 유무로 부탁인지 명령조인지가 크게 갈리지는 않기 때문에 이걸 제대로 번역하려면 " '주세요'라고 해야지." 또는 "부탁하는 놈이 왜 반말이야?", "말이 짧다?" 같은 과감한 의역이 필요하다.
이는 표현 뿐 아니라 조사에도 마찬가지다. 일본어는 문장구조가 한국어와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일본어에 사용되는 조사를 해당하는 한국어로 그대로 직역해 버리기 쉬운데, 사실 두 언어의 조사는 해당은 될지언정 뜻과 용법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お前に何がわかる?"를 예로 보자. 조사를 그대로 옮겨서 번역하면 "너에게 뭐가 알아?"가 된다. 그러나 한국어엔 이런 표현 없고, "네가 뭘 알아?"라고 말한다. 비슷한 예로 "私が分からない?"는 " 못 알아보겠어?"라는 뜻이지만 지나치게 직역하면 "내가 모르겠어?"가 되어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문장구조가 비슷하다고 일본어의 단어와 조사 등을 그대로 가져와도 뜻이 통할 것이라는 오해로 직역을 하면 한국어면서도 한국어가 아닌 괴상한 문장이 탄생해 버린다.
또 일본어는 특성상 빙빙 돌려서 표현하는 등 한국어로 직역하면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또 원문의 느낌을 살린답시고 한국어에 없는 표현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俺はお母さんに起こされた" 같은 문장은 직역하면 '나는 엄마에게 깨워졌다'가 되지만, 당연히 어색하므로 자연스럽게 해석하면 '엄마가 나를 깨웠다'가 된다. 참고로 다소 억지로 깨웠다는 느낌도 있으므로 문맥을 봐서 '억지로' 등의 표현을 추가해도 괜찮다.
일본어 고유의 관용구 표현도 당연히 의역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흔히 쓰이는 "正直者は馬鹿を見る" 같은 표현을 '정직자는 바보를 본다'로 번역하면 그건 그야말로 해석이고, 오역이다. 실제 뜻이 완전히 상실되어서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정직자는 뭐 하는 사람이고 바보가 보인다는 건 또 무슨 소리지?" 같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제대로 번역하면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본다' 또는 '정직하(게 살)면 바보 된다'로 번역하는 게 적당하다. 마찬가지로 AKB48의 곡명 〈願いごとの持ち腐れ〉도 ‘바라는 것을 썩힘’으로 직역하는 것이 아닌 ‘소원을 간직할 뿐’으로 의역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외국어->한국어 예시가 와닿지 않으면 반대로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경우를 예로 보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빠르게 한다는 의미의 관용구다. 그런데 이것을 영어로 직역하면 "head is spinning fast."가 되는데, 이건 영어에선 또 "어지럽다"의 뜻으로 쓰이는 관용구다. 아무 생각 없이 원문의 구조를 그대로 번역기 돌리듯 옮겨버리면 이런 참사도 일어난다는 의미다. 물론 이렇게 의미 자체가 변질되는 일은 많지 않지만, 원문 언어를 가르치는 상황이 아니면 '원문 언어의 독특한 표현'이랍시고 구조를 그대로 옮겨버리면 "그는 입이 무겁다(그래서 우리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가 "His mouth is very heavy." 따위로 번역되는 꼴이 되는데, 당연히 원문 언어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수많은 외국어->한국어 직역이 바로 이런 어감이다.
비슷한 예로, 일본 가정에서는 서로를 부를 때 상대를 자신과의 관계가 아니라 가정 내의 위치로 부르곤 한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를 '오토상(아빠)', '오카상(엄마)'라고 부르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반면 한국에는 이런 문화가 없고 '아빠', '엄마'는 자신의 부모만을 칭하는 호칭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 언어에서 '아빠', '엄마'라는 단어의 용법이 정확하게 겹치지 않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원문의 느낌을 살린답시고 부부의 대화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서로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번역을 하면 그게 정말 원문의 느낌을 살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며, 서로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는 걸로 의역하는 것보다 나은 번역이라고는 더욱 할 수 없을 것이다. '철수 아빠/엄마'라는 식으로 자식 이름을 붙이면 그나마 낫겠지만, 이렇게 하는 순간에 이것도 직역의 범위에서는 벗어나는 데다 쓸데없이 문장을 길게 늘이게 된다.
의미는 바뀌지 않아도 한국 정서와 맞지 않는 표현의 경우에도 의역이 필요하기도 하다. 가령 명탐정 코난츠부라야 미츠히코(박세모)의 말투. 일본어 원판에서는 존댓말을 쓰는데(소위 존댓말 캐릭터다), 그렇다고 한국에서도 그걸 그대로 "코난 군, 뭔가 찾으셨습니까?" 같은 식으로 번역하면 어색할 것이다. [7]
번역체 문장/영어 항목에도 설명된 것처럼, 영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 대명사를 과도하게 가져오는 경향도 많다. 자세한 것은 해당 내용 참고.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원문에 사용된 대명사를 그대로 가져왔다간 "Give it to me(이리 내놔)!"같이 평범한 문장도 "그것을 나에게 줘!"같이 괴상하고 장황한 문장이 되곤 한다.
반대로 한국어나 일본어 같은 동양권 언어 특유의 한자를 조합해 만든 단어들은 영어 같은 서구권 언어로 번역하기 매우 힘들다. '의리', '감지덕지', '불효자식' 같은 단어는 영어엔 그대로 대응하는 짧은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의 뜻을 그냥 나열만 해도 뜻이 통하긴 하지만 단순히 뜻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대사의 일부일 경우에는 "이 불효자식아."를 "You son with no respect towards his parent." 로 직역하면 미칠듯이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잘 된 의역의 예로는, 파이널 판타지 7 어드벤트 칠드런에서 루퍼스 신라의 "눈치 좀 채라, 이 불효자식아."를 "A good son would have known."(효자라면 눈치챘을 것을)로 원문의 형태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면서도 뜻을 그대로 살려 매우 적절하게 번역한 영어 더빙판 대사가 있다.
사실 문장이 아니라 이름, 용어 등의 단어도 의역해야 할 때가 많다. 한 단어여도 뜻이 있으니 의미전달이 필요하고, 문화적 차이가 있으면 직역은 올바른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예로, 일본에서 '宇宙人'은 우주에서 온 이종족을 의미하는데, 한국어에서 그런 개념은 보통 '외계인'으로 일컫는다. 이걸 한국 한자음대로 읽어 '우주인'으로 적으면 우주비행사와 헷갈릴 수 있으니, 뜻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오역이자 발번역이 된다. 다른 예를 들자면 이름의 경우, 해외에서는 사람을 성으로 부르기도 하고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번역할 때 성으로 부르는 것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으로 수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오역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선 성으로만 부르는 일이 적어 문화적 차이를 수용해서 의역을 한 것이다. 다만 해외에서는 성을 부르냐 이름를 부르냐로 두 인물간의 거리감을 알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알 방법이 사라지긴 한다.
이렇듯, 직역에 많이 고집해서 배경 지식이 필요하거나 우리 말에서 잘 안 쓰는 표현으로 번역하면 그건 번역이라기보다는 단순한 해석이다. 특히 사전을 펴면 맨 먼저 나오는 것으로만 번역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도 있는데, 문장 밖에 단어도 서로 1:1로 대응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말도 동음이의어와 다의어가 많은 것처럼, 영한사전을 봤으면 1번 뜻, 2번 뜻, 3번 뜻…하고 단어 하나에 여러가지 뜻이 있음 알 수 있다. 그러니 그 가운데에 어느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찾아봐야 한다.
원문: She was taken off by other women.
올바른 의역 : 다른 여자들이 그녀를 데려갔다.[8]
잘못된 의역(즉, 오역): 그녀는 다른 여자들에 의해 옷이 벗겨졌다.
끔찍한 의역(즉, 오역): 다른 여자들이 그녀를 이륙시켰다.
예를 들면, 특히 노래 가사나 시 등에서 운율이나 어감을 위해 조사를 빼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에 앞 뒷 문장을 생각하여 자연스럽게 조사를 이어주거나 어순을 바꿔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래도 무조건 강한 직역만 강요해서 번역체 문장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는데, 현정수 같은 본좌도 인터넷에 나돌아다니는, 번역체로 가득한 내용하고 다르다며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
위의 내용에서는 다소 극단적인 직역과 비교하여 의역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했지만, 그렇다고 직역은 문제있는 방식이고 의역을 해야만 옳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원문구조를 그대로 옮기는 데에 집착하느라 의미가 오히려 전달되지 않거나 변질되는 직역은 피해야 하며, 상황별로는 제대로 의미를 전달하려면 결국 필연적으로 의역을 해야 한다는 의미지, 모든 직역이 의미를 잘못 전달한다는 말이 아니니 주의. 또한 원문 언어를 전혀 몰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에 바람직한 것이지만 이미 해당 언어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 번역체에도 익숙한 사람들, 가령 서브컬처의 많은 팬들 같은 특정 그룹이 대상이면 그게 필수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기한 것들과 같은 직역을 해도 의미전달이나 변질 없이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직역/의역은 취향에도 상당히 좌우되며, 한 쪽을 무조건 '틀린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확실한 오역을 지적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원문의 구조에서 벗어났거나 벗어나지 않았다고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3. 의역의 한계


위에도 있듯, 의역은 세상에 어떠한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있고 그 언어로 작성된 문장에 직설적이지 않은 암시가 포함되어 있으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의역에 부정적으로 대하는 시선이 있는 이유는 의역을 지나치게 했다가 오역의 범주로 넘어가는 사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역은 필연적으로 원문의 구조에서 벗어나게 되는 만큼 역자가 원문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거나 대상 언어로 옮기면서 창의성을 과하게 발휘해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하면 문장 구조도 뜻도 원문에서 벗어나서 사실상 발번역, 오역이 된다. 초월 번역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 실제로 유명한 문장들 중에서는 원문과 비교하면 뜻이 아예 다른 경우도 많다. 목적을 살리기 위해 뜻을 바꿀 수 밖에 없는 언어유희나 자연스러움을 위해서 번역가와 원저자가 협의하여 처음부터 문장을 새로 만드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번역가 본인의 창작욕구로 본 문장의 뜻을 바꾸는 것은 권장되는 일이 아니다. 직역의 경우에는 아무리 뜻 전달력이 막장이어도 어쨌든 원문의 형태에는 충실하기 때문에 비교적 받아들여지기 쉬운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의역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역자의 역량 때문에 생기는 실수지만, 어쨌든 의역할 때에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의역에 선천적으로 있는 문제는 전체 맥락을 파악해야 하는 데에서 나오는데, 전체 맥락을 당장 파악할 수 없으면 정확한 의역을 못 하기 때문. 애초에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면 번역 전에 어떻게 이해를 하겠냐만은, 이게 문제가 되는 건 연재작에서 나중에 나올 전개를 반영한 서술이나 대사여서 당장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경우다. 이건 역자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작가에게 하나하나 캐묻지 않는 한 절대로 알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요츠바랑의 "줄주리타". 또 다른 예로는, A라는 뜻으로도 B라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는 언어유희를 이용해 복선을 깔아두는 경우가 있다. 원어민이면 "아 그게 A가 아니라 B의 뜻이야?"라며 쉽게 납득할 수 있지만 같은 언어유희가 없는 언어권에서 A를 의미하는 언어유희를 전제로 번역을 했다가 나중에 B로 밝혀졌을 때 어째서 그게 그렇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자가 작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한 의역에 따라올 수 있는 위험성인 셈.
대개 애니플러스, 애니맥스 같은 정식 수입 경로의 자막의 경우 전문 번역가를 고용해 의역하는 경우가 많고, 임의로 자막을 제작하는 이들은(불법 자막제작 포함) 직역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는 전문 번역가들이 의역이 필요한 책이나 서류 번역을 맡은 경험이 많아서나 개인 자막 제작자들이 번역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후자의 경우 넓은 시청자에게 두루두루 읽히는 번역보다는 소수의 적극적 매니아 혹은 블로그 방문자 등을 만족시키는 번역을 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각 캐릭터들은 말투나 어조, 사투리 그리고 특유의 조어방식으로 성격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역하면 이들이 전부 뭉뚱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9] 또한 원문의 대사 자체가 해당 상황을 가장 잘 전달하려고 제작진이 고르고 고른 연출의 일부이므로 이를 누락, 각색시키면 원문의 분위기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를 정확히 표현하려면 문장성분의 도치나 어미의 변화까지 그대로 옮기는 극단적인 직역이 아마추어 자막 제작자나 적극적 매니아층 양자에게 선호된다.
다만 정식배급사의 경우 TV나 극장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심지어 IPTV라 할지라도 되감기와 화면정지가 PC나 스마트폰보다는 불리하다는 기술적인 문제가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상 아마추어 자막 제작자들보다는 더 넓은 시청자층을 배려할 수 밖에 없다. 시청자 중에는 일본 문화와 재패니메이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혹은 단순하게 속독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넓은 시청자층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번역, 알아먹지 못하고 되감기를 할 필요가 없는 번역이 요구된다.
일본어를 어설프게 들을 줄 알지만 자막이 없이 볼 정도는 아닌 사람들에게 들리는 대사와 1:1로 매치되지 않는 자막은 상당히 거슬리기 때문에 직역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10] 사실 그정도 되면 좀 더 공부해서 자막 없이 보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지만. 또한 일본어에서는 '-の'(-의)라는 수식어구를 상당히 남발하는 편인데, 한국어에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므로 '-하는', '-에 있는', '-가 가진' 같은 적절한 번역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이때 자막 제작자의 배경지식 부족 등으로 격이나 시제가 틀리는 경우 많아 차라리 듣는 이가 간극을 메꿀 수 있도록 그냥 직역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사과문이나 외교협약 같은 특수한 경우에서는 섣부른 의역을 최소화하고 직역 위주로 번역하는 것이 현명하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원문의 뜻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기도 하고, 혹은 왜곡하고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관련 문서



[1] 간단한 예시로 한국인 여성이 남편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단어와 단어의 일치'로 영어 번역한다면 brother이다. 그러나 이를 '생각과 생각의 일치'로 영어 번역한다면 honey가 된다.[2] 기본적으로는 직역이 우선이다. 직역을 해서 나쁘지 않으면 직역을 하고, 불가능하거나 결과가 어색하면 의역을 하는 게 기본.[3] 반대로 초라한 실력보다 지나치게 자신감이 하늘을 찔러서 의역을 하다 못해 아예 소설을 쓰는 경우도 있다.[4] 다만 한국은 애초에 이런 번역 개념이나 고찰이 없기 때문에 하청번역도 흔하고 번역 저작권 개념도 부족하다.[5] Bed of roses에서의 bed는 정원, 화원이라는 뜻이다. 옳게 직역하면 장미화원이라는 뜻으로 정원에 장미밭이 주는 풍요로움, 안정된 좋은 느낌 그 자체이다. 사실 직역으로 제대로 번역해도 정원문화가 없는 한국인들에게 가사전달이 제대로 되기 힘들다. 비유적 표현을 유지하며 가사의 의미를 한번에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고층아파트'와 같은 로컬라이징이 필수이다.[6] 신약성서에서 세례 요한이 "나는 예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실내에서는 맨발로 다녔고, 밖으로 나올 때는 끈으로 된 샌들을 신고 다녔다. 당연히 밖에서 돌아다니면 발이 흙투성이가 되는데,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 집 노예가 문간에서 꿇어앉아 돌아온 주인의 신들메를 풀어주고 발을 씻겨주는 것이 당시 풍습이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은 자신이 예수의 노예만도 못하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장면에도 이러한 맥락이 담겨 있다. 이렇게 번역된 한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도 배경지식이 이 정도로 필요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7] 이 '어색함'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익숙하냐 아니냐의 문제이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또래 친구에게 존댓말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코난 공식 한국어 더빙판에는 인명과 지역명 등을 현지화했으니 당연히 반말 번역이 적당하다. 일본어와 일본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존댓말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그런 사람들만을 위하는 번역이 아니라 대중적이어야 하는 공식 번역에서 친구들 사이에 예의바른 존댓말을 구사하는 것은 무척 어색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8] 저 문장 하나만 나왔을 때는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맞으며, 문장이 여러 개 나왔고 상황이 여성이 누군가에게 납치당하는 상황이면, 'taken off'는 '납치당했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애초에 의역으로 쓰여는 있지만 저 문장은 'by'(-에 의해)를 적절히 한국어에게 맞게 번역해 준, 직역+의역이 섞인 번역이다. 또한, 피동이면 '의해'가 아닌 '의해져'가 적절하고, 앞말이 유정 명사이면 '-에'가 아닌 '-에게'가 적절하다.[9] 고의로 잘 쓰이지 않는 어려운 어휘를 쓰거나 귀여움을 어필하고자 문장 앞뒤를 바뀌는 경우[10] 한국어와 문장성분의 순서도 같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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