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파르트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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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럽의 왕조. 창시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이며[1] 현 수장은 장 크리스토프 나폴레옹[2] (1986~)이다.[3]
카롤루스 왕조 이후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황제를 배출한 왕조이다.
2. 역사
왕조 이전의 가문은 이탈리아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본래의 명칭은 부오나파르테(Buonaparte). 나폴레옹이 태어난 코르시카는 1768년까지 제노바의 소유였으며 나폴레옹의 집안도 롬바르드족에서 내려온 보나파르트 가문의 후예로 토스카나 출신의 이탈리아 인이다. 그러다 나폴레옹의 조상이 속한 분가 하나가 제노바 공화국의 영역이던 코르시카 섬으로 흘러들어왔고 후에 1767년 제노바가 프랑스에 코르시카를 매각하여 코르시카 전체가 프랑스땅이 되면서 가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코르시카 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여기에 참여했던 나폴레옹의 가문은 프랑스로 전향해 보나파르트 가가 되었다.[4]
그 뒤 가문의 나폴레옹이 천재적인 군사재능과 정치수완을 발휘하며 프랑스 황제에 오르자 프랑스의 변방 어촌 이민족가문에 불과하던 가문은 유럽의 유력가문으로 성장하게 된다. 지금도 명목상이지만 프랑스 황제 직함을 가지고 있다.
나폴레옹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별개로 마치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기 전까지는 보나파르트 가문을 말 그대로 '그물 쳐서 고기나 잡던 코르시카 어민' 수준으로 여기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못먹고 못살지는 않았다. 단지 프랑스의 중앙 정계와는 거리가 있었던 비주류인 지방 귀족 집안 정도였다. 나폴레옹이 젊은 시절 차별과 멸시를 당했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당시 정계를 주름잡던 귀족들의 자제들에 비해서 초라해 보여서 그렇지 당대의 일반농민들에 비하면 당연히 잘사는 편이었으며 유달리 가난하거나 천한 신분은 아니었다.
나폴레옹과 그의 형제 중 후손을 제대로 남긴 사람은 나폴레옹의 막내동생인 제롬 보나파르트 뿐이어서, 현대의 보나파르트 가문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제롬의 직계 후손들이다.
나폴레옹 3세의 독재 이후 프랑스는 보나파르트 왕조의 사람이 '''대통령직에 피선거권'''이 없도록 헌법에 못박아 넣었다는 설이 국내 인터넷 상에서 돌곤 하는데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직계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폴레옹의 방계 후손인 샤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정계에 진출해서 아작시오 시장직을 역임한 적도 있고 2007년 총선에서 민주운동당 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단지 정계거물이 아니라 중앙정계로 진출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후손이나 전현직 통치자 가족이 국가 최고위직(대통령직)에 출마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헌법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5]
3. 보유 직함
여러 직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프랑스의 황제,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직함(왕)들은 사실상 독립국의 국왕이 아니라 제후왕이다.
- 이탈리아의 왕
- 나폴레옹 1세 (1805–1814)
- 카니노와 무지냐노의 대공
- 뤼시앵 보나파르트
- 토스카나의 여대공
- 엘리사 보나파르트(1809–1814), 루카와 피옴비오의 여공작(1805 -1814)
- 과스텔라 여대공
- 마리아 폴린 보나파르트
[1] 그러나 보나파르트 가문이 가진 직함 중에는 나폴레옹이 아닌 호세 1세, 루이 보나파르트, 제롬 보나파르트 등 그의 형제들이 가지고 있던 직함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아버지인 카를로 부오나파르테 (샤를 보나파르트)를 창시자로 보기도 한다.[2] 현재의 보나파르트 가문은 성씨를 나폴레옹으로 바꾼 상태이다.[3] 그러나 장 크리스토프 나폴레옹의 아버지인 샤를 나폴레옹 역시 자신이 보나파르트 가문의 수장이라고 자칭하고 있다. 이는 전대 수장이자 샤를 나폴레옹의 아버지이며 장 크리스토프 나폴레옹의 할아버지인 전대 수장, 루이 나폴레옹이 자신의 아들 (샤를)이 자신의 허락 없이 이혼한 뒤 평민과 재혼 (귀천상혼)했다는 이유로 아들이 아닌 손자 (장 크리스토프)에게 가문의 수장 자리를 넘기고 사망했기 때문으로 이로 인해 아버지 (샤를)와 아들 (장 크리스토프)이 모두 자신이 보나파르트 가문의 수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샤를 나폴레옹은 자신이 사망할 경우 그의 지위는 장남인 장 크리스토프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4] 나폴레옹의 아버지인 카를로 마리아 부오나파르테(샤를 보나파르트)는 본래 코르시카 독립 운동의 지도자인 파스콸레 파올리의 비서였으나 파올리가 프랑스에 패배하여 영국으로 망명할 때 파올리를 배신하고 프랑스의 편에 서서 하급 귀족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하급 귀족이라고 해봤자 코르시카에서나 귀족 대우를 받지 프랑스 본토에선 귀족 취급도 받지 못하는 신분이었다. 따라서 원칙대로라면 나폴레옹은 귀족들만 입학할 수 있던 군사학교 (사관학교)에는 입학할 수 없었으나 루이 15세의 칙령으로 하급 귀족들도 군사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면서 겨우 군사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된다.[5] 합스부르크 후손 "대선 출마권 달라"[6] 정식 명칭은 프랑스인의 황제이다. 이는 다스리는 대상을 프랑스라는 국가가 아닌 프랑스인이라는 국민임을 강조했다. 왕정의 군주였던 "프랑스 국왕"의 칭호는 국왕이 프랑스라는 국가를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를 시사했다. 반면 프랑스인의 황제는 명목상 입헌군주제를 지향했다. 이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봉건제도가 폐기되고 새로운 국민국가가 탄생했으며 황제는 그것을 계승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7] 나폴레옹 3세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