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란
Буран
겨울에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부는 블리자드의 일종으로 눈보라를 동반한 차갑고 강한 바람이다. 러시아어로 "폭풍우"라는 뜻. 극단적인 경우에는 해가 비치고 있어도 하계에서는 시계가 0이 되기도 한다. 후술할 항목 2의 우주왕복선 이름에 차용되면서 유명해졌으며, 우리나라에는 항목1의 폭풍보다는 항목2의 우주왕복선으로 더 유명하다.
이름의 유래는 항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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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기인 OK-1.01 리즈시절. 부란의 아래에 장착된 로켓이 에네르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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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15일 OK-1.01 발사 당시의 모습. 이것이 부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주에 다녀온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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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기였던 OK-TVA. 모스크바 베데엔하 우주박물관(Мемориальный музей космонавтики)에 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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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기였던 OK-M.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한켠에 전시 중...이라고 쓰고 방치 중.[1]
카자흐스탄 바이코노르에 버려진 채 방치 된 부란과 생산공장을 폐허덕후들이 방문한 영상이다. 5분 48초부터 을씨년스럽고 공허한 공장의 전경이 보인다.
부란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은 여기를 참조, 왠만한 정보는 다있다.
2019년 건설 중인 고층 건물을 오르는 것으로 유명한 유튜브 채널 on the roof에서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 가서 부란의 모습을 담아왔다. 영상은 이곳
물론 위와 같이 무단으로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 들어가는 행위는 침입 행위이며, 이 지역은 러시아의 ICBM 기지를 겸하고 있는 중요 군사 보안 시설이므로, 자살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찰 인원들은 실탄 총기로 무장하고 있으며, 경내 침입자에 대해선 즉시 사살할 수도 있다. 다만 워낙 구역이 넓어서 마주치지 어려운 것이지, 정기적인 순찰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
소련이 개발한 우주왕복선. 1988년 11월 시제품이 1회 무인비행을 한 것이 유일한 우주비행 기록이다.
1989년 An-225에 실려 파리 에어쇼에 참가하여 대중에게 공개된 바 있다.
1972년 미국이 재사용 가능한 우주왕복선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하자 당연히 소련도 비밀리에 우주왕복선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일부 소련의 과학자들은 돈지랄을 해서 우주왕복선을 개발할 필요가 없고, 소유즈나 개량해서 쓰자고 했다. 엄청난 개발비와 시간을 쏟아부어 우주왕복선을 개발해서 발사하는 것보다 그냥 소유즈를 여러 번 쏴서 2~3명씩 여러 번 보내는 비용이 훨씬 싸게 먹힌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소유즈 공정이 이미 표준화 되어 있어서 소유즈를 제작하는 원가는 그리 비싸지 않았다.[2] 우주왕복선 개발을 위해서는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데, 당시 소련의 우주 예산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또 중량이 무거운 것을 실어나르기 위해 굳이 우주왕복선을 만들 필요 없이 중량이 무거운 것은 별도의 발사체에 실어서 보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소련에는 강력한 페이로드를 자랑하는 프로톤 로켓 발사체가 이미 있었고, 그 프로톤을 이용해서 미르가 우주에 올라갔다.
그러나 소련의 정치 지도자들은 소련에서도 우주왕복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소련의 지도자들은 미국이 무거운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우주왕복선을 무기화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소련도 반드시 우주왕복선을 개발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결국 정치적 목적으로 소련에서도 우주왕복선 부란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소련 우주선 개발이 항상 그러했듯이 우주왕복선 개발 역시 비밀리에 추진되었지만 그 속도는 매우 더뎠다. 1980년 부란의 물리적 제작(assembly, construction)이 시작되었지만, 그 사이 미국은 이미 우주왕복선 개발을 완료하여 1981년 4월 12일 발사에 성공했다. 그러자 소련은 성명을 내고 미국이 군사용 무기를 개발했다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내부에서 소련 정치 지도자들은 과학자들을 무능하다며 맹비난했다.
소련이 가지고 있던 우주왕복선 기술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었지만[3] 시간과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소련은 정보기관을 동원해 미국 우주왕복선의 기골, 재질, 추진계통, 비행컴퓨터 데이터를 수집하는 등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의 기밀 처리되지 않은 자료들을 가져와서 써먹었다. 부란 궤도선의 모습이 우주왕복선과 거의 동일한 것 역시 풍동 시험 결과 이미 미국이 개발한 궤도선의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그 형상을 그대로 활용한 결과다.
초기의 계획에선 2기의 부란만을 생산할 계획이어서, 모스크바 근교의 정밀기계 공장에서 기골과 비행장치 등 전체 구조의 65%가량을 제작하고,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로 옮겨 여기서 완성하게 되어 있었다. 초도기의 경우, 이 거대한 물건을 외부에 공개되지 않도록 보안을 유지하며 모스크바에서 바이코누르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당시 최대의 운송 작전이 펼쳐졌다. 크기가 워낙 크기 때문에 안전문제로 낮에 이동을 시켜야 했는데, 모스크바 강을 이용해 주코프스키 비행장으로 운반하고, 오버해드 크레인을 이용해 '마시셰프 VM-T' 위에 탑재한 뒤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로 운반했다. 당시 이 기체의 노출을 극도로 꺼린 소련 당국은 운반 현황을 육안으로 볼만한 지역의 동선의 외출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옮겨진 초도기는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완성됐다. 당시 소련의 발표에 의하면 부란은 '재활용이 가능한 우주선으로, 인간이 지금까지 만든 우주 기체 중, 최신의 과학적 성과가 반영되어 있고, 항공우주 기술의 정점이며, 동원 가능한 수학적 설계, 연구실 실험, 필드 테스트 경험이 총동원된 것'이었다. 초도 비행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부란의 양산 계획이 승인되었고, 생산 시설이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 꾸려저 여러 기체의 제작에 돌입했지만, 곧 소련 붕괴로 모두 중단되고 말았다.
소련 붕괴 직전에 초도기 제작이 이뤄져 유인 우주 비행이 실제 진행되진 못했지만, 공개된 것만 7명의 부란 우주 비행사가 양성되고 있었다. 이들의 양성 프로그램을 위해 부란의 목업을 바탕으로 한 신규 시뮬레이션 장비가 만들어졌고, Tu-154 한 대의 콕핏을 아예 부란의 콕핏과 동일하게 판갈이(Tu-154M-LK-1)하여 실제 비행 감각을 익히도록 하기도 했다.
한편, 개발 당시 기준으로 소련이 동원 가능한 전자 기술, 컴퓨터 기술이 모두 녹아 들었기 때문에, 선전 자료에는, 자동화나 전자화 등에 대한 표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유일한 무인 우주 비행은 모두 자동 관제 시스템에 의해 이뤄졌고, 기술 자료를 검토한 NASA도 인정한 점이기 때문에, 소련의 선전이 맞았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현재 미국 로켓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스페이스X의 저궤도 유인 수송 시스템은 여전히 캡슐형인 크루 드래곤이고 셔틀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스타십은 최초 개발 목적은 화성 탐사용에다 NASA의 아르테미스 계획에 약간의 기능변경으로 서포트를 하는 터무니없는 스케일의 미션 수행을 위한 용도이다.
부란은 미국의 우주왕복선보다 약 10년 늦게 만들어졌다.[4] 10년이라는 시간 차에다가 알려진대로 미국 우주왕복선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여 만들어졌다. 거기에 당시 최신의 우주 기체 기술을 총동원해서 개발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우주왕복선보다 기술적으로 앞선 기체였다.
일단, 당시 신소재 기술을 아낌없이 퍼부어 기체를 감싸는 내열타일의 신축성을 높이고 중량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었다. 소련의 홍보 매체에서는 부란의 내열타일의 중량이 미국의 것보다 1/4정도에 불과하다고 홍보했으며, 실제로 내열타일이 가볍다는 것이 여러 영상에서 등장할 정도이다. 또한, 내열타일이 신축적이었기 때문에 조립 난이도도 훨씬 낮아, 공기를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 무겁고 신축성이 거의 0에 수렴해서 숙련된 작업자가 아니면 타일에 균열을 만들었기 때문에, 공기가 상당히 길었다.
이러한 중량의 감소를 통해, 미국의 우주 왕복선과 크기는 비슷하지만 적재중량은 더 많았다. 또한, 중량 증가의 우려로 미국에선 제외 시켰던 각종 지원 장비들을 탑재할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동장치, 여압장치, 오토파일럿 장치로, 이 장비들은 하기할 중대한 차이를 보였다.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제동장치가 없어 착륙 시 지면과의 자연마찰을 이용해 정지해야했고, 이에 따라 착륙지 선정이 제한되었다. 이는 당연히 기상의 영향을 받고, 이에 따라 비행 일정이 갑작스럽게 변경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란은 제동장치를 탑재해 착륙지의 제한이 적었으며,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 이외의 공군 기지에 착륙할 수도 있었다.
또한, 여압장치의 적용은 상당히 크고 중요한 차이였다. 미국의 우주왕복선에는 여압기술이 전혀 적용되어 있지 않아, 대기권 이동 시 기체 내부의 압력 변화와 그에 따른 온도 변화를 제어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대기권 재진입(지구 귀환) 시 기체에 저장된 불필요한 물품, 특히 연료를 모두 우주 상에 버리고 대기권에 재진입했다. 재진입 시 압력 폭증으로 인한 연료 폭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활공 비행을 통해 지구로 귀환했고, 기상 급변으로 인해 비행 경로가 변화해 지정된 지점으로 귀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5] . 이 때문에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발사 당일뿐만 아니라 귀환 당일에도 기상이 좋아야 했고, 당연히 발사일을 선정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6]
하지만 부란의 경우에는 선실과 연료계통에 여압장치가 적용되어, 기체 내 압력과 기온을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재진입 시 연료를 버리지 않은 상태로 진입할 수 있었고, 대기권 진입 이후 제트 엔진을 가동하여 목표 지점으로 얼마든지 귀환할 수 있었다.
부란은 무인비행까지 가능하며 실제 첫 비행은 우주비행사 없는 부란 자체만의 오토파일럿으로 실시한 비행으로 206분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성공적으로 바이코누르 공군기지에 안착하였다.
이 우주왕복선 오토파일럿 기능은 지상 관제 센터에서 컴퓨터로 원격 조작한 것인데, 우주선의 원격 조작은 비행기의 원격 조작이나 오토파일럿과는 차원이 다른 극도로 어려운 작업이며[7] , 소련이 우주왕복선의 무인 비행에 성공하자 NASA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국 NASA도 우주왕복선의 오토파일럿 기술 개발에 착수했지만 끝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만일 부란이 실제로 활용되었다면 부란의 탑승자는 실제로 부란을 조작하지 않고 운행 상황만 점검하면 되기 때문에 훨씬 비행강도가 적고 안전했을 것이다. 부란은 2010년 미국의 X-37이 재돌입 후 자동 착륙을 하기까지 유일한 자동재돌입 및 착륙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8] 작업용 로봇팔도 미국 우주왕복선은 1개밖에 없지만 부란에는 2개가 달려 하나가 고장나거나 파괴되더라도 다른 하나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했다.
부란은 실제 발사체를 제작하기에 앞서 실험기를 많이 만들었으며, 실험기에서 발생한 오류를 실제 발사체에 반영하였다. 이는 발사체를 실험기로 굴리거나 실험기를 이후에 발사체로 개조한 미국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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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란 양산형의 완성 예상도, 제트엔진 포드가 후미에 보인다.
#### 제트 엔진의 성능 테스트를 위한 비행 시험과 관련된 영상이다.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비교시 부란 시스템의 최대 특이점은 궤도선에 달리는 것이 연료탱크가 아닌 액체연료 로켓이라는 것이다. 또 연료탱크 자리에 있는 거대하신 분도 액체연료 로켓. 미국 우주왕복선은 연료탱크의 연료가 하드포인트를 통해 우주선 본체로 들어가 본체에 달린 추진로켓을 작동시키고, 발사를 도와주는 부스터가 고체연료라 중간에 추력을 조절할 방법이 없는 복잡하고 위험한 구조인데 비해 부란은 본체에는 궤도조절용 소형 로켓만이랑 OMS엔진만 달려있고 별도의 로켓들, 그것도 추력 조절이 가능한 액체연료 로켓이 쏘아올려주는 구조이기 때문에 훨씬 간단하고 안전하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더 뛰어난 것과는 별개로 부란은 우주왕복선의 원래 개념을 생각해보면 주객전도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원래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계속 회수 후 재사용을 해서 발사비용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회수 및 재사용이 쉬운 고체 로켓 부스터를 보조용으로 사용하고, 비싸고 회수가 어려운 액체 로켓 엔진은 궤도선에 장착해서 연료통만 별도로 장착해 쓰고 버린 후 엔진을 지구로 그대로 가지고 돌아오게 만들었다. 다만 실제로는 내열타일 정비 등의 난점으로 인해 이런 재사용이 그리 경제적이지 못하게 되었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다.
그런데 부란은 비싼 로켓엔진이 궤도선이 아니라 별도의 부스터에 장착되어 아예 회수가 안 되기 때문에 굳이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비슷한 형식으로 만들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생긴다. 나중에 에네르기아 II라고 부스터에 날개를 달아서 발사 후 활공 착륙하여 회수 가능한 방식을 고려하기는 했지만 이 경우는 궤도선에도 날개가 달리고 부스터에도 날개가 달리는 낭비가 되어버리며, 또한 궤도선도 방향 제어를 위한 소형 로켓과 대기권 비행용 제트엔진 정도만 달려있기에 우주왕복선에 비해 회수할 필요가 비교적 적지만 재사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방열 타일의 점검 및 보수는 똑같이 필요하다. [9] 또 궤도선의 전체적인 구조가 우주왕복선과 비슷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 STS-107처럼 내열 타일이 손상되는 사고가 터질 경우 마찬가지로 대기권 진입 과정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전혀 없다.
아무튼 이 부스터와 액체로켓을 합쳐서 에네르기아라고 부른다. 자체 발사가 가능한 페이로드 100톤짜리의 기가 막힌 우주 발사체다. 즉, 우주선과 발사체의 조합에 대한 명명법에 따라 정식 명칭은 부란 - 에네르기아이다. [10] 현재 러시아산 발사체 중 현역 최고의 페이로드를 자랑하는 프로톤이 겨우 22톤(PROTOM-M 기준)이다. 에네르기아 로켓은 부란 왕복선 발사 1년 전에 '''우주전투위성''' 폴류스를 궤도에 올리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11]
안정성이 뛰어나 기상 상황에 관계 없이 발사가 가능한 전천후 우주왕복선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발사 기록은 무인비행 단 1회에 불과하므로 검증은 불가능한 주장이다. 에네르기아를 포함해 러시아 로켓들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로켓에 벼락이 떨어지는 혼파망의 상황에서도 로켓 발사를 강행하는 터프함으로 유명하지만 이에 대해 일론 머스크에 따르면 미국은 이런 상황을 대비한 내구성에 대한 스펙은 달성하고 있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코멘트를 남긴 바 있다.
1988년 11월 시제품이 완성되어 무인우주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 수 차례 대기권 내에서 유인 비행을 마치면서 유인우주비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1992년으로 예정돼 있던 유인 시험비행은 결국 취소되고 카자흐스탄의 우주기지에 방치되었다. 소련 해체 이후 부란의 소유권은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갔지만, 당시 막 분리독립해 먹고살기에도 벅찬 신생국 입장에서, 그런 돈먹는 하마를 감당할 배짱이 있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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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225 위에 타고 있는 부란.
한편, 부란이 미국과의 우주 왕복선 개발 경쟁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기 때문에 스케일에 집착한 측면이 없지 않다. 바로, 부란을 적재할 수 있는 비행기인 An-225가 대표적인 예이다. 부란은 마시셰프 VM-T로도 적재하여 수송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An-255를 별도로 제작할 필요가 없었으나, '크키'에 집착한 당시 소련 우주 당국의 결정에 따라 개발되었다. 그리고 부란은 미국의 우주 왕복선과는 달리 자력으로 이착륙과 비행이 가능했기 때문에, 굳이 항공기에 실어서 수송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세와 과시를 위해서 큰 돈을 들여 An-255를 개발하고 제작한 것이다[12] .
An-225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비행을 하고 있으며, 부란과는 달리 이 녀석은 '''너무나 요긴하게 잘 써먹고 있다.'''
이런 후일담 때문에 나우틸루스의 곡인 외톨이 새[13] 의 유튜브 뮤직비디오들은 대다수 부란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2002년 폭발 사고로 고철이 되어버린 부란 시제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리 묵념...
STS-51-L 사고, 그리고 냉전 종식 이후 미러 우주개발 협력이 본격화하며 어쩌면 오버홀 해서 우주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2002년에 시제기 1호가 격납고와 함께 폭발하여 전세계 우주덕들을 안타깝게 만든 사건까지 났다. 이에 대해 사고는 눈속임이고 러시아가 그냥 발파해서 묻어버렸다는 식의 소문도 있다.
일각에선 러시아 측의 발파 설을 사실로 보기도 한다. 일단, 부란을 보관하던 건물은 러시아의 우주선을 조립, 보관하는 곳인데, 이 건물의 북측동이 부란의 격납고였다. 이 북측동은 부란을 단순히 보관하는 곳만이 아니라, 부란을 생산, 조립하는 곳이었다. 즉, 부란의 기체를 격납고 공중애 매달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하중을 견디는 견고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건물이었다. 그리고 남측동은 소유즈를 생산하는 건물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2002년의 사고 상황을 보면, 위 북측동과 남측동이 동일한 골조의 건물임에도, 북측동만 도려낸 듯 무너져버렸다. 남측동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으며, 소유즈의 생산이 계속해서 이뤄졌다. 이는 정확한 폭파 계산을 통한 폭파 작업이 없었으면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더욱이, 러시아 우주당국은 이 사건을 단순 피로파괴로 규정하고, 제대로된 조사 없이 부란과 건물의 잔해를 신속하게 치워버렸다. 그리고는 2005년 무너진 부분 일부를 개건, 복구하여 소유즈 조립동을 확장하는 데 쓰고 있다.
그리고 건물에 대한 유지보수가 무작정 이뤄지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 부란의 거대한 발사대, 액체연료탱크, 지원 시설 등은 수십년 째 방치중인 듯 싶지만, 꽤 높은 수준으로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부란이 착륙했던 비행장은 실제 이착륙이 이뤄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제 시설과 활주로가 주기적으로 보수 관리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군사 기술 연구와 우주 개발 분야에 만큼은 다른 분야의 예산을 희생하더라도 소련 시절과 동등한 예산을 분배하고, 기술력을 유지 발전하고자 사력을 다했기 때문에[14] , 무작정 관리 소홀로 위와 같은 사고가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붕괴 사고로 인해 십 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당시 관리 책임자가 중형을 선고 받은 것을 봐선 음모론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또한, 목업이 아닌 실물이 독일로 팔려가 전시 중인데, 정말 기술유출이 우려되었다면 다른 장소에 보관했어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폐허 덕후 유튜버 등의 무단 탐사로 밝혀진 사실이지만,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 내에 시제기와 조립 중이던 에네르기아 로켓 등이 마구 방치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나, 관리 소홀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러시아가 우주왕복선을 다시 개발하고 있다는 루머가 나오고 실제로 일본의 우주박람회에 클리퍼라는 6인승 우주왕복선 모형을 출품하면서 러시아의 우주왕복선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 모형의 외관은 부란과 거의 흡사한데, 아마도 부란의 설계를 가져다 썼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가 점점 엉망이 되어가면서 이 여파가 우주개발 분야에도 미치고 있단 사실을 감안해보면 부란이 부활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고 볼 수 있다. 부란이 현재 나와 있는 우주왕복선 중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나고, 동시에 가장 안전하지만 러시아는 미국 이상으로 우주왕복선을 써먹을 곳이 없고 그런 우주선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이미 소유즈호의 후속작으로 페데라치야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거기다 미국은 스페이스X의 주도로 사실상 현대의 기술을 이용한 우주왕복선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십을 개발 중인데 이 시점에 부란과 같은 구시대적 설계의 우주왕복선이 설 자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에네르기아 로켓의 부스터로 쓰인 액체로켓(RD-170)은 개량되어 '제니트' 위성발사체로 오늘날도 러시아 연방 우주청이 사용하고 있다. 기존 4개이던 연소실을 2개로 줄인 RD-180이 미국 ULA의 아틀라스 V 로켓의 1단부에 사용되며, 연소실을 1개로 줄인 RD-191을 개조한 것이 바로 나로호의 1단부에 쓰인 엔진이다. 안가라 로켓 참조.
2020년 8월에 부란을 대신할 새로운 우주왕복선 제작을 발표하였다.#
1. 기상현상
겨울에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부는 블리자드의 일종으로 눈보라를 동반한 차갑고 강한 바람이다. 러시아어로 "폭풍우"라는 뜻. 극단적인 경우에는 해가 비치고 있어도 하계에서는 시계가 0이 되기도 한다. 후술할 항목 2의 우주왕복선 이름에 차용되면서 유명해졌으며, 우리나라에는 항목1의 폭풍보다는 항목2의 우주왕복선으로 더 유명하다.
2. 구 소련의 우주왕복선
이름의 유래는 항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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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기인 OK-1.01 리즈시절. 부란의 아래에 장착된 로켓이 에네르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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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15일 OK-1.01 발사 당시의 모습. 이것이 부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주에 다녀온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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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기였던 OK-TVA. 모스크바 베데엔하 우주박물관(Мемориальный музей космонавтики)에 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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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기였던 OK-M.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한켠에 전시 중...이라고 쓰고 방치 중.[1]
카자흐스탄 바이코노르에 버려진 채 방치 된 부란과 생산공장을 폐허덕후들이 방문한 영상이다. 5분 48초부터 을씨년스럽고 공허한 공장의 전경이 보인다.
부란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은 여기를 참조, 왠만한 정보는 다있다.
2019년 건설 중인 고층 건물을 오르는 것으로 유명한 유튜브 채널 on the roof에서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 가서 부란의 모습을 담아왔다. 영상은 이곳
물론 위와 같이 무단으로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 들어가는 행위는 침입 행위이며, 이 지역은 러시아의 ICBM 기지를 겸하고 있는 중요 군사 보안 시설이므로, 자살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찰 인원들은 실탄 총기로 무장하고 있으며, 경내 침입자에 대해선 즉시 사살할 수도 있다. 다만 워낙 구역이 넓어서 마주치지 어려운 것이지, 정기적인 순찰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
2.1. 개요
소련이 개발한 우주왕복선. 1988년 11월 시제품이 1회 무인비행을 한 것이 유일한 우주비행 기록이다.
1989년 An-225에 실려 파리 에어쇼에 참가하여 대중에게 공개된 바 있다.
2.2. 제작 개요
1972년 미국이 재사용 가능한 우주왕복선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하자 당연히 소련도 비밀리에 우주왕복선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일부 소련의 과학자들은 돈지랄을 해서 우주왕복선을 개발할 필요가 없고, 소유즈나 개량해서 쓰자고 했다. 엄청난 개발비와 시간을 쏟아부어 우주왕복선을 개발해서 발사하는 것보다 그냥 소유즈를 여러 번 쏴서 2~3명씩 여러 번 보내는 비용이 훨씬 싸게 먹힌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소유즈 공정이 이미 표준화 되어 있어서 소유즈를 제작하는 원가는 그리 비싸지 않았다.[2] 우주왕복선 개발을 위해서는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데, 당시 소련의 우주 예산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또 중량이 무거운 것을 실어나르기 위해 굳이 우주왕복선을 만들 필요 없이 중량이 무거운 것은 별도의 발사체에 실어서 보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소련에는 강력한 페이로드를 자랑하는 프로톤 로켓 발사체가 이미 있었고, 그 프로톤을 이용해서 미르가 우주에 올라갔다.
그러나 소련의 정치 지도자들은 소련에서도 우주왕복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소련의 지도자들은 미국이 무거운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우주왕복선을 무기화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소련도 반드시 우주왕복선을 개발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결국 정치적 목적으로 소련에서도 우주왕복선 부란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소련 우주선 개발이 항상 그러했듯이 우주왕복선 개발 역시 비밀리에 추진되었지만 그 속도는 매우 더뎠다. 1980년 부란의 물리적 제작(assembly, construction)이 시작되었지만, 그 사이 미국은 이미 우주왕복선 개발을 완료하여 1981년 4월 12일 발사에 성공했다. 그러자 소련은 성명을 내고 미국이 군사용 무기를 개발했다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내부에서 소련 정치 지도자들은 과학자들을 무능하다며 맹비난했다.
소련이 가지고 있던 우주왕복선 기술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었지만[3] 시간과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소련은 정보기관을 동원해 미국 우주왕복선의 기골, 재질, 추진계통, 비행컴퓨터 데이터를 수집하는 등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의 기밀 처리되지 않은 자료들을 가져와서 써먹었다. 부란 궤도선의 모습이 우주왕복선과 거의 동일한 것 역시 풍동 시험 결과 이미 미국이 개발한 궤도선의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그 형상을 그대로 활용한 결과다.
초기의 계획에선 2기의 부란만을 생산할 계획이어서, 모스크바 근교의 정밀기계 공장에서 기골과 비행장치 등 전체 구조의 65%가량을 제작하고,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로 옮겨 여기서 완성하게 되어 있었다. 초도기의 경우, 이 거대한 물건을 외부에 공개되지 않도록 보안을 유지하며 모스크바에서 바이코누르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당시 최대의 운송 작전이 펼쳐졌다. 크기가 워낙 크기 때문에 안전문제로 낮에 이동을 시켜야 했는데, 모스크바 강을 이용해 주코프스키 비행장으로 운반하고, 오버해드 크레인을 이용해 '마시셰프 VM-T' 위에 탑재한 뒤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로 운반했다. 당시 이 기체의 노출을 극도로 꺼린 소련 당국은 운반 현황을 육안으로 볼만한 지역의 동선의 외출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옮겨진 초도기는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완성됐다. 당시 소련의 발표에 의하면 부란은 '재활용이 가능한 우주선으로, 인간이 지금까지 만든 우주 기체 중, 최신의 과학적 성과가 반영되어 있고, 항공우주 기술의 정점이며, 동원 가능한 수학적 설계, 연구실 실험, 필드 테스트 경험이 총동원된 것'이었다. 초도 비행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부란의 양산 계획이 승인되었고, 생산 시설이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 꾸려저 여러 기체의 제작에 돌입했지만, 곧 소련 붕괴로 모두 중단되고 말았다.
소련 붕괴 직전에 초도기 제작이 이뤄져 유인 우주 비행이 실제 진행되진 못했지만, 공개된 것만 7명의 부란 우주 비행사가 양성되고 있었다. 이들의 양성 프로그램을 위해 부란의 목업을 바탕으로 한 신규 시뮬레이션 장비가 만들어졌고, Tu-154 한 대의 콕핏을 아예 부란의 콕핏과 동일하게 판갈이(Tu-154M-LK-1)하여 실제 비행 감각을 익히도록 하기도 했다.
한편, 개발 당시 기준으로 소련이 동원 가능한 전자 기술, 컴퓨터 기술이 모두 녹아 들었기 때문에, 선전 자료에는, 자동화나 전자화 등에 대한 표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유일한 무인 우주 비행은 모두 자동 관제 시스템에 의해 이뤄졌고, 기술 자료를 검토한 NASA도 인정한 점이기 때문에, 소련의 선전이 맞았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현재 미국 로켓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스페이스X의 저궤도 유인 수송 시스템은 여전히 캡슐형인 크루 드래곤이고 셔틀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스타십은 최초 개발 목적은 화성 탐사용에다 NASA의 아르테미스 계획에 약간의 기능변경으로 서포트를 하는 터무니없는 스케일의 미션 수행을 위한 용도이다.
2.3. 실용성
부란은 미국의 우주왕복선보다 약 10년 늦게 만들어졌다.[4] 10년이라는 시간 차에다가 알려진대로 미국 우주왕복선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여 만들어졌다. 거기에 당시 최신의 우주 기체 기술을 총동원해서 개발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우주왕복선보다 기술적으로 앞선 기체였다.
일단, 당시 신소재 기술을 아낌없이 퍼부어 기체를 감싸는 내열타일의 신축성을 높이고 중량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었다. 소련의 홍보 매체에서는 부란의 내열타일의 중량이 미국의 것보다 1/4정도에 불과하다고 홍보했으며, 실제로 내열타일이 가볍다는 것이 여러 영상에서 등장할 정도이다. 또한, 내열타일이 신축적이었기 때문에 조립 난이도도 훨씬 낮아, 공기를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 무겁고 신축성이 거의 0에 수렴해서 숙련된 작업자가 아니면 타일에 균열을 만들었기 때문에, 공기가 상당히 길었다.
이러한 중량의 감소를 통해, 미국의 우주 왕복선과 크기는 비슷하지만 적재중량은 더 많았다. 또한, 중량 증가의 우려로 미국에선 제외 시켰던 각종 지원 장비들을 탑재할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동장치, 여압장치, 오토파일럿 장치로, 이 장비들은 하기할 중대한 차이를 보였다.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제동장치가 없어 착륙 시 지면과의 자연마찰을 이용해 정지해야했고, 이에 따라 착륙지 선정이 제한되었다. 이는 당연히 기상의 영향을 받고, 이에 따라 비행 일정이 갑작스럽게 변경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란은 제동장치를 탑재해 착륙지의 제한이 적었으며,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 이외의 공군 기지에 착륙할 수도 있었다.
또한, 여압장치의 적용은 상당히 크고 중요한 차이였다. 미국의 우주왕복선에는 여압기술이 전혀 적용되어 있지 않아, 대기권 이동 시 기체 내부의 압력 변화와 그에 따른 온도 변화를 제어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대기권 재진입(지구 귀환) 시 기체에 저장된 불필요한 물품, 특히 연료를 모두 우주 상에 버리고 대기권에 재진입했다. 재진입 시 압력 폭증으로 인한 연료 폭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활공 비행을 통해 지구로 귀환했고, 기상 급변으로 인해 비행 경로가 변화해 지정된 지점으로 귀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5] . 이 때문에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발사 당일뿐만 아니라 귀환 당일에도 기상이 좋아야 했고, 당연히 발사일을 선정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6]
하지만 부란의 경우에는 선실과 연료계통에 여압장치가 적용되어, 기체 내 압력과 기온을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재진입 시 연료를 버리지 않은 상태로 진입할 수 있었고, 대기권 진입 이후 제트 엔진을 가동하여 목표 지점으로 얼마든지 귀환할 수 있었다.
부란은 무인비행까지 가능하며 실제 첫 비행은 우주비행사 없는 부란 자체만의 오토파일럿으로 실시한 비행으로 206분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성공적으로 바이코누르 공군기지에 안착하였다.
이 우주왕복선 오토파일럿 기능은 지상 관제 센터에서 컴퓨터로 원격 조작한 것인데, 우주선의 원격 조작은 비행기의 원격 조작이나 오토파일럿과는 차원이 다른 극도로 어려운 작업이며[7] , 소련이 우주왕복선의 무인 비행에 성공하자 NASA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국 NASA도 우주왕복선의 오토파일럿 기술 개발에 착수했지만 끝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만일 부란이 실제로 활용되었다면 부란의 탑승자는 실제로 부란을 조작하지 않고 운행 상황만 점검하면 되기 때문에 훨씬 비행강도가 적고 안전했을 것이다. 부란은 2010년 미국의 X-37이 재돌입 후 자동 착륙을 하기까지 유일한 자동재돌입 및 착륙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8] 작업용 로봇팔도 미국 우주왕복선은 1개밖에 없지만 부란에는 2개가 달려 하나가 고장나거나 파괴되더라도 다른 하나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했다.
부란은 실제 발사체를 제작하기에 앞서 실험기를 많이 만들었으며, 실험기에서 발생한 오류를 실제 발사체에 반영하였다. 이는 발사체를 실험기로 굴리거나 실험기를 이후에 발사체로 개조한 미국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다.
[image]
부란 양산형의 완성 예상도, 제트엔진 포드가 후미에 보인다.
#### 제트 엔진의 성능 테스트를 위한 비행 시험과 관련된 영상이다.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비교시 부란 시스템의 최대 특이점은 궤도선에 달리는 것이 연료탱크가 아닌 액체연료 로켓이라는 것이다. 또 연료탱크 자리에 있는 거대하신 분도 액체연료 로켓. 미국 우주왕복선은 연료탱크의 연료가 하드포인트를 통해 우주선 본체로 들어가 본체에 달린 추진로켓을 작동시키고, 발사를 도와주는 부스터가 고체연료라 중간에 추력을 조절할 방법이 없는 복잡하고 위험한 구조인데 비해 부란은 본체에는 궤도조절용 소형 로켓만이랑 OMS엔진만 달려있고 별도의 로켓들, 그것도 추력 조절이 가능한 액체연료 로켓이 쏘아올려주는 구조이기 때문에 훨씬 간단하고 안전하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더 뛰어난 것과는 별개로 부란은 우주왕복선의 원래 개념을 생각해보면 주객전도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원래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계속 회수 후 재사용을 해서 발사비용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회수 및 재사용이 쉬운 고체 로켓 부스터를 보조용으로 사용하고, 비싸고 회수가 어려운 액체 로켓 엔진은 궤도선에 장착해서 연료통만 별도로 장착해 쓰고 버린 후 엔진을 지구로 그대로 가지고 돌아오게 만들었다. 다만 실제로는 내열타일 정비 등의 난점으로 인해 이런 재사용이 그리 경제적이지 못하게 되었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다.
그런데 부란은 비싼 로켓엔진이 궤도선이 아니라 별도의 부스터에 장착되어 아예 회수가 안 되기 때문에 굳이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비슷한 형식으로 만들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생긴다. 나중에 에네르기아 II라고 부스터에 날개를 달아서 발사 후 활공 착륙하여 회수 가능한 방식을 고려하기는 했지만 이 경우는 궤도선에도 날개가 달리고 부스터에도 날개가 달리는 낭비가 되어버리며, 또한 궤도선도 방향 제어를 위한 소형 로켓과 대기권 비행용 제트엔진 정도만 달려있기에 우주왕복선에 비해 회수할 필요가 비교적 적지만 재사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방열 타일의 점검 및 보수는 똑같이 필요하다. [9] 또 궤도선의 전체적인 구조가 우주왕복선과 비슷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 STS-107처럼 내열 타일이 손상되는 사고가 터질 경우 마찬가지로 대기권 진입 과정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전혀 없다.
아무튼 이 부스터와 액체로켓을 합쳐서 에네르기아라고 부른다. 자체 발사가 가능한 페이로드 100톤짜리의 기가 막힌 우주 발사체다. 즉, 우주선과 발사체의 조합에 대한 명명법에 따라 정식 명칭은 부란 - 에네르기아이다. [10] 현재 러시아산 발사체 중 현역 최고의 페이로드를 자랑하는 프로톤이 겨우 22톤(PROTOM-M 기준)이다. 에네르기아 로켓은 부란 왕복선 발사 1년 전에 '''우주전투위성''' 폴류스를 궤도에 올리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11]
안정성이 뛰어나 기상 상황에 관계 없이 발사가 가능한 전천후 우주왕복선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발사 기록은 무인비행 단 1회에 불과하므로 검증은 불가능한 주장이다. 에네르기아를 포함해 러시아 로켓들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로켓에 벼락이 떨어지는 혼파망의 상황에서도 로켓 발사를 강행하는 터프함으로 유명하지만 이에 대해 일론 머스크에 따르면 미국은 이런 상황을 대비한 내구성에 대한 스펙은 달성하고 있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코멘트를 남긴 바 있다.
2.4. 쓸쓸한 후일담
1988년 11월 시제품이 완성되어 무인우주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 수 차례 대기권 내에서 유인 비행을 마치면서 유인우주비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1992년으로 예정돼 있던 유인 시험비행은 결국 취소되고 카자흐스탄의 우주기지에 방치되었다. 소련 해체 이후 부란의 소유권은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갔지만, 당시 막 분리독립해 먹고살기에도 벅찬 신생국 입장에서, 그런 돈먹는 하마를 감당할 배짱이 있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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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225 위에 타고 있는 부란.
한편, 부란이 미국과의 우주 왕복선 개발 경쟁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기 때문에 스케일에 집착한 측면이 없지 않다. 바로, 부란을 적재할 수 있는 비행기인 An-225가 대표적인 예이다. 부란은 마시셰프 VM-T로도 적재하여 수송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An-255를 별도로 제작할 필요가 없었으나, '크키'에 집착한 당시 소련 우주 당국의 결정에 따라 개발되었다. 그리고 부란은 미국의 우주 왕복선과는 달리 자력으로 이착륙과 비행이 가능했기 때문에, 굳이 항공기에 실어서 수송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세와 과시를 위해서 큰 돈을 들여 An-255를 개발하고 제작한 것이다[12] .
An-225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비행을 하고 있으며, 부란과는 달리 이 녀석은 '''너무나 요긴하게 잘 써먹고 있다.'''
이런 후일담 때문에 나우틸루스의 곡인 외톨이 새[13] 의 유튜브 뮤직비디오들은 대다수 부란을 보여준다.
2.5. 부활 가능성(?)
여기에서 2002년 폭발 사고로 고철이 되어버린 부란 시제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리 묵념...
STS-51-L 사고, 그리고 냉전 종식 이후 미러 우주개발 협력이 본격화하며 어쩌면 오버홀 해서 우주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2002년에 시제기 1호가 격납고와 함께 폭발하여 전세계 우주덕들을 안타깝게 만든 사건까지 났다. 이에 대해 사고는 눈속임이고 러시아가 그냥 발파해서 묻어버렸다는 식의 소문도 있다.
일각에선 러시아 측의 발파 설을 사실로 보기도 한다. 일단, 부란을 보관하던 건물은 러시아의 우주선을 조립, 보관하는 곳인데, 이 건물의 북측동이 부란의 격납고였다. 이 북측동은 부란을 단순히 보관하는 곳만이 아니라, 부란을 생산, 조립하는 곳이었다. 즉, 부란의 기체를 격납고 공중애 매달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하중을 견디는 견고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건물이었다. 그리고 남측동은 소유즈를 생산하는 건물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2002년의 사고 상황을 보면, 위 북측동과 남측동이 동일한 골조의 건물임에도, 북측동만 도려낸 듯 무너져버렸다. 남측동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으며, 소유즈의 생산이 계속해서 이뤄졌다. 이는 정확한 폭파 계산을 통한 폭파 작업이 없었으면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더욱이, 러시아 우주당국은 이 사건을 단순 피로파괴로 규정하고, 제대로된 조사 없이 부란과 건물의 잔해를 신속하게 치워버렸다. 그리고는 2005년 무너진 부분 일부를 개건, 복구하여 소유즈 조립동을 확장하는 데 쓰고 있다.
그리고 건물에 대한 유지보수가 무작정 이뤄지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 부란의 거대한 발사대, 액체연료탱크, 지원 시설 등은 수십년 째 방치중인 듯 싶지만, 꽤 높은 수준으로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부란이 착륙했던 비행장은 실제 이착륙이 이뤄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제 시설과 활주로가 주기적으로 보수 관리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군사 기술 연구와 우주 개발 분야에 만큼은 다른 분야의 예산을 희생하더라도 소련 시절과 동등한 예산을 분배하고, 기술력을 유지 발전하고자 사력을 다했기 때문에[14] , 무작정 관리 소홀로 위와 같은 사고가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붕괴 사고로 인해 십 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당시 관리 책임자가 중형을 선고 받은 것을 봐선 음모론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또한, 목업이 아닌 실물이 독일로 팔려가 전시 중인데, 정말 기술유출이 우려되었다면 다른 장소에 보관했어도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폐허 덕후 유튜버 등의 무단 탐사로 밝혀진 사실이지만,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 내에 시제기와 조립 중이던 에네르기아 로켓 등이 마구 방치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나, 관리 소홀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러시아가 우주왕복선을 다시 개발하고 있다는 루머가 나오고 실제로 일본의 우주박람회에 클리퍼라는 6인승 우주왕복선 모형을 출품하면서 러시아의 우주왕복선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 모형의 외관은 부란과 거의 흡사한데, 아마도 부란의 설계를 가져다 썼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가 점점 엉망이 되어가면서 이 여파가 우주개발 분야에도 미치고 있단 사실을 감안해보면 부란이 부활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고 볼 수 있다. 부란이 현재 나와 있는 우주왕복선 중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나고, 동시에 가장 안전하지만 러시아는 미국 이상으로 우주왕복선을 써먹을 곳이 없고 그런 우주선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이미 소유즈호의 후속작으로 페데라치야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거기다 미국은 스페이스X의 주도로 사실상 현대의 기술을 이용한 우주왕복선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십을 개발 중인데 이 시점에 부란과 같은 구시대적 설계의 우주왕복선이 설 자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에네르기아 로켓의 부스터로 쓰인 액체로켓(RD-170)은 개량되어 '제니트' 위성발사체로 오늘날도 러시아 연방 우주청이 사용하고 있다. 기존 4개이던 연소실을 2개로 줄인 RD-180이 미국 ULA의 아틀라스 V 로켓의 1단부에 사용되며, 연소실을 1개로 줄인 RD-191을 개조한 것이 바로 나로호의 1단부에 쓰인 엔진이다. 안가라 로켓 참조.
2020년 8월에 부란을 대신할 새로운 우주왕복선 제작을 발표하였다.#
2.6. 각 모델 상세
2.7. 창작물에서의 등장
- US 네이비 - 최종 스테이지의 중간 보스로 등장. 라부가 제작한 위성병기를 탑재하고 있으며, 유도성이 없는 레이저를 무작위 더미로 발사하며 공격한다. 약점은 제트 분사대인데 제트 분사대에서 내뿜는 화염을 맞아도 피해를 입으므로 분사대에서 화염이 나갈 것 같으면 피해야 한다. 체력을 다 깎으면 완전히 폭발하기 전에 최종 보스인 위성병기를 내보낸다.
- 유희왕/OCG - 환상수기 워브란
[1] 근데 이것도 어느정도 복구했다(...). 그래서 측면에 검은 타일이 좀더 붙었다. 부란과 최대한 비슷하게 해보려는 의도일지도?[2] 소유즈 발사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용의 80% 이상이 연료비용이다.[3] MiG-105가 그 예다. 소련 두번째 우주인 게르만 티토프와 훗날 소유즈 T-18a 탈출 과정에서 중상을 입는 바실리 라자레프가 테스트 파일럿으로 투입되어 미국의 X-20 다이너소어와 달리 델타익을 가졌지만 생기기는 더 SF스럽게 생긴(...) 물건을 만들어냈다. 이 기체의 강렬한 형상을 리프팅바디로 고치고 간지나는 도장을 발라주면 딱 인터스텔라의 레인저가 된다. [4] 최초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가 1979년 만들어졌다.[5] 실제로 우주 왕복선이 착륙하는 날에는 지정된 착륙 비행장 인근의 모든 공항에 비상령이 발령되어 우주 왕복선의 비상 착륙에 대비했었다.[6] 실제로 미국의 우주왕복선 중 한 기는 귀환일에 맞춰서 모든 연료를 버렸는데 예상치 못한 폭우로 우주공간에 아무 연료 없이 2일간 머문 바가 있다.[7] 그도 그럴 것이 우주 비행에 관련되는 변수와 지상 비행에 관련되는 변수의 양이나 수준은 차원이 다르다.[8] 엄밀하게 따지자면, 자동 재돌입 기능은 부란이 유일하다.[9] 차라리 부란의 궤도선이 일회용으로 저렴하게 만들어졌다면 이런 딜레마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방열 타일의 경우 부란에 달리는 게 더 좋기는 하다.[10] 새턴 V 로켓에 비해 5톤 가량 작아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개량형은 120톤의 페이로드를 지닐 예정이었다. 구체적인 설계조차 남기지 못하고 서류상의 계획으로만 남았지만.[11] 에네르기아 로켓 자체의 결함은 아니고 폴류스 내에 장착된 로켓의 문제로 실패하였다.[12] 이런 사례는 소련과 같이 경제는 국유화되어 사회주의를 자처하지만 생산력이 낮은 가운데 세계 자본주의의 압력에 직면해 있기에 완전한 사회주의라 할 수는 없는 기형적 노동자 국가 체제의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사실 우주 개발은 극도로 비효율적인 사업이므로 기형적이든 아니든 경제가 국유화된 체제에서 진행되는 편이 오히려 사업에 대한 효용이나 편익을 고려하지 않고 목적 달성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최상의 기술 진보를 가져오기도 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상부에서 '이거 만들어!' 하면 예산 생각 안하고 까라면 까 정신으로 만들어 내는 건데, 중국의 우주 개발이 NASA보다 더 추진력이 있게 진행되는 이유 역시 역설적으로 독재정권의 존재 때문이다. [13] 한 외톨이 새가 하늘로 날아가는걸 보며 광인이 '''외톨이 새야,동료도 둥지도 없는 너와 함께 이 세상에서 떠나고싶구나'''라며 한탄하는 듯한 곡이다.[14] 이른바, 독트린 94와 독트린 00[15] 우주왕복선 항목의 부란 사진이 이곳에서 찍은 것[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