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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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총리를 지낸 정치인. 덧붙여 아돌프 히틀러를 제외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 중 가장 오래 재임한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쾰른 지방에서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1] 본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이후, 판사로 임용된다. 하지만 가톨릭을 단호히 탄압하던 시대가 있었을 만큼 프로테스탄트가 중심이었던 독일 제국 치하에서 가톨릭이라는 그의 종교는 출세에 크나큰 장애물이었고[2] , 이러한 현실에 반발한 마르크스는 가톨릭 중앙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투신하게 된다.
아직 독일 제국시기였던 1910년 제국의회에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이 설립되는 시기가 되면 그는 중앙당의 핵심 간부 중 한 사람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시기 중앙당은 베르사유 조약의 승인 문제를 놓고 크나큰 대립을 빚었는데, 마르크스는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을 거부할 시 프랑스군이 라인란트를 점령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베르사유 조약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입장의 연장선상에서 마르크스는 베르사유 조약의 단계적인 이행을 추진했던 빌헬름 쿠노 내각과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의 내각을 지지했으며, 불안정한 정국으로 인해 1923년 슈트레제만 내각이 붕괴하자 자신이 직접 총리직에 올라 내각을 구성한다.
2.1. 제1차 내각: 1923 ~ 1924
1923년 11월 마르크스가 총리로 취임했을 당시 독일의 상황은 말 그대로 절망적이었다. 무리하게 화폐를 찍어내면서 발생한 초인플레이션은 진정될 기미를 안 보였으며, 외부에서는 프랑스와 벨기에가 전쟁 배상금을 조속히 갚을 것을 요구하며 루르 공업지대를 무력으로 점령했고 내부에서는 라인란트와 바이에른 일대에서 분리독립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르크스는 렌텐마르크를 도입하는 화폐 개혁을 시행해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는 한편, 연합국과 협상을 통해 도스 안을 이끌어내어 배상금 지불 부담을 줄이는데 성공하였지만, 설립 당시부터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채 중도 우파 간의 연정으로 이루어진 그의 내각은 권력기반이 취약했고 결국 1924년 12월에 있었던 총선에서 중앙당과 독일 인민당, 바이에른 인민당이 참패하면서 마르크스는 사임할 수 밖에 없었다.
2.2. 제2차 내각: 1926 ~ 1928
1925년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를 앞두고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의 후계자 격으로 출마하여 파울 폰 힌덴부르크에게 90만 표 차이로 석패한 이후[3] 한스 루터 내각의 법무부 장관으로 입각한 마르크스는 루터 내각이 붕괴되면서 다시 총리직에 오르게 된다.[4] 이 시기 마르크스 내각이 거둔 성과로는 국제연맹 가입, 한스 폰 젝트 장군을 반강제로 은퇴시키면서 국방군에 대한 문민통제 확보[5][6] , 빈민층에 대한 생계보장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제2차 마르크스 내각은 1928년 교육과정 문제를 둘러싸고 독일인민당이 가톨릭 중앙당과 대판 싸우면서 와해되었고 이후 마르크스는 정계에서 은퇴하여 본에서 지내다가 1946년 세상을 떠난다.
[1] 이 점은 후일 독일(당시 서독)의 초대 총리가 되는 콘라트 아데나워와 매우 흡사하다. 사실 그의 2차 내각이 세워질 당시에 원래 총리 물망에 올랐던 사람이 아데나워였다. 그런데 아데나워가 평소부터 사이가 안좋았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을 내각에 입각시키는 것을 거부해서 어부지리로 마르크스에게 다시 한 번 총리직이 주어진 것이다.[2] 독일 제국 시기에는 아예 대놓고 가톨릭 신자들을 차별하는 법률이 남아있을 정도(...)였다.[3] 공산당의 에른스트 텔만이 좌파들의 표를 가져간 게 컸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선거에서 이겼을 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4] 이 때 킹메이커 역할을 한게 바로 전 총리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이었는데, 앞의 1번 각주에서도 서술했듯이 슈트레제만이 먼저 교섭한 인물은 콘라트 아데나워였다. 그런데 슈트레제만은 자신을 외무부 장관으로 입각시켜 줘야 아데나워를 총리로 임명하는데 동의하겠다고 했고, 슈트레제만과 사이가 극악이었던 아데나워는 '웬수랑 같이 일하느니 차라리 총리 안하고 말지 뭐' 하면서 쿨하게 총리직을 포기한다. 그리고 총리직은 다시 마르크스에게로...[5] 바이마르 공화국이 한창 개판이었을 때는, 총리가 젝트 장군을 비롯한 군부에게 폭동 진압을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해달라고 빌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6] 물론 완벽히 확보한 것은 아니었다. 소련과 독일이 외교관계를 맺었을 때는 군부의 반발이 정말 장난이 아니라서 마르크스가 일시적으로 사퇴를 선언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