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1. 성서 용어
히브리어 : בן–אדם (Ben adam)
그리스어 : Υιός του ανθρώπου (Yios tou anthropou)
영어 : Son of man
에스페란토 : Filo de homo
한자 : 人子[1]
성경에서 예수가 '''자기 자신'''을 호칭하는 말. 한자로 번역하면 '인자(人子)' 가 되는데, 과거 널리 쓰였던 개역한글판 성경에서 이 표현이 주로 쓰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 명칭이 통용된다. 이 복잡하고 원어로는 의미를 명확히 실감하기 어려운 어휘는 4개 복음서 전체에 동일하게 자주 기록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 명칭으로부터 뭔가 심상찮은 것을 감지하였고, 따라서 그리스도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서 충실히 기록하였음을 암시한다.
복음주의 신학에서는 '사람의 아들'은 우리말 그대로는 그 어떤 신성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직역에 불과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본인을 단순히 '인간'이라 주장하기 위해 쓴 말이라 보기 어렵다고 본다. 이 명칭은 ''''한 존재의 아들 같은 이'''', ''''어떤 존재에게 있어서는 아들이나 다름없는 이'''', ''''신과의 관계가, 사람 간의 관계에 빗대자면 어버이와 아들 간의 관계와도 같은 이''''라는, 매우 복잡한 뉘앙스를 풍기는 어휘이다. 결국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주장한다기보다는 분명한 의미에서 신의 아들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에 쓰였다는 의미.
또한 이는 성경 속에서 메시아를 예표하는 칭호이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로 묘사된 한 인물은 유대 묵시문학서, 곧 다니엘서 7장에 등장한다. 다니엘서 7장 13절에서 다니엘은 꿈에서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태곳적부터 계신 이'에게 인도되어 오는 자를 보는데, '태곳적부터 계신 이' 앞에 선 이 인물은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다. 이 대목에서 다니엘은 '「그」 사람의 아들'을 본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의 아들 같은 이'를 본다. 이는 신이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난다는 것과, 신의 형상이나 영광이 '한 사람 같은' 천상의 인물로 실체화됨을 보여 주는 묵시문학 전승에 상응하는 전승사적 발전이 지혜문학에 나타나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사람의 아들 같은' 인물은 신의 아들, 즉 메시아적인 존재로서 해석된다.
물론 당대의 일반적인 인식에서 이 말이 메시아라는 명칭의 대신으로 쓰였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만약 그러하다면 후일 제자들이 세우는 초대 교회의 선언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선언과 동일한 의미로서 "예수가 바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선언이 등장해야 하는데, 그러한 대목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직접적으로 메시아임을 드러내려 저 표현을 쓴 게 아니라, 그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1인칭 강조형 칭호로 썼음을 의미한다. 때가 이를 때까지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세상으로부터 숨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말하기에도 복잡하고 뜻도 알기 어려운 이 어휘를 가지고 자신을 강조형으로 지칭했던 것.
결과적으로 자신이 메시아 그리스도임을 숨기면서도, "귀가 있는 자들(알아들을 수 있는 자들)"로 하여금 바로 자신이 다니엘서에 암시된, 인간의 몸으로 온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내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적절한 표현이 바로 '사람의 아들'이다. 드러내지 않는 듯하면서도 본래 말하고자 하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이 명칭이 지니는 오묘함이 있다.
2. 이문열의 소설
이문열의 장편소설. 발표 당시에는 중편소설이었으나 1987년 장편으로 개작하였으며, 이후 1993년과 2004년까지 총 세 번에 걸쳐 작품을 보완했다. 이문열의 대표작 중 하나. 기독교 전설에서 언급되는 아하스 페르쯔란 인물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보수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수사극의 형식을 띄고 있다. 수사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만, 골치아픈 기독교 철학이 흠뻑 스며들어있는 순문학적인 작품이라 만만히 보긴 어려운 소설이다. 구효서의 96년작 《비밀의 문》이 이러한 본 소설의 형식과 주제의식을 많이 모방하고 있다.
1980년대, 남경사는 민요섭이라는 사람이 끔살된 시체로 발견되자, 수사에 나선다. 민요섭의 삶을 조사하던 중에 남경사는 민요섭의 철학에 끌리게 되고 민요섭을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관련자들을 수소문하며 찾아간다. 그 와중에 민요섭이 쓴 아하스 페르쯔라는 기독교 전설의 인물에 관한 소설이 발견되어 수사 과정 사이사이에 인용된다.
범죄자가 범죄 추적을 따돌리거나, 조동팔의 부모를 면담할때 "자식이 도망간 부모들은 신원을 알아볼 수 없는 시체가 발견될 때 자기 자식으로 우김으로써 경찰 수사 병력을 이용해 도망간 자식을 찾는다"라는 묘사가 있는 걸로 보아서 이문열이 경찰 생활 취재를 열심히 한 것 같다. 느와르, 하드보일드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존 르카레의 첩보 소설들과 비교할 수 있는 작품이다. 르카레의 첩보 소설이 '순수 문학 첩보 소설'이라면 본작은 '순수 문학 하드보일드 소설'이랄까?
최인훈처럼 개작을 즐겨하는 이문열답게 중편을 장편으로 확대하고 개작을 여러 번했다. 개작에 따른 변화에는 호오가 갈린다.
1980년에 유현목 감독에 하명중, 최불암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다만 연출이 썩 좋지 못해 원작만큼 좋은 평가는 못받고 있으나 걸작이라 평하는 사람도 있다. 1981년에 KBS에서 백윤식 주연의 TV 문학관으로 만들어진 바 있고, 2009년에 장현성 주연의 HD TV 문학관으로 다시 한 번 만들어지기도 했다. 1981년판은 배경을 대구에서 부산으로 바꾸었고(유튜브 설명엔 대구라고 나와있다), 2009년판은 배경을 2009년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여러모로 소설의 리메이크라기보단 1981년판의 리메이크란 느낌이 있다. 배경도 부산으로 동일하다. TV문학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당시 신학대학 학생들도 교수 추천으로 많이 읽던 책이었다. 당시 개신교의 신을 주제로 썼던 소설이 많지 않았던데다가 소설 자체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라는 의문까지 더해져서 효과를 많이 주었다고 한다. 현재 와서 '사람의 아들'을 읽는 사람들은 그저 '과거 이문열의 이름을 떨치게 한 복잡하고 요상하고 종교적인 소설'에 머무를 수 있으나, 당시는 '이름도 모르던 작가가 적나라하게 비판한 현대 개신교와 신학자들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풀어낸 전개 방식'으로 꽤나 주목 받고 유명했다.
2.1. 등장 인물
- 남경사
경찰관. 민요섭의 삶을 추적하며 민요섭에게 점차적으로 끌리게 된다. 너무 끌린 나머지 상사에게 쿠사리를 먹기도 한다. 많은 이문열 소설의 주인공이 자전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소설에 소개된 주인공의 이력을 보면 1945년생이라는 것 말고는 작가와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이문열이 언제 경찰 생활 했었나? 뭐 신춘문예 준비한 적이 있다는 얘기는 잠깐 언급이 되지만서도. 중간중간 탐문수사하는 장면을 보면 과연 베테랑 형사라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부하들에게도 여러 인망을 얻고 있다. 영화판에서는 최불암이, TV 문학관에서는 연예계를 은퇴하고 목사가 된 문오장이 역할을 맡았다.
- 민요섭
아하스 페르쯔를 존경하는 인물. 전쟁고아 출신으로 외국인 목사가 키웠다.[3] 가난한 사람의 구제에 힘쓰다가 집안 재산을 갉아먹었다. 신학대학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렸으나 기독교의 사회적 무기력함에 실망하고 교회를 버린 후 위대한 지혜[4] 를 자신의 새로운 신으로 삼고 범죄자, 사회의 낙오자들을 선도하려 했으나 필연적인 한계에 부딪쳤다. 살해당할 때 이상하게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방신학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지극히 도덕적이지만 예수와 말쌈에서 늘 발리기만 하는 아하스 페르쯔처럼 결국 실천적 한계를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이상적이고 도덕적이어서, 조동팔이 그의 활동을 지원하려고 범죄를 저지르자 그의 노선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다시 개신교로 귀의하나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영화판에서는 하명중, TV 문학관에서는 백윤식이 맡았다. 실제 이미지도 두 배우가 비슷해서 화제였다.
- 문장로
민요섭과 트러블을 일으켰던 종교인. 무엇보다도 후처를 잘못 만나 인생이 망가진 인물. 흔히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개척교회의 비리[5] 를 뒤로 숨기고 있다. 민요섭이 그것을 부당하게 여기고 문장로의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설교 도중에 뛰어나와 "당신의 설교는 우리 입에 마땅히 들어갈 빵마저 빼앗아간다"고 반박하며 설교단에서 끌어내리지만, 민요섭이 그때 문장로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것을 문장로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간음자"라고 역공했다. 이 사건으로 신도들 사이에서 문장로파와 민요섭파가 갈리면서 교회는 풍비박산났고, 문장로는 적어도 해당 교회의 부지 및 건물 명의만은 신도들 앞으로 돌려주게 되었다. 후에 몰락해서 쌀장사를 한다. 남경사가 민요섭 살해 혐의를 조사하러 찾아갔을 때 "그녀(아내)야말로 사탄의 인물"이라고 하였으며, 민요섭에 대해서는 이미 용서를 하였다. 작가의 개정판본에는 문장로의 악행은 개척교회 목사의 소행으로 그려지며 문장로는 졸지에 아내까지 바람나 도망간 단순한 피해자로 나온다.
- 목사
문장로의 후임(?)으로 교회를 맡고 있는 인물. 사건 조사를 위해 찾아온 남경사에게 민요섭을 일컬어 "처음부터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양의 탈을 쓰고 들어온 늑대" 운운하면서 철저한 사탄의 자식으로 매도한다. 그러나 교회의 다른 사람들은 대체로 민요섭에게 동정적이었고, 문장로의 비리를 귀띔하는 것은 물론 민요섭의 간음에 대해서도 문장로의 아내가 주범이라고 다들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작가의 개정판본에는 개척교회의 큰 손으로 신도들에게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오'라며 신도들을 주도적으로 수탈하는 인물로 나온다.
- 문장로의 아내
팜 파탈. 민요섭의 소설에서는 젊은 아하스 페르츠와 간음을 저지르는 유부녀(상인 아삽의 아내 사라)로 등장했고 실제로도 민요섭과 간통했다. 정확하게는 그녀 쪽에서 민요섭을 유혹했다. 문장로의 후처이고 두 자녀를 낳았으나 교회 신도들마저 그녀에 대해 "아이들이 정말로 문장로의 자식인지" 의심스러워할 만큼 결혼 생활 내내 여러 남자들과 스캔들을 일으켰다. 민요섭에 대해서도 "등불 아래 기도하는 모습이 싱싱한 횟감 같아서" 한번 건드려 보았다고 할 만큼, 그녀 쪽에서는 놀아나던 남자들 중 하나였던 것뿐이었다. 민요섭뿐 아니라 여러 남자들과 스캔들을 일으켰고, 결국에는 타고난 끼를 주체 못해 문장로의 곁을 떠난 후[6] 어느 요정의 마담이 되었고 한술 더 떠 그녀를 감시하던 남경사 후임까지 유혹해 동침할 정도로 무서운 여인. 영화판에서는 오미연, TV 문학관에서는 카멜리아 회장부인 정영숙 여사께서 열연
- 황전도사
민요섭의 신학 동기로 민요섭이 얼마나 잘났는지 인증하는 인물.
- 아하스 페르쯔
민요섭의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 신의 아들인 예수와 대응하는 사람의 아들. 랍비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부터 총명함을 발휘하지만 위대한 지혜의 예정에 따라 가짜 예언자 테도스를 만나면서 기독교의 현실적 무기력에 눈뜨게 된다. 종교적 진리를 갈구하여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여러 신(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로마 등) 심지어 인도까지 흘러들어갔다가 쿠아란타리아 벌판[7] 에서 고행하며 드디어 위대한 지혜와 대면하고, 그 직후 예수를 만나게 된다. 소설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아하스 페르쯔와 예수의 대화는 상당히 흥미롭다. 사족으로 아하스 페르쯔라는 이름은 잘못 알려진 이름이다. 항목참조.
- 조동팔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우등생으로 성장했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민요섭과 만난 후 그의 새로운 신에 미쳐서 부모를 배신하고[8] 가출한 인물. 민요섭을 거의 신처럼 받들었으나 믿음의 실천 방식을 놓고 민요섭과 대립하기 시작했고, 김동욱의 죽음 후 결정적으로 갈라섰다. 김동욱의 신분으로 위장한 채 민요섭을 지원할 자금을 마련하려고 범죄를 저질렀는데, 대형 범죄를 일으키고 추적을 따돌리는 방법[9] 으로 보아 일단 머리는 좋은 사람이다. 교조주의적인 면모가 강한 인물. 민요섭의 변절(?) 후 혼자 위대한 지혜에 대한 믿음을 지키며 쿠아란타리아서를 완성하지만, 민요섭이 살아 있는 한 신앙이 완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그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마지막까지 쫓아온 남경사의 눈앞에서 메탄올을 마시고 음독자살한다. 영화판에서는 태조 왕건에서 지리산 도사와 금산사 주지로 나온 배우 강태기가 사이코틱한 열연을 보여주었고 TV문학관에서는 김영철이 같은 역할을 맡았다.
- 김동욱
진짜 김동욱은 작중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민요섭과 조동팔이 보살피던 사회적 약자 중의 한 사람으로, 중증 정신박약으로 병역이 면제된 사람이다. 그가 죽을 때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민요섭과 조동팔은 백방으로 사회의 자비를 구했으나 끝내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이로써 이론의 한계를 절감한 조동팔은 김동욱의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그의 신분으로 위장한 후 자금 마련을 위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 조동팔의 동거녀
작중의 이름은 "순자". 시골 출신이었다가 친구와 함께 상경한 여자로, 식모, 공장 여직공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윤락 업소로 들어가게 되었다. 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조동팔(당시 김동욱의 신분)이 치료해 주었고 결혼까지 하였다. 조동팔의 자살을 알고 있었던 듯하나 직접 도왔는지는 소설 중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최대한으로 생각해도 방조 정도.
- 조동팔의 부모
포구의 알부자로, 아버지는 동료를 배신하며 돈을 모은 밀수업자였고 어머니는 포구의 창녀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을 하여 재산을 불렸다. 조동팔의 학비를 대면서도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으며 그 당시 부산 시내에 큰 집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 있었다. 돈에 관해서는 굉장히 속물적인 태도를 보인다. 외아들인 조동팔에게 무한한 기대를 품었으나 결국 아들내미가 종교에 미쳐서 재산을 다 털어 가는 바람에 싸구려 여인숙을 운영하며 가난하게 산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포기하고 마음속으로 의절했으나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을 기다리는 듯하다.
- 테도스
아하스 페르츠 파트의 등장인물. 예수 이전에 나타나 자신을 메시아로 칭했던 여러 가짜 메시아 중의 한 사람이다. 어린 아하스 페르츠와 만나 유월절 축제 동안 그를 데리고 빈민가, 노예 작업장, 지하감옥, 십자가 골짜기, 문둥이 계곡 등을 돌아다니며 육신을 가진 인간의 비참함을 알게[10] 하였고, "우리에게 오는 자는 빵과 기적과 권세를 가지고 와야만 진정한 메시아이다"라고 가르쳤다.
- 아삽의 아내
아하스 페르츠 파트의 등장인물. 젊은 아하스 페르츠의 옆집에 살던 부자 상인 아삽의 아내이고 자녀를 둔 어머니이며 아하스 페르츠보다 연상이라는 점에서 문장로의 아내를 모델로 한 듯하다. 문장로의 아내 참고. 아하스 페르츠와 간음하며 그로 하여금 인간의 현실(신앙과 별개로 육신을 가진 인간의 비참함)에 다시 눈뜨게 한다. 아하스 페르츠가 그녀와의 관계를 청산한 후에는 마부와 간음했다가 발각되어 투석형에 처해진다.
- 이집트 제관
아하스 페르츠 파트의 등장인물. 아하스 페르츠가 이집트에서 머무른 신전의 제관이다. 어린 예수(와 요셉, 마리아)가 헤롯 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왔을 때 그들 가족과 대면한 적이 있다. 아하스 페르츠로부터 예수의 다른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가졌고, 자기들의 신앙이 사실은 신과 무관하며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에게 털어놓았다.
- 무와탈리슈
아하스 페르츠 파트의 등장인물. 오래전에 멸망한 헤테 왕조의 후예로, 잃어버린 조상들의 신을 찾는 것을 왕국 회복의 시작으로 삼으려 했다. 아하스 페르츠는 그와 함께 옛 도시의 폐허를 돌며 점토판과 벽돌 조각의 기록들에 의지해 헤테인의 신들을 찾는다. 그리하여 여러 해 만에 그 신들의 계보를 찾고 그 교의를 복원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가 찾던 참된 신은 아니었다. 조잡한 신화에 실망한 아하스 페르쯔가 떠나자, 그에게 저주를 퍼붓지만 결국 보내준다.
- 히메루스와 그의 딸
아하스 페르츠 파트의 등장인물. 아하스 페르츠가 메소포타미아에 갔을 때 만난 사람들로, 바빌론의 옛 신을 섬기는 비밀 조직의 핵심 인원이다. 아하스 페르츠는 그들로부터 탐무즈 신의 화신으로 받들어지지만, 사실은 히메루스가 바빌론에 반역할 음모를 꾸미면서 자신의 대리왕(희생양)으로 아하스 페르츠를 내세운 것이었다. 히메루스의 양녀는 그들로부터 이쉬타르 여신의 화신으로 받들어지며 아하스 페르츠의 배필이 되었는데, 그녀가 아하스 페르츠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 희생 의식이 치러지기 전날 사건의 전모를 고백하고 아하스 페르츠를 도망시켰다. 그 후 음모가 발각되어 히메루스는 양녀를 죽이고 자살한다.
- 로마의 장님
아하스 페르츠 파트의 등장인물. 아하스 페르츠가 페르시아, 인도를 거쳐 로마에 가서 그리스 철학을 공부할 때 만난 사람이다. 지나치게 태양을 연구하다가 눈이 멀었다는 인물로, "태양이 어디에서 뜨며 어떻게 생겼는가"를 놓고 논쟁하던 사람들을 상대로 사물의 겉모습이란 그 이름에 걸친 넝마 같은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성으로 감각을 차단하여 순수한 추상만을 남겼다고 주장하지만, "지금 타오르고 있는 저 해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데꿀멍당했다. 아하스 페르츠는 그 논쟁을 지켜보다가 그간의 구도에 회의를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와 쿠아란타리아 광야로 나간다.
- 위대한 지혜
아하스 페르츠의 신. 기독교의 신(거룩한 선)에 대극을 이루는 또 하나의 신으로, 민요섭의 신앙(그리고 조동팔이 이어받는)은 이 위대한 지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민요섭은 아하스 페르츠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에서 "위대한 지혜"에 대해 언급만 하고 넘어갔고, 조동팔이 그 작업을 이어받아 쿠아란타리아 서(書)를 완성한다. 그러나 그 <쿠아란타리아 서>는 남경사가 보기에 그 화자를 신이라 부르는 것은 너무 억지스럽고, 합일을 위한 합일로만 보일 뿐이었다.
3.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르네 마그리트 항목 참조.
[1] 에스겔서에 나오는 인자야~ 인자야~라는 표현이 이것이다[2] '사람의 아들'과 '새하곡' 두 편이 실려 있다.[3] 영화판에서는 이순재 목사로 바뀌어서 나온다.[4] 기독교의 신을 상징하는 거룩한 선에 대비되는, 민요섭이 상정한 새로운 신. 쿠아란타리아서에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5]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신도를 노예처럼 부리고, 완성된 교회 부지 및 건물 명의를 자기 앞으로 등기한 후 고용한 목사에게 맡기고, 자신은 다시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무한루프. 게다가 헌금까지 싹쓸이한다.[6] 문장로는 그녀가 죽었다고 아이들에게 말했지만 아이들은 어머니의 사연을 대충 짐작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가 사는 곳까지 알고 있었다.[7] 성서에서는 예수가 40일간 고행한 장소로 나오는 광야.[8] 가출했다가 집이 그리워지자, 집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강도를 가장하고 자기 집을 털었다. 물론 조동팔의 부모는 아들인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9] 크게 한 건 저지르고는 같은 날 자잘한 범죄로 걸려든다. 더구나 김동욱은 정신박약으로 병역이 면제된 사람이므로 경찰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사족으로 그 범죄가 뭐인고 하면 당시로는 선정적인 롱부츠신은 여자를 길거리에서 발로 걷어차고 모욕을 준 것. 이때도 경찰의 심문에 서민들은 돈도 없는데 저 여자는 돈많은 늙은이&놈팽이와 놀아나 저런 비싼 부츠나 신고 다닌다며 횡설수설한다. 그덕에 경찰도 이 자가 정신나갔다고 생각해 조동팔은 수사의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간다.[10] 같은 시간에 예수는 성전에서 율법사들과 성서의 지식을 겨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