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스 페르쯔

 

'''역사적 명칭'''
'''한국어'''
'''크세르크세스'''(학계, 가톨릭 성경)
아하수에로(개역한글성경)
아하스에로스(공동번역성경)
고대 페르시아어
𐎧𐏁𐎹𐎠𐎼𐏁𐎠[1]
''[흐샤야르샤] [/xšayāršā/]''
현대 페르시아어
خشایارشا
''[하셔여르셔] [/xašâyâršâ/]''
고대 히브리어
אחשורוש
''[아하쉬웨로쉬]''[2] ''[/Aẖašwērōš/]''
고대 그리스어
Ξέρξης
''[크세르크세스] [/ksɛrkses/]''
라틴어
Ahasuerus[3]
''[아하수에루스]''
영어
Xerxes
''[저크시스] [/zûrk'sēz/]''
1. 아하스베루스 또는 아하수에로
2. 방황하는 유대인
3. 아하스 페르쯔?
4. 현대 창작물
4.1. 퇴마록의 등장인물
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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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하스베루스 또는 아하수에로


사실 아하스베루스(Ahasverus)는 라틴어에서 온 단어로, 페르시아어의 인명 Xšayāršā(흐샤야르샤)의 히브리어 음역 ʼĂḥašwērôš(아하슈웨로시)가 다시 불가타 성서(4세기 라틴어 번역 성경)에서 Assuerus(아수에루스)로 번역됐고, 이것을 다시 영역 성경으로 옮기면서 Ahasverus 또는 Ahasuerus로 바뀐 것이다. Xšayāršā의 변형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그리스어식 음역인 Xerxes(크세르크세스)다(분명 똑같은 페르시아어의 변형인데 결과물이 딴판이다).
이 단어에 방황하는 유태인이라는 뜻 같은 것은 없다. 또한 띄어쓰기 없는 것에도 주의. 아하스 베루스가 아니라 아하스베루스다. 개신교 쪽 성경에서는 아하수에로(Ahasuerus)라고 표기한다[4]. 영어 쪽에서는 아하스베루스보다는 아하수에로 쪽이 더 보편적인 표기. 뭐, 영어식 발음으로 하면 어헤주에러스 정도 되지만...
아하수에로라는 이름(혹은 호칭)은 성경과 경외 성경에 몇 차례 등장하는데, 에스테르서, 에즈라서, 다니엘서 등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통은 에스테르서에서 나온 에스테르의 남편 크세르크세스 1세를 가리킨다. 나는 관대하다의 그분 맞다.
즉 아하스베루스라는 이름 자체는 성경에서 방황하는 유대인이라고 직접 나온 적이 없다.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에서 방황하는 유대인의 이름 중 하나로 아하스베루스가 지목되었던 것. 고로, 크세르크세스 1세가 방황하는 유대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2. 방황하는 유대인


한편, "방황하는 유대인(Wandering Jew)" 전설은 사실 기록상으로 살펴볼때 13세기쯤 유럽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등장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방황하는 유대인 전설과 유사한 형태(저주받아 영원히 떠돈다)는 존재했는데, 일단 카인 전설이 그렇고, 마태오 복음서 16장 28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임금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도 있다.'라든지, 호세아서 9장 17절 '이 백성은 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다가 쫓겨나 이 민족 저 민족 가운데로 떠도는 신세가 되리라.'는 부분이 영원히 떠돌거나 약속한 그때까지 안식하지 못함을 나타내는 부분이라고 해석되곤 한다. 요한 복음서에도 예수를 때린 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자 역시 방황하는 유대인 전설의 원형 중 하나라고 보인다.[5]
저런 모티브적인 것이 아닌, 방황하는 유대인 전설이 제대로 쓰여진 최초의 기록은 웬도버의 로저가 쓴 것을 기초로 하는 《역사의 꽃(Flores Historiarum)》이라는 서적인데, 이야기의 배경은 1228년경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1228년 영국을 방문한 아르메니아의 대주교가 세인트올번스 수도원에서 한 이야기인데, 카르타필루스라는 유대인 구두장이가 십자가를 끌고가는 예수에게 '얼른 꺼져라, 왜 여기서 쉬고 있냐?'고 폭언을 퍼부었고, 예수님이 '나는 이렇게 서서 쉬지만, 너는 최후의 날까지 계속 가야 하리라(쉬지 못하리라)'고 저주하는 바람에 죽지 못하고 영원히 떠돌게 되었다고 한다. 카르타필루스는 이후 기독교로 개종하여 세계를 떠돌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
1228년이라는 기록을 시작으로, 같은 이야기가 13세기에 유럽 여기저기에서 대주교가 방문해서 전했다는 식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다시 변형되어 여기저기서 통용된다. 하지만 큰 줄거리는 비슷하다.
1. 유대인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예수를 직접 만났다가 그를 모욕했다(예: "내 가게 앞에 앉아있지 마라!" 등).
2. 예수가 그에게 영원히 방황하라는 저주를 내린다.
3.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떠돌다가 가톨릭교인이 된다.
4. 각지에서 예수의 실존을 증명한다.
5. 화자와 만나 이야기를 기록한다.
대충 이런 포맷이다. 구두장이가 아니라 상인이라거나 본시오 빌라도의 문지기였다거나 하는 식으로 변형이 있지만, 어느 이야기건 예수의 예언에 따라 그는 예수가 이 세상에 다시 오는 날, 즉, 최후의 심판이 일어날 때까지 죽지 못한다는 것은 동일.
최후의 심판의 내용은 악인은 전부 떨어지고, 의인은 모두 다시 '''부활'''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떠돌게 된다는 것. 모든 기독교인이 부활하면 이후 영생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의외로 라자로일 가능성도 있다. 그 경우엔… 왠지 안습.
사실 중세 기준으로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유대인이 개종한다는 부분이며, 고향을 떠나 떠도는 유대인들의 운명을 비유한 전설이었다. 하지만 후대의 이야기꾼들에게는 불멸의 죄인이라는 소재의 매력 때문에 불멸성에 중점을 두고 문학과 전설속에서 자주 인용되었다. 그래서 근대 유럽의 핫 이슈가 된 생 제르맹 백작이 이 사람이라는 설이 있다.
그렇게 이야기가 변형되는 와중에 방황하는 유대인/불멸의 유대인에게 말코스, 마타티아스, 부타데우스, 파울 마란(폴 머레인), 이자크 라퀘뎀 등등 다양한 이름이 붙여졌는데, 17세기 기록에서 아하스베루스를 변형한 Ahasver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아하스베루스 또한 방황하는 유대인의 한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3. 아하스 페르쯔?


앞서 볼 수 있듯이, 방황하는 유대인의 이름은 아하스 페르쯔라고 읽힐 구석은 전혀 없다! 설령 아하스베루스의 발음을 어떻게 꼬아 읽더라도, 중간에 띄어쓰기가 들어갈 이유도 없다. Verus의 s를 z로 잘못 봐서 Veruz로 읽은 게 아니라면야.
사실 아하스 페르쯔라는 형태로 한국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은 이문열사람의 아들이다. 이것을 퇴마록에서 차용해서 아하스 페르쯔라고 쓰면서 서브컬쳐계에서 아하스 페르쯔라는 정체불명의 표기가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이 유래 모를 명칭의 정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각주인 것으로 밝혀졌다. 2020년 사람의 아들 다섯 번째 개정 신판 서문에 의하면 이문열은 열아홉 살 때 읽은 날림 번역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각주에서 아하스 페르츠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각주에는 아하스 페르츠란 이름이 독일어 철차로 표기돼있었다. 이문열이 추정하기로는 아하수에로 혹은 아하스베루스란 라틴식 발음을 독일식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이후 이문열은 이름을 바꾸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주변인들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한다.

4. 현대 창작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이 인물을 주제로 1917년에 방황하는 유대인(さまよえる猶太人)이라는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까지 가는 예수를 모든 유대인들이 마구 비웃고 욕하며 조롱하는 와중에 예수가 잠시 십자가를 내려 놓은 곳이 이 사람의 집이었고 예수에게 욕하면서 우리 집 앞에 이런 걸 두지 말고 치우라고 욕하자 "가지 말라고 해도 안 갈 것도 아닌데, 대신 너는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 세상에 영영 남아있을 것이다."라고 저주했다는 부분에서 그 '방황하는 유대인'은 이미 예수회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었던 일본에도 왔었던 것은 아닐까, 예수를 박해한 죄를 범한 것이 그 유대인 한 사람만이 아닌데 왜 그 유대인만이 그처럼 처절한 형벌을 받아야하는가라는 두 가지 물음을 제기했고, 또한 "오른뺨을 맞거든 왼뺨도 돌려대주라"고 사랑을 가르친 예수가 자신을 욕하는 사람을 저주했다는 것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아하스 페르쯔는 십자가(인간의 죄의 상징)를 진 고통 속에 허덕이던 예수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예수의 모습에서 자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거기 모인 수많은 유대인이나 로마인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깨달아버린 인간이었기에[6] 그에 대한 속죄로써 죽지 않고 다시 올 예수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떠돌며 기다리고 있다는 해석을 제기했다.
  • 만화 마법사의 신부에 등장하는 메인 악역 요셉이 이 자 본인으로. 이 작품에서는 카르타필루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원본인 전설과 다르게 불사를 부여당했음에도 속죄는 커녕 오히려 자기 내키는대로 실험과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미치광이 마술사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저주로 인해서 오랜 세기를 살아오면서 정신이 혼탁해지거나 치매 비슷하게 기억이 누락되고 있고 육체가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군데군데 썩어 무너져져 내리고 죽지는 않는데 고통스럽다는 상태가 손을 쓰지 않으면 지속되는지라 이 망가진 육체를 다른 생물의 것으로 대체하는 작업과 그 작업을 위한 생물 실험을 수없이 반복해오다보니 자연스레 그지경이 되었다는 이유가 있긴 하다. 이 짓거리를 수 세기동안 반복하다 보니 작중 시점에서는 그냥 변장을 위해 머리통 자체를 바꿔 붙인다는 뇌 조차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수준이 되어 작중 무수히 등장하는 이계의 존재들보다 더 괴물 그 자체에 가까운 이질적인 존재에 이르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 만화 프랑켄 프랑에서도 24화에서 이를 모티브로 한 노스페라투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4.1. 퇴마록의 등장인물




5. 같이 보기



[1] 왕들의 통치자라는 의미이다. 유니코드 6.0의 쐐기문자를 지원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다.[2] 아하스 페르쯔의 어원.[3] 성경 개역한글판은 라틴어음을 토대로 음역한 것.[4] w와 u 둘 다 v에서 파생된 것이라 파생 과정에서 이렇게 저렇게 섞이곤 한다. 라틴 문자 문서 참조.[5] 이름이 말코스(Malchus)인데, 사실 말코스는 18장 10절에 나오는 인물이고 예수를 때린 자는 18장 22절에 나오는 다른 인물이지만 어째선지 말코스가 저주받은 인물의 이름으로 지목돼버렸다. 말코스로서는 조금 억울한 일...[6] 루카 복음서 23장 34절 "예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고 기원하셨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