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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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진의 인물이자 동진의 종실 일원. 자는 이름과 같은 도자(道子).
2. 생애
사마도자는 동진의 제8대 황제였던 간문제 사마욱과 이릉용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형이 바로 간문제 사후 동진의 9대 황제로 즉위한 효무제 사마요이다.
사마도자는 10살에 낭야왕으로 책봉되어 식읍 1만 7651호를 받았으며, 태원(太元) 연간에 표기장군(散騎常侍), 중군장군(中軍將軍), 표기장군(驃騎將軍)을 역임하였다. 사마덕문이 낭야왕이 된 이후에는 회계왕으로 옮겼다.
사마요는 초기에 황제에 맞는 기량과 권위를 보여주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인 사마도자에게 정사를 위임하기 시작하고 자신은 주색에 빠졌다. 문제는 사마도자 본인도 통치자로서는 무능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이후 동진의 정치는 혼란에 빠졌다. 비수대전에서 승리하여 동진을 구해낸 명재상 사안도 사마도자에 의해 실각하였으며 이후 효무제 사마요가 396년에 장귀인에게 살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장귀인 사건이 그대로 묻혀버린 것도 사마도자가 집권한 시기였다.
사마요 사후 사마요의 아들인 사마덕종이 황제로 즉위하였는데 사마덕종이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인 그가 재상이 되어 섭정하며 사마덕종을 보좌하였다. 문제는 사마덕종이 백치였던 서진의 혜제 사마충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추위와 배고픔을 모르고 말을 할 수 없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사마도자의 무능과 합쳐져 동진의 정치는 더욱 나락으로 빠졌다.
이러한 사마도자의 성품은 사마도자의 아들인 사마원현(司馬元顯)에게도 그대로 나타났다. 아들인 사마원현은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었으나 아버지를 따라 인격과 행실이 엉망이었기 때문에 부자가 나란히 동진의 쇠퇴를 더욱 가속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진 반란이 바로 손은의 난.
동진에서는 손은의 난 수습에 무력한 모습을 보여서 결국 동진 조정이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움직였던 인물이 바로 환현이었다. 402년에 환현이 건강으로 진군하자 사마도자의 아들인 원현이 환현을 막고자 하였으나 부하 장수인 유뢰지의 배신으로 인해 사마원현이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고 사마도자는 안성으로 유폐되다가 이후 환현에게 살해당했다.
3. 평가
사마도자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동진 멸망의 원흉'''이다. 사마도자는 동진의 종실재상이라는 입장에 있었으면서 무능한 모습을 보여 동진을 쇠퇴하게 만들었고 결국 아들과 함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사마도자 부자의 무능함으로 인해 비수대전으로 멸망의 위기에서 살아남은 동진에서는 이후 북부군과 서부군의 대립과 손은&노순의 난으로 내홍을 겪었으며, 결국 사마요 이후에 즉위한 2명의 황제인 안제와 공제는 환현, 유유와 같은 인물에게 황위를 찬탈당하여 동진이 멸망하게 되었으니 동진 멸망의 원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道子昏凶,遂傾國祚。
사마도자는 어둡고 흉포하여 결국 국운을 기울게 만들었다.
― 진서의 사마도자 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