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제(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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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서진(西晉)의 제2대 황제로 시호는 혜황제(惠皇帝), 자는 정도(正度)다.
사마궤가 요절[4] 했기에 사실상 장남으로 265년 1월 18일에 황태자가 되었다. 무원황후의 소생으로 무제 사마염이 죽자 290년에 황제로 즉위한다.
굉장히 희귀한 케이스로, 기록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경도의 '''지적장애'''나 경계선 지능 장애를 앓고 있었을 것이 거의 확실한 인물. 행적을 보았을 때 지적 장애 3급 혹은 경계성 지능의 행동과 유사하다. 소수의 사료를 통해 판단하는 것은 현대의 우수한 정신과 전문의도 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사마충이 정말로 지성에 문제가 있었던 인물이라고 확단을 내릴 수는 없으나 지능이 모자라다는 기록이 너무나도 많이 나와서 학자나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성을 인정받아 중국의 역사만화인 만리 중국사 원제 '漫画中国历史(만화중국역사)'에 반영되어 있다.
2. 백치 황제
백치였으며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린다는 말을 듣자 '''"곡식이 없으면 어째서 고기죽을 먹지 않는 것이냐(何不食肉糜)?"'''라고 했다는, 참으로 병맛이 넘쳐흐르는 일화가 《진서》 혜제기와 《자치통감》에 전해온다. 또 밤에 공부하는데 개구리가 울자 '''저 개구리들이 공적으로 울까? 사적으로 울까?'''라고 생각하는 등 엉뚱한 쪽으로 생각을 했다. 조조나 유비나 손권이 이랬다면 농담 따먹기나 뭔가 의도가 숨겨진 수수께끼로 받아들여졌겠지만, 하필 혜제가 말했으니 그냥 별 뜻 없는 헛소리일 가능성이 크다. 이에 옆에 있는 사람이 "사유지의 개구리는 사적으로 울고 공유지의 개구리는 공적으로 웁니다."라고 대답했다고.
이후 가충의 딸인 혜문황후 가씨, 즉 가남풍을 황후로 맞이했다. 외척의 득세와 팔왕의 난까지 겹치며 서진은 멸망을 향한 막장일로를 달리게 된다.
다만 어리석긴 하지만 사람은 선량했던 것으로 보인다. 혜강의 아들 혜소[5] 가 난리 통에 사마충을 몸으로 지키다가 살해당하면서[6] 그 피가 용포에 묻었는데, 나중에 하인이 피를 닦으려 하자 충신의 피라며 닦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오기는 한다. 사마충이 남긴 것 중에 유일하게 훈훈한 일화다.[7] 육적회귤[8] 에 비길 만한 고사다. 이는 어떻게 보면 혜제가 어리석은만큼 순수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군주들은 복잡한 정치적 계산에 얽매여서 설령 자신을 구한 부하라 해도 상황에 따라 비정하게 내치지만,[9] 혜제는 특유의 순수함 때문에 자신을 지킨 사람=충신이라는 매우 단순한 논리를 적용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10] 같은 백치 황제라도 말을 제대로 못하고 추움, 더움, 배고픔을 몰랐으며 음식과 용변 등 생활 일체를 스스로 할 수 없었던 사마덕종보단 낫다는 경우도 있기도 하다.
물론 사마염도 바보가 아닌지라 이 어리석은 아들을 태자에서 폐위시키려고 했다. 노신 위관의 제안에 따라 시험 문제를 줬는데 이를 가남풍이 조작했고 합격점을 받았다. 게다가 조작 방법도 학자들을 매수해서 쓰게 했는데 너무 잘 쓰면 의심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잘 쓰지도, 못 쓰는 것도 아닌 평범한 솜씨로 답을 쓰게 했다. 여기서도 사마충의 재능은 빛이 나는데... 사마충이 쓰긴 썼는데 자기가 쓰고도 뭔 소린지 아예 하나도 모르고 '잘 썼지?'라는 식으로만 말했다고 전한다.
물론 사마염이 이걸 믿진 않았겠지만 지금 와서 태자를 다시 세우기도 그런데다 주변에 노신들과 황족들 도움을 받아 통치하게 하는 방법도 있고, 무엇보다 손자 사마휼이 총명했기에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어 그냥 태자 자리에 두고 말았다.
3. '''팔왕의 난''' - 안습 황제
그런데 정작 황후 가씨(가남풍)의 전횡으로 그의 외아들이었던 첩 사씨의 소생인 태자 사마휼이 죽었고, 301년 사마의의 9남이자 사마염의 숙부인 조왕 사마륜이 찬탈했을 때는 사마휼의 아들이자 손자였던 사마장이 살해당했으며, 그 동생 사마상은 요절해서 사마충의 대는 확실히 끊겼다.[11]
이런 짓을 저지른 이유는 사마륜이 방계 황족이라 정통성이 있었던 사마장을 죽인 것인데, 당연히 만천하에 찬탈자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았으므로 그 행동이 사마륜의 생명을 보전해주지 못해서 성도왕 사마영, 장사왕 사마예 등 다른 사마 씨들의 손에 살해당했다.
이후 사마충은 다시 복위되었다.
그가 황제로서 유일하게 자기 뜻대로 명령을 내린 것이 이 직후. 301년 5월에 의양왕 사마위[12] 를 주살하게 한 일로 제왕 사마경, 장사왕 사마예, 성도왕 사마영, 하간왕 사마옹 등이 사마륜을 몰아내자 사마충이 복위하면서 사마위를 가리켜 "이 사람이 나에게 퇴위하도록 하고 옥새를 탈취했다"라고 말해 죽게 한 것이다. 사마륜이 죽은 지 3개월 만이었다. 지적 장애인의 경우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향이 있어서[13]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여하간 황제 본인도 팔왕의 난 때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황제에서 밀려나기도 하는 등 안습한 모습을 보였는데, 절정은 업성에 있던 사마영에게 끌려갔을 때. 사마영이 다른 왕과 싸우면서 사마충은 풀숲에 숨어 있었다. 사마충은 이때 습격을 받아 옥새를 잃어버리고 얼굴에 화살을 몇 방 맞으며 포로가 되기도 했다.
결국 팔왕의 난은 동해왕 사마월이 집권하면서 종식 되었으며, 사마충은 사마월이 올린 떡을 먹고 앓다가 307년 급사하고 태양릉에 안장되었다. 사실 떡을 먹고 앓다가 죽은 대목에서 동해왕 사마월의 독살을 암시한다는 해석도 있다. 다만 사마충은 이용 가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굳이 죽일 이유가 없었으므로[14] 근거가 없다는 평가가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15] 향년 49세로 그의 뒤는 그의 이복 동생이자 황태제였던 사마치가 이었다.
4. 안습한 사후 후일담
그의 두 번째 황후였던 혜헌황후 양씨(양헌용)는 영가의 난 때 흉노족 유총의 친척 유요의 부인이 되었으며 훗날 사마충을 비난했다. 하루는 유요가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5. 가족 관계
- 혜문황후 가씨(가남풍)
- 혜헌황후 양씨(양헌용)
- 사부인(사구): 사마충의 외아들 사마휼을 낳았으나, 299년 가남풍에게 살해된다.
- 장남(외아들) 민회태자 사마휼(愍懷太子 司馬遹)
- 서의: 가남풍의 유모
- 자녀 없음
- 궁인 송씨(송단)
- 자녀 없음
6.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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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계보 마왕재림의 패에 소속된 장수로 병과는 천자계다. 능력치는 무력 48, 지력 21, 통솔 55, 민첩 68, 행운 89이고 성격은 만용이다. 성우는 이규창이다.
- 토탈 워: 삼국의 DLC 팔왕의 난에 등장한다. 게임 시스템상 장수나 캐릭터로 나오는 건 아니고 한 멸망 이전의 헌제처럼 일러스트로만 나온다. 게임 시작 시 낙양에 거주하는 것으로 표시된다. 이후 팔왕인 플레이어가 낙양을 점거하고 섭정이 되면 다른 수도로 옮겨진다. 여담으로 초상화의 표정이 뚱하다.
7. 둘러보기
[1] 말이 좋아 태상황이지 사실상 금용성에 유폐된 상태였다.[2] 하불식육미. 직역하면 '''"왜 고기죽을 먹지 않는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곡식이 없는데 고기가 있을리가...[3]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을 때 혜제가 한 말.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과 비슷한데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은 루머지만 '''혜제가 한 말은 정사에도 나오는 사실이다.'''[4] 아기일 때 죽어서 권력 다툼이고 뭐고 없었다.[5] 고사성어 군계일학(群鷄一鶴)에 나오는 인물이기도 하며 뒷날 남송의 충신 문천상의 정기가에도 나온다.[6] 이때 혜제도 충신을 건드리지 말라며 병사들에게 호소하였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7] 혜소의 부친인 혜강이 사마씨에 의해 주살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좀 더 훈훈해질 수 있다. 부친의 원수 가문을 그래도 주군이라고 목숨바쳐 지킨 혜소와, 그리고 그 혜소를 알아준 사마충 둘 다.[8] 그래도 이 일화는 원술의 인간성보다는 육적의 효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라 비교하긴 뭣하다.[9] 예를 들어 한고제 유방은 홍문연에서 자신을 구했던 번쾌를 숙청하려 하기도 했다.[10] 그리고 일단 그럴만도 한게 충신이 아니라면 왕이 죽을 정도로 위험하면 왕을 버리고 도망치지 목숨걸고 왕을 지킬리가 없다.[11] 사실 이 직전에 회남왕 사마윤이 막으려고 했는데 사마치는 이때 아무 짓도 못하다가 조서 위서나 당해서 몰락한다.[12] 먼 친척뻘로 팔왕의 난을 시작한 사마충의 동생 초왕 사마위(사마충과 8살 터울)와는 동명이인이다.[13] 물론 100%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14] 숙청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에도 지적 장애인은 제외하는 게 원칙이었다. 살인 중독자가 아닌 이상에야 굳이 죽일 이유가 없어서다.[15] 실제로 권신 사마월은 정적 사마영과 사마옹의 가족까지 몰살하는 등 정적이나 위험 인물들에게 잔인하기로 유명했고 이 때문에 황제 사마치에게도 미움을 받아 끝내 그로 인해 분사했다. 그러나 그래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옹호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