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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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공격하는 사울 (Guercino作)
'''이름'''
히브리어: שאול בן קיש (샤울 벤 키시)[1]
'''출신'''
벤야민 지파 소속
'''생몰년도'''
기원전 1078년~기원전 1010년
67~68세
'''출생지'''
가나안 기브아
'''재위년도'''
기원전 1037년~기원전 1010년
'''사망지'''
이스라엘 왕국 길보아산
'''왕릉'''
이스라엘 왕국 기브아
'''아버지'''
기스
'''가족관계'''
아내: 아히노암
아들: 요나단, 리스위, 말기수아, 에스바알(이스보셋)
딸: 메랍, 미갈
'''다음 국왕'''
이스보셋, 다윗
1. 성경 중 구약의 등장인물
1.1. 즉위 전 ~ 즉위 초기
1.2. 즉위 초기 ~ 아말렉과의 전쟁
1.3. 아말렉과의 전쟁 ~ 죽음
2. 성경 중 신약의 등장인물


1. 성경 중 구약의 등장인물


그에게 '''사울'''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그만큼 잘생긴 사람이 없을 만큼 깨끗하게 잘생긴 아들이었다. 누구든지 그의 옆에 서면 어깨 아래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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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번역 성서, 사무엘기 상권 9장 2절

통합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 왕휘인 사울(שאול, 샤울)은 히브리어로 '구함·요청함'이라는 의미이다. 사도 바울로의 히브리어식 이름이기도 하다.
벤야민 지파 출신으로 즉위 초기만 해도 하느님사무엘,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받던 괜찮은 왕이었으며 왕권 강화를 위해 애를 썼지만, 흔히 다윗을 질투한 무능한 소인배 이미지로만 잘 알려져 있다. 다만 다윗을 죽이려한 일의 경우, 소인배 여부와 상관없이 왕이라면 자신의 왕좌를 빼앗아가려 하는 자를 견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사울은 키가 크고 잘생긴 그 시대의 인싸였다. 특히 사무엘기에선 '''누구든지 그의 옆에 서면 어깨 아래에 닿았다'''라고 그 키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1.1. 즉위 전 ~ 즉위 초기


이스라엘아직 왕이 없었던 시절 12지파 중 주인공 벤야민 지파에 세력과 재산이 있던 키스(개역개정에서는 기스.)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사무엘상 9장에서 처음 등장 시에만 해도 남다른 외모와 키, 게다가 겸손하고[2] 효심[3]까지 지닌 '''인생의 승리자'''였다.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다찾아 못 찾아서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같이 따라나선 사환[4]이 '예언자 사무엘'에게 가면 혹 알 수 있지 않겠냐고 해서, 사무엘이 있다는 성으로 갔다가 느닷없이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될 거라는 얘기를 듣는다.[5][6]
그 후 사무엘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미츠파, מצפה)[7]로 모으고 하느님이 세운 왕을 알려준다며 제비를 뽑게 하는데[8] 12지파 중에서는 벤야민 지파가, 벤야민 지파 중에서는 마드리(마트리)의 가족(씨족)이, 마드리의 가족 중에서는 키스의 아들 사울이 제비를 뽑게 되어 정식으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지만 따르는 사람만 따르고 무시할 사람은 무시하는 수모를 겪었다.[9][10]
그러던 어느 날 암몬 민족의 왕 나하스가 이스라엘 지역인 길르앗의 야베스를 포위했는데 '너네들 오른쪽 하나씩 다 빼면 봐주지~'라는 모욕을 받게 되었다. 이 소식은 어찌어찌해서 왕은 되었으나 밭에서 를 몰고 다니며 목가적인 생활을 누리던 사울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하느님의 기운을 받은 사울이 를 죽여서 토막내 각 지역에 보내고 '''"나하고 사무엘 안 따라 나서면 너희들의 도 이렇게 해줄 테다!!"'''라고 전하게 했다. 그 포스에 제압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모였는데 사울은 모인 33만의 병력을 3개로 나눠서 이른 새벽에 암몬 족속이 진을 친 곳을 공략하였다.[11] 예언자 사무엘은 사울이 용감할 뿐 아니라 대인배스럽기까지 하자[12]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길갈로 가서 사울이 왕임을 재확인하고 하느님께 짐승을 제물로 바쳤다. 그러나 사무엘은 "원래 이스라엘의 왕은 하느님 한분 뿐이시지만 너희들이 다른 왕을 원했으므로 인간 왕을 세우게 해주셨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너희가 하느님을 배신한 것이다"라는 내용의 연설과 경고가 이어졌다.
참고로 사울이 왕위에 오른 당시 나이는 40세.

1.2. 즉위 초기 ~ 아말렉과의 전쟁


왕이 될 당시만 해도 사무엘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불과 2년 후 블레셋(필리스티아)과 전쟁을 하던 중, 어마어마한 블레셋의 군대에 길갈에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겁에 질려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사무엘을 기다리다 못해 번제[13]를 직접 주관해서 혼란을 진정시켰다. 번제가 끝났을 때 도착한 사무엘이 왕이 번제를 주관한 것에 대해서 "당신의 왕조가 영원할 수 있었는데, 하느님의 명을 어겼으니 머지않아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울 것'''"이라고 책망했다.[14] 직후 사무엘은 길갈을 떠나 벤야민 기브아로 올라갔고, 사울은 벤야민 게바로 내려가서 블레셋과 대치하던 중 세자 요나단이 전부 격퇴하고[15] 블레셋 편에 붙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울의 편으로 돌아서자 숨어있던 사람들마저 싸우러 나와서 비교적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이후 사울은 주변의 적국들과 싸워 그들을 제압했고, 특히 블레셋 민족과의 싸움이 잦아서 자신과 함께 싸울만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1.3. 아말렉과의 전쟁 ~ 죽음


사무엘이 번제를 주관한 건으로 사울을 책망했지만, 사무엘 - 사울의 관계가 끝장난 것은 아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집트를 탈출하던 중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혔던 아말렉 민족을 쳐서 모든 소유를 없애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전달했다. 이에 사울은 소집한 보병 20만명으로 쉽게 승리를 거두고 아말렉의 왕인 아각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하느님의 명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아말렉 사람들은 모두 죽였으나 그 왕은 포로로 삼았고 그들의 소유, 즉 이나 중 좋은 것은 가지고 가치 없는 것만 없애서 하느님의 분노를 샀다[16]..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승전비까지 세우고 길갈로 내려갔는데, 그의 뒤를 쫓아간 사무엘은 사울이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왕을 살려둔 것과 중 좋은 것을 가진 것을 추궁했다[17].
사울은 '나는 하느님의 명대로 행하고 왕만 잡아왔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께 제사하려고 좋은 것들만 남겨 가져온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더 크게 꾸짖음 맞았다. 사울은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을 버렸다'라는 말을 듣고서야[18] 잘못을 인정했는데,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을 대리하는 사무엘에게 버림받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사울은 돌아가려는 사무엘의 옷자락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매달리며 용서를 빌었는데, 이런 사울과 실랑이를 벌이던 사무엘의 옷자락은 결국 뜯어져나가고 말았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그 옷조각처럼 당신도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라는 말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그는 사울이 하느님께 경배하는 것을 주관하고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오게 해 살해한 후[19] 라마로 돌아갔고 '''죽을 때까지 사울과 만나지 않았다.'''
전에 말 안 듣고 번제드린 것과 이 일을 계기로 사무엘과 정치적, 종교적으로 완전히 결별당한 후 사울은 하느님의 벌로 보여지는 정신병으로 심리적 불안상태(성경 사무엘상 16:14에 보면 하느님의 영인 성령이 떠나시고 악령이 사울을 번뇌케했다고 기록되어있다)[20]에 빠진 데다가 다음 대 왕이 되기로 예정된[21] 다윗의 등장 및 활약[22]으로 점점 위축되기 시작했다. 결국 열등감과 질투심이 폭발한[23] 사울은 다윗을 여러번 죽이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윗 항목 참조.
이렇게 다윗에게 열등감을 벌인 일중에는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두둔하자 창을 들어 요나단을 죽이려고 했던 일과, 아히멜렉과 놉 제사장의 몰살이 있었다.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은 제사장인 아히멜렉에게 찾아가 '급한 왕명 때문에 아무것도 없이 왔으니 먹을 것과 무기를 달라' 라고 거짓말을 했고, 아히멜렉은 떡(그냥 떡도 아니고 제단에 올린 신성한 떡이었다.)과 골리앗이 쓰던 칼을 줬는데, 도엑의 밀고로 사울이 이 일을 알게 된다. 이때 분노한 사울이 신하들에게 아히멜렉과 다른 제사장들을 몰살하라 명령하지만 아무도 제사장을 죽이려 나서지 않아 밀고했던 도엑에게 명해 80명이 넘게 죽였다. 이때 살아남은 아비아달은 훗날 솔로몬의 즉위 과정에서 줄을 잘못 서서 처형당할뻔 하였으나 상기의 일 때문에 파직으로 끝난다. 사울과 제사장의 사이가 얼마나 틀어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블레셋과의 마지막 싸움에서는 블레셋의 군대를 보고 두려운 마음에 하느님께 의지하려 하지만 꿈으로도, 우림[24]으로도, 예언자를 통해서도 응답이 없어 자신이 배척하던 무당을 찾아가 의지할 정도였는데[25], 무당이 보여준 환상은 죽은 사무엘이 스올에서 올라와 '''내일 너는 죽을 것이다'''하고 저주하는 내용.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이미 죽은 날 왜 또 불러서 이 난리냐?"

"하느님이 대답을 안하시는데 좀 도와주세요."

"하느님이 너의 적이 되신지가 언젠데 이제와서 난리란 말이냐? 네가 그 모양 그 꼴 된건 다 너의 불순종 때문이고, 넌 이번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 내일 너랑 너의 아들들이 전부 나랑 같이 있을 것이다."

기독교학계의 관점에서 본 이 일화는 대개 사울이 하느님이 금지한 영매, 무당 행위를 사울이 자청해서 한 것으로 또 하느님 앞에 죄를 지은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이와는 별도로 개신교의 사상 상 하느님이 부정하게 여기는 영매가 어떻게 사무엘이라는 대선지자를 불러냈는지 의견이 오가는데 대체적으로 세가지 설로 요약된다.
  • 하느님이 진짜로 사무엘을 보내셨다.[26]
  • 여인에게 들린 귀신이 사무엘 행세를 했다.
  • 당대의 심령과학이나 심리학적 방법으로 여인이 사울의 심리를 간파하고 사무엘인 척 연극을 했다.
일단 어느쪽이 되었든 개신교계의 주 해석은 사울을 벌하기 위해 하느님이 사무엘이든 여인이든 파멸을 선고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사울은 결국 그 싸움에서 패해 길보아산으로 도망치다 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
사울의 죽음에 대한 묘사에서 사무엘상에서는 사울이 고통에 허덕이며 자신의 병사에게 '블레셋(필리스티아) 사람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우니 네가 나를 찔러죽여라'라고 하지만, 그 사람이 머뭇거리자 스스로 칼을 가져다가 그 위에 엎드러져 자살했으며 그 병사 역시 주군의 고통을 방관했다는 충격에 그 자리에서 자살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를 지켜 본 지나가던 아말렉 군인이 자신이 본 것을 다윗에게 설명하면서 "가망없는 사울의 모습을 보고 나서 자신을 죽여달라는 사울의 부탁을 듣고 가차없이 내가 왕의 원수를 죽였습니다. 잘했죠 데헷"하며 보상을 바라는 거짓말을 하지만 다윗은 도리어 "야, 이녀석아! 네가 어째서 하느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죽였냐!"고 호통을 쳤고, 그 아말렉 군인을 처형한다.[27] 이 이야기는 진짜 아말렉 병사가 부탁을 받고 죽인 것인지, 아니면 사울이 자결한 것인지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 이후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들의 물건을 수거하러 왔다가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신을 발견한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죽음을 공표하기 위해 머리를 베었고, 갑옷은 아스다롯 신당에 두었으며 남은 사울과 아들들의 시체는 벳 산 성벽에 못 박았다. 길르앗의 야베스[28]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달려가 성벽에서 시체들을 수습해 와 화장하고 뼈를 가져다 묻었다.
나중에 다윗사울요나단의 죽음을 추모하는 노래를 짓고는 이후 이들의 유골을 가져와서 벤야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아버지인 기스의 무덤 옆에 나란히 합장시켜준다.
그 뒤 남은 사울의 후손들도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사울의 작은 딸인 미갈은 다윗이 왕이 된 후 소박데기로 살아야 했고[29][30],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인 에스바알(또는 이스보셋)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브에롯 사람 바아나와 레캅[31]의 배신으로 암살당했다[32][33].또 기근이 들자 다윗은 사울이 과거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의 보복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 사울의 후궁인 리츠파가 낳아준 사울의 두 아들인 아르모니와 므립바알(또는 므피보셋)과 사울의 큰 딸 메랍이 므홀라 사람 바르질라이의 아들 아드리엘에게 낳아준 아들 다섯을 붙잡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주어 그들을 모두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다윗의 친우였던 요나탄의 아들 므피보셋[34](위의 인물인 사울의 므립바알(므피봇셋)과 다름. 혼동주의 사촌관계).
헌데 대중매체에서의 묘사에서는 기독교 교리 상 악역이기 때문에 그저 안습.... 하지만 리처드 기어다윗으로 출연한 1985년작 영화 '킹 다윗'에서는 노장 배우 에드워드 우드워드가 사울 역으로 출연하여 그냥 찌질이가 아닌, 신에게 버림받은 비극적인 영웅의 이미지를 잘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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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다윗'에서 사울의 자결 장면.

2. 성경 중 신약의 등장인물


사도 바울/바오로히브리어 이름. 둘 다 벤야민 지파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 '벤 ~'은 '~의 아들'이라는 뜻이다.[2]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갔을 때 스스로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벤야민 사람' 이라고 한 것은 겸손한 표현이 아닌 사실이며(사실 벤야민 지파는 판관기 마지막에 나오듯이 다른 11지파와 상대하여 벌인 내전에서 패배하고 대학살을 당해 숫자가 크게 줄었던 상태였다), '나의 가족은 벤야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다'라고 한 것이 겸손의 표현이다. 근데 사실 사울의 집안은 그렇게 미약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게 보면 단지 겸손한 게 아니라 열등감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다.[3] 아버지인 키스가 암나귀를 잃어버려서 찾아오라는 말을 듣고 아무런 단서도 없이 이곳저곳 멀리까지 찾아다녔다.[4] 심부름꾼[5] 사무엘은 사울이 안 믿을까봐 3가지를 예언한다. 첫 번째는 돌아가다가 두 사람을 만나서 '아버지가 암나귀를 찾았고 이제는 아들 걱정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2번째는 베델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서 2덩이를 받는 것, 3번째는 하느님의 산에 이르렀을 때 예언하며 내려오는 예언자 무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때 사울도 예언을 하는 것이었다. 모두 적중.[6] 그의 행방을 걱정한 그의 숙부와 만나서도 예언자에게서 잃어버린 나귀들을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을 뿐, 그가 왕으로 선택되었다는 신탁은 얘기하지 않았다.[7] 일찍이 판관 시대 때 벤야민 지파를 치기로 총회를 연 곳이다. 이외에도 미스바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성경 지명이 한둘은 아니지만 여기서 설명하는 미스바는 이 의미. 보통명사로 쓰일때에는 파수대, 망대라는 뜻도 있다.[8]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당시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운명에 맡긴다는 의미로 제비를 뽑곤 했다. 성경에서는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범인을 찾을 때, 레위 지파의 직분을 배치할 때 등에서 등장하는데 잠언의 '사람이 제비를 뽑아도 그 일은 하느님께서 결정한 것이다' 라는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비 뽑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9] 벤야민 지파의 위상 때문이었는데, 민수기 후반부에서 하느님의 명으로 각 지파의 인구조사를 할 당시만 해도 꽤 세력이 있었으나 판관기 후반부에서 나머지 11지파와 한 판 붙었다가 싸우러 나간 26,000명 중 600명만 살아돌아오는 일을 겪고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판관기 참조.[10]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울이 벤야민 지파였기 때문에 왕으로 즉위라도 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가장 작은 규모의 지파였기 때문에 왕으로 옹립하는데 여타 11지파가 큰 반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11] 성경 구절에 따르면 박살난 암몬인들이 뿔뿔히 흩어져 도주했는데 도망친 사람들 중 2명 이상 짝을 지은 자가 없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즉 패잔병들이 무리지을새도 없이 단신으로 도망쳤을 정도로 깨졌다는 뜻.[12] 간만에 제대로 승리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친 김에 사울이 왕으로 즉위할 때 무시했던 사람들(같은 민족)까지 손 좀 봐주자고 하지만, 사울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 이런 날에 이스라엘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선언했다.[13] 제물로 삼을 짐승을 각을 떠서 제단에 올리고 불을 붙이는 제사.[14] 번제를 집전하는 것은 오직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사울이 번제를 지낸 것은 정교분리의 위반으로, 현대적 관점으로 비유하면 "대통령이 외환을 빌미로 헌법과 법률에서 주어지지 않은 권한을 무단으로 남용한 것"에 해당한다.[15] 약 600 평 정도(Half acre)되는 지역에서 첫번째 격돌로 20명을 베어내고 혼란을 유도해냈다.[16] 하느님은 이미 사무엘에게 "내가 사울을 세워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걸 후회한다. 그는 내 명령을 어겼다"라고 한 뒤였고 이에 사무엘이 밤새도록 하느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기도했다.[17] 사무엘을 만난 사울은 처음엔 자신은 "하느님의 명령을 모두 이행하고 돌아왔다"고 했지만 "그럼 왜 내 귀에 양과 소의 울음소리가 들리느냐?"고 되물어 책망했다.[18] 사무엘은 여기서 유명한 질책을 하는데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점치기나 점성술)의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숭배의 죄와 같은 것이라."이다.[19] 이때의 장면이 참 재미있는데, 사무엘이 사람들을 시켜 아각을 자기 앞으로 데려오게 했는데 아각은 '''"난 이제 살았다!"'''하고 사무엘 앞으로 왔으나 사무엘이 그를 처단하면서 한 말이 걸작. '''"네놈이 그동안 칼로 수많은 여인들의 자녀를 잃게 했으니 이젠 네 어미가 자녀를 잃을 차례다!!"'''라고 꾸짖으며 도끼로 아각을 일도양단했다.[20] 일례로 블레셋(필리스티아) 민족과의 전투에서 거인장수 골리앗하느님이스라엘 민족을 모욕하자 크게 두려워했다. 즉위 초기 사람들의 지지가 부족할 때 보였던 행동들과 대조적인 모습. [21] 사울과 결별한 직후 사무엘하느님의 명으로 베들레헴 지역에 거주하던 유다 지파 이새(이사이)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들들 중 막내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당시 기름부음은 곧 왕 또는 예언자나 판관이 될 것임을 상징.[22] 골리앗을 죽인 후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해서 사울이 군대의 대장으로 삼았을 정도.[23] 블레셋과 싸우고 돌아오는 사울과 다윗에게 사람들이 '사울이 죽인 사람은 수천이요 다윗이 죽인 사람은 수만이로다(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네)' 라는 노래를 부른 게 결정타.[24] 제비의 도구로 사용된 돌로 제사장들이 하느님의 뜻을 묻기 위해 사용했다. 세트로 '둠밈'이 있는데 이 두 돌은 출애굽기 때 아론이 정식으로 착용하던 제사장복의 열두 보석이 박힌 흉패 속에 보관되어 사용되었다.[25] 무당은 변장한 사울이 사무엘의 혼령을 불러낼 것을 요청하자 사울 왕이 자신과 같은 무당들을 전부 쫓아냈다며 만약 그리했다간 자신도 쫓겨나고 말 거라며 처음엔 거부하다가 결국 사무엘의 혼을 불러낸다. 이후 사무엘의 혼이 나타나자 무당은 자신에게 찾아온 사람이 사울임을 깨닫고 두려워한다.[26] 최근에는 이쪽이 가장 지지를 많이 받는다. 이해하기가 가장 편하기 때문.[27] 참고로 이렇게 자신의 경쟁자라 하더라도 전대 임금이나 영웅을 대뜸 죽이고 본인에게 굽신거리는 놈은 제거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폼페이우스를 죽인 이집트 고문을 어떻게 했는지를 상기하자.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일단 전대 왕이나 영웅의 지지 세력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무엇보다 '''한 번 배신한 놈이 두 번 배신 못 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28] 과거 암몬족 왕 나하스의 침입에서 사울의 구원을 받은 곳이다.[29] 하느님의 언약궤가 수도인 예루살렘에 귀환하는 것을 본 다윗이 기쁨에 겨워 춤을 췄는데 얼마나 격렬하게 췄는지 자신의 검열삭제가 다 드러날 정도로 췄던 것이다. 그걸 미갈이 보고 다윗이 돌아오자 "명색이 이스라엘 왕이신 분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체통도 없이 적나라하게 출 수 있냐고" 따지자 "아 그럼, 하느님이 당신 아버지한테서 왕의 자리를 뺏어다 내게 주셨는데. 내가 춤춘건 사람들 보라고 한게 아니고 하나님 보시라고 한거요. 비록 내가 주변에서 손가락질 받아도 상관없소.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이런일이 다시 생길 경우 난 이거보다 더 경망스럽게 할거요."라고 맞받아쳤다. 결국 미갈은 정실부인이었음에도 다윗을 업신여긴 죄로 평생 자식 하나 없이 살다 생을 마감했다.[30] 미갈에 대한 재밌는 사연이 있다. 사울 왕가의 실권자였던 아브넬이 다윗편으로 전향할때 다윗이 내건 조건이 미갈을 다시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미갈은 다윗의 아내였으나 사울이 억지로 이혼시킨 뒤 발디엘이란 사람에게 다시 출가시킨 뒤였다. 그래서 아브넬이 다시 미갈을 데리고 올때 남편인 발디엘이 울면서 같이 따라오자 "어서 돌아가!"라고 아브넬이 호령하자 그재서야 돌아간다.[31] 이 둘은 모두 동족인 벤야민 지파였다.[32] 이렇게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 머리까지 참수해서 다윗에게 돌아가 포상을 받기를 기대한 이 둘에게 다윗은 이렇게 대답했다; 다윗: "예전에 나한테 사울이 죽었다고 무슨 희소식인냥 전해온 자도 내가 시글락에서 처형했는데 하물며 자기 집에서 편히 자고있는 무죄한 사람을 죽인 너희 악당들을 내가 어떻게 가만히 내버려 두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니 네놈들을 처형해 이스보셋의 복수를 하리라!" 그리고 둘은 처형당한다.[33] 이스보셋이 왕이 되긴 했으나 나이도 어렸던데다 실질적인 사울 왕실의 실권은 사울 왕 당시 군사령관이었던 아브넬이 갖고 쥐락펴락하던터라 이스보셋은 현대말로 '바지사장'이나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아브넬이 자기 아버지의 첩이었던 리스바와 통간한 것을 이스보셋이 알고 아브넬에게 따지자 당신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있는게 누구덕인데 이렇게 날 대하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온뒤 다윗에게로 전향해버린다.[34] 아기였을 적 피난중에 유모가 그를 잘못다뤄 신체장애를 당해 두 다리를 다 절게되었다. 시종으로 시바가 있었는데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할 당시 시바가 므피보셋을 모함했지만 훗날 반란이 평정되어 다시 귀환할때 씻지 않은 모습 그대로 나와 다윗을 맞이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였고, 이후 시바에게 준 므피보셋의 재산권을 다시 회복시켜주자 다윗왕의 무사귀환이 더 기쁜일이라며 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