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한 맵시
SAEHAN Maepsy
1. 개요
1982년 기존의 후륜구동 소형 승용차인 제미니를 페이스리프트[3] 하여 출시한 모델로, 차체 크기를 더 키워서[* 실제로는 차체 본체는 전혀 변함이 없었고, 단지 헤드라이트와 라디에이터 디자인을 바꾸어 앞으로 튀어나가게 하고 범퍼도 그에 맞춰 앞으로 더 튀어나가게 함으로써 제원상의 전장만 늘린 것이었다. 이후 10년 동안 대우자동차가 자주 써먹던 트릭[단, 맵시의 경우는 대우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이스즈 제미니의 페이스리프트가 그렇게 된 것을 들여왔던 것일 뿐이다.]이고 현대자동차도 캐나다 수출형, 미국 수출형 등의 이름으로 유사한 트릭을 사용하여 대항[4] 했다. 다만, 맵시 이후 등장한 맵시-나는 실제로 트렁크 부분을 늘려서 전장을 늘렸다. 안전성과 경제성 등을 개선했다.'''이제 소형승용차를 선택하는 당신의 기준이 바뀝니다.'''
그러나 당시 평가가 영 좋지 않았던 제미니를 사실상 이름만 바꿔서 다시 내놓은 차량이라는 인식[5] 이 박히는 바람에 같은 시기에 나온 경쟁 차량인 포니 2에 밀려 높은 판매 대수를 기록하지 못했다.
73마력 1,492cc 4기통 엔진을 이용했으나, 그 전 해에 단행됐던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기아자동차가 당장 써먹을 수 없게 된 브리사용 마쓰다제 87마력 1,272cc 4기통 엔진도 들여와서 라인업에 추가했다.
하지만 출시한 지 불과 1년 만에 1983년 새한자동차에서 대우자동차로 개명한 후 수개월 동안 생산하다가[6] 대우 맵시-나로 이름을 바꿔 다시 한 번 페이스리프트하고, 엔진을 교체하여 출시했다.
1982년 한국시리즈 MVP 김유동이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가 맵시였다.
2. 대우 맵시-나
'''새롭게 탄생한 매혹의 승용차.'''
1983년 새한자동차가 대우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한 후 대우 맵시-나로 이름을 바꿔 다시 한 번 페이스리프트하고, 말썽이 많았던 73마력 CIH 엔진을 전면 교체하여 출시했다. 이때부터 차체 금형이 많이 바뀌어서 빅 마이너체인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하이디럭스가 나올 무렵에는 실내도 많이 바뀌었다.'''생활의 멋과 안전이 함께 달립니다.'''
사실상 대우자동차의 마지막 후륜구동 소형 승용차였지만 르망부터는 전륜구동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대우자동차의 마지막 후륜구동 차량은 뉴 프린스다.
1983년 9월 맵시를 페이스리프트했을 때 카뷰레터식 85마력 1.5리터 XQ 엔진으로 교체하고, 전후면부를 개선하여 맵시의 명칭에 가나다 순을 붙여 2번째로 만든 맵시라는 의미로 맵시-나라는 명칭으로 출시하여 판매하였다. 물론 트렁크 리드에는 그냥 MAEPSY만 표기했다. 출시한 후 얼마 있다가 3단 자동변속기가 옵션으로 추가되었다.
국내 최초이자 소형차 최초로 5볼트 휠을 적용하였으며, 이는 국산 소형차로서 첫 번째 사례이다.[8][9] 게다가 동급 최초로 고급차에서만 볼 수 있었던 앞좌석 센터콘솔 암레스트가 장착되었다. 1986년 신형 전륜구동 소형 승용차인 르망이 출시된 후 이듬해인 1987년에 승용형의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론지 LPG 엔진을 장착한 맵시 ∑(시그마)라는 소형택시 모델로 병행 생산하다가 1989년에 단종되었다. 맵시 시그마 택시 카탈로그 보러 가기
위 사진의 일반 모델과 다르게 당대의 인기 중형차인 로얄 살롱의 앞모습과 비슷하게 꾸며 놓은 고급형의 하이디럭스 모델이 따로 있었다.[10] 라디에이터 그릴 상단 중앙에는 로얄 시리즈의 마크인 왕관 모양(월계수 형상은 제외) 엠블렘이 달렸다. 최후기형 하이디럭스는 전면부가 로얄 살롱 슈퍼와 비슷하게 나오고 허브캡 대신 휠 커버가 달렸으며, 안테나도 A필러에서 후드 쪽으로 옮겨졌다.
특이하게도 연료 주입구가 소형차로는 보기 드물게 트렁크 리드 가까이 있는 곳이 아닌 C필러 쪽에 있었다.[11]
2.1. 대우 맥스
1984년 11월에는 제미니를 베이스로 제작한 소형 픽업트럭인 맥스도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전면 디자인이 맵시-나와 동일하게 변경되었으며, 1.5리터 XQ엔진을 탑재한 맥스 가솔린 사양을 발매했다. 명백한 포니픽업의 대항마로 적재함의 3면이 모두 개방되며 포니픽업보다 적재능력이 2배가량 더 뛰어난 3방데크 모델과 로얄 디젤의 엔진을 그대로 가져와서 올린 디젤 모델까지 내놓았으나 판매량이 좋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맥스의 리스토어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다만 리어램프는 결국 구하지 못했는지 현대 갤로퍼의 리어램프를 이식하였다.
픽업형[12] 과 3방데크[13] 적재함으로 총 두 가지 버젼으로 출시되었다. 3방데크의 적재능력은 800kg이다.
3. 여담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역전 3점 홈런을 쳐 롯데 자이언츠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여 MVP가 된 유두열 선수가 부상으로 맵시나를 받았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 맵시-나가 등장했다.
4. 둘러보기
[1] 또한 이 광고는 사실상 새한자동차 명의로 방영된 마지막 광고이기도 하며 유일하게 컬러로 방영된 광고이다.[2] 당시 주사선을 이용한 미국의 Scanimate제 CG를 사용하였으며 이 광고와 비슷한 시기에 개국한 일본 구마모토현 NTV 계열국인 구마모토 현민 방송(KKT)의 오프닝에도 사용되었다.[3] 일본 이스즈 제미니의 페이스리프트 형태를 그대로 들여온 것이다.[4] 단, 이는 본래 크기를 늘려서 대우자동차에 대항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단지 북미 지역의 보험료 문제로 5마일 범퍼를 적용하느라 그렇게 한 것일 뿐이며, 대우자동차 역시 르망에서 마찬가지로 북미형 5마일 범퍼를 적용하여 길이를 늘렸던 바가 있다. 현대자동차는 Y2 쏘나타 이후 신소재 적용으로 더 작은 사이즈로 5마일 범퍼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더이상 비례가 깨질 정도로 큼직한 범퍼를 적용하지 않게 되었고, 대우 역시 고유모델인 에스페로부터 더이상 이상하게 큰 범퍼를 적용하지 않았다. 레간자, 누비라, 라노스 등은 모두 정상적인 사이즈의 범퍼로 나왔다.[5] 사실 제미니의 페이스리프트이므로 제미니를 개조한 것이 맞다. 차체 금형은 제미니에서 달라진게 거의 없으며 제미니 차체 금형에다가 앞부분에 그릴 장식만 달아놓은 수준이었다. 그래사 역슬랜트형 차체 금형을 가지고 그릴 장식 정도만 달아서 슬랜트형처럼 보이게 만들다 보니 방향지시등이 미묘하게 삼각형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앞범퍼 아래쪽을 비교해 보면 제미니와 비교해도 달라진 것이 없다. 말 그대로 제미니의 리네이밍 수준이었다(...). 라세티 프리미어/크루즈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 가 아니라 그냥 그 관계와 같다.[6] 실제 대우그룹이 새한자동차를 인수한 게 1978년이었다.[7] 대우자동차 명의로 방영되는 첫 광고[8] 두 번째는 아베오. 초기형은 ABS 미장착 차량에만 장착되었고, 2015년형 이후부터는 모든 차량에 장착되었다. 맵시나 출시 당시 맵시나보다 상위 차인 로얄 시리즈, 현대 그라나다, 현대 스텔라는 4볼트였고 후속 모델인 르망 또한 4볼트였다.[9] 하지만 소형차에 5볼트 휠을 적용한 사례는 쉐보레와 폭스바겐을 빼면 전 세계에서 그다지 흔하지 않다.[10] 제미니의 것을 계속 쓰던 기존의 대시보드도 로얄 시리즈의 대시보드와 유사하게 새로 만들어서 장착하였다. [11] 70년대에 미국에서 후방 추돌 사고로 연료탱크가 폭발하여 탑승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트렁크 바닥에 눕혀 설치하던 연료탱크를 2열시트 등받이 뒤에 세워서 설치한 카데트의 설계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12] 포니픽업과 동일하게 후측만 개방되는 클렘 쉘 리어 게이트 방식.[13] 현대 포터, 기아 봉고 처럼 좌측, 우측, 후측까지 총 3면이 모두 개방이 되는 적재함을 삼방데크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