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갤로퍼

 

현대자동차[1] 플래그십 SUV 라인업
'''갤로퍼'''

테라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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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출시된 초기형 갤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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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출시된 뉴 갤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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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출시된 갤로퍼2.
1. 개요
2. 탄생
3. 모델 구분
3.1. 갤로퍼 (1991~1997)
3.2. 갤로퍼2 (1997~2003)
3.3.
4. 파생형
5. 특징
6. 갤로퍼 대장정
6.1. 고구려 대장정
7. 몰락
8. 부활과 향후 전망
9. 기타
9.1. 매체 출연
9.2. 모형화
10. 둘러보기
11. 관련 문서

'''HYUNDAI GALLOPER'''[2] / '''GALLOPER TCI'''[3] / '''ASIA GALLOPER'''[4] / '''MITSUBISHI GALLOPER'''[5]

1. 개요


'''품격과 기능이 조화된 다목적 승용차.'''

'''높은 안전도와 실용성의 조화.'''

'''승용감각의 본격 4륜 구동.'''

현대정공[6]현대자동차에서 1991년 9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생산했던 프레임 타입 4WD SUV. 구형 코란도와 함께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오프로드의 명장이다.[7]

2. 탄생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에 내려졌던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1987년에 해제되면서 당시 항공기, 철도 차량, 공작 기계 등 기계 산업 분야 주력하던 현대정공에서 '''기계 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자동차 제작 사업'''에도 진출을 시작하여 '''종합 기계 메이커'''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당시는 1988 서울 올림픽의 영향으로 3저(低) 호황(저 달러 저 금리 저 유가를 뜻함)을 누리며 국민 삶의 질도 향상되어 레저 붐이 일어나던 시기로, 4WD SUV 차량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어 4WD 모델을 중심으로 제작하는 사업을 계획했는데, 당시에 마침 같은 계열사인 현대자동차가 4WD 모델 제작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 없어 계열사 간의 사업 영역 충돌도 없던 덕에 왕회장이 현대정공의 4륜구동 사업 진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한 곳에 자동차 제작 사업을 집중하는 게 절차 상으로도 훨씬 간단하고 당시 현대그룹 차원에서도 효율성이 더 좋을텐데, '''왕회장이 굳이 현대정공에 자동차 제작 사업 일부를 별도로 신규 지원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1980년대 중후반 당시에는 현대자동차가 지금의 정몽구 회장 체제가 아닌 왕 회장의 동생이자 현대자동차의 초기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정세영 회장 체제가 굳건하던''' 시기였고[8] 정몽구와 정세영 일가와의 현대자동차 후계구도에 대한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하다.[9]
현대그룹의 창업주이자 당시 그룹 총수였던 왕회장 입장에서 본다면 사실상 장남[10]인 정몽구의 그룹 주요 사업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동안 고생해서 현대자동차의 창립과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한 친동생 정세영[11]을 의리없이 단칼에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현대자동차와 비슷한 계통으로 항공,[12] 철도차량,[13] 공작기계,[14] 자동차 부품[15] 등의 사업분야를 가진 기계산업 부문 종합 메이커였던 현대정공을 아들 정몽구에게 맡기고 있었고 때마침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해제된 덕분에 현대자동차가 아직 진출하지 않았던 4WD 및 SUV 자동차 제작사업을 일부러 현대정공 쪽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하여 친동생 정세영과의 직접적인 충돌이 없는 선에서 '''나름 현명하게 아들 정몽구에게 현대자동차 후계 구도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왕회장의 뜻에 힘입은 현대정공 사장 정몽구는 1989년 7월 4WD 고유모델 개발 추진을 결정한다. 프로젝트명은 "M-CAR." 마북리 연구소를 건립하고 현대자동차의 엔진과 국산화 부품을 활용해 고유모델 개발에 힘을 쏟아 4WD 모델 시제품을 개발하였고 미국 업체의 도움으로 미국 시장에서 성능 테스트를 해 보았지만 결과는 대 실패였다. 일반 승용차에 비해 차체 구조가 복잡하고 높은 강성과 품질이 요구되는 특성을 지녀 설계가 까다로웠고, 미국 시장의 소비자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데다가 이미 지프 등의 기라성 같은 메이커들이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라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정몽구 사장은 '''고유 모델 개발을 포기하고''', 대신에 신뢰성 있는 메이커 업체의 4WD 모델을 '''라이센스 생산하는''' 전략으로 급선회 한다. 고유모델 개발만 고집하다가 시장에 제대로 진출 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라이센스 모델 생산으로 완성차 시장 진출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고 신기술을 빨리 습득하여 배우면서 실력을 쌓자는 의미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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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차종의 검토를 거친 후에 최종적으로 '''미쓰비시 자동차의 유명 4WD 모델'''인 '''1세대 파제로'''[16]를 라이센스 생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파제로가 4WD 모델로서는 상당히 명성이 큰 것도 있었지만, 제작사인 미쓰비시 자동차가 이미 현대자동차와 다양한 분야에서 제휴를 맺어온 파트너였기에 협업도 쉬울 것이라는 점이 크게 고려되었다. 게다가 당시 1세대 파제로는 일본의 경제력향상에 따른 SUV붐을 타고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2세대 모델 개발에 착수하며 거듭나던 시점이었기에 미쓰비시 자동차 입장에서 구형이 된 1세대 파제로의 기술을 현대정공에 넘겨도 해가 될 일은 아니었다. 1989년 10월에 양사는 사업 추진 의향서를 교환하고, 1990년 3월에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한다.
1991년 9월 16일 갤로퍼 1호 차량을 생산하고 그 다음주인 25일에 외부에 최초로 공개하여 10월부터 출고가 시작되었다. 디젤 롱바디를 먼저 선보이고, 11월에는 자동변속기 모델, 12월에는 터보 디젤엔진 롱바디 모델이 출시되었다.[17]
1983년 당시의 갤로퍼 원형 모델인 미쓰비시 파제로 광고.
광고 속 BGM은 당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퓨전 재즈 밴드 카시오페아Misty Lady
1991년 출시 당시 광고. 참고로 성우는 격동 50년으로 유명한 김종성. 당시 홍보 영상(2분 45초)[18]
출시 당해인 1991년에 약 3개월 동안만 무려 3000 여 대 가까이 판매를 기록하며 쌍용자동차아시아자동차만 생산하던 4WD 시장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고 그 이듬해인 1992년에는 총 2만 4천여대가 판매되면서 '''국내 4WD 시장의 52%를 차지'''하며 순식간에 장악을 해 버렸다. 사실 당시 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는 자잘한 고장[19]과 크기/성능 등의 문제로 판매가 많지 않았고, 쌍용자동차의 코란도와 코란도 훼미리 역시 성능이 많이 떨어졌고 프랑스/일제/미제 엔진[20]과 변속기들을 섞어쓰던 막장상황이라 온갖 문제점을 노출하던 시절인데 비해, 갤로퍼의 경우 미쓰비시 자동차의 세계시장 최대 히트작인 파제로를 거의 재조립해서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차량의 성능이나 신뢰성 면에서 이미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21]
당시 4WD 차량과 대형 상용차[22]만 제작하던 쌍용자동차는 한때 회사가 존폐 위기까지 처하기도 하는 등 큰 타격을 받았다.[23] 하지만 독일의 고급 메이커인 메르세데스-벤츠와 합작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인 FJ 프로젝트[24]를 통해 2년 뒤인 1993년에 '''"93 이노베이션"'''[25]이라는 이름으로 '''4WD 신모델인 무쏘를 출시하여''' 회심의 일격을 제대로 날리며 그 동안의 4WD 모델 전문 제작사로서의 명성을 되찾아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26]

3. 모델 구분



3.1. 갤로퍼 (1991~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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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 전기형.
외형만 보면 파제로 모델에서 미쯔비시 글자를 현대로 바꾼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초기부터 인기몰이를 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완전 초기에 엑시드 모델은 원톤컬러가 아니라 도어하단부가 투톤 컬러로 처리되어 있었고, 창틀도 V6모델 처럼 흑색으로 칠해져있었다.
터보 엑시드 사양은 외관상으로 'TURBO WAGON' 로고[27]를 제외하면 기존의 엑시드 사양과 차이가 없었으나, V6 엔진의 슈퍼엑시드 사양은 와이드 바디킷과 날개형 그릴가드가 기본으로 적용이 되고 컬러는 은회색 바탕에 다크 블루[코드명DA]와 중회색[코드명MG]의 띠를 선택할 수 있었다.
91년도 출시 초기에는 스티어링휠도 스쿠프의 것이었고 수동변속레버도 짤막하게 줄여서 나왔지만, 92년도 부터는 스티어링도 그레이스나 포터의 것과 비슷한 것으로 교체되었고 수동 변속 레버도 파제로 처럼 다시 길어졌다[28].
가솔린은 3.0 외에도 2.4리터 120마력의 가솔린[29] 모델도 92년 8월에 출시한 적이 있지만, 판매량이 저조하여 조용히 삭제되었다.[30]
또한 수출형에는 2.6리터의 4G54 아스트론 가솔린[31]이나 하이루프에 V6모델[32]존재했다.
93년 경에는 수동식 라디오안테나와 4륜구동허브가 파워안테나와 아이신 허브로 변경되었고, 94년도에는 시트 형상이 중기형과 비슷한 것으로 바뀌었다[33].
D4BH 엔진을 얹은 인터쿨러 모델도 93년 하반기에 출시되었지만, 그 때 당시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인터쿨러라는 개념도 생소했는지라 선택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중기형으로 넘어오기 직전에 추가된 모델 이기에 생산기간도 짧았던지라 상당히 레어템이다.[34] 물론 후대모델에서는 당연 인터쿨러가 주력이 되었다. 여담으로 대부분의 차가 한국에서 흑색, 백색, 회색, 은색 같은 무채색 컬러가 주력인것과 달리 초기형 갤로퍼는 은근히 유채색 컬러(특히 군청색[코드명DA], 청록색[코드명OG])의 비율이 높고, 반대로 흑색과 백색은 남아있는 실물 사진 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상당히 레어템'''이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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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 중기형(판매 당시의 정식 명칭은 뉴 갤로퍼).
헤드램프와 그릴을 살짝 손 보고, 사이드미러를 플래그 타입으로 변경했는데, 여기까지는 여전히 파제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36]. 롱바디 모델에 후석 암레스트, 전동조절식 사이드미러, 휀더미러가 추가되었다.
외관은 기존 모델이 슈퍼엑시드 급에만 와이드 바디킷[37]을 적용했던것과 달리 터보 엑시드 이상 급에는 기본으로 적용하였으며, 플레어도 휠아치와 도어하단 가니쉬가 일체형으로 바뀌었다. 다만 휠과 3열창 레터링 형식은 완전히 그대로였고, 심지어 바디 데칼도 9인승 모델은 잠깐동안 초기형 꺼 그대로 붙어서 나왔다. 컬러가 꽤 다양했는데[38], 청색 계통만 무려 3가지가 존재했다. 코발트 블루에 가까운 청색, 조금 어두운 감청색[39], 초기형 부터 있던 군청색[코드명DA] 3가지이다. 특이하게도 초기형에서는 중회색과 청록색[코드명OG]이 꽤 있었는데, 중기형으로 오면서는 레어템이 되었다. 슈퍼엑시드의 투톤컬러의 띠 색깔은 청색 외에도 녹색이 존재했다. 근데 이게 하필이면 둘다 어두운 컬러라 길에서 마주친다 해도 청색과 구분이 쉽지 않기에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외관과 파워트레인은 거의 그대로 였지만 전장 계통은 완전히 갈아치웠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 실내가 도어트림 형상이나 파워윈도우 스위치 배치가 바뀌고 계기판도 케이블식이던 것이 전기신호식으로 바뀌었기 때문. 게다가 계기판 하단에 있던 안개등, 리어윈도우 열선 스위치를 센터페시아로 옮겼기 때문에 동일한 사양으로 비교시 초기형 보다 빈 버튼이 많아졌다. 리스토어 열풍을 타고 초기형 컨버전을 한 오너가 많은데 초기형과 실내 형상이 비슷해서 뚝딱하면 컨버전이 될거 같지만, 앞서 말하듯 전기 배선 쪽은 완전히 갈아치우다시피 했기 때문에 절대로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 외에 숏바디 밴과 롱바디 9인승 한정으로 2WD 모델이 존재했는데, 판매량이 아주 저조했는지 실차 사진이 남아있는것도 없다시피 하다.[40]
96년도에는 3열창 아래 레터링 위치가 살짝 조절되고, 앞범퍼 등화관제등이 사라지고, 언더커버가 더 추가 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갤로퍼2로 넘어오기 직전 쯤 스포츠팩을 출시하였는데, 그냥 터보디젤 숏바디를 외관만 살짝 바꾼거나 다름 없었기에 판매량이 상당히 저조했다.

3.2. 갤로퍼2 (1997~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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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형 전면
전기형 후면
1997년 3월 6일에 출시되었으며, 기존 갤로퍼보다 곡선이 군데군데 들어가서 비교적으로 날렵해 보이는 디자인이 특징. 하이루프의 경우 파제로 2세대 처럼 킥업루프 형태[41]가 되었고, 자세히 보면 A필러 위쪽 모서리 부위도 곡선이 조금 더 들어간 형상으로 변경되었다.[42]
범퍼와 가니쉬 형상은 파제로 2세대 내지는 랜드크루저 프라도 90형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며, 헤드램프 워셔가 추가되었다.
이때 현대정공을 뜻하는 찌그러진 H자가 쓰이게 된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97년도 처음 나왔을 때는 구형 모델과 마찬가지로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날개형 그릴가드가 적용되었다. 5인승 승용 모델에는 리어스포일러가 적용되었는데, 5인승 승용이 그닥 많이 팔리지 않은지라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기존 모델은 STD나 슈퍼엑시드를 제외한 전 모델에 사이드 데칼이 적용되었던 것과 달리 와이드 모델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1998년식 부터는 아이신 자동허브와 파워안테나가 국산 허브[43]와 내장형 안테나[44]로 바뀌었는데, 둘다 작동성과 신뢰성이 똥망인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 때부터 하이루프 9인승과 밴 한정으로 V6 LPG 모델을 판매했는데, 비록 휘발유 엔진을 마개조한지라 출력은 떨어졌지만, 정숙성이나 성능에서 디젤보다 우위에 있고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저렴한 연료비를 장점으로 내세워서 그런지 디젤 만큼의 주력은 아닐 지언정, 적잖이 팔렸다. 그리고 실제 오너가 배출가스 등급을 조회해본 결과 3등급으로 판정되었는데, 노후차량에 대한 불이익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재조명되고 있다.
여담으로 '''역대 국산 LPG 차량 중 유일한 4WD SUV'''이다. 물론 갤로퍼 이후로 나온 SUV 모델[45]에도 LPG 모델이 있기는 했지만, 그나마도 소수에다가 모두 2륜구동이었다. 물론 LPG 규제가 풀림으로서 제조사들이 SUV에 LPG 모델을 추가할 가능성은 있으나, 4WD를 지원할 지는 미지수이다. 실제로 QM6 2.0 LPG는 전륜구동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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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형 전면
후기형 후면
2000년 5월 22일에 출시한 후기형에서는 아예 현대자동차 로고를 대놓고 장착하였으며[46], 판매량이 상당히 저조했던 V6 가솔린 모델과 숏바디 5인승이 단종되었다.[47][48] V6 LPG 모델은 7인승 미드루프가 추가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9인승은 단종된다.
슈퍼엑시드 한정으로 운전석 에어백[49], 가죽시트, CDP가 적용되었으며, 컬러도 베이지색[50] 컬러와 국방색 조합으로 변경되었다. 외판 부품은 기존 갤로퍼2와 완전히 같지만 휀더 미러가 깃발 모양에서 'L'자형의 이중곡면미러로 변경되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은색 컬러도 기존 모델 보다 조금 더 어두워졌으며, 와이드 휀더의 색상도 어두운 회색으로 변경되었다.
기존의 내장형 안테나가 수신 감도가 영 좋지 않다는 평가를 인식했는지 다시 펜더의 파워 안테나로 회귀하였으며, 2002년~2003년 끝물에는 리어범퍼 스텝을 좀더 확장하고 엑시드 모델은 스페어타이어 커버를 원톤으로 바꾸고 밴모델은 창유리의 형태를 바꾸는 등의 소소한 변화도 있었다.
단종 직전 숏바디 버전을 기반으로 뒤쪽을 짐칸을 적재함으로 바꾼 픽업 모델도 출시하려고 했었는데, 현대자동차가 특장업체에 위탁하여 갤로퍼 숏바디 밴을 개조해서 만들었으며# 건설교통부의 형식승인 까지도 다 받았으나, 비슷한 시기에 출시 예정인 무쏘 스포츠와 비교했을시 완성도도 떨어지고, 2인승 픽업트럭이라서 제품 자체의 경쟁력도 무쏘 스포츠에 비하면 열세라고 판단하면서 소수의 프로토타입만 만들어져서 시중에 흘러나갔고 정식으로 출시하려던 계획을 포기하였다. ##1
제주에서는 영운기로도 사용하는 모양.#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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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후반 현대정공은 갤로퍼의 시장 경쟁력 약화를 예측하고[51] 갤로퍼 후속작 'HP'의 개발에 착수하였으나, 1999년 결국은 기존의 갤로퍼도 존치하여 'QA-5'라는 코드명의 마이너체인지 모델을 계획하였고, 그 당시 자동차생활 기사에 따르면 SUT 버전도 출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때는 현대 내부 분위기가 영 어수선했던지라 본래 갤로퍼 후속으로 개발했던 HP도 출시가 계속 지연되다가 2001년에서야 겨우 빛을 보았고, QA-5 프로젝트는 소리소문없이 묻히고 결국 갤로퍼2의 디자인을 계속 사용하다가 2003년 단종을 맞이하게 된다.
특이사항이라면 그릴과 앞범퍼가 일체형인 것과 원형의 안개등이 있는데, 이러한 디자인은 향후 싼타페 CM에서 빛을 보게 된다.

4. 파생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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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바디 모델. 어떻게 꾸며도 짜리몽땅해서 오프로드계의 귀요미로도 불린다(...)

과거에 포르쉐를 발라버리는 연출을 했던 어느 소형차 광고 이후 촬영된 대담한 광고다. 4발 제트기인 BAe 146을 앞질러버리는 내용. 물론 활주로에서만 앞질렀을 뿐이었다(...) 원래부터 람보르기니 레벤톤이나 닷지 바이퍼 수준이 아니고선 자동차는 비행기 앞지르기가 어렵다.
갤로퍼는 기존 4WD 차량의 투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고급화된 이미지를 통해 기존 SUV 차량의 총 판매량을 늘리는데 기여하지만 곧이어 강력한 경쟁자인 1993년 7월 기아자동차에서 스포티지를 출시하고 같은 해 8월 쌍용자동차에서는 무쏘를 출시하며 위기를 맞는다. 이에 방어 전략을 취하고자 현대정공에서는 1994년 뉴 갤로퍼로 페이스리프트를 하고 인터쿨러를 주력으로 내세웠는데, 방어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어가, 무려 9년동안이나 4륜구동 R/V 판매량 1위를 유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전성기 시절의 갤로퍼의 라인업은 무려 40개 가까이 되는데, 이는 무쏘와 스포티지, 레토나와 코란도의 라인업을 전부 합쳐도 갤로퍼가 더 많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현대정공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4륜 구동 차량 제작 사업 부문을 현대자동차에 넘겨주게 되고 철도 차량 제작 사업 부문은 로템으로 이관시켜 자동차 전장 부품 전문 기업체인 오늘날의 현대모비스로 탈바꿈하게 되며, 1999년부터는 갤로퍼 라인업 제작을 현대자동차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같은 해에는 판매권자였던 현대자동차써비스도 합병하였다.

갤로퍼 2 시기부터는 세제 혜택의 변동[52]에 따라 승합차로 분류되기 위해 7인승, 9인승, 밴(화물차) 등 다양한 라인업이 등장했으며, 숏바디 모델인 갤로퍼2 이노베이션 모델도 출시된다. 가솔린 모델과 같은 G6AT(3.0 SOHC) 엔진에 연료만 LPG를 사용하는 모델도 출시되었다.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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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2 숏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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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 이노베이션
허나 사실 이건 미쓰비시에서 나온 파제로 스페셜 모델인 파제로 에볼루션과 판박이.[54] 그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엔진/미션/서스펜션을 모두 파제로와 별개일 정도로 특별하게 꾸민 파제로 에볼루션과는 달리 갤로퍼 이노베이션은 외부디자인을 제외한 내부는 기존 갤로퍼 2와 다를 것이 없었다. 게다가 튼튼해 보이면서 우직한 외형과는 달리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찌그러지는 깡통이었으니...[55]

5.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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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는 출시되자마자 '''현대 브랜드'''를 앞세우는 마케팅으로 국내 4WD 시장에 정면 승부했다. 분명 현대정공에서 제작한 모델이지만 이니셜도 '''HYUNDAI'''라고 표기해서 소비자의 눈에는 현대자동차의 모델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56][57] 그나마 갤로퍼 2에서도 현대정공을 의미하는 찌그러진 형태의 ‘H’엠블럼이 유일한 차이였을 뿐일 정도였다. 덕분에 자동차 제작 신생 업체 이미지를 상당부를 가리는 동시에 현대자동차의 명성을 등에 업고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된다. 그래서인지 갤로퍼의 초창기 CF를 보면 현대정공이라는 제작사 이름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그 대신 '''현대'''라는 두리뭉실한 명칭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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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 초기형 모델의 계기판 및 센터페시아.
차량의 외관이나 엔진은 파제로를 그대로 들여왔는데, 이는 당시 경쟁 모델에 비해 디자인이나 엔진 성능면에서 차별화 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마케팅도 적극적이었기에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했던 것으로 보인다.[58] 사실 갤로퍼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엔 SUV 차량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출시 당시의 엔진은 형식명 4D56인 디젤 4기통 2,476cc에 73마력으로 당시로서는 굉장한 것이었다. 이후 터보차저를 얹어 출력을 81마력으로 올리기도 했으며, 터보차저에다가 인터쿨러를 얹어 101마력까지 끌어올렸다. 또한,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던 그랜저의 V6 3000 모델에 탑재되던 형식명 6G72SOHC V형 6기통 2,972cc의 가솔린 모델도 있었는데, 그 당시 신차 가격이 2,000만원에 육박했다.[59] 연비는 6.9k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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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의 장점은 제원상 겨우 100마력 언저리의 출력임에도 불구하고 기어비를 높게 설정해놓은지라 낮은 RPM에서 최대 토크가 나오기 때문에 "힘이 좋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실제로 거지같은 엔진출력을 감안하면 오르막길도 의외로 잘 치고 올라간다. 게다가 넓은 휠하우스는 개조 없이도 31인치 타이어까지 무난하게 장착할 수 있으며, 최저 지상고도 높아 비포장길의 주파성이 우수하였다. 특히 출시 초창기 당시에 '''갤로퍼 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정공 측에서 7만km 가량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 이벤트[60]를 두 번 씩이나 펼치는 등 갤로퍼의 내구성에 대한 마케팅적 노력도 상당했다.
하지만 '''엔진의 실제 내구성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엔진 자체가 미쓰비시에서 도입한 것이기에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오리지널인 미쓰비시 '''파제로의 경우 주력은 디젤이 아니라 휘발유 엔진'''이었고 디젤엔진 역시 배기량과 설계를 바꿔가며 계속 수정해 나갔었는데(갤로퍼 출시 당시인 2세대 파제로 출시 즈음에는 다른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다.), 현대는 이 초창기에 도입한 2500cc 엔진을 배기량 한번 바꾸지 않고 주구장창 수 십 년 동안 사용했다. 포터와도 장기간 공유, 특히 D4BA, D4BF, D4BH엔진... 그나마도 포터와 그레이스는 중간에 D4BB엔진으로 배기량을 올리는 소소한 개량을 거쳤으나 갤로퍼는 그것도 아니었다. 계속 D4BA, D4BF만을 사용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스타렉스, 리베로 그리고 포터2, 봉고3, 테라칸에까지 얹는 그 D4BH(TCI)엔진을 사용함으로써 테라칸은 렉스턴에 처절하게 밟히는 바람에 결국 기아의 2900cc J3엔진으로 바꿨지만... 그래서인지 중저속에서의 가속력은 좋았으나 시속 140km로 4~5시간 달리는 건 매우 큰 부담이었으며, 괜히 엔진 출력 올려보겠다고 튜닝을 했다가는 엔진이 버티질 못하였다...[61] 경쟁 모델인 무쏘가 88만km를 무보링 상태로 달리는 기염[62]을 토한 반면 갤로퍼의 엔진은 대략 20만km 정도면 엔진 보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실제 갤로퍼 매니아들도 엔진을 튜닝하는 것은 자제하는 편이었다.
다만, 이는 파제로 디젤모델의 판매지역의 특성을 생각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일본은 80년대 당시 제한속도가 제일 빨라봐야 '''시속 80km 이하'''였고[63] 디젤을 주력으로 수출했던 유럽 지역 역시 '''아우토반''' 같은 곳이 아닌 이상 제한속도가 대체로 한국 도로보다 낮게 설정되어 있기에[64][65] 굳이 고속주행을 고려해서 설계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게다가 높은 기어비 셋팅도 내구성 저하의 원인이 되는것이, 기어비가 높으면 저속이나 오르막 출발에서의 견인력 향상에는 유리하지만 고속영역에서 엔진의 회전수가 증가하는 만큼 엔진의 마모가 더 빨리 진행되는 것이다.
파제로가 일본의 좌측 통행 기준으로 설계 및 디자인 된 차량이라, 갤로퍼 역시 이 파제로의 설계를 그대로 적용하여 후방 '''트렁크 문 역시 좌측에서 열도록''' 되는 바람에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여간 불편하고 위험한 게 아니었다.[66][67]다만, 이는 '''원래 모델인 미쓰비시 파제로의 우측 통행 국가 전용 수출 모델에도 똑같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68]이기에 현대자동차 측에서 성의가 없어 수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원래 모델 제조사이자 당시 현대의 자동차 기술의 근간이자 현대자동차의 대주주로 경영에도 참여했던 미쓰비시 자동차의 입김 때문에[69] 국내 사정에 맞게 설계 수정을 하고 싶어도 못했다 보는 것이 맞다. 나중에 미쓰비시 자동차의 입김이 줄어들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 출시된 후속 라인업 테라칸에는 현대자동차가 아예 뒷문을 해치 게이트로 변경해 버렸으니까(...). 결국 이 트렁크 문짝 설계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쓰비시의 파제로 후미 디자인에 대한 고집에서 비롯된''' 것이며,[70] 갤로퍼 개발 당시 현대는 '''자동차 분야에서 미쓰비시의 손에 놀아나던 상황이었기에''' 미쓰비시의 요구에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 [71]
앞서 서술했듯이 대부분 컬러가 날씨나 보는 각도에 따라서 색이 다르게 보이는데, 도료만큼은 비싼 것을 쓴 것으로 보인다. 크게 페이스리프트 된 것은 고작 두 번이지만, 그 중간에도 자주자주 개선이 이루어져 특히 구형은 같은 연식이라도 외형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경우가 존재한다. 자세한것은 상기 문단 참조.
편의장비가 상당히 부실하기는 하지만 의외로 냉난방 시스템은 진보했던 것이 롱바디 미드루프 모델 한정으로 1열석과 2열석이 분리된 냉방장치를 옵션으로 제공하였다[72]. 센터콘솔 뒷면에 스위치가 있어 2열석에서 조절이 가능하며 루프의 에어벤트에서 바람이 나오는 구조였다. 승합차에는 왠만하면 옵션으로 제공했지만, 승용 SUV에 적용된 것은 국내 최초의 사례이며, 비슷한 시기에 경쟁차종들이나 자사의 플래그쉽 세단인 그랜저[73], 후속작으로 개발된 테라칸에도 없었던 장비이다. 활용도는 좋은 편이긴 하나, 관리가 까다로운게 큰 결점이다. 에어컨 가스 충전비용이 싱글에어컨 차량보다 비싼데다가 갤로퍼는 물론이고 1세대 파제로에서 조차도 이 듀얼에어컨이 적용된 개체가 상당히 소수이기 때문에 관련 부속을 구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왠만한 부품들은 초기형 것도 아직 대부분이 쉽사리 수급 가능한것과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게다가 에바포레이터가 3열에 위치하기 때문에[74] 청결하게 쓰려면 트렁크 바닥도 깨끗하게 유지해야한다.
여담으로 차량 크기로만 따진다면 롱바디도 와이드휀더가 없는 모델은 '''소형차'''에 해당한다[75]. 그래서인지 초보운전자라도 어지간한 주차장에는 무리없이 주차할 수 있으며, 최신 기준으로 설계된 주차장에 주차할 경우 양옆에 공간이 많이 남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SUV/RV 차들이 커지면서 주차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생각보다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80년대의 차라 요즘 성인들 체구에는 실내 공간이 좁게 느껴질 수는 있으나, 그나마 박스형 차체 덕분에 실내 공간 활용도는 의외로 좋은 편이다.[76]. 2열 시트는 180°리클라이닝과 슬라이딩, 폴딩을 모두 지원하기에 2열과 3열을 접으면 자전거 두 대도 접지 않고 탑재가 가능하며, 성인 두 명이 누워서 잘 공간이 나온다[77]. 3열시트도 의외로 나쁘지 않은 것이 모하비나 베라크루즈, 렉스턴 같은 대형 SUV에 비하면 당연히 좁지만, 박스형 차체 덕분에 뒤쪽 헤드룸이 여유가 있으며[78] 3열을 펴도 화물적재공간이 그리 좁지 않다.
1세대 스타렉스 4WD 모델은 갤로퍼의 차대를 이용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그냥 2WD 모델과 마찬가지로 빌트인 프레임 형식의 모노코크바디이다.

6. 갤로퍼 대장정


1992년 갤로퍼 출시 1주년을 맞이하여 방영하였던 광고로, 세계 여행가로 유명한 김찬삼 세종대 명예교수가 실제로 갤로퍼 자동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질주'''하는 형식의 광고였다. 그 당시 김찬삼 교수는 6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88일간의 대장정을 완수했으며, 그 여정에 따라 총 5편으로 나뉘어 방영하였다. 부제는 '''가자, 해를 따라 서쪽으로'''.
1편~2편~3편 보러가기 / 4편~5편 보러가기
  • 1편 : 네팔 카트만두 - 인도 북부 (나레이션 : 성우 김종성)
  • 2편 : 파키스탄 서부 - 이란 사막지대 (나레이션 : 성우 김종성)
  • 3편 : 북유럽 노드캅[79] 설원지대 (나레이션 : 성우 엄주환)
  • 4편 : 유럽 네덜란드 - 프랑스 등 (나레이션 : 성우 엄주환)
  • 5편 : 갤로퍼 유라시아 대장정 완결편 (나레이션 : 성우 엄주환)

6.1. 고구려 대장정


1994년 유라시아 대장정에 이어 방영되었던 갤로퍼 2번째 대장정 광고. 이번에는 고구려를 소재로 해서 중국 북부 고구려 지대 지역을 질주하는 형식의 광고였다. 총 5편으로 나뉘어 방영하였다. 부제는 '''가자! 고구려'''이며 나레이션 성우는 김종성, 지휘는 최일범 성균관대 유학대학 교수가 각각 맡았다.
1,2,3,4,5편 전체 보러가기
  • 1편 : 인(人)(광개토대왕 편)
  • 2편 : 야(野)(만주 벌판 편)
  • 3편 : 강(江)
  • 4편 : 산(山)(백두산 편)
  • 5편 : 성(城)(국내성 편, 완결)

7. 몰락


1991년부터 1999년까지 갤로퍼는 4WD 차량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기록할 정도로 효자 상품이었으나,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며 점차 고급화된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
사실 갤로퍼가 4WD 차량을 고급화한 선두 주자임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기는 하지만, 10년 넘게 비슷한 차종들로만 구성된 SUV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염증을 느낄 때 즈음에 참신하고 세련된 차세대 차종인 테라칸과 렉스턴, 쏘렌토 등의 신모델 출시와 더불어, 2000년대 들어서는 이제 소비자들도 4WD 차량을 더 이상 특수차량으로 인식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빈약한 편의 시설, 조잡한 오디오 등으로 갤로퍼는 더 이상 '고급'의 이미지를 갖지 못하게 된다. 또한 기술의 점진적인 발전에 따른 CRDi 엔진의 보급이라는 치명타를 맞게 됨으로써 갤로퍼는 점차 도태된다.
게다가 2000년부터 환경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강화되어 구형 디젤 엔진은 더 이상 환경부의 규제를 충족할 수 없었기에, 갤로퍼는 2003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갤로퍼의 뒤는 테라칸이 잇게 되었지만 갤로퍼보다 못한 험로주파 성능과, 쌍용 렉스턴, 기아 쏘렌토보다 못한 디자인으로 판매부진을 격다 결국 2007년에 단종되었다 하지만 테라칸도 요즘 갤로퍼의 대체제라는 이유로 조금씩 부활하고 있다.
그나마 테라칸의 대체 모델으로 베라크루즈 - 팰리세이드가 나름 선방하고 있는 형편인데, 둘 다 프레임 타입이 아니고 오프로드와는 담을 쌓은 전륜구동 기반의 차종들이라 무쏘와 함께 갤로퍼는 아직도 현역이다. 렉스턴과 쏘렌토를 쓰기에는 이 둘은 전고가 낮고, 모하비는 오프로드 뛰기에는 좀 비싸고, 수동변속기 모델이 없어서...
기본 설계가 무려 1980년대 초에 이루어진 차종인 만큼 더 이상 존치시키기는 어려웠겠지만, 단종된 이유가 판매량이 저조한 것보다 환경 기준을 맞추지 못한게 크다고 볼 수 있다. 상술했듯 후속작이 한참 개발되는 와중에도 마이너체인지로 QA-5 프로젝트까지 진행했고[80], '''그 1980년대 디젤엔진'''을 테라칸에 까지 얹었던 걸 보면 갤로퍼도 계속해서 존치하려는 의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81][82] 그냥 시기상 현대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한 데다가, 갤로퍼보다 사이즈가 작은 1세대 싼타페가 예상 외로 너무 성공해 버린지라 그쪽으로 관심이 쏠려서 뒷전이 됐을 뿐...

8. 부활과 향후 전망


2010년대를 전후로 몰아치는 오토캠핑 바람으로 인해 갤로퍼 롱보디의 가치가 재조명되었다. 3열 시트만 걷어 치우더라도 넓은 적재 공간이 나오며[83], 3열 바닥을 높이고 2열 시트를 앞으로 접은 후 매트를 깔면 성인 두명이 누워서 잘 수 있어 복잡하게 텐트를 펴지 않아도 차내에서 간단한 캠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프레임 바디에 4륜구동이라 남이섬 등 험한 지형을 주파하여 캠핑 사이트에 접근해야하는 경우 적절한 오프로드 주행도 가능하다. 더욱이 생산된 양이 엄청났던 만큼 중고차 값도 싸다. 비교적 매커니즘이 복잡하지 않고, 많이 퍼진 차라 시골 카센터에서도 어렵지 않게 수리가 가능한데다 수리 부속 역시 모비스를 통해 비교적 싼 값에 풍부히 공급되고 있어 유지 보수도 쉽다.
이러한 특징들에 포인트를 둔 특정 인물이 갤로퍼를 세미 오프로드 및 캠핑용으로 개조하는 과정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단종되어가던 갤로퍼 관련 오프로드 아이템[84]이 다시 재생산될 정도로 갤로퍼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었다. 심지어 상태 좋은 중고차량의 경우 중고시세가 다시 오르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2010년대 이래 리스토어 열풍이 불면서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차종"이다. 당장 네이버에서 '리스토어'를 검색하면 상위 항목에 갤로퍼 내지 레토나가 나온다. 당시 생산됐던 국산 차량들 중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중고차가 많이 남은데다가, 오래된 차종 중 가장 부품을 수급하기에도 좋고, 지금 봐도 멋진 디자인[85]이 인기 요인으로 보인다. 모노코크 타입보다 내구성이 좋고[86] 복구하기도 유리한 프레임 차종[87]이라는 것도 한 몫 했다. 최근에는 모헤닉게라지스라는 법인회사가 주도적으로 리스토어를 하고있는데, 해당 업체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다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유행으로 인해 재료가 되는 중고차의 가격이 오르고 품이 더 희귀해지고 리스토어된 차량들[88]이 매물로 나오면서 시세가 또 오르는 현재의 양상은 유행에 의해 지나치게 과열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이 차를 업어와서 리스토어나 커스텀할 금액(일반적으로 약 1500~2000만원)이면 랭글러를 사라고 하는데, 문제는 그 돈으로 랭글러 '''택도 없다'''. 대체할 만한 차종이 없다시피하니 중고가 방어가 너무 잘돼서[89] 10년 넘은 차도 구입예산이 거진 2천은 깨진다. 부품의 경우 순정품도 가격이 만만치 않으며, 애프터마켓용품도 몇개 안 사도 중고 갤로퍼 값은 가뿐하게 깨진다. 게다가 지프의 품질관리, 부품값과 AS 정책의 엄청난 악명은...
물론 4륜구동의 대선배격 브랜드라는 네임밸류도 있는데다 험지주파력도 더 낫고[90] 비교적 젊은 차라는 이점이 있어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투자할 가치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갤로퍼도 위의 문단에서 여러 번 설명했듯이 나름 유명 차종을 라이센스 생산한 모델이고 부품 수급사정도 여전히 나쁘지 않으니, 무엇을 선택하든 결국 오로지 본인의 몫일 뿐이다.
테라칸, 스타렉스, 포터, 봉고, 뉴 코란도, 무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션바를 채택했다. 원가는 저렴하나, 녹이 슬고 부식되거나 강한 힘에 버티지 못하여 부러져 주저않는다. 이것 때문에 렉스턴, 쏘렌토, 그랜드 스타렉스는 코일스프링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포터와 봉고는 원가절감을 이유로 토션바를 채택했다.
배출가스 등급제 시행으로 인한 대표적인 희생양 중 하나인데, 그나마 현재까지의 정책으로 미루어 봤을 때 주말이나 휴일에 오프로드 내지 캠핑 갈 목적으로 운용한다면 사실상 제약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나[91], 출퇴근용 내지 일상용으로 운용할 계획이라면 분명히 재고해야할 필요가 있다[92].
다만 규제를 피할 방법은 없지는 않은게, 순정 LPG 모델은 배출가스등급이 3등급으로 산정되는 만큼 당분간은 규제에 골머리 썩을 일이 없을 것이고[93], 디젤모델도 제2종 pDPF(일명 파샬장치)나 제3종 저감장치(DOC)[94]가 유통되던 시절에 장착한 차량도 존재한다. 타사 동급 차종들의 경우는 규제를 피할 방법이 가솔린 모델 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감수해야할 부분이 많고[95], 저공해조치 개조(저감장치 장착, LPG개조)를 시행한 적 조차 없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9. 기타


  • 갤로퍼는 울릉도에도 오래 전 택시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강원도의 일부 산간 오지 마을에도 택시로 운행하였다. 그 쪽은 지형상 택시로 흔히 쓰이는 세단 승용차는 택시로는 눈이 많이 오고, 경사가 많고, LPG 충전소가 없어서 디젤 SUV를 택시로 쓰게 된다. 1990년대 울릉도 택시 주요 차종이기도 한다. [96]
  • 차고가 상당히 높고 시트포지션 또한 높아 운전석에 앉으면 보닛이 훤히 내려다보일 정도이다. 처음 타보는 사람은 당황할 정도.
[97]
  •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2집 수록곡 중 이 차를 소재로 한 <갤로퍼> 라는 노래가 있다. 비록 여러 모로 불편한 차지만 갤로퍼를 타고 대자연으로 떠나고 싶다는 내용의 노래.
  • 갤로퍼 2는 대형 상용차를 제외하면 마지막으로 자동변속기 차량에 'Automatic' 표기를 붙였던 차량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자동변속기 자체가 비중이 적은 고급옵션이라 이런 표기를 한 차량이 많았지만 자동변속기가 대중화되면서 무의미해져 갤로퍼 2를 마지막으로 자동변속기 차량이라고 별도로 옵션처럼 표기하는 일은 없어졌다.
  • 2018년 말에 가나 정부가 관용차로 운용하려고 구입했던 00년식 갤로퍼 86대가 18년 동안이나 방치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구입하고 얼마 안 가서 정권이 바뀌며 반부패정책 일환으로 관용차를 몰수해버리는 바람에 1년남짓 운행하다가 잉여가 된 채로 있었던 것. 자세한 속 사정은 알 수가 없으나, 가격이 만만치 않은 외제차[98][99]를 관용차로 굴린다는것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100][101]
  •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왕회장의 갤로퍼 사랑이 각별해서 왕회장이 운영하는 충남 서산 농장에서 갤로퍼를 개인 차량으로 공수해 와서 직접 운전하고 다녔을 정도다.[102] 왕회장의 서산 농장 자가용은 갤로퍼의 초기 모델은 아니고 1994년에 페이스리프트 된 뉴 갤로퍼 모델로, 서산 농장 숙소에는 왕회장이 타고 다니던 갤로퍼가 아직까지 있다고 한다. 왕회장 서산 숙소 광경
  • 북한군이 휴전선 인근 지역에서 갤로퍼를 군용 지프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귀순한 북한 군인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는 갤로퍼나 테라칸 같은 국산차들이 여럿 있다고 하며, 본인도 그런 차들을 많이 몰아봤다고 한다. 현대가 북한에 차를 공식적으로 판매한 이력이 없어서 어떻게 넘어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북지원 사업이 크게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크게 이상할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들도 중국에서 밀반입 했거나, 개성공단에서 타던 차들이 넘어갔거나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103]. 비록 공식적으로 부품을 공급 받을 루트는 없지만, 갤로퍼는 차의 구조도 단순하고 미쓰비시 부품이 지구상에 많이 돌아다니기에[104] 어렵지 않게 수리해서 쓰는걸로 보인다.
  • 쌍용차들 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갤로퍼도 엔진스왑이 의외로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가장 많은게 테라칸의 2.9리터 J형엔진3.5리터 시그마 엔진[105]이고, 2.5리터 A형엔진[106], 2.7리터 XDi 엔진, 2.0리터 세타 엔진[107], 그리고 심지어 GM의 6.2리터 LS계 엔진을 올린 차도 있다. 다만 갤로퍼의 엔진룸은 대략 3리터 급 V6 까지 대응이 가능하기에 스왑이 되는 엔진이 한정적이다[108].
  • 순정사양으로 전면에 철제 캥거루 범퍼가 장착 됐었는데, 갤로퍼가 한참 현역이던 2000년대 초반에 안전규정이 강화되면서 불법자체는 아니긴 하지만 정기검사를 받으러가면 왠만하면 제거하라고 권고했었다.[109]
  • 후기형 모델의 경우 디자인이 테라칸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애초에 테라칸이 갤로퍼의 후속 모델로서 90년대 후반에 출시될 예정이었는데다가, 갤로퍼2가 출시될 즈음에 이미 프로토타입이 제작됬던 것을 감안하면 본래 계획상 갤로퍼2는 풀체인지를 하기 전 후속모델의 디자인을 맛보기로 적용시킨 과도기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110]. 다만 후속모델의 출시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니 갤로퍼를 더 오랫동안 생산할 수 밖에 없었던 것.
  • 앞서 언급 했듯이 디젤의 경우 배출가스 5등급인데다가 저감장치 장착이 불가능하여 생명을 연장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1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정 차도 상태가 나쁘지 않으면 여전히 매물 가격이 3~4백만원을 상회할 정도로, 오히려 여타 5등급 차종들 대비 중고 시세가 높은 편에 속한다. 물론 배출가스 등급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전반적으로 떨어지긴 했으나, 그래도 여전히 리스토어가 유행하기 전 보다는 높다. 이는 신차로 마땅히 대체할 차종이 없는 것과 더불어, 녹색교통지역을 제외하면 주말이나 공휴일은 단속을 시행하지 않기 때문에 수집용으로 보유하거나 휴일에 캠핑용도의 세컨카로 사용하기에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5등급 차량들은 업무 내지 생계형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애로사항이 꽃피고, 저감장치를 장착하려고 해도 신청후 실제 장착 까지 적지 않은 기간이 소요되는데다가[112] 모노코크보디 차량들은 장치가 하부로 심하게 돌출되는 맹점 까지 있어 조기폐차를 택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과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9.1. 매체 출연


전설속으로 사라지는듯 싶었으나, 최근에 은근히 매체로 출연하는 빈도가 늘었다.
  • 강철비: 북한 공작원의 차량으로 등장하였다. 상술한 내용을 감안하면 나름 현실 고증이다.
  • 끝까지 간다: 박창민의 차량으로 갤로퍼2가 출연하였으나[113], 폭발하면서 강으로 추락해 가라앉아 버린다.
  • 성난황소: 남색의 갤로퍼 2 터보 엑시드 모델이 강동철의 차량으로 나오나, 정작 최후반부의 카체이싱 신에서는 검정색 1기형 렉스턴을 사용한다.[스포일러]
  • 송곳에서 구고신의 차량으로 롱바디가 나온다.[114]
  •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에서 납치범들이 은탁을 납치할때 사용한 차량으로 등장하나[115], 은탁을 구하러 온 에 의해 반으로 갈라져버린다.
  • 이끼에서 주인공 류해국이 타고 다니는 차량으로 나온다. 웹툰에서는 1세대 구형 모델이고 영화판에서는 2003년형 갤로퍼2가 나온다.
  •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주인공 김병수의 차가 동그란 헤드라이트를 달은 초기형 갤로퍼를 타고나온다.
  • 탐정: 리턴즈: 강대만노태수의 차량으로 나오는데, 눈은 초기형이지만 실내를 보아 중반기형임을 알 수 있다[116].
  • 봄날은 간다에서 주인공 유지태의 차량으로 나온다. 정확히는 94년형 중반기형 모델이다. 사각 헤드라이트 모델.

9.2. 모형화


한 때 선방했던 차종인 만큼 여러 모형사에서 모형제품을 내놓았는데, 제작사로는 크로바미니카, 창명미니카(CM), 세창기업, 인터토이, 베스트완구, 티에스트레이딩, 미카월드, 샘실업 등이 있다. 물론 워낙 실차자체가 오래된 차종인 만큼 죄다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다. 그나마 파제로 1세대 모델이 간혹 유명 해외직구 사이트에 상품이 올라오긴 하는데, 만만찮은 배송비를 부담해야한다는것이 함정
초기형 롱바디 디젤엑시드모델에 와이드휀더를 부착한 형태로서 후면 스페어타이어가 위로 많이 꺾여있고 자가용버전 외에도 고속도로 순찰차긴급출동봉사차[117], 한국통신공사차 등의 바리에이션이 존재했다. 차체 비율이나 디테일 면에서는 타사 모형에 비해 퀄리티가 우수하지만, 휀더 아치 모양이 사다리꼴이 아니라 파제로 2세대모델이나 갤로퍼2 처럼 상당히 굴곡진 것은 옥에티라고 볼 수 있다. 미쓰비시 자동차 수집품에 대한 정보를 모은 사이트에 따르면 동일한 금형으로 된 파제로 모형이 존재하는데, 아무래도 크로바가 그 금형을 사들여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중기형 숏바디 인터쿨러 엑시드인데, 희한하게도 와이드 가니쉬는 초기형꺼로 붙어있다[118]. 앞범퍼의 등화관제등을 재현한것이 특징으로, 그나마 제일 오랫동안 쉽사리 구할 수 있었다.
초기형 롱바디에 와이드 휀더를 붙여놓은 형태인건 크로바제품과 유사하지만, 3열창 아랫부분에 'V6 WAGON'이라고 표기가 되어있고, 차체 비율도 3열창 부분이 짤막해 보이는게 특징이다. 인터토이 제품은 세창제품의 금형을 토대로 해서 사파리월드 투어차량으로 개량한 버전에 불과하다.
포장박스에는 갤로퍼라고 표기되어있으나 사실은 갤로퍼의 이복형제뻘인 미쓰비시 파제로 2세대 숏바디 모델이다. 외형은 전면에는 갤로퍼2의 A형 범퍼가드가 달려있으며 컬러는 갤로퍼2 슈퍼엑시드와 유사한 2톤3웨이 컬러이다[119]. 또한 휠이 SUV차량보다는 세단에 가까운 형태이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백도어와 선루프도 개폐 가능하다는것. 다만 타사 모형에 비해서 잘 망가지므로 완구로서는 부적절한 수준.
베스트완구 제품과 마찬가지로 포장박스에는 갤로퍼라고 표기돼있지만, 내용물은 갤로퍼가 아니다. 토요타 랜드크루저 프라도 90시리즈 롱바디형이다. 물론 프라도가 파제로를 견제할 목적으로 출시한 모델인 만큼 갤로퍼와 비슷하게 생기긴 했다.
이건 심지어 갤로퍼와는 디자인이 많이 다르게 진화해버린 파제로 3세대 모델이다.
  • 샘실업(스케일 불명)
위의 제품들이 다이캐스트 미니카형인것과 달리 사이즈가 큰 플라스틱 재질이며, 스케일은 대강 1:10~1:12 정도로 추정된다. 자가용차량, 순찰차.[120] 소방지휘차, 방송국차 버전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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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관련 문서



[1] 현대정공도 포함한다. 물론 굳이 현대정공 시절을 빼더라도 00년도 하반기 쯤에 현대자동차로 넘어왔기 때문에 잠깐이지만 '현대자동차' 최초의 플래그십 SUV 노릇을 한 것도 사실이다.[2] 어원인 갤럽(gallop)은 '말을 전속력으로 달리게 하다'라는 뜻의 동사이다.[3] 아이슬란드 수출명[4] 브라질 수출명[5]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미쓰비시 산하에서 판매되었으며, 파제로의 2세대 모델이 갤로퍼의 이름을 달고 일부 국가에서 판매되기도 했다.영상 [6] 판매는 현대자동차써비스(주)였다.[7] 파리-다카르 랠리를 휩쓸어 버린 오리지널 미쓰비시 파제로가 원본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참고로 미쓰비시 파제로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렉서스 LS, 혼다 NSX와 더불어 10년 넘게 일본의 3대 명차였다.[8] 게다가 정세영은 80년대 후반부터 5공 비리의 정치적 타격을 받고서 정치권에 뜻을 가지고 회장직에서 잠시 물러나 있던 왕회장을 대신하여, 현대그룹의 회장자리에 까지 올라서 있던 현대그룹의 막후 실세였다. 반면에 정몽구는 당시 나이가 40대 후반에 지나지 않았고 현대자동차 초창기부터 일등공신으로 활약한 정세영에 비하면 자동차 관련 사업 경력이 한참 밑이기에 현대자동차의 후계 구도에 진입하기에 무리라는 인식이 많았다.[9] 이들의 경쟁 구도는 1990년대 후반 기아자동차 인수 전후 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 및 갈등하게 되었지만 결국 왕회장의 교통정리로 정몽구에게 후계구도가 가게 되었고, 정세영 일가는 대신에 현대산업개발 그룹을 계열분리로 승계받게 된다. 사실 현대자동차는 1990년대 후반 당시 현대그룹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주력계열사여서 왕회장 입장에서도 절대 양보 못하던 것이었던데다, 아무리 정세영이 창업 일등공신이라 해도 따지고 보면 창업주인 왕회장의 친족관계인 덕분에 그런 중책의 역할을 수행 할 수 있었던 셈이니 결과적으로 왕회장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어려웠다.[10] 실제 맏아들이자 정몽구의 형인 인천제철 사장 정몽필은 안타깝게도 1982년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였고 이후 차남이었던 정몽구가 사실상 왕회장의 장남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11]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현대자동차 설립 당시 해외에서의 전문 인력을 스카웃하고 포드와의 기술제휴를 따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현대자동차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의 개발을 주도하면서 별칭으로 포니 정으로 불리기도 했다.[12]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사업조정으로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및 삼성항공의 항공사업 부문과 함께 지금의 KAI로 통합되었다.[13] 외환위기 이후 KAI와 마찬가지로 정부 주도하에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의 철도차량 제작 사업부가 "한국철도차량(KOROS)"로 통합되었다가 2001년 현대차그룹 쪽에서 대우종합기계, 한진중공업의 보유주식을 거의 매입하며 현재의 로템이 되었다.[14] 기아자동차 인수 후 계열사였던 기아중공업과 통합된 후 현대위아가 되었다.[15] 이 사업부문만 외환위기에도 그대로 현대정공 소속으로 남아 오늘날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인 현대모비스로 이어지게 된다.[16] 사실 미쓰비시의 파제로도 따지고 보면 2차 대전 이후에 미국의 지프 메이커인 윌리스(Willeys)의 민수용 지프, '모델 CJ3A'를 라이센스 생산하며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파생형 모델이기도 하다. 결국 파제로의 계보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지프와 혈연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7] 이 당시 미쓰비시는 파제로의 새로운 모델(2세대)을 출시하였다.[18] 영상에서는 절대 현대정공이라고는 하지 않고, 현대 라고만 한다.[19] 당시 군용 차량은 아시아자동차가 독점 생산하고 있었고 군용 지프형 차량을 디자인만 약간 바꿔서 민수용으로 내 놓은 것이 록스타. 그렇다 보니 조립유격이 커서 민수용으로는 적당하지 않은 차량인데 군대에선 수송병이 매일같이 정비하니 제대로 굴러가지만 민간에서는 툭 하면 고장날 수밖에.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이후 이를 크게 개선한 업그레이드 모델이 나왔지만 역시 큰 반향이 없는데다 아시아자동차의 모기업이였던 기아자동차스포티지가 같은 시기 크게 히트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단종되었다.[20] 당시 동원된 엔진이 푸조제, 이스즈제, 크라이슬러에 인수된 미국 AMC 엔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동원된 미국 AMC제 엔진은 무려 4200cc급 가솔린 엔진으로 주로 수출사양에 탑재되었지만.[21] 거기에 당시에는 일본산 공산품을 국산품보다 절대 우위로 쳐주던 시기였기에,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검증된 일제 모델을 다시 조립하여 국산차로 파는 갤로퍼가 당연히 유리했다.[22] 쌍용 에어로버스쌍용 DA트럭도 판매량이 크게 부진했다. 특히 대형버스는 아시아자동차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차량결함과 경쟁력 상실 등의 문제로 폭망하고 말았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23] 원래 쌍용자동차 자체가 그리 규모가 크질 않았다. 여러 엔진/미션을 조합해가며 번갈아 쓴 것도 결국 여러 회사들과 제대로 협력이 되지 않았으므로. 물론 그 상황에서도 손쉬운 외국 모델 도입이 아닌 돈이 많이 드는 독자 모델로 나간 노력 만큼은 인정해 주고 싶지만 능력이 모자라면서 의욕만 앞선 결과는 다 알다시피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의 쌍용차의 몰락이다.[24] 무쏘의 개발코드가 FJ. 이미 동아자동차 시절인 1987년에 디자인 드로잉이 나온 상태였고 1991년에 디젤 엔진을 도입받았다.[25] 프리런칭 광고의 캐치프라이즈가 93 이노베이션이다. 즉, 1993년에 큰 변화를 보여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26] 하지만 이게 쌍용자동차 몰락의 주 이유이다. 벤츠와 합작으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지만 자체 기술력이 낮아 독일산 부품을 많이 채용하여 제작 단가가 높아 어느 정도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지 못하면 적자만 커 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시장은 갤로퍼가 장악하고 있으니... 그래서 1990년대 당시 쌍용자동차의 직원과 임원들은 갤로퍼 및 현대를 엄청 비판한다. 외국 모델을 들여와서 이제 막 기술적 자립을 하려는 국내 4WD 업체를 전부 망하게 했다고 한다.[27] 그런데 이 로고 형태도 파제로에서 쓰던 것 그대로다[코드명DA] A B C 대강 밤하늘의 검푸른 색과 비슷한 컬러이며, 날씨나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보라색 내지는 회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3열창 아래의 레터링 스티커가 백색이나 적색도 아닌 핑크색에 가까운데 앞서 설명한 두 가지의 청색이나 흑색과 구별하기 위함으로 보인다.[코드명MG] [28] 안 그래도 갤로퍼는 시트 포지션이 높은데 변속 레버를 줄여버리니 5단이나 후진 넣기가 힘들 수 밖에 없다[29] 당시 1세대 그랜저에도 탑재된 G4CS 엔진[30] 외형상 디젤엑시드 사양과 유사하지만, 쿼터 글래스 아래에 로고가 'GSL WAGON'으로 표기됨.[31] 파제로도 초기에 탑재된 적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파제로에는 카뷰레터 버전이, 갤로퍼에는 연료분사방식 버전이 탑재되었다는것인데, 파제로가 처음 나오던 시절과는 다르게 90년대 이후로는 환경기준이 본격적으로 강화되기 시작하여, 탄화수소의 배출량이 상당한 카뷰레터 엔진은 규제를 만족시키기가 매우 힘들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32] 오리지널인 파제로에도 없던 조합이다[33] 물론 시트 재질이라던가 2열 암레스트 없는건 그대로다.[34] 오히려 V6 가솔린이 더 잘 팔렸다는 후문이 있다.[코드명OG] A B [35] 갤로퍼 외에는 싼타페(2세대 제외), 투싼 또한 유채색 비율이 높았다. 그리고 청록색 계통 컬러는 SUV 차량으론 코나와 제네시스 GV80에서 옵션으로 선택 가능.[36] 사이드미러 몸통은 2세대 파제로와 형상이 동일하다.[37] 휠아치 플레어, 날개형 그릴가드[38] 물론 은색을 제외하면 출고대기가 길어서 잘 안 팔렸다[39] 슈퍼엑시드 중간 띠 색깔로 적용됨[40] 사실 갤로퍼는 4륜구동 보고 사는 사람이 많았는데, 구매자 입장에서는 4륜구동도 안되는 애매한 차 사느니 차라리 적재량이나 승차정원이 많은 1톤트럭이나 승합차에 더 눈길이 갔을 것이다.[41] 구형 처럼 완만하게 높아지는 곡선 형태가 아니라 2열중간에서 갑자기 높아지는 형태이다. 이를 두고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를 참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42] 그런고로 앞문짝은 구형과 호환되지 않는다.[43]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자 부품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었다. [44] D필러 가니쉬에 숨어 있다.[45] 싼타페, 쏘렌토[46] 다만 미쓰비시의 입김이 있었는지 수출형은 계속 정공 시절 로고를 썼다.[47] 의외로 갤로퍼2 내수용에는 가솔린이 없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최후기형이 나오기 직전까지 있었다.[48] 숏바디 5인승의 경우 그나마 구형 모델들은 간혹이나마 보이기는 하는데, 갤로퍼2 숏바디 5인승은 진짜 운 좋아야 겨우 볼 수 있는 수준의 레어템이다. 아마 1996년에 경쟁 차종의 돌풍에 밀린 것으로 보인다.[49] 왜인지는 모르지만, 슈퍼엑시드가 아닌 모델에도 간혹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다.[50] 정확한 명칭은 샌드스톤. 모래색과 비슷한지라 진흙이나 모래가 묻어도 크게 티가 나지 않으며, 날씨에 따라서는 아예 황금색으로 보이기도 한다.[51] 그도 그럴것이 이미 기본 설계가 80년대 초에 완료된 차라 더더욱 신 모델이 절실했다.[52] 이전의 4WD 차량은 세금이 지금처럼 배기량에 비례하지 않고 파격적으로 저렴했다. 이유는 전쟁시 징발하는 조건으로 차량을 구입했기 때문. 따라서 대략 97~98년도까지 나온 무쏘나 갤로퍼, 스포티지 중에는 등화 관제등이 달린 차량을 볼 수 있다.[53] 가솔린 모델은 사실 99년도 까지 존재하긴 했었는데, 기존의 가솔린 모델의 판매량은 그나마 세 자리 수라도 되지, 갤로퍼2의 가솔린 모델은 두 자리수 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추측된다.[54] 파제로의 경우 상당히 성공을 거두면서 수많이 파생모델이 출시되었다. 본격 오프로드용은 물론 당시 가격으로 5백 만 엔이 넘는 쇠가죽으로 단장한 모델까지.. 특히 파제로 에볼루션은 랜서 에볼루션처럼 기존 파제로와는 전혀 다른, 엔진부터 미션, 서스펜션까지 특별하게 꾸민 차종으로 파제로 에볼루션만의 매니아들이 존재할 정도이다[55] 그래서 조금 빡세게 오프로드를 타는 오너들은 아예 앞범퍼나 사이드스텝의 일부분을 절단해버리기도 한다[56] 1991년 갤로퍼 출시 당시에 현대자동차의 앰블럼은 HD를 형상화한 구형 엠블럼을 버리고 오늘날의 이탤릭체 H 마크 엠블럼으로 가려던 과도기 시점이라서 당시 현대자동차 차량들에 회사 마크의 사용을 축소하고 그냥 영문으로 HYUNDAI라는 긴 글자 엠블럼을 훨씬 많이 썼기에 더더욱 그렇다.[57] 더군다나 당시 광고에 따르면 수도권이나 부산같은 경우는 판매원인 현대자동차서비스 전용 매장이 있었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그냥 현대자동차 매장에서 팔았다. 이후 같은 현대정공에서 만든 싼타모를 판매할 때도 마찬가지 정책을 취하였다. #[58] 당시 SUV=오프로드라는 공식이 통하던 시절에 온로드쪽을 부각시켰다. 요즘에야 갤로퍼의 털털거리는 승차감과 소음을 생각하면 납득하기 힘들지만 당시 기준 갤로퍼는 구형 코란도나 코란도 훼미리에 비해 엄청 조용하고 승차감도 좋았다[59] 물가변동을 고려하면 베라크루즈/모하비의 가솔린 모델~포드 익스플로러와 견줄 수 있겠다.[60] 이것을 공중파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송했다.[61] 원래의 엔진이 아무리 괜찮았다고 해도, 기본설계가 1970년대에 이루어진 엔진이다. 그걸 2000년대까지 개조하면서 사용하다니....[62] 물론 한국도로공사 차량이어서 기본적으로 주행거리가 길고 과부하 주행이 없었을 것이다.[63] 현재 100~120km/h까지 상향된 곳이 있긴 하지만, 공사구간이 아닌 이상 앵간하면 100km/h로 달릴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아직도 80km/h 이하로 걸린 구간이 절반이다.[64] 이와 더불어 상술한 지역들은 대부분 과속운전 적발 시 처벌 기준도 '''한국보다 훨씬 엄격하다.'''[65] 일본을 예로 들면 비슷하게 초과해도 범칙금이 한국의 두 배 이상이고, 일반도로는 30km, 고속도로는 40km만 초과해도 간이재판으로 '''벌금'''을 선고 받는다.[66] 좌측 통행 도로에서 정차 시 트렁크 문을 좌측에서 개폐 하는 것이 편리한 것에서 비롯된 파제로의 설계를 라이선스 모델인 갤로퍼가 우측 통행인 국내의 도로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국내 소비자 입장에서는 역으로 불편하고 위험한 것은 필연적이 된다(...).[67] 하지만 쌍용 뉴 코란도마저 좌측통행 국가에서 테일게이트를 오른쪽으로 열 수 있게 설계되는 문제점이 생겨난다.[68] 문제는 초기 1세대 한정이면 뭐 그렇다 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미쓰비시는 현재 판매되는 파제로의 뒷세대 모델까지도 이 설계 컨셉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파제로 수출 모델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69] 당시 기술적 자립도가 없던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제 핵심 부품을 대거 수입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회사 사정상 부품 대금을 모두 현찰로 지불할 수 없다보니 주식으로 대신 지불하면서 미쓰비시는 현대자동차의 대주주로 올라서서 경영 및 정책에도 간섭이 심했다.[70] 단순한 내수 시장용 모델도 아니고 해외에서 주력 수출 하는 모델에서 이런 소비자의 편의성도 무시하는 이런 고집스러운 행보는 오만함으로밖에 볼 수 없게 된다. [71] 이건 '''2005년도'''에서 재현(?)된다. GM에서 아태지역 차량을 '''좌측통행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의 홀덴에서 개발하라고 했고 국내에 수입했는데, 현지화가 덜 된 차를 팔아가지고(...).[72] 분명히 옵션사양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어째서인지 초기형은 적용되지 않은 차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73] XG부터 후석 에어벤트가 적용되었다.[74] 우측 D필러에 달린 구조물이 바로 그것[75] 소형차 기준은 전장 4.7미터 이내, 전폭 1.7미터 이내, 전고 2.0미터 이내인데, 롱바디 노멀휀더 모델은 정비지침서 제원표상의 전장/전폭/전고가 각각 4580mm/1680mm/1850mm이다. 심지어 와이드 바디킷이 장착된 모델도 전폭이 고작 1770mm에 불과한데, 이는 2021년 기준 '''현대차에서 가장 작은 SUV인 베뉴의 전폭과 동일한 수치이다'''.[76] 캠핑용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이유이다.[77] 물론 시트의 단차 때문에 썩 편하지는 않지만 장거리 운전으로 피로할 때 쉬어가기에는 아주 좋다.[78] 이후에 나온 SUV들은 레그룸은 어찌저찌 확보해도 유선형의 차체 때문에 뒤쪽 헤드룸이 좁아 목이 앞으로 꺾이는 경우가 많다.[79] 노르웨이의 노르카프(Nordkapp). 호닝스보그 위쪽에 있는 지점이며, 유럽 본토 최북단에 속하는 지역이다.[80] 고작 서너 해만 팔다가 단종시킬거라면 굳이 금형을 바꿔가면서 까지 페이스리프트를 시도했을 이유도 없다.[81] 테라칸 250도 갤로퍼와 함께 단종됐음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비록 상술했듯 고속주행 성능이나 내구성은 별로라지만, 그래도 상업적으로는 성공했던 모델을 단종시키고 큰 프로젝트를 거행하는건 도박이기 때문에 구 모델이라고 뭉텅 없애 버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82] 게다가 개발비도 이미 뽑을만큼 뽑았기에 초기만큼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현대차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인 셈.[83] 같은 현대 내에선 지금의 싼타페 4세대 혹은 맥스크루즈, 팰리세이드 정도 된다.[84] 락슬라이더, 금속제 언더 커버 등[85] 그래서 곡선이 많이 들어간 형태의 갤로퍼2는 인기가 없다. 오히려 각지고 레트로한 초기형 갤로퍼의 중고가가 더 높다![86] 사실 내구성은 단순히 프레임바디라고 좋고 모노코크바디라고 나쁘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프레임 바디는 차체 뒤틀림, 변형으로부터 안전한 편이라 오프로드 주행에 더 유리하다.[87] 단 프레임에 부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판스프링/코일스프링 마운트가 부식되어 떨어져나간 경우라면 프레임을 통째로 제작하지 않는 이상은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다[88] 그나마도 적지 않은 수가 외견이나 인테리어만 손본 것일 뿐 성능은 손대지 않은 경우도 많다.[89] 수입차들은 통상적으로 중고가격이 팍팍 떨어진다는건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랭글러나 허머, FJ크루저 같은 오프로더들은 '''되려 동년배인 국산차들 보다도 중고가 방어가 잘 되는 편이다.'''[90] JL의 경우 35인치 타이어 까지는 바디업 같은 개조없이도 장착가능하다.[91] 비상저감조치나 수도권계절관리제는 주말이나 휴일에는 단속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92] 사실 단속 문제를 배제하더라도 원래 올드카나 오프로드위주의 SUV를 일상용으로 운용하는 것은 여러모로 힘들다.[93] 참고로 3등급 차량 까지 규제한다고 가정하면 '''현재 굴러다니는 SUV와 상용차의 대다수'''가 몰살당하게 된다...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경유차는 제일 높은 등급이 3등급이기 때문[94] 원리는 대략 가솔린 차량이나 일부 유로4 디젤 차량(베라크루즈, 모하비 초기 모델)에 장착된 촉매장치와 비슷한데, 출력 저하나 트러블이 조금은 덜 하기에 갤로퍼를 찾는 사람들이 선호한다[95] 판매량이 적었던 만큼 매물이 가뭄에 콩나듯이 올라오는데다가 희소 가치 프리미엄이 붙어 가격도 천만원을 상회하며, 부품 수급 사정도 좋지 않고, 죄다 6기통 고배기량이라 연비도 '''휘발유를 들이마시는 수준'''이다. 물론 갤로퍼의 V6 가솔린 모델도 이 점을 공유하는데, 사이클론 가솔린 엔진의 경우 후륜형은 국내에서 갤로퍼 외에 장착된 사례가 없어 부품 수급이 매우 힘들고(특히 ECU를 비롯한 전장계통), 2.4 시리우스 엔진 버전은 파제로에도 없던 사양이라 해외에서 공수하여 공급받는 방법 조차도 불가능하다 .[96] 해당 사항은 네이버 지식백과에 이미지로 수록되어 있다.[97] 갤로퍼의 옛날 광고 등을 이용한 영상이지만 중간중간에 파제로거화 코란도 등이 섞여 있다.[98] 일본 미쓰비시가 설계하고 한국의 현대가 조립했으니 이 사람들 시선에는 외제차가 맞다.[99] 국내에는 상위호환버전인 테라칸이 출시된지라 비싼 차로 안 느껴지겠지만, 갤로퍼도 인터쿨러 엑시드에 옵션 몇개 추가하면 2천만원은 우습게 넘어갔다.[100] 당장에 가나 보다 훨씬 잘 사는 한국에서도 익스플로러 같은걸 관용차로 도입한다 하면 국민 여론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요, 국회나 감사원에서도 아주 방방뛰고 난리가 날 것이다.[101] 물론 국내기업이 자동차를 자체 생산하기도 하는 한국과 직접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앞서 서술했듯 갤로퍼라는 차 자체가 가격이 싼 차는 아니었기에 그런 사치품을 86대나 구입하는데 가나의 정치권이나 여론의 반응이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102] 이 당시 현대그룹의 자동차 사업이 팽창하던 시기여서 왕회장이 무척이나 애착을 나타냈고, 서울 본사 출퇴근엔 당시 국내 중형차의 바람을 몰고 왔던 쏘나타를 자가용으로 끌고 다녔다고 한다.[103] 비슷한 사례(?)로 중동지역에는 건설 붐이 일었을 때에 인부들이 타고다니던 1톤 트럭들이 작업이 끝난 이후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그 동네에 그대로 남아서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다.[104] 당장 유명 직구 사이트를 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다.[105] VX350 사양으로 존재[106] 쏘렌토 폐차의 부품 활용[107] 제네시스 쿠페에 후륜형으로 존재한다[108] LS엔진은 스몰 블럭형이라 8기통에 6리터급인데도 불구하고 부피가 매우 작아 4기통만 대응하는 차에도 들어갈 정도라서 예외적으로 가능한 케이스이다[109] 물론 제거 안한 차들도 처음설계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차이니 불법이라고 하지는 않았다.[110] 실제로 완성차 제작사들은 신차에 적용될 디자인이나 기술적 요소를 현재 시판중인 차종에 미리 적용시켜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93년형 코란도 훼미리인데, 본래 2중 프레임에 판스프링이었지만, 무쏘의 출시를 앞두고 무쏘와 동일한 3중 프레임에 코일스프링을 적용하였다.[111] 일부 지자체들은 저감장치 장착불가 차량에 대해 과태료를 유예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길어야 2021년이 끝이다.[112] 2021년 초 기준으로 수도권을 비롯한 지자체는 이 기간에도 얄짤없이 과태료가 부과된다[113] 트렁크에 스페어 타이어는 달려있지 않았다.[스포일러] 최후반부에 주인공 부부가 벤츠S클래스를 타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해당 갤로퍼는 중고나 폐차로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114] 다만 원작에서는 상태가 멀쩡하게 나오나, 드라마에서는 상태가 영 좋지 않다.[115] 갤로퍼2로, 트렁크에 스페어 타이어는 달려있지 않았다.[116] 중기형을 초기형 실내로 컨버전 하는 오너는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흔치 않다. 초기형에서 중기형으로 넘어올 때 외형과 파워트레인은 거의 그대로지만, 전장배선 쪽은 거의 갈아엎다시피 했기에 쉽사리 호환이 되지 않기 때문.[117] 한때 현대자동차서비스는 갤로퍼 오너들을 위한 서비스전담반 비스무리한걸 운영했었다.[118] 중기형 모델에 순정으로 달려나오는 와이드 가니쉬는 도어하단에 주름이 있고 휠아치와 일체형이다[119] 정작 파제로는 숏바디에 3웨이 컬러가 적용되지 않았다.[120] 그런데 이분은 무려 RC카로 마개조(...)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