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로얄
왼쪽부터 로얄 살롱 후기형, 로얄 살롱 초기형, 레코드 로얄 (새한), 로얄 듀크, 임페리얼. 그림에서도 그렇고 1980년대 대우차 광고들을 보면 헤드라이트가 번쩍거리는 장면을 강조할 때가 많았는데 이는 유럽쪽 차량들이 '''시동을 걸면 강제로 헤드라이트가 켜지도록 되어있는 형태라''' 그걸 흉내낸 효과였을 수도 있다.
'''Daewoo Royale'''[1]
1. 개요
새한자동차와 대우자동차 중•대형 고급 승용차 라인업.[2] 1980년대를 풍미했던 자동차들이며, 모두 후륜구동 차량이다. 베이스 모델은 오펠 레코드, 오펠 세나토르, 홀덴 코모도어다.
1980년대 부의 상징으로 불리던 자동차들이었으며, 경쟁 차종이었던 현대 스텔라에 비해 더욱 고급 승용차로 평가받으며 중대형 시장을 평정했었다. 그러나 로얄 시리즈가 주도적인 지위에 만족하며 페이스리프트로 시장을 때워 가던 중 심기일전한 현대자동차가 현대 쏘나타와 현대 그랜저[3] 로 시장을 탈환하여, 대우자동차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차량들의 등장으로 '''대우자동차 전성기가 시작'''되었고, 몰락으로 '''대우자동차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1991년에 명목상 단종 수순 을 밟게 되어 현재는 흔적도 찾기 어렵다. 이후 플랫폼을 유지한 채 껍데기만 바꾼 대규모 페이스리프트라 할 수 있는 로얄 프린스 후계 차량인 대우 프린스와, 수퍼 살롱 후계 차량 대우 브로엄이 중형차 라인업을 계승하게 된다. 따라서 실제 단종 시기는 브로엄이 단종된 1999년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2. 모델별 설명
2.1. GM 코리아 시절: 레코드
2.1.1. 레코드 & 레코드 로얄(GM코리아)
신진자동차가 이전에 잠시 협력을 맺던 도요타의 예고도 없는 철수로[5] 도산하게 되자, 얼마 후 다시 회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김창원 회장이 1972년 신진자동차와 GM이 자본금 180억원을 50:50으로 공동 출자하여, 종합자동차 제너럴 모터스 코리아 자동차(GMK, 지엠 코리아)를 설립하게 된다. 그때 기획한 새 라인업들 중 고급 포지션인 차가 바로 레코드였다.
레코드는 1972년에 들여온 모델로써 베이스 모델은 오펠 레코드 D형으로 당시엔 마세라티나 BMW 등에서 볼 수 있는 역 슬랜트[9] 스타일에 고급스러운 외모로 고위층과 중산층들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1972년 9월 19일,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시보레 1700[10] 과 함께 국내 최초인 신차 발표회를 가졌다. 그러나 레코드는 엔진과 바디 등 주요 부품은 GM의 유럽 기지이었던 독일(당시 서독) 아담 오펠에서 모두 수입해 CKD[11] 방식으로 만들었다. 당시 가격은 표준형이 2,637,000원, 디럭스형이 2,793,000원.[12] 현대 포드 20M 등 경쟁 차종에 비해 크기는 좀 작았으나, 단아하고 깔끔한 디자인이 고급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앞좌석은 벤치 타입으로 길게 이어져 3명이 앉을 수도 있었으나, 1974년부터는 헤드 레스트가 달리고 운전석과 조수석이 독립된 분리형으로 바뀐다. 크기는 작지 않았으나 다른 고급차들보다도 연비가 좋았고, 6기통이 아닌 4기통이라 자동차세도 당시 기준으로 1분기에 쉐보레 1700과 같은 41,000원에 불과해 경제적인 고급차라는 타이틀을 달기도 했다.
1975년 8월에는 외관이 소폭 변경된 레코드 로얄이 선보였다. 국산 중•대형 자동차 이름으로서 로얄이 쓰인 것은 이때가 처음[13] 이나, 1980년대 국내 중•대형차 시장을 장악한 로얄 시리즈 전신은 새한자동차가 되면서 1978년에 선보인 신형 레코드 로얄이다.
1976년, 경영악화로 산업은행 관리체제로 들어간 GM코리아는 회사 이름을 새한자동차로 바꾸었다. 이때 1977년, 레코드 로얄 부분 변경 모델인 레코드 프리미어가 나왔다(시리즈 중 생산기간이 가장 짧다.). 그리고 1978년 7월, 대우가 새한자동차 지분을 인수하면서 풀 모델 체인지된 뉴 레코드 로얄을 선보였다.
위키백과 링크
5.18 민주화운동을 세계에 알렸던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씨가 이용했던 김사복 기사의 차량이 바로 이 레코드 검정색 모델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는 기아 브리사가 등장하지만, 실제로 김사복씨는 일반택시가 아닌 (사실상 대절 리무진인) 호텔택시 기사였다. 힌츠페터 씨는 그 검정색 고급차에 타고 광주에 들어와 "회사 주재원을 빼내러 들어가겠다"며 거짓말을 하였으니, 검문소 군인들도 속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승옥 작가의 소설 서울의 달빛 0장 남자 주인공이 이혼 후 당시 가격으로 400만원이던 이 차를 덜컥 샀다가 형에게 "네가 '''재벌'''이냐? 엄마 아시면 기절하신다. 내가 적당한 중고차 알아봐줄 테니까 그건 그냥 내 지인한테 팔아버리자" 라고 한 소리 듣기도 하였다. '''재벌''' 소리 들었을 정도이니 '''이 차의 가치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2. 새한자동차 시절: 레코드 로얄
2.2.1. 신형 레코드 로얄(새한)
1978년 9월에 GMK(GM 코리아) 시절부터 만들어지던 레코드를 대우그룹이 인수하고 새한자동차가 되면서 내놓은 모델이다. 베이스 모델은 오펠 레코드 E1형. 처음에는 레코드로 팔리다가 이후 로얄로 차명을 변경했다. 참고로 102마력 1.9리터 엔진은 1972년에 나온 레코드에서 이미 사용 중이었다.
하지만 나오자마자인 1978년 12월에 2차 오일 쇼크로 장관급 관용차를 4기통으로 제한하는 엄청난 호재를 맞이하면서 한동안 아예 지정되었는데, 커다란 차체에 비해 적당한 가격과 우수한 연비, 장관이 타는 차라는 이미지로 인하여 경쟁차량들과 비교했을시에 판매량은 단연 으뜸이었다. 하지만 1981년 1월에 장관급 관용차 4기통 제한이 풀리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 팔렸다. [14]
풀린 이유가 고급 택시였던 콜택시[15] 로 많이 돌아다니면서 희소성이 옅어진 것도 원인이었고, 장관급 관료가 4기통 차량을 타고 다니다 보니 아래 계층인 민간 업체 사장들 중에서 6기통인 푸조 604나 현대 그라나다를 타고 다니는 이들이 차급 때문에 눈치를 보는 일이 많아진 것이 결정타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콜택시로 많이 돌아다니는 바람에 고위층들도 어느새부터인가 희소성이 옅어져 구입을 기피하게 되었다. 결국 1983년 7월, 내외장을 개선한 로얄 프린스로 페이스리프트되면서 단종되었다.
2.2.2. 레코드 로얄 디젤(새한)
또한 이때부터 디젤 엔진을 장착한 로얄 디젤도 판매하기 시작하였는데, 오펠에서 수입한 승용 디젤 엔진을 가져다가 장착했다.[16][17] 대한민국 최초의 디젤 중형 세단이다. 다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한계가 어느 정도 있어서, 소음이나 진동이 대단했다고 한다.[18] 게다가 이 엔진은 버전을 달리해서 당시 이스즈 엘프[19] 에도 얹힌 엔진이었는지라[20] 본네트를 제대로 닫을 수가 없어서 가운데가 불룩 튀어나온 전용 후드[21] 를 달아야 했다. 내용 일부 참조
엔진소리 직접 들어보자
(오펠 레코드) 주행 영상. 확실히 승용차에서 날 만한 소리는 아니다.
2.3. 대우자동차 시절: 로얄 패밀리
2.3.1. 로얄 XQ
1983년 7월에 로얄 프린스와 동시에 출시된 저가형 로얄 시리즈로 레코드 로얄 바디에 1.5리터 XQ 엔진[22] 을 장착했다.
1984년 12월에 1985년형 모델로 페이스리프트[23] 를 거치고 1987년 2월까지 생산되었다. XQ 엔진은 대우자동차가 처음 자체 개발한 엔진으로 맵시-나에 적용된 엔진이지만, 크고 무거운 차체를 이끌기엔 턱없이 힘이 딸려 조롱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어찌나 벌벌댔는지 당시 별명이 "'''절름발이 세단'''"이었다고 (...) 어느 정도로 성능이 안 좋았냐면, 에어컨을 켜고 언덕길을 올라가면 차가 퍼졌다고 한다(...) 하지만 장관급 관용차로도 쓰인 레코드 로얄 차체에 1.5리터 엔진이어서 가격도 적당하고 세제 혜택도 누릴 수 있던 차량이라, 뽀대만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어느 정도 판매된 것을 보면 국내 허세 문화 때문에 등장한 기형적인 변종이라 볼 수 있을지도. 심지어 로얄 XQ를 사서 외형만 로얄 프린스처럼 보이게 개조하는 웃지 못할 현상도 있었다고 한다.(...) 말년인 1986년 하반기에는 비록 차체 크기는 작지만 로얄 XQ보다도 고급 사양을 많이 갖추었고 중형차를 능가한다고 광고하던 르망살롱 GTE(디지털계기판같은 몇몇 사양은 로얄살롱 슈퍼의 것을 가져다 썼을 정도)가 출시되면서 팀킬을 당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서 4승'''을 거두며 롯데 자이언츠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했으나 유두열 7차전 역전 쓰리런으로 정규시즌 MVP가 된 최동원이 부상으로 로얄 XQ를 받았다.
- 로얄 듀크
1987년 3월에 등장한 로얄 XQ 페이스리프트 및 엔진 개선 모델로 로얄 시리즈 마지막 준중형 세단이었는데, 로얄 XQ가 로얄 프린스 초기형과 함께 상급모델인 로얄 살롱 대쉬보드를 공유했던 것과 달리 로얄 프린스 후기형과 같이 홀덴 코모도어 VL형의 작아진 대쉬보드를 써서 고급스러운 면이 약간 떨어졌다. 특이한 점은 휠캡이 당시 새로 등장한 소형 라인업인 르망과 비슷하다.[26]
그러나 1988년 출시된 경쟁 차량인 현대 Y2 쏘나타 등장을 기점으로 판매량이 줄어들기 시작, 이전 모델인 로얄 XQ에 이어서 로얄 듀크도 르망살롱 GTE에게 팀킬을 당하다가[27] 에스페로 출시를 앞두고 1989년에 로얄 디젤과 함께 단종되었다. 이후 대우자동차 / GM대우 / 한국GM 준중형 라인업은 이미 생산되던 로얄 프린스 1500이 대신했다.
자가용 사양과 달리 택시 사양은 1.6 엔진이 들어갔는데, 당시 정부에서 발표했던 중형택시 배기량 기준인 1.6 ~ 2.0을 맞춰서 납품하기 위함이었다. 말년에는 모델 이름이 그냥 '듀크'로 바뀌었다. 시기 상 1987년 12월경으로 추정되는데, 이때 신문광고에서 대우 듀크라고 표기하고 있기 때문.출처
2.3.2. 로얄 디젤
전술한 새한 레코드 로얄 디젤이 대우자동차까지 내려온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앞서 말했다시피 레코드 로얄 차체에 디젤 엔진을 장착해 제작된 대한민국 최초인 디젤 세단으로 현재 생산되는 디젤 세단들의 진정한 대선배다.
1984년 12월에 1985년형으로 첫번째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디젤 엔진 장점인 높은 연비를 실현했으나 반대로 디젤 엔진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소음과 진동으로 1989년 로얄 듀크와 함께 단종되었다. 그래도 의외로 9년간 생산된 것을 보면 명이 가늘고 질긴 듯.
본래인 신형 레코드 바디에 디젤 엔진이 장착되다가 이후에는 로얄 듀크와 동일하게 페이스리프트된 바디에 디젤 엔진이 장착되었다. 후드가 불룩 솟아있는 것으로 로얄 듀크와 구분할 수 있었다. 이 시기 경유를 먹는 세단은 로얄 디젤 외로는 경쟁사에서 콩코드를 디젤 사양으로 생산한 정도인데, 로얄 디젤과 달리 콩코드 디젤 사양은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GM대우로 바뀐 이후에는 토스카의 디젤 모델이 출시되어 17년만에 디젤 중형차가 재출시 되었으며, 후속인 말리부에서도 디젤 모델을 선보였다.
엔진은 새한자동차 시절과 동일.
2.3.3. 로얄 프린스
영상에 나오는 벤츠는 오늘날 E클래스의 조상격인 W114/115형. 베이스 모델인 오펠 레코드 E는 독일에서 메르세데스-벤츠 W114/115형 후속인 W123형과, E12형 BMW 5시리즈, C2형 아우디 100(A6의 전신)을 잡기 위해 만들었다. 실제로 레코드 E형은 일본에서 E12형 BMW 5시리즈와 비슷한 가격에 출시되기도 했다. 그래서 포르쉐 잡는 엘란트라(...) 마냥 거짓이라고 치부하기는 힘들다.
오펠 레코드 E2형 이탈리아 TV 광고가 있었으나 동영상 재생 불가[31]
1983년 7월 등장한 레코드 로얄 1.9리터급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초기형은 앞부분과 대쉬보드는 오펠 레코드 E2형인데, C필러 이후는 홀덴 코모도어 VH형이다. 일설에 의하면 오펠과 홀덴 차체 부품을 혼용해서 차체 앞쪽은 오펠 레코드 E2형, 차체 뒤쪽은 홀덴 코모도어 VH형을 짬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기존 로얄의 C필러 등 뒷부분은 그대로 두고 앞부분만 신형으로 바꾼 것이다. 앞부분은 펜더와 본네트 등을 신형으로 바꾸어 쉽게 고칠 수 있으나 뒷부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1984년 12월 등장한 1985년형은 C필러가 다른 로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제대로된 오펠 레코드 E2형의 뾰족한 삼각 플라스틱판 모양이 되었고 리어램프가 커졌으며 로얄 살롱의 2.0리터 엔진이 장착된 모델이 추가된다. 1985년 10월 23일 등장한 1986년형부터는 후면 범퍼가 로얄 살롱과 같은 것으로 변경되고 새로운 사이드미러와 플라스틱 휠 캡이 적용되었다. 1986년 3월 4일부터는 1.5리터 XQ 엔진이 탑재된 염가형이 발매되는데 성능상 로얄 XQ와 다름없고 스타일링이나 옵션 정도만이 차이점이다. 아마도 로얄 XQ를 사서 로얄 프린스처럼 보이려고 개조하는 차주들이 종종 있다보니 그걸 노리고 나온 듯하다. 하지만 로얄 XQ와 함께 몇달 후 나온 르망살롱 GTE에게 팀킬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1987년 3월 플라스틱 범퍼를 적용하는 등 크게 페이스리프트되었고 1.5리터 모델 엔진이 XQ 엔진에서 론지 엔진으로 바뀐다. 기존인 로얄 프린스는 로얄 살롱과 같은 오펠 레코드 E2형의 커다란 대시보드를 썼지만, 페이스리프트된 모델은 로얄 살롱과 차별화를 위함인지 로얄 듀크와 함께 홀덴 코모도어 VL형의 작고 간소화된 대쉬보드를 사용해서 고급스러움이 떨어진 면이 있다. 1988년형부터는 2.0리터 엔진과 1.9리터 엔진에 EFI가 적용되어서 성능이 향상되었다.
1988년 10월 출시된 1989년형은 르망 GTE 초기형과 비슷한 그릴로 변경됨과 동시에 1.9리터 모델 이상부터는 로얄 살롱과 함께 C 필러에 유리창이 들어가면서 수퍼 살롱과 동일한 오펠 세나토르(Senator) 형태로 페이스리프트되며, 1.5리터 모델은 여전히 구형인 유리창이 없는 C필러로 남는다. 말년인 1990년 2월 로얄 프린스 1.5리터에 쓰이던 C필러 유리창이 없는 구형 바디에 1.9리터 EFI 엔진을 탑재한 800만원대 떨이모델인 로얄 프린스 1.9 디럭스가 출시된다.
여러모로 로얄 시리즈 중에서 가장 변화가 많은 주축을 담당한 볼륨 모델로 다양한 배기량인 엔진을 갖추고 가장 넓은 범위를 담당했다. 그랜저가 등장한 이후 로얄 살롱과 로얄 살롱 슈퍼가 고전하게 되었지만(85년 시장점유율 80%, 86년 시장점유율 64%) 로얄 프린스 덕분에 어느정도 버티고 있었던 대우는 주축이었던 로얄 프린스가 Y2 쏘나타에게 밀리면서 시장점유율이 87년 59%에서 88년 21.4%, 89년 16%로 급추락 해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타격을 입어버렸다. 그래도 시리즈 간판답게 로얄 프린스의 이름은 1991년 빅 마이너체인지 모델인 대우 프린스로 계승된다.
로얄 프린스 문서가 별도인 다른 형태로도 존재한다. 대우 프린스 문서 참고.
2.3.4. 로얄 살롱
이름의 유래는 아무리 봐도 토요타 크라운 상급 트림 이름인 '로얄 설룬(Royale Saloon)'을 베낀 것이다. 당시에 이 '로얄 설룬'을 '로얄 살롱'이라고 부르던 사람들도 많았고[34] , 그 '로얄 살롱'이라는 이름을 새한자동차가 그대로 로얄 상급 모델 이름으로 채택한 것이다. 게다가 '로얄' 부분 글자체도 토요타 크라운 트림명에 쓰인 '로얄' 글자체와 흡사하다. [35]
1980년에 출시된 중형세단으로 홀덴 코모도어 VB형[36] 에 2.0리터 엔진이 탑재되어 출시되었다. 1980년대 부의 상징이었으며 원래는 6기통 2.8리터 엔진으로 1979년에 내놓으려고 했는데, 당시 장관급 관용차를 4기통으로 제한한 것 때문에 4기통 2.0리터 엔진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등장 이듬해인 1981년 4기통 제한이 해제되어서 관용차로 푸조 604가 납품되자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뻔 했는데, 1984년 에너지 절약을 이유로 장관 및 국무위원급 관용차를 다시 4기통으로 제한하자, 로얄 살롱은 장관 및 국무위원급 관용차로 납품되는 큰 호재를 다시 맞이했다.[37]
회사 이름이 바뀐 이후인 1983년 6월 대쉬보드가 오펠 레코드 E2형의 것으로 바뀌고 리어램프가 레코드 로얄 형태(오펠 레코드 E1형 혹은 홀덴 코모도어 VB, VC형)에서 홀덴 코모도어 VH형인 요철형 벤츠스타일 리어램프로 바뀐 뉴 로얄 살롱이 출시된다.[38] 그리고 1984년 12월 리어램프가 크고 아름답게 바뀌고 C필러 플라스틱 환기창[39] 이 바뀐 1985년형이 출시된다. 1985년 10월 23일 출시된 1986년형은 사이드미러가 변경되고 플라스틱 휠캡이 적용되는 정도인 변화를 거쳤다.
1987년 3월에는 다른 로얄 시리즈와 함께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는데 기존과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으며, 대쉬보드는 로얄 살롱 슈퍼에 처음으로 적용되었던 오펠 세나토르 A2형의 대쉬보드가 적용되었다. 1988년 10월 발매된 1989년형부터는 로얄 프린스 1900/2000과 함께 C필러가 삼각형 유리창이 있는 오펠 세나토르 A2형 의 것으로 바뀌면서 외형상 수퍼 살롱과 매우 비슷해졌다.
1991년 후속으로 수퍼 살롱 브로엄이 출시되며 로얄 프린스, 수퍼 살롱과 함께 단종되었다.
2.3.4.1. 로얄 살롱 슈퍼
1986년 2월 24일에 출시된 로얄 시리즈 최상급 모델로 1987년 시행예정된 자동차 수입자유화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모델이다. 오펠 세나토르 A2형 차체에 기존 로얄 살롱이 쓰던 코모도어 VB형 전면을 접합한 형태로 등장했다.[41]
오펠 세나토르는 1978년 새한자동차 시절에도 레코드 로얄 상급 6기통 모델로 도입하려 했지만, 새한자동차가 6기통 모델 출시를 백지화 하면서 그 대신 1980년에 4기통 로얄 살롱을 내놓은 것이다. 출시 직전에는 수퍼살롱이라는 가칭을 썼었으나 막상 출시되면서 로얄 살롱 슈퍼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트립 컴퓨터와 디지털 계기판을 갖춘 새로운 대쉬보드[42] , 국내 최초인 전자 연료분사식 엔진, 알로이 휠, C필러 윈도우 등등 당시 초호화 첨단 사양으로 무장하였으며 그라나다가 단종된 1986년 초반에 가장 비싼 국산차이자 EFI 엔진 덕분에 가장 성능이 좋은 국산차로 등장했고 1986년 당시 3저 호황이라는 분위기가 맞물려서 한동안은 주문이 밀릴 정도로 매우 잘 팔렸다. 하지만 얼마 후 연달아 등장한 '''현대 그랜저'''의 아성에 밀려서 수요를 모조리 빼앗기는 굴욕을 맞이했고#(예약 댓수 차이가 상당히 벌어지게 되었다), 1년만에 페이스리프트된 수퍼 살롱이 재빨리 출시되면서 생산기간은 정확히 1년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 와중에 로얄 프린스가 어느정도 선방하였지만, 로얄 시리즈 기함인 로얄 살롱 슈퍼가 경쟁사 차종에 밀리기 시작했다는 점은 대우자동차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혔다.
2.3.5. 수퍼 살롱
현대 그랜저 등장으로 고전하던 로얄 살롱 슈퍼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1987년 3월 등장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퍼 살롱은 로얄 살롱 슈퍼 출시 직전 가칭이었는데, 페이스리프트되면서 아예 가칭이었던 수퍼 살롱을 정식 차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세계 3대 디자인 스쿨 CCS 부총장인 최수신이 대우자동차 부평연구소 소속 디자이너일 때 디자인한 작품이라고 한다.[43]
그나마 로얄 살롱과 외형상으로는 C필러가 가장 큰 차이점이었으나, 대우 임페리얼이 등장할 무렵인 1989년형부터 로얄 살롱은 물론이고 로얄 프린스 1900/2000까지도 같은 C필러를 가지는 바람에(...) 이후에는 외형상으로 큰 차이 없이 헤드램프 와이퍼[44] , 일체형 리어램프 등등인 호화 옵션 정도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편의사양은 차이점이 좀 컸었는데, 트립 컴퓨터와 9밴드 오디오 이퀄라이저 및 시트 열선이 있었고, 실내 재질도 로얄 살롱보다 좀 더 고급스러운 것을 썼다. 심지어는 1980년대에 나온 차량인데도 뒷좌석 에어컨 조절기 및 에어벤트와 뒷좌석 오디오 리모컨을 적용할 수 있었다.
2020년 9월경 충남 천안에 1대가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2.3.6. 임페리얼
로얄 라인업의 최고 계급으로 탄생했으나 조기퇴장한 비운의 차.
자세한 것은 대우 임페리얼 문서를 참조.
3. 장수만세 GM V-플랫폼
우선 알아둬야 할 점은 이 라인업에서 초석인 오펠 레코드의 후륜구동 V-바디 플랫폼은 1966년에 개발되어 수십년을 우려먹었다. 로얄 시리즈에 깔린 이 플랫폼은 이후 프린스와 브로엄에도 이어진다. 심지어 오펠과 홀덴에서는 한국보다 오래 이용했다. GM V-플랫폼 문서 참조.
4. 매체에서
- 높으신 분들이나 중산층 이상인 어르신들, 기성세대들이 선호하던 차량이었는지라 1970~1980년대 또는 1990년대 대한민국을 무대로 한 사극이나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 김승옥의 단편소설인 "서울의 달빛 0장"에서는 주인공이 사이가 크게 틀어진 연기자 부인을 찾아가서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레코드를 구입한 후 방송국으로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뽑아 온 레코드를 본 부인은 "어머, 레코드네!"라고......
- 2000년 MBC 시트콤 중 하나인 "세 친구"에서 수퍼 살롱이 등장한다. 다만 개그적인 스토리도 특성이고, 시간이 많이 흐르다 보니[45] 여기서는 당연히 조금만 스쳐도 부서지는 유리차체 중고차로 등장한다.(...)
- 1997년 MBC 미니시리즈 영웅반란에서 1989년형 로얄 살롱이 주인공 한영웅(차인표 분)의 승용차로 등장한다.
- 1995년 MBC 납량미니시리즈 <거미> 3회에서 1989년형 로얄 프린스가 독거미한테 물려 죽은 남자의 사고 차량으로 등장한다.[46]
5. 여담
- 수퍼 살롱 선택옵션 중에 투톤 컬러가 있었다. 차체 캐릭터 라인 윗쪽[47] 을 밝은 색으로 도장하고, 경계 부분을 컬러 스트라이프로 마감했었다.실물 사진 보기 [48] 당시 신문광고에도 투톤 컬러 적용모델을 내기도 했다.
후기형인 대우 브로엄에서는 다시 일반적인 형태로 적용하였다. - 대우버스도 1980년대 중반에 출시된 BH115H, BH120H부터 2009년 자일대우버스 FX의 등장으로 단종될 때까지 로얄 명칭을 사용했다.(로얄크루저, 로얄이코노미 등) 또한 BS106 로얄시티와 BS090 로얄미디는 2012년 New BS 시리즈가 나오기 전까지 썼으며 BH090 로얄스타는 자일대우상용차로 바뀌었어도 계속 명칭을 사용 중이다.
- 대우전자에서 1980년대에 출시된 가전제품 브랜드도 로얄을 썼는데 대한전선 시절부터 사용되었다.[49] 로얄칼라텔리비젼, 베타로얄VTR 같은 브랜드명으로 된 텔레비전과 VTR이다.
- 발음이 어려워서 '대우 로얄 뉴 로얄'이라는 잰말놀이로 쓰기도 한다.
- K리그 부산 아이파크 전신이 대우 로얄즈인데 대우자동차가 1982년 실업팀을 슈퍼리그에 참가시키면서 팀명을 자사 브랜드인 대우 로얄을 그대로 차용했기 때문이다.
- 1987년 전 차종에서 행해진 대규모 페이스리프트에서, 로얄 살롱과 수퍼 살롱에는 '코너링 램프'가 장착되었다.[50] 좌우 헤드램프 바깥쪽에 붙여진 커다란 백색등으로, 평소에는 아무 기능을 하지 않고 있다가 미등을 켜면 함께 점등되어 있는다. 그리고 방향지시등을 작동시키면, 방향지시등이 작동하는 쪽의 이 등이 추가로 점등되어 선회하는 쪽 주변을 밝혀 주는 기능이다. 방향지시등을 끄면 소등된다.
6. 외부 링크
7. 둘러보기
[1] Royal의 구어체 (舊語體) 표기로 절대 오타가 난 게 아니다. 그리고 당시 대우그룹에 속한 다른 회사 제품들에도 붙곤 했었다. 로얄칼라TV, 로얄 피아노 등인데 설립 당시 계열사가 아니었다가 인수된 회사 제품 중에서도 붙어있던 경우도 있다. 대우자동차의 로얄은 새한자동차 시절부터 나오다가 새한자동차가 대우자동차로 바뀐 이후에도 나왔으며, 대우전자의 로얄칼라TV는 대한전선 가전부문 시절부터 나오다가 대우전자로 바뀐 후에도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원래 대우그룹이 아닌 다른 업체가 로얄이라는 브랜드가 붙어있는 제품을 내놓았는데, 대우그룹이 로얄이라는 브랜드가 붙어있는 제품을 내놓은 업체를 인수했다. 로얄 피아노는 당시 대우그룹 계열사인 대우정밀(전신은 '서진피아노' 였으며, 'Saujin'이라는 브랜드명을 쓰고 있었다)이 자체적으로 브랜드를 붙였다.[2] 임페리얼은 대형, 로얄 살롱은 중형 ~ 준대형, 로얄 프린스-로얄 듀크-로얄 디젤-로얄 XQ는 중형으로 등급을 잡을 수 있다.[3] 사실 쏘나타가 처음부터 승리를 거둔건 아니었다. 로얄에게 처음으로 빅엿을 먹인 차는 다름아닌 '''현대 그랜저.''' 오히려 1세대 Y1 쏘나타는 등장하자마자 시원하게 개털렸고(…), 이후 그랜저에 의해 로얄 시리즈는 빅엿을 먹었다.[4] 토요타 크라운 2세대부터 4세대 모델까지.[5] 이유는 '''저우 4원칙'''(당시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인 저우언라이가 일본 경제사절단과인 회담에서 밝힌 것으로, 대한민국 및 대만과 거래하는 상사, 베트남 전쟁에 무기를 공급한 기업, 미국계 기업 자회사들과는 무역을 하지 않겠다는 선포 때문이었다. 그 당시 중국을 포기하지 못한 토요타는 말도 안되는 이유들을 내세우면서 거래 못 하겠다며 신진자동차를 과감하게 내친다.[6] 이 스타일은 당시 영국이나 미국의 고사양 세단들에 있던 방식으로 지붕부터 C필러까지를 가죽으로 덧댄 방식이다. 이런 점이 고급스러움을 배가시켰다.[7] 물론 독일 현지에서는 레코드가 아니라 '레코르트(실제 발음은 헤코-트에 가까움)'라고 읽었다. [8] 잘 들어보면 레코드가 아닌 레-코오드라고 들린다. 물론 당시 광고멘트 말투가 제품명에 액센트를 주는 형태이기도 했었고, 실제로도 원어인 독일어 발음이 '''레(헤)코오트'''에 가깝다.(
[ʁɛkoːt]
) [9] 전면이 뱃머리처럼 생긴 디자인으로, 옆에서 보았을 때 차 앞부분이 아래로 갈수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10] 이 차가 사실상 GM코리아에서 제작한 첫 차이다. 하지만 소형차임에도 불구하고 연비면에서 폭망해버리는 바람에 바로 뒤에 나오게 될 레코드 출시가 조금 지지부진해졌다고 한다.[11] Complete Knocked Down.[12] 현재 가치로 약 2억 초중반대이다. [13] 회사 차원에서는 처음이 아니다. 신진자동차 시절 라이선스 생산하던 토요타 크라운 상급 트림 이름이 '로얄 설룬(Royale Saloon)'이었는데, 이것에서 '로얄'을 따서 붙인 것이다. [14] 덕분에 6기통이었던 현대 그라나다가 제대로 물을 먹으면서 4기통 모델을 갑자기 내놓게 되었다. [15] 1979년 4월 당시 2km 기본요금 1000원에 추가로 400m당 100원을 받았는데 당시 물가 기준으로 꽤나 비쌌다. 1979년 5월 당시 일반 택시가 2km 기본요금 300원에 추가로 400m당 40원을 받았었다. # 지금으로 치면 카카오택시 블랙이나 리모블랙 같은 고급 택시 이상인 수준이었다. [16] 당시 독일에서도 오펠 레코드 디젤이 팔리고 있었다. 아마 그 엔진이었던 듯하다.[17] 이 엔진은 소형차인 제미니 기반 픽업트럭이었던 맥스 디젤에도 얹혔었다. 그 덕분에, 적재정량이 당시 다른 픽업트럭들 2배가 넘는 850kg(0.85톤)이나 되었다.(...) 심지어 현재 쌍용자동차 렉스턴 스포츠 칸(400kg)보다도 컸다.(...)[18] 지금이야 커먼레일 디젤도 나오고, 독일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소음을 대폭 줄인 진짜 승용 디젤을 개발하긴 했다지만, 이 당시 1960 ~ 1970년대 기술로는 독일 본토건 우리나라건 디젤 엔진하면 크기와 상용차/승용차 구분 없이 그 특유인 소음과 진동을 그대로 감수해야만 했다.[19] 이때는 이스즈자동차가 GM 계열사 수준이었다. 지금은 협력업체이자 파트너 정도이지만. 포드와 마쓰다 관계의 변천을 생각하면 될듯. [20] 최근 기준으로 말하자면 마이티에 들어가는 엔진을 승용형으로 조금만 손봐서 쏘나타에 장착한 격이다. 재미있는 건 마이티 내로우캡에 A엔진이 탑재되고 있는데, 정작 A엔진이 처음 달린 차량은 SUV인 쏘렌토였다.[21] 그래서 기아자동차에서는 콩코드 디젤을 출시하면서 광고에 '평평한 디자인의 본네트' 라는 문구를 넣었다. 신문사에도 보도자료를 돌렸던 듯..# [22] 맵시-나를 위해 개발한 엔진이었다.[23] 라디에이터 그릴이 격자형으로 바뀌었고, 무엇보다도 C 필러에 위치한 환기창이 완전한 삼각형으로 바뀌었다.[24] 르망에 탑재되는 것과 동일한 엔진.[25] 택시 모델 전용[26] 잘 보면 구멍 개수가 오히려 한 쌍이 적다. [27] 1987년 당시 대놓고 싸구려 중형차를 살 바에 르망살롱 GTE를 사라고 광고를 내버려서 본의 아니게 같은 회사에서 만들던 로얄 듀크까지도 저격해 버렸다.#[28] 에어로다이나믹 스타일을 위해 그릴도 날카롭고 심플한 스타일로 만든 듯 한데, 오히려 실실 쪼개는 상이 되어버렸다.(...) [29] 어차피 앞뒤나 세부 옵션 등만 빼면 이전인 레코드 E1형과 같다.[30] 화질 상태가 나쁨으로 주의[31] 터보 디젤 모델이었다.[32] 사진은 1985년형 이후 모델이다. 당시 전면 스타일이 꽤나 호불호가 갈렸다는데, 그릴이 커서 괜찮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오히려 로얄 프린스보다도 빈티가 나 보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33] 이런 크고 번쩍번쩍한 그릴은 당시 기성세대들의 취향이기도 했다. 당시 토요타 크라운과 닛산 세드릭 그릴과 흡사한 디자인이다. 게다가 그릴 한 가운데인 왕관마크 또한 토요타 크라운과 흡사하다. 기성세대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었으나, 바로 얼마 전에 토요타 크라운에서 새로 적용된 그릴이었을 뿐이다. 즉, 토요타 크라운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지 않음을 이용해서 대우자동차 디자이너들이 멋대로 베낀 것이다. 게다가 로얄 살롱, 수퍼 살롱이라는 이름도 크라운에서 가져온거고, 후속 브로엄인 이름과 휠(임페리얼과 같은 디자인)도 닛산 글로리아, 닛산 세드릭에 달린 휠과 거의 흡사하다. [34] 'Saloon' 이란 단어는 '귀족의 파티장' 비슷한 의미인 프랑스어고 발음은 '살롱'이다. 대우차에서 쓴 'Salon'은 영어이긴 하지만 의미는 비슷하다. [35] 후대 차량인 임페리얼도 다른 브랜드 차량 이름을 차용했는데 크라이슬러에 비슷한 이름을 가진 대형차가 있다.[36] 다만 리어램프는 1983년형까지 기존 오펠 레코드 E1형 이었다. [37] 그러나 베이스 모델인 홀덴 코모도어는 당시나 지금이나 호주에서는 고급차인 대명사가 아닌 가족용 나들이차이자 일반 중형차이다. 심지어는 양카로 개조된 것도 있는가 하면, 홀덴 전문튜너 HSV(Holden Special Vehicles)에서 스포츠 버전으로 튜닝한 버전들도 있다. 오히려 홀덴에서 나온 코모도어와 같은 플랫폼을 쓰는 스테이츠맨이나 카프리스 정도 되어야 중역 이상 고급차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호주에 비하면 국민소득이 굉장히 낮았을 정도로 두 나라 간 국민소득 격차가 상당했었던 것을(당시 대한민국에서는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최하위 중산층 이상을 의미했었다.)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초반 로얄 살롱은 민간기업 사장 이상이나 탔고, 레코드 로얄 1900조차도 전무이사 이상이나 탔다.[38] 이 무렵부터 로얄 XQ를 구입해서 테일 램프와 뒷범퍼, 트렁크 엠블럼을 로얄 살롱의 것으로 바꿔 달고 다니는 오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네트까지 바꿀 수도 있었지만, 로얄 살롱은 카울탑 부분 철판에 호환이 안 되는 부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까웠다. [39] 이전의 것은 상어 지느러미 형상이었다가 디자인이 변경되면서 가오리형으로 변경된 것이다.(...) [40] 전기형 로얄 살롱에서 추레해 보이던 전면 그릴을 좀 더 번쩍번쩍하게 업그레이드하고 뒷 창을 바꾼 생김새. 잘 보면 뒷 창이 삼각창에서 3 윈도우로 바뀐 걸 볼 수 있다.[41] 1986년이면 이미 홀덴 코모도어가 계속 페이스리프트되어 1세대 5기형인 VL형이 등장할 무렵인데도 굳이 구형인 VB형 앞부분을 접합한 것을 보면 아마 크고 아름다우며 크롬 도금으로 번쩍번쩍한 그릴이 높으신 분들 취향에 가장 잘 맞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세나토르 A2형이나 홀덴 코모도어 페이스리프트 모델들은 로얄 프린스처럼 그릴이 작게 간소화되어서 이전에 비하면 포스가 약해진 모습이었기에...대신 범퍼는 세나토르 A2형에 더 가깝다.[42] 오펠 세나토르 A2형의 대쉬보드로 임페리얼도 같이 쓴다. [43] 그가 디자인한 작품으로는 대우 르망(카데트 E 원형 디자인), 기아 세피아 등이 있다.[44] 로얄 살롱 슈퍼에 처음 등장한 장비로, 수직형이었던 것이 수퍼 살롱에서는 수평형으로 장착되었으며, 임페리얼에도 그대로 장착되었다.[45] 이 당시(2000년)는 대우에서는 프린스가 애저녁에 단종되고 대우 레간자와 매그너스가 한참 팔릴 시기였다. 단종된 지 한참된 구닥다리인 셈.[46] 거미한테 물리고 정신을 잃어가며 차량은 벽에 긁히고 여기저기 충돌하다가 추락한 후 폭발한다.[47] 프론트 휀더 윗부분 및 본네트 전체와 A, B, C필러를 포함한 지붕 전체, 리어 휀더 윗부분과 트렁크 덮개 전체. [48] 링크 이미지 차량은 배경인 강물 혹은 하늘이 반사된 것이 아니라(...) 차체 색상을 실제로 2가지로 나누어서 도색한 것이다. [49] 그런 이유로 자동차에서는 'Royale ' 인데 비하여, 전자제품쪽에서는 그냥 'Royal' 이었다. [50] 이 등은 1년 앞서 출시된 현대자동차 각그랜저에 처음 장착되었으며, 1989년에 출시하는 임페리얼에도 적용된다. [51] 원래 청설모 화백이 올린 곳은 엔크린 닷컴이었으나, 현재 엔크린 닷컴이 카툰 파트를 정리한 탓에 해당 본 웹사이트에서는 만화 조회가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보배드림 링크도 현재는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