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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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에 출시한 페이스리프트 모델.
Daewoo Lemans[3][4]
대우 르망 출시 초기 영상
대우 르망 출시 초기 광고[5]
오펠 카데트 E의 1985년 광고. 르망과 카데트 E를 비교해보면 카데트 E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독일(당시 서독) 현지 GSI모델 CF(1988년)
대한민국에서는 폰티악 로고와 비슷한 르망 고유의 로고[9] 를 라디에이터 그릴 위에 부착하여 판매했다. 비록 고유모델은 아니었으나 대우자동차 최초의 전륜구동 차량이기도 하다.[10]
오펠의 소형 라인업인 카데트(Kadett)[11] E형을 베이스로 한 차량[12] 으로, 본래 배기량 1600/2000cc 엔진을 탑재한 차량이었지만, 대한민국의 대우자동차가 생산을 맡게 되면서 가격 문제 및 세금 문제로 인해 1500cc로 다운 사이징하여 판매하게 된다.[13] 플랫폼은 GM의 T-플랫폼을 사용하였다.
시판한 지 3개월 뒤인 1986년 10월에 3도어 해치백인 '''르망 레이서'''가 추가되었고, 여기서 얼마안가 림범퍼를 적용해 안전성을 높이고[17] , 전자식 계기판을 적용하고 중후한 느낌의 디자인[18] 을 적용한 '''GTE''' 트림[19] 이 각각 추가되었다. GTE 트림에 적용된 디지털 계기판은 국내 소형차 중 최초로 적용되었고, 대우자동차의 기함이었던 로얄살롱 슈퍼에 이어 두번째이다.[20]
1988년 3월 5도어 해치백인 '''르망 펜타-5'''가 추가되었고, 그 해 9월에 최고출력 96마력의 1.6L TBi[21] 도 추가되었다. 1989년 2월에는 택시 트림이 추가되었다. 카탈로그 사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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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르망 택시는 엑셀 택시와 마찬가지로 서울지역에서는 보기 드물었고, 주로 지방 소도시의 영세 택시회사에서 법인택시로 많이 사용하였다.
그 해 5월에는 GSE 트림, GLE 트림, LS 트림 등은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스포티한 느낌의 '''GSI''' 트림으로 바뀌었다.[23]
1990년 3월에는 소폭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4도어 세단 중 GTE 트림은 리어 램프가 6등식에서 4등식으로 변경되었고, 샬롱, 스폐셜, 포커스의 3 트림으로 나누어졌다. 같은 해 5월에는 현대 스쿠프에 대응해 르망 GTE에 2,000㏄ 엔진을 장착한 트림인 르망 임팩트가 추가되었다.[24] 1991년 2월에는 르망 GSI의 튜닝 트림인 이름셔가 출시되었다. 이름셔에 대해서는 아래 문단을 참조.
1991년 10월에는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뉴 르망이 출시되었다. 기존의 트림은 GTi, ETi, STi 3개로 재편되었고, 이때부터 기어 패턴을 제외한 대시보드 구성이나 에어컨을 비롯한 스위치 형태가 현대/기아차와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다. 1993년 5월에 4도어 세단은 또 한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리어 램프가 직사각형으로 바뀌고, 파워 안테나의 위치도 조수석 앞 펜더 근처에서 운전석 뒷 펜더 근처로 옮겨진 1994년형이 선보였다. 동시에 세단, 3도어(레이서), 5도어(펜타-5) 모두 에스페로의 1.5L DOHC 엔진을 얹고 에스페로의 휠커버를 장착한 최상급 트림인 RTi가 추가되었다.
1994년 5월에 씨에로가, 1995년 3월에 씨에로의 해치백 버전인 넥시아가 각각 출시되었으나, 씨에로/넥시아가 르망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오히려 기존 르망이 더 많이 판매되어 기존의 르망도 병행 생산되었다. 대신 1.5L DOHC 엔진과 기존 GTi와 RTi 트림을 씨에로에 이관시키면서 STi 는 르망 BX로, ETi는 르망 EX로 각각 재편되었다. 1996년 11월에 씨에로와 르망의 통합 후속 차종인 라노스가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병행 생산되었다. 1997년 2월에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만 10년 8개월 동안 내수 시장에서 536,254대, 수출 516,099대, 합쳐서 1,052,353대가 판매되었다.
폭스바겐 골프를 타겟으로 삼은 카데트를 기초로 한 차답게 단단한 차대강성과 균형잡힌 하체 밸런스로, 고속에서나 코너에서나 경쟁 차종인 현대 엑셀보다 우위에 있었다.
특히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1986년에 출시 당시 국내에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평가 받았었는데, 국내 최초로 에어로 다이나믹 스타일을 도입하면서 공기저항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당시로써는 공기저항 계수가 0.32Cd로 상당히 낮았었다. 대우자동차에서는 이를 물방울 스타일 혹은 유선형 스타일이라고 홍보 하였는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각진 디자인같아 보이지만 당시로써는 상당한 유선형 스타일로 평가 받았었다. 이 덕분에 1980년대 중반에 출시된 차 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판매되었던 각진 디자인의 포니엑셀, 프레스토와 달리 199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디자인이 크게 촌스럽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었다. 물론 이로 인하여 대우자동차는 1994년에 그냥 앞뒤만 페이스리프트한 씨에로/넥시아를 신차인양 내놓은 실책을 저질렀지만....
본래 2000cc까지 엔진이 탑재되는 차를 1600->1500cc로 변경한 탓도 무시할순 없으나, GM의 압력 때문에 차를 그대로 가져다 팔았던 대우자동차의 상황이 겹쳐, 가볍고 날렵한 평을 받는 라이벌인 현대 엑셀이 공차중량 950kg이었는데 반해[25] 르망은 엑셀보다 더 가벼운 몸무게인 935kg 였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취향과는 전혀 맞지않는 유럽형 기어비를 그대로 가져온 관계로 현대 엑셀이나 배기량이 한체급 낮은 프라이드 보다도 초반가속이 굼떴다. 대우자동차의 고정 관념인 '스타트는 굼뜬데 고속은 좋다'는 르망부터 시작되었다.[26]
국내에서는 현대 엑셀에 밀려 2인자 자리에 머물렀지만 그래도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과 함께 찾아온 마이카 열풍 덕분에 꽤나 잘 팔려서 대우자동차 입장에서는 상당한 효자 차종이었으며 대우 로얄 시리즈와 함께 대우자동차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계약개시 50일 만에 10,000대를 돌파 하여 '''「르망」 자신도 놀랐읍니다''' 라고 신문 광고를 낸 적도 있었고, 심지어 북미 수출시장에서는 조립생산 모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차량 최초로 우수 품질차량 TOP5에 뽑히는 등''' 그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이런 소식들로 인해 안일해졌던 대우자동차는, 제대로 된 후속도 없이 르망에 외형만 조금 고친 씨에로/넥시아를 내놓는 무리수를 두어 당시 완전 변경 신차였던 아반떼에게 압살당했다. 실은 그 전에 이미 엑셀보다 한 단계 커져서 르망 사이즈와 같아진 엘란트라에게 고전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야심작이라고 내놓은 것이 겨우 씨에로/넥시아였고, 여기에 대한 현대의 답변이 아반떼였던 것이다.
다만 르망의 베이스인 오펠 카데트는 독일 내에서 폭스바겐 골프[27] 의 라이벌[28] 격 모델이었고 그걸 20년 간 숙성시킨 E형인데[29] 아무리 디튠했다 하더라도, 엑셀과 비교하기에는 레벨이 다르긴 하다. 그런데 레벨의 차이니 어쩌니 해도 좋은 차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장사를 제대로 못 해 먹은 대우차의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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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전문 잡지 자동차생활에 제공된 시승차인데 범퍼 조립 상태가 사고차마냥 비뚤비뚤하다(...) 사진 속 시승자는 아폴로 박사로 유명했던 조경철 박사.
그리고 수동변속기가 자사의 로얄 시리즈처럼 기어를 조작하는 방식이 후진 기어가 1단 왼편에 있는 5단 수동변속기였으며[30] , 기어를 조작하는 방식이 달라 후진 기어가 4단 우측에 적용된 5단 기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한(특히 현대차와 기아차) 운전자들이 기존에 다루던 기어와 달라서 후진하는 방법을 몰라 곤란해 하기도 하였다. 자세한 건 수동변속기 문서를 볼 것.
에어컨 조작반도 1991년 9월 이전 모델들은 외기차단 버튼이 따로 없었고, 풍향조절 스위치 대신 냉난방 방식을 조절하는 스위치가 달려있었다. 이 방식은 프린스와 에스페로에도 적용되던 방식이며 르망보다 좀 더 늦게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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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2월 22일에 출시되고 25일에 시판, 1년만에[31] 단종되어 버린, 비운의 자동차이자 당시 한국의 공도 깡패.[32]
3도어 모델과 4도어 모델이 있었으며, 특이하게 5도어 모델은 판매하지 않았다. 애초에 얼마 팔리지 않은 차지만 4도어 세단형 이름셔는 그중에서도 특히 더 희귀한 모델.
이름셔는 오펠의 메이커 튜너로서 말 그대로 르망을 이름셔 사에서 튜닝한 것이다. 2000cc는 출시도 하지 않고 1600cc조차 디튠해서 출시된[33] 기존의 르망과는 달리, 2000cc의 배기량으로 현대 스쿠프 터보급의 가속력[34] 에 값비싼 제품으로 무장된 하체로 뛰어난 코너링 등으로 이 자동차를 도로에서 이길 한국 차량은 없었다.
르망 이름셔의 특징을 보자면
여담으로 배우 최민수씨가 이 차의 오너 중 하나였었다. 그러나 바이크로 취미를 옮기면서 오래전 처분한 듯. 1990년대에는 류시원도 이 차를 보유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변변한 튜너도 없는 척박한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이러한 자동차를 출시한 대우자동차의 시도는 좋았으나, 너무 비싼 가격에 1년만에 단종되고 말았다. 2012년 현재 르망 이름셔는 5대 미만이 아직도 도로에 달리고 있다고 하며 2011년 천만원이 넘는 가격에 중고거래도 되었다.
이러한 메이커 튜닝을 거쳐서 정식으로 발매된 차가 르망 이름셔를 제외하고는 없다는 의견이 있지만, 모든 튜닝 부품이 수입에 불과한지라 대우자동차의 역할은 그다지 없다고 봐야한다. 모터스포츠에 나가서 많은 활약을 펼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러한 시도를 했었다는 것에는 경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출시되지 않은 베이퍼웨어이다.자세한 내용은 대우 르망 왜건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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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현재는 생산 중지가 되어 구하기 어려운 상태다. 한국의 경우 보통 자동차 모형은 생산 중지 차량도 꾸준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차량 생산 당시에만 제품화가 이뤄지고 생산중지가 되면 모형도 덩달아 단종되 버려서 그 당시에 발매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면 딱히 구할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생산중지 이전에 단종된 모형들도 있고, 생산중지 이후에도 모형이 나오거나 생산중지 이후에야 모형이 나온경우도 있긴하나 그런 경우들은 많지 않다.
대리만족용으로 구하려 한다면 오펠 카데트의 다이캐스트 모델을 해외직구로 구하는 방법밖엔 없다.
모형화 된건 세창기업의 모델, 크로바 완구 모델, 아카데미 과학 프라모델 등이 있다. 세창기업은 GTE 와 GSE 모델을 제품화 했으며 스케일은 1/35다. 비록 풀백 태엽이 내장된 완구였지만 완구 치고는 완성도가 상당한편이다. 오래전에 생산중지 되었다. 한때는 구하기 어려웠으나 네덜란드에 있던 제품이 상당수 국내로 역수입 되어서 르망 모형 중엔 그나마 구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도 언제 다시 구하기 어려워지게 될지 모를 일. 태엽은 자주 당기면 금방 망가지기로 악명이 높다. [45]
크로바 모델은 해치백의 펜타5와 페이스 리프트 버전의 뉴 르망 모델이 제품화 되었다.
아카데미 과학은 1/24 스케일의 프라모델로 GSE 모델이며 모터 동력이 내장된 모터라이즈 모델로 출시했다. 세창과 크로바 모델과 다르게 완구보다는 정밀 모형의 성격인 제품으로 구하긴 어려운 제품이나 구매자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번거로움 때문에 자동차 모형 수집가가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금형 손실로 인해 더이상 생산이 불가능 하며 가끔 일본의 중고 마켓에서 발견되곤 한다
1991년 10월에 출시한 페이스리프트 모델.
Daewoo Lemans[3][4]
1. 개요
대우 르망 출시 초기 영상
대우 르망 출시 초기 광고[5]
오펠 카데트 E의 1985년 광고. 르망과 카데트 E를 비교해보면 카데트 E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독일(당시 서독) 현지 GSI모델 CF(1988년)
'''세계로, 미래로ㅡ 월드카 르망'''
'''21세기의 승용차'''
'''생활 속의 멋과 여유'''
'''월드카'''를 표방하면서 GM 산하 독일의 오펠이 개발하고, 대우자동차 부평 공장 및 대우중공업(대우국민차) 창원 공장[6] 에서 생산하여 북미에서 GM 산하의 폰티악이 판매하였던 전륜구동 소형차.[7] 1986년 7월부터 1997년 초에 단종 될 때까지 도합 105만 대가 생산되었다.[8]'''생활속의 좋은 차'''
대한민국에서는 폰티악 로고와 비슷한 르망 고유의 로고[9] 를 라디에이터 그릴 위에 부착하여 판매했다. 비록 고유모델은 아니었으나 대우자동차 최초의 전륜구동 차량이기도 하다.[10]
오펠의 소형 라인업인 카데트(Kadett)[11] E형을 베이스로 한 차량[12] 으로, 본래 배기량 1600/2000cc 엔진을 탑재한 차량이었지만, 대한민국의 대우자동차가 생산을 맡게 되면서 가격 문제 및 세금 문제로 인해 1500cc로 다운 사이징하여 판매하게 된다.[13] 플랫폼은 GM의 T-플랫폼을 사용하였다.
2. 연식별 변경 사항
시판한 지 3개월 뒤인 1986년 10월에 3도어 해치백인 '''르망 레이서'''가 추가되었고, 여기서 얼마안가 림범퍼를 적용해 안전성을 높이고[17] , 전자식 계기판을 적용하고 중후한 느낌의 디자인[18] 을 적용한 '''GTE''' 트림[19] 이 각각 추가되었다. GTE 트림에 적용된 디지털 계기판은 국내 소형차 중 최초로 적용되었고, 대우자동차의 기함이었던 로얄살롱 슈퍼에 이어 두번째이다.[20]
1988년 3월 5도어 해치백인 '''르망 펜타-5'''가 추가되었고, 그 해 9월에 최고출력 96마력의 1.6L TBi[21] 도 추가되었다. 1989년 2월에는 택시 트림이 추가되었다. 카탈로그 사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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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르망 택시는 엑셀 택시와 마찬가지로 서울지역에서는 보기 드물었고, 주로 지방 소도시의 영세 택시회사에서 법인택시로 많이 사용하였다.
그 해 5월에는 GSE 트림, GLE 트림, LS 트림 등은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스포티한 느낌의 '''GSI''' 트림으로 바뀌었다.[23]
1990년 3월에는 소폭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4도어 세단 중 GTE 트림은 리어 램프가 6등식에서 4등식으로 변경되었고, 샬롱, 스폐셜, 포커스의 3 트림으로 나누어졌다. 같은 해 5월에는 현대 스쿠프에 대응해 르망 GTE에 2,000㏄ 엔진을 장착한 트림인 르망 임팩트가 추가되었다.[24] 1991년 2월에는 르망 GSI의 튜닝 트림인 이름셔가 출시되었다. 이름셔에 대해서는 아래 문단을 참조.
1991년 10월에는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뉴 르망이 출시되었다. 기존의 트림은 GTi, ETi, STi 3개로 재편되었고, 이때부터 기어 패턴을 제외한 대시보드 구성이나 에어컨을 비롯한 스위치 형태가 현대/기아차와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다. 1993년 5월에 4도어 세단은 또 한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리어 램프가 직사각형으로 바뀌고, 파워 안테나의 위치도 조수석 앞 펜더 근처에서 운전석 뒷 펜더 근처로 옮겨진 1994년형이 선보였다. 동시에 세단, 3도어(레이서), 5도어(펜타-5) 모두 에스페로의 1.5L DOHC 엔진을 얹고 에스페로의 휠커버를 장착한 최상급 트림인 RTi가 추가되었다.
1994년 5월에 씨에로가, 1995년 3월에 씨에로의 해치백 버전인 넥시아가 각각 출시되었으나, 씨에로/넥시아가 르망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오히려 기존 르망이 더 많이 판매되어 기존의 르망도 병행 생산되었다. 대신 1.5L DOHC 엔진과 기존 GTi와 RTi 트림을 씨에로에 이관시키면서 STi 는 르망 BX로, ETi는 르망 EX로 각각 재편되었다. 1996년 11월에 씨에로와 르망의 통합 후속 차종인 라노스가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병행 생산되었다. 1997년 2월에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만 10년 8개월 동안 내수 시장에서 536,254대, 수출 516,099대, 합쳐서 1,052,353대가 판매되었다.
3. 특징
폭스바겐 골프를 타겟으로 삼은 카데트를 기초로 한 차답게 단단한 차대강성과 균형잡힌 하체 밸런스로, 고속에서나 코너에서나 경쟁 차종인 현대 엑셀보다 우위에 있었다.
특히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1986년에 출시 당시 국내에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평가 받았었는데, 국내 최초로 에어로 다이나믹 스타일을 도입하면서 공기저항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당시로써는 공기저항 계수가 0.32Cd로 상당히 낮았었다. 대우자동차에서는 이를 물방울 스타일 혹은 유선형 스타일이라고 홍보 하였는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각진 디자인같아 보이지만 당시로써는 상당한 유선형 스타일로 평가 받았었다. 이 덕분에 1980년대 중반에 출시된 차 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판매되었던 각진 디자인의 포니엑셀, 프레스토와 달리 199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디자인이 크게 촌스럽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었다. 물론 이로 인하여 대우자동차는 1994년에 그냥 앞뒤만 페이스리프트한 씨에로/넥시아를 신차인양 내놓은 실책을 저질렀지만....
본래 2000cc까지 엔진이 탑재되는 차를 1600->1500cc로 변경한 탓도 무시할순 없으나, GM의 압력 때문에 차를 그대로 가져다 팔았던 대우자동차의 상황이 겹쳐, 가볍고 날렵한 평을 받는 라이벌인 현대 엑셀이 공차중량 950kg이었는데 반해[25] 르망은 엑셀보다 더 가벼운 몸무게인 935kg 였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취향과는 전혀 맞지않는 유럽형 기어비를 그대로 가져온 관계로 현대 엑셀이나 배기량이 한체급 낮은 프라이드 보다도 초반가속이 굼떴다. 대우자동차의 고정 관념인 '스타트는 굼뜬데 고속은 좋다'는 르망부터 시작되었다.[26]
국내에서는 현대 엑셀에 밀려 2인자 자리에 머물렀지만 그래도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과 함께 찾아온 마이카 열풍 덕분에 꽤나 잘 팔려서 대우자동차 입장에서는 상당한 효자 차종이었으며 대우 로얄 시리즈와 함께 대우자동차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계약개시 50일 만에 10,000대를 돌파 하여 '''「르망」 자신도 놀랐읍니다''' 라고 신문 광고를 낸 적도 있었고, 심지어 북미 수출시장에서는 조립생산 모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차량 최초로 우수 품질차량 TOP5에 뽑히는 등''' 그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이런 소식들로 인해 안일해졌던 대우자동차는, 제대로 된 후속도 없이 르망에 외형만 조금 고친 씨에로/넥시아를 내놓는 무리수를 두어 당시 완전 변경 신차였던 아반떼에게 압살당했다. 실은 그 전에 이미 엑셀보다 한 단계 커져서 르망 사이즈와 같아진 엘란트라에게 고전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야심작이라고 내놓은 것이 겨우 씨에로/넥시아였고, 여기에 대한 현대의 답변이 아반떼였던 것이다.
다만 르망의 베이스인 오펠 카데트는 독일 내에서 폭스바겐 골프[27] 의 라이벌[28] 격 모델이었고 그걸 20년 간 숙성시킨 E형인데[29] 아무리 디튠했다 하더라도, 엑셀과 비교하기에는 레벨이 다르긴 하다. 그런데 레벨의 차이니 어쩌니 해도 좋은 차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장사를 제대로 못 해 먹은 대우차의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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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전문 잡지 자동차생활에 제공된 시승차인데 범퍼 조립 상태가 사고차마냥 비뚤비뚤하다(...) 사진 속 시승자는 아폴로 박사로 유명했던 조경철 박사.
그리고 수동변속기가 자사의 로얄 시리즈처럼 기어를 조작하는 방식이 후진 기어가 1단 왼편에 있는 5단 수동변속기였으며[30] , 기어를 조작하는 방식이 달라 후진 기어가 4단 우측에 적용된 5단 기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한(특히 현대차와 기아차) 운전자들이 기존에 다루던 기어와 달라서 후진하는 방법을 몰라 곤란해 하기도 하였다. 자세한 건 수동변속기 문서를 볼 것.
에어컨 조작반도 1991년 9월 이전 모델들은 외기차단 버튼이 따로 없었고, 풍향조절 스위치 대신 냉난방 방식을 조절하는 스위치가 달려있었다. 이 방식은 프린스와 에스페로에도 적용되던 방식이며 르망보다 좀 더 늦게 유지되었다.
4. 르망 이름셔(Irmscher)
[image]
1991년 2월 22일에 출시되고 25일에 시판, 1년만에[31] 단종되어 버린, 비운의 자동차이자 당시 한국의 공도 깡패.[32]
3도어 모델과 4도어 모델이 있었으며, 특이하게 5도어 모델은 판매하지 않았다. 애초에 얼마 팔리지 않은 차지만 4도어 세단형 이름셔는 그중에서도 특히 더 희귀한 모델.
이름셔는 오펠의 메이커 튜너로서 말 그대로 르망을 이름셔 사에서 튜닝한 것이다. 2000cc는 출시도 하지 않고 1600cc조차 디튠해서 출시된[33] 기존의 르망과는 달리, 2000cc의 배기량으로 현대 스쿠프 터보급의 가속력[34] 에 값비싼 제품으로 무장된 하체로 뛰어난 코너링 등으로 이 자동차를 도로에서 이길 한국 차량은 없었다.
르망 이름셔의 특징을 보자면
- 2,000cc C20LZ엔진[35] + 이름셔의 엔진튜닝
- 이름셔 전용 휠
- 형상기억물질이 포함된 이름셔제 에어로 파츠[36]
- 포르쉐에 주문제작한 서스펜션
- 현재도 비싼 시트로 유명한 독일 레카로[37] 사의 버킷시트
여담으로 배우 최민수씨가 이 차의 오너 중 하나였었다. 그러나 바이크로 취미를 옮기면서 오래전 처분한 듯. 1990년대에는 류시원도 이 차를 보유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변변한 튜너도 없는 척박한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이러한 자동차를 출시한 대우자동차의 시도는 좋았으나, 너무 비싼 가격에 1년만에 단종되고 말았다. 2012년 현재 르망 이름셔는 5대 미만이 아직도 도로에 달리고 있다고 하며 2011년 천만원이 넘는 가격에 중고거래도 되었다.
이러한 메이커 튜닝을 거쳐서 정식으로 발매된 차가 르망 이름셔를 제외하고는 없다는 의견이 있지만, 모든 튜닝 부품이 수입에 불과한지라 대우자동차의 역할은 그다지 없다고 봐야한다. 모터스포츠에 나가서 많은 활약을 펼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러한 시도를 했었다는 것에는 경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5. 르망 왜건
실제로 출시되지 않은 베이퍼웨어이다.자세한 내용은 대우 르망 왜건 문서 참고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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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에는 폰티악 브랜드 대신에 '패스포트', 그 뒤에는 '아스나' 라는 브랜드로 뱃지 엔지니어링 되어 현지에서 패스포트 옵티마/아스나 GT/아스나 SE[40] 라는 이름으로 1989년부터 1994년까지 판매된 바 있다. 미국에서 폰티악 르망이 단명한 것[41] 과 달리, 이쪽은 장수한 것이 특징. 브라질에서는 쉐보레 카데트로 팔렸다.
- 일부 지역에서는 대우 레이서(Daewoo Racer)로 판매되었다. 한편 브라질같은 일부 남미 국가에서는 오리지널 모델인 카데트와 경쟁을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광고의 포인트도 '카데트보다도 싼데도 옵션도 많고 조립품질도 똑같음!'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었기에 원판의 판매량을 뺏기도 했다.
- 씨에로에도 나와 있듯이, 의도하지 않게 2015년까지 약 30여 년의 기간 동안 생산된 롱런 모델이 되었다.
- 오펠은 이후 소형 자동차 라인에서 카데트라는 이름 대신 오펠 아스트라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는데, 이 아스트라의 최신 모델은 델타 플랫폼 기반으로 쉐보레 크루즈 및 올란도와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다. 크루즈의 기본 설계가 GM대우에서 출시한 라세티 프리미어이니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 있다.
- 유튜버 대도서관은 게임 중 자동차를 운전하는 상황에서 가끔씩 이 차량을 언급한다.
- 대우자동차가 94년에 세운 하이텔의 자동차 커뮤니티인 오토컴 출신의 르망/씨에로/넥시아 동호회가 있는데,이것이 바로 LCN이다.
- 광고 모델들이나 성우들이 지금 보면 굉장한데, 1988년도부터 1989년까지 배우 홍요섭 씨가 모델을 맡았으며, 성우로는 김기현씨가 있었고, 1989년 하반기부터 1991년까지는 길용우씨가 모델이었다!
- KBO 한국시리즈에서는 1988년과 1989년의 한국시리즈에서 MVP가 된 문희수 선수와 박철우 선수에게 르망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 1990년대 중후반에 중고차 수출 붐이 시작될 무렵, 중고차 수출로 르망이 인기매물로 크게 각광받아서 한동안 적지 않은 르망들이, 동남아시아, 중동, 남미, 동구권, 중국 등지로 중고 수출 되었다고 한다.[42] 특히 베트남과 러시아에서 르망이 중고차로 꽤나 인기였다고... 한마디로 국산 중고차 수출 붐의 초창기를 장식한 차종 중에 하나.
- 1994~1995년에는 호주로도 수출되었는데 호주 수출형은 대우 1.5i라는 상당히 단순한 네이밍으로 수출되었다. 뉴 르망 출시 이후 년식인데도 불구하고 호주 수출형은 르망 GTE도 아니고 르망의 최초기형인 르망 GSE (...)의 외형을 하고 있었는데, 내장재나 휠캡은 뉴 르망과 같다보니 겉은 구형인데 속은 신형이라는 오묘함을 보여주었다. 다만 동시기에 수출된 같은 우핸들 형태인 태국 수출형의 경우는 뉴 르망의 외형 그대로 우핸들로 바꿔서 수출되었다. 수출명은 판타지(Fantasy).
-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의 자동차로 나온다. [43] [44] 후진기어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허둥댄다..
- 영화감독 봉만대의 옛 차량 중 하나였다고 한다. 동호회에 가입하여 스티커를 붙이고 상세하게 관리할 정도로 애지중지 했다고.
- 90년대 초반까지 2종 보통 면허의 경우 코스와 주행 2가지 기능 시험이 있었는데 주행 시험에 대우 르망이 사용되었다. (코스 시험은 현대 엑셀) 'T코스'에서 후진 기어를 넣어야 하는 (당시 운전면허 시험은 수동변속기 밖에 없었다) 코스시험의 경우, 르망의 후진 기어 넣는 방식이 독특하여 (기어봉 아래에 있는 링을 잡아당긴 후, 1단보다 더 안쪽으로 끌어당겨서 넣어야 한다) 어려움이 있을 것을 배려한 배치로 보인다. / //
- 라이프 온 마스에서 극 중 강동철역을 맡은 박성웅의 차로도 나온다.
- 백종원이 처음으로 장사했던 치킨집에서 번 돈으로 타고 다닌 차가 빨간색 르망 레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차에 낚싯대와 그물을 넣고 다닌 통에 온통 비린내로 가득했다고...
- 래퍼 제이호의 1집 앨범 이름과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첫차가 르망이어서 앨범 제목으로 정했다고 한다.
7. 모형화
모두 현재는 생산 중지가 되어 구하기 어려운 상태다. 한국의 경우 보통 자동차 모형은 생산 중지 차량도 꾸준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차량 생산 당시에만 제품화가 이뤄지고 생산중지가 되면 모형도 덩달아 단종되 버려서 그 당시에 발매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면 딱히 구할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생산중지 이전에 단종된 모형들도 있고, 생산중지 이후에도 모형이 나오거나 생산중지 이후에야 모형이 나온경우도 있긴하나 그런 경우들은 많지 않다.
대리만족용으로 구하려 한다면 오펠 카데트의 다이캐스트 모델을 해외직구로 구하는 방법밖엔 없다.
모형화 된건 세창기업의 모델, 크로바 완구 모델, 아카데미 과학 프라모델 등이 있다. 세창기업은 GTE 와 GSE 모델을 제품화 했으며 스케일은 1/35다. 비록 풀백 태엽이 내장된 완구였지만 완구 치고는 완성도가 상당한편이다. 오래전에 생산중지 되었다. 한때는 구하기 어려웠으나 네덜란드에 있던 제품이 상당수 국내로 역수입 되어서 르망 모형 중엔 그나마 구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도 언제 다시 구하기 어려워지게 될지 모를 일. 태엽은 자주 당기면 금방 망가지기로 악명이 높다. [45]
크로바 모델은 해치백의 펜타5와 페이스 리프트 버전의 뉴 르망 모델이 제품화 되었다.
아카데미 과학은 1/24 스케일의 프라모델로 GSE 모델이며 모터 동력이 내장된 모터라이즈 모델로 출시했다. 세창과 크로바 모델과 다르게 완구보다는 정밀 모형의 성격인 제품으로 구하긴 어려운 제품이나 구매자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번거로움 때문에 자동차 모형 수집가가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금형 손실로 인해 더이상 생산이 불가능 하며 가끔 일본의 중고 마켓에서 발견되곤 한다
8. 둘러보기
[1] 준중형으로 나왔지만 껍데기는 르망인 페이스리프트 모델. 르망과의 중복으로 인해 일찍 단종을 맞는다.[2] 원형 모델인 오펠 카데트가 준중형이다. 아직까지는 어떤 차급으로 보아야 할 지 의견이 분분하다.[3] 이름의 유래는 유명한 내구 레이스 대회인 르망 24시가 열리는 프랑스의 도시 르망이다.[4] 자동차생활 2001년 3월 29일자 기사에 따르면, 응모작 중에는 ‘코스모’와 ‘피닉스’같은 영어 이름이 많았고, ‘아리랑’, ‘누구나’, ‘호돌이’ 등 한글 이름도 있었지만 대우자동차 측에서 ‘내수 차와 수출 차의 이름이 다르면 품질과 성능까지 차이 난다는 이미지를 줄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GM이 지어준 수출 명칭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고 한다.[5] 광고 속 차량의 색깔은 완벽한 은색이 아니고, 약간 청색이 섞인 은색이다.[6] 1994년부터 실시. 해당 생산 분들은 전량 해외 수출로 보내졌으며, 1997년에 생산라인이 철수한 부평에 창원공장의 일부 설비가 다시 옮겨져 우즈베키스탄 CKD 생산용으로 부평 2공장에서 칼로스와 혼류 생산되었다.[7] 다만 아반떼/엘란트라보다 크거나 비슷할 정도의 큰 크기와, 1990년대 들어서 직접적인 경쟁상대가 엘란트라/아반떼 였던 점,1.5 뿐만 아닌 1.6~2.0모델까지 두루 있었던 것을 두고 이 차를 소형차로 봐야할 지, 준중형으로 봐야할 지 의견이 분분하다. 사실 세그먼트별로 이 시대의 차종과 지금의 후속 차종을 따져 보면 엑셀/프레스토와 르망은 명백히 다른 급이며 르망의 원판이 되었던 오펠 카데트는 당시에도 유럽에서 엄연히 C세그먼트(준중형차)로 분류되던 차종이었다. C세그먼트와 B세그먼트를 포괄해서 소형차로 분류하던 일본의 차급 분류 방식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1980년대 당시의 우리나라 사정상 같은 '소형차'로 취급되었을 뿐이다.[8] 참고로 오펠의 원판인 카데트 E는 1991년 아스트라 출시로 단종될 때 까지 210만대를 판매하였다.[9] 폰티악 로고와 달리 안에 십자가 문양이 없고, 윗부분이 로얄시리즈와 유사한 왕관 모양으로 되어있다.[10] 대우자동차 최초의 전륜구동 고유모델은 에스페로이다.[11] 단어 자체는 영어의 'cadet'처럼 사관학교 생도란 뜻이다(...) 의외로 1936년부터 나온 꽤 오래된 이름이긴 하지만 제대로 히트 치기 시작한 것은 1962년에 개발된 A형 모델부터이다.[12] 다만, 본래의 카데트 E 형과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범퍼 등 바꾸는 것이 어렵지 않은 부분을 제외한 결정적인 차이점은 5도어 해치백 버전(르망 펜타-5)의 뒷쪽 유리창과 그 뒤의 삼각창이다. 카데트 E 형의 5도어 버전은 삼각창이 없으며 도어의 형상도 로얄살롱 슈퍼 등장 이전의 로얄 시리즈와 비슷하다. 즉, C 필러 아랫부분에 작은 삼각형의 환기창이 달려 있다. 그러나, 르망 개발시에는 이 부분의 디자인이 변경되어 르망의 5도어 해치백 버전인 르망 펜타파이브는 제나토어 또는 로얄살롱 수퍼, 르망 세단(오펠 카데트 세단)처럼 삼각창이 생겼다. 이처럼 5도어 버전은 뒷부분의 도어와 바디 패널 디자인 자체가 달랐었다. 반면 4도어 세단이나 3도어 버전은 바디 패널의 디자인 변경 없이 원래의 오펠 카데트와 동일했다. 오펠 카데트 4도어 세단, 오펠 카데트 3도어 해치백[13] 하지만 후에 1.6 TBi와 2.0 임팩트/이름셔가 발매된다.[14] 라디에이터 그릴 색상이 투톤 컬러의 윗부분 색상과 동일하므로 사진의 차량은 초기형이 아니라 이후 페이스리프트된 버전이다. GTE 초기형은 라디에이터 그릴 색상이 투톤 컬러의 아랫부분 색상과 같았다. 초기형의 배색은 아래에 나오는 조경철 박사 등장 사진을 참조하자.[15] 참고로 르망 레이서의 경우 쉰 밀회에서 유아인 역할을 맡은 김대희가 자신의 드림카로 가장 먼저 거론하기도 했다.[16] 사실 독일 오펠 기준으로는 이게 기본 모델이었다. 독일 기준으로 출시 순서가 3도어 5도어 4도어 순이었기 때문이다. 3도어 모델은 독일의 전 총리인 헬무트 슈미트가 마지막으로 탄 차이기도 하다.[17] 사실은 이것은 보험료와 관계가 있는 것일 뿐이며 실질적인 안전성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범퍼 좀 툭 튀어나왔고 거기에 충격흡수재가 들어갔다고 해서 실제 큰 사고가 났을 때 충격을 흡수해 봐야 얼마나 흡수하겠는가? 림범퍼(GM), 제노이범퍼(현대) 등 당시 안전한 범퍼로 취급되던 것들은 아주 낮은 속도로 접촉사고가 일어났을 때 범퍼가 파손되지 않고 원상태로 복원됨으로써 교체 비용을 줄이고 이에 의해 미국에서 보험료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접촉 수준이 아닌 큰 사고에서는 당연히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며, 그런 사고에서는 크럼플존의 차체 뼈대 등이 실제 충격을 흡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여러 회사들이 이 범퍼로 인해 안전성이 크게 향상된다고 광고를 해댔다.[18] 대표적으로 후면 번호판이 트렁크가 아닌 범퍼에 있고 트렁크 가운데는 검은색의 가니쉬를 적용했다.[19] 대우에서는 4도어 버전의 이 트림을 '르망 살롱'이라고 불렀다.[20] 해당 계기판은 로얄살롱 슈퍼에 들어가던것과 거의 같은것으로 광고에서도 이를 강조하였고, S&T 모티브의 전신인 대우정밀에서 생산하였다. 1986년 당시의 로얄 XQ, 로얄 프린스, 로얄 살롱에도 안들어가던 디지털 계기판을 르망살롱 GTE에 적용한 것이다보니 어찌보면 로얄살롱 슈퍼를 제외한 로얄 시리즈에게 제대로 하극상을 할 정도로 대우에서도 중형승용차를 능가하는 르망살롱 GTE라고 광고 했었다.[21] 스로틀 바디 인젝션(Throttle Body Injection)의 약자이다. 스로틀 바디라는 것은 캬뷰레터 를 말한다. 당시는 연료분사장치(인젝션) 방식의 엔진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는데, 각 기통마다 별도의 분사장치가 있는 방식이 MPi(멀티 포트 인젝션)이지만 그렇게 하면 원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구형 엔진의 스로틀 바디, 즉 캬뷰레터 위치에 연료분사장치를 하나만 사용하는 저렴한 방식이 개발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TBi이다. 이전에는 MPi가 TBi 대비 매우 우수한 기술인 양 서술되었지만 그 당시 기준으로는 몇몇 제조사에서 MPi의 다중 분사 기술이 가지는 효율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TBi는 집중분사 방식이 가지는 아이들링 시 연료효율과 중앙제어 방식의 탁월함 때문에 상용 초기였던 당시 MPi와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MPi가 GDi에 비해 저렴하고 높은 신뢰성으로 계속 사용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저렴하다고 해서 나쁜 기술은 아닌 셈이다. 한편 당시에 현대자동차는 TBi를 사용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MPi만을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기술도입선인 미쓰비시에서 MPi만을 사용하였고 TBi는 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대우자동차는 GM의 영향으로 저렴한 TBi를 채택하면서 마치 이를 세일즈포인트로 대대적으로 광고하였다. 물론 이후에 대우자동차도 효율 및 기술력 향상에 따라 TBi를 대신 MPi로 교체하였다.[22] 반대로 경쟁 차종이었던 현대 엑셀은 택시 트림이 1년 늦은 1990년 1월에 출시되었다.[23] 본래 GSI는 독일 오펠에서 카데트의 고성능 버전에 붙이던 명칭으로서 폭스바겐의 골프 GTI의 라이벌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물론 르망에서는 단지 그 겉모습만을 적용했을 뿐이며 엔진 성능의 향상 등은 없었다. 지금 여러 회사에서 하는 식으로 하자면 'GSI' 가 아니라 'GSI 타입', 'GSI 스타일' 정도로 생각하면 딱 맞다.[24] 1990년 당시 스쿠프의 광고 문구였던 "이제 스쿠프를 능가하려면 날개를 달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광고 문구를 삽입하였는데 르망 임펙트 출시 당시 신문 지면 광고에는 "르망이 날개를 달았다"라는 광고 문구가 적용되었으나, 카탈로그에서는 "마침내, 르망이 날개를 달았다!"라는 문구로 바뀌었다.[25] 단, 이는 북미형 범퍼로 페이스리프트된 1986년 이후의 수치이다. 1985년 초에 처음 등장했을 때(당시에는 이름이 포니 엑셀이었다)는 포니 엑셀 1.5리터는 880kg, 1.3리터는 860kg이었다.[26] 사실 이런 특징은 배기량과 상관 없이 원형인 오펠 카데트도 그랬으며 다른 독일차들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독일의 아우토반 같은 경우 예전에는 속도 무제한 구간이 꽤 많았으므로 그런 도로 사정에 최적화 시키다보니 아무래도 고단기어에다 중점을 뒀던 것. 반대로 한국과 일본은 제아무리 고속도로라도 120km/h를 넘는 구간이 존재하지 않고 골목이나 도시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운전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저단 기어에서도 가속도가 빠른 차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27] 사실 폭스바겐 골프는 1974년에 출시되었다. 당시만 해도 카데트는 C 모델로 후륜구동이었는데 이스즈-새한 제미니/대우 맵시나의 오리지널 모델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경우 카데트 플랫폼을 90년대 초반까지 유지한 데 비해 이스즈는 1980년대 초반을 끝으로 이스즈가 자체적으로 만든 독자적인 FF플랫폼(FF제미니)으로 바꿔서 1990년대까지 이어지게 된다.[28] 엄밀히 따지면 골프와 카데트의 양자 대결은 아니고, 포드 에스코트라는 또하나의 라이벌이 있었다. 포드의 월드카가 에스코트, GM의 월드카가 카데트/르망이었다.[29] 카데트 E형의 전륜구동 플랫폼은 1979년에 출시된 카데트 D형을 위해 새로 개발된 GM의 전륜구동 T-플랫폼을 개량해서 유용한 것이다. 이게 르망에 쓰인 것. 맵시나에 쓰인 것도 T-플랫폼이었지만 이쪽은 전술한대로 후륜구동이다.[30] 수동변속기 문서에 "1단과 후진 기어의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기어노브 밑에 고리 형태의 잠금장치가 설치되었다. 잠금장치를 당겨야 1단에서 좌측인 후진으로 기어가 변속되는 방식으로 대우자동차가 많이 사용하던 방식이다"라고 서술되어 있다.[31] 대우자동차 측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단종시기는 1993년이나,판매량을 유추했을 시에는 1992년에 단종되었을 공산이 크다.[32] 사실 많은 이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르망 이름셔가 국내 도입되기 이전인 1989년부터 자동차 매니아들을 위한 독일 직수입산 '''이름셔 팩'''을 모 무역상사에서 2년동안 시판한 적이 있었다. 이들의 경우는 차량 자체의 시판이 아닌 이름셔의 엔진 부품들과 애프터마켓을 판매하는 역할.[33] 사실 2.0리터 엔진을 르망에 적용한 르망 임팩트가 있긴 했는데 이건 묻혔다. 구분하는 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차량의 하체부분에 토요타 코롤라의 1980년대 모델처럼 전용 스티커가 붙어있으며, '''전용 선루프'''가 있는 것이 특징. 간혹가다 선루프가 없는 차량들이 있기도 했다.[34] 르망은 논터보인데 터보가 달린 스쿠프와 거의 비슷한 가속력을 보여 줬다. 터보를 달면 르망 이름셔의 압승이었다고.[35] 대우 에스페로 초기사양 모델과 르망 임팩트, 폰티악 사양의 수출 모델에도 장착되었다.[36] 그래서 약간 찌그러져도 뜨거운 물에 담가 놓으면 원래대로 복구되었다고 한다.[37] 가장 저렴한 시트가 100만원부터 시작한다. 가장 비싼 것은 3,000만원에 육박[38] 한단계 윗급인 대우 프린스의 풀옵션이 1000만원을 조금 밑도는 수준이었고 여기에 자동변속기까지 더해봐야 1000만원 조금 넘었다는것을 감안했을때 확실히 비싼 거 맞다.[39] 이 사진은 아스나 GT 모델이다.[40] 패스포트 옵티마는 페이스리프트 전 르망 세단, 아스나 SE는 페이스리프트 후 르망 세단, 아스나 GT는 페이스리프트 후 르망 레이서가 기반이다.[41] 폰티악에서 단종되자마자 대우에서는 사진 속 디자인의 르망을 1996년까지 북미에서 판매한 바 있다.[42] 그 덕분에 국내 도로에서 르망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43] 성보라가 타고다니는 GSi 모델은,저 당시 막 출시되었던 신차였다![44] 육안으로만 봐도 뭔가 어색하다. 그렇다. 사실 초기형 르망에다가 GSi모델 범퍼를 대충 끼운 형태. 심지어 휠은 고증에도 맞지않는 씨에로의 휠이다. [45] 개체수가 늘어 대다수 자칭 수집가 초딩 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모델로 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