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른호르스트급 전함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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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arnhorst-Klasse'''
1. 제원
2. 개요
3. 특징
4. 활동
5. 여담
6. 기타 매체에서의 등장


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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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함
L 20 α급 전함(계획)
바이에른급 전함(실질)
후계함
비스마르크급 전함
기준배수량
32,100톤
만재배수량
38,100톤
길이
235m(수상), 226m(수면)

30m
흘수선
9.69m
동력원
Germania/Brown, Boveri & Co geared 터빈 3기
출력
111,717Kw
속력
31노트
항속거리
19노트로 7,100해리(샤른호르스트)
19노트로 6,200해리(그나이제나우)
승무원
1,669명
무장
28 cm SK C/34 3연장 주포탑 3기(총 9문)
15cm SK C/28 2연장 부포탑 4기(총 8문)
15cm SK C/28 단장 부포탑 4기 (총 4문)
10,5 cm SK C/33 2연장 부포탑 7기(총 14문)
3,7 cm SK C/30 단장 기관포 16기(총 16문)
2cm C/30 또는 C/38 기관포 총 10기[1]
533mm 3연장 어뢰관 2기 (총 6문)
장갑
측면 최대 320mm [2]
함교 350mm
갑판 20~96mm
포탑 최대 360mm

2. 개요


제1차 세계 대전기 독일 제국장갑순양함의 이름을 계승했으며 독일군의 재무장시 해군 증강 계획의 일환으로 건조되었다.

3. 특징


초기 샤른호르스트의 모습은 새하얀 모습으로, 마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연상시키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가져 '백색의 전함'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하였다. 한번은 어떤 영국인이 영국 해협 돌파작전 당시 안개낀 영국 해협을 조용히 통과하는 샤른호르스트를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마치 중세시대의 성을 보는 듯한 아름다움을 가진 배였다고 표현했다. 그는 훗날 그것이 크릭스마리네의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는 무척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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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주포로는 비스마르크급 전함에 탑재된 것과 같은 38cm SK C/34 2연장 3포탑 6문을 탑재 예정이었으나 전력 획득을 지연시킬 수는 없어서 [3] 당대 전함과 동급의 350~400mm급 주포를 탑재하지 못했고, 28cm SK C/34 포 9문을 주포로 얹었다. [4] 따라서 순양함 이하 함급이나 자체 무장이 빈약한 항공모함을 상대로는 위력을 발휘했지만, 영국정규 전함 상대로는 열세였다. 건조 시기에 당초 설계에 비해 배수량이 크게 늘어서 침수 부위가 커졌고 내파성이 악화되었다. 후에 선수를 경사진 형태의 아틀랜틱 보우(Atlantic Bow)로 교체하면서 약간 더 나아졌다. 그럼에도 샤른호르스트의 속력은 31.5노트로 빠른 기동력을 가지고 있고, 28cm 주포는 구경은 작지만 분당 3.5발 이라는 빠른 연사력을 발휘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유격전술에 안성맞춤인 전함.

4. 활동


28cm 주포 9문씩을 장비한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노르웨이 전역에서 순양전함 리나운(381mm 주포 '''6'''문 장비)와 교전을 벌이고는 도망간 적도 있었는데, 이 전투에서 리나운은 약간의 손상을 입었고 그나이제나우는 주포 1문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주포탄의 위력은 리나운이 훨씬 강하지만 리나운은 '''순양전함'''이기 때문에 장갑이 '''전함'''보다는 약하다. 단순 계산으로 381mm 주포 6문한테 28cm. 주포 18문이 붙은 것이고, 샤른호르스트의 28cm SK C/34 주포는 15.1km 거리에서 336mm의 관통력이 나온다. 따라서 15.1km에서라면 리나운을 충분히 관통 가능하다.[5][6] 따라서 해볼만한 싸움이었으나, 두 전함의 목적은 상륙이 완료될때까지 어그로를 끄는 것이었고, 리나운은 2차 나르빅 해전의 나비효과까지 일으키는 대 판정승을 거뒀음에도 결과적으로는 낚인 셈이 되었다.
다만 낚였다고 보기엔 좀 애매한것이 라나운에게 입은 피해때문에 샤른호르스트급 두척이 둘다 내빼버리자 글로우웜 때문에 빠져야했던 아트미랄 히퍼를 포함한 모든 주력함이 전선에서 빠지게 되었고 남아있는 함정들은 영국 해군에게 말그대로 일방적으로 사냥당했기 때문이다. 이때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크릭스마리네는 아무것도 못하고 유보트만 믿고 살아야 하는 고자 신세가 되었다.
영국군 함선 분류표에는 순양전함으로 올라가있고[7], 이게 주로 세간에 퍼졌다. 덕분에 일부 독일계 사이트에만 전함으로 기록되는 중. 주포의 위력 역시 11인치라 저평가를 받은 것일 뿐 현측 관통력 한정으로는 꽤 강력했다. 다만 카테고리상의 부실해보이는 스펙과 전함 상대로 제대로 된 활약상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결국 이런 취급을 받은 꼴. 사실 개념상으로도 샤른호르스트급은 순양전함이 될 수 없다. 순양전함은 당대 기술력의 한계로 화력, 장갑, 항속을 모두 챙길 수 없어서 셋 중 장갑을 포기한 부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갑을 덜었으면 덜었지 화력은 어지간해서는 건드리지 않는다. 설령 건드린다 하더라도 포문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지 구경을 줄이는 짓은 하지 않는다.[8]
주장갑대인 320mm 구역 바로 위는 45mm밖에 되지않으며 갑판도 최대 140mm 정도로 두껍지는 않았다. 비스마르크급과 동일한 구식설계의 취약성을 보였다는 것. 아래에서 서술된 샤른호르스트의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보일러실 타격은 이 부위를 그대로 관통당해 발생한 일이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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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른호르스트급 장갑 구조
후에 RAF의 공습으로 손상된 그나이제나우를 뒤늦게서야 14.96인치의 380mm로 환장할 계획이었으나... 히틀러의 대형함 폐기명령에 그나이제나우의 환장계획은 좌절되고, 3번 포탑은 육상에 설치된다. 크릭스마리네의 3대 유물중 하나.
비스마르크급 전함과 함께 독일 수상함대의 최신형 전함으로 핵심전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상대가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국 영국 해군.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는 곧 펼쳐질 바다 사자 작전과 대서양 작전에 대비해 브레스트항에 머물렀으나, 독일 공군이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패배하고 허구한 날 공습을 얻어맞자 영국 해협 돌파작전(케르베로스 작전)이라는 퇴각작전을 계획하고 독일 점령지 노르웨이로 자매함인 그나이제나우와 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 및 Z형 구축함 5척과 함께 이동했다. 브레스트에서 도버 해협을 거쳐서 북해로 진입하는 미친 계획이었는데 영국 해군이 유일하게 남은 비스마르크급 전함인 티르피츠를 견제하기 위해서 주력함대가 움직이지 못 하고 브레스트에서 출발한 사실 자체도 늦게 알려져 아무런 피해 없이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샤른호르스트는 기뢰를 2번 밟아 집결지인 노르웨이로 가지 못 하고 모항인 빌헬름스하펜에 임시로 기항하게 된다. 그나이제나우도 기뢰를 1번 밟지만 승조원들이 혼신의 힘으로 복구한 덕에 움직일 수 있었다. 도중에 정찰기에게 걸려 공습이 날아오긴 했으나 뭐 늘상 그렇듯 명중한 폭탄은 없다.
그러나 1943년 12월 26일에 결국 영국에서 소련으로 향하는 수송선단[10]을 공격하기 위해서 출항[11] 했다가 노르웨이의 영국 스파이로부터 샤른호르스트의 출항소식을 전달받고 급히 출동한 영국함대[12]에 걸려 포격에 얻어맞고 수장당한다. 노스케이프 해전 참조. 영국 해군의 입장에서 샤른호르스트라는 함선은 잘 눈에 띄지도 않는데다가 갑자기 나타나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사라지는, 말그대로 눈엣가시인 존재라 애초부터 미끼를 걸어 유인한 것이다. 사실 먼저 만났던 중순양함 HMS 노포크의 함대는 상대가 가능했으나 끈질기게 따라붙는 바람에 샤른호르스트는 포기하고 만다. 샤른호르스트의 마스트에 포탄이 명중하며 레이더가 날아갔는데, 이때 이미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13] 이후 Ar 196 A-3 정찰기의 오보로 킹 조지 5세급 전함 3번함 듀크 오브 요크 외 13척의 군함과 마주치고는 도망친다. 도망가던 중 HMS 듀크 오브 요크가 최대 유효사정거리에서 날린 포탄이 장갑판과 장갑판 사이를 뚫는 바람에 보일러실이 직격당해 속도가 8노트까지 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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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갑대를 피해 관통한 14인치 포탄
보수반이 간신히 22노트까지 속도를 올렸지만, 이미 영국함대에 포위당한 상황에서 결국 350발에 가까운 포탄들과 11발의 어뢰를 맞고 침몰한다. 이 때 약 1,900명의 승조원중 36명[14]만 생존했다. 참고로 영국 해군의 함대는 샤른호르스트를 향해 총 55발의 어뢰를 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 영국 해군 제독은 자신의 훈사에서 샤른호르스트를 향해 '용감한 배'라며 높이 평가한다. 샤른호르스트는 영국군의 포격에 대화재가 일어나 선미부터 선수까지 타오르기 시작한다. 이후 영국 S급 구축함들의 어뢰 일제사격에서 11발의 어뢰가 명중하고, 그중 선수에 명중한 한 발이 큰 폭발을 일으켜 선수 부분부터 침몰한다. 현재 샤른호르스트의 잔해는 노르웨이 북쪽 약 103km 지점에 선수부분이 잘려나가고 뒤집어진 채로 위치하고 있다. 이는 당시 듀크 오브 요크의 전대 사령관 브루스 프레이저 제독의 기록과 오차가 컸는데, 당시 북해의 날씨상황 때문에 오차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샤른호르스트의 최후는 1943.12.26 오후 7시 45분 경.
사실 킹 조지 5세급 전함의 속력은 28.3노트로 31.5노트로 순항할 수 있었던 샤른호르스트급에 비해 한참이나 느리다. 당시 샤른호르스트급보다 빠른 전함은 영국에는 없었다. 그러나 보일러실의 직격탄은 버티기 힘들었나 보다.

"...샤른호르스트는 장갑과 내해성, 특히 화력 면에서 영국 순양함들보다 월등했다. 경무장인 순양함들에 비해 샤른호르스트는 부포 외에도 11인치 중포를 9문이나 갖고 있었다. 그런 우위의 화력면을 볼 때 접촉이 이루어졌던 그 날 아침에 포사격으로 전투를 벌여 결판을 냈어야 했다."

"...프레이저 제독이 두려워한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호송선단이 순양함의 보호만 받으며 독일의 무장전함을 조우하고 있던 그 순간에 그가 타고 있던 전함 듀크 오브 요크는 아직 200마일 밖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독일 해군 총사령관이었던 해군원수 카를 되니츠 제독은 샤른호르스트의 이 마지막 항해에 대해 훗날 자신의 전쟁 회고록에 '불운과 재난의 연속'이었다고 기록했으며, 당시 전단장으로 샤른호르스트 함과 함께 전사한 해군소장 에리히 베이 제독의 지휘에 관해서도 의문을 남겼다. 또한 앞으로 크릭스마리네의 모든 함들은 레이더 없이는 싸우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샤른호르스트가 자신의 최대 장점인 속력을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포위당한 이유가 바로 노포크와의 교전에서 레이더를 잃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만큼 레이더의 중요성을 알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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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해군의 포격을 받고 화염에 휩싸인 HMS 글로리어스, 샤른호르스트에서 촬영
그러나 샤른호르스트는 크릭스마리네의 전투함들 중에서는 가장 화려한 전과를 가진 전투함이다. 대표적인 전과가 1940년 6월 8일 자매함 그나이제나우와 함께 노르웨이 근해에서 영국 해군항공모함 HMS 글로리어스를 '''포격'''으로 격침시키고 예하 호위 전대(구축함 2척)를 전멸시킨 것. 글로리어스는 직접 포격으로 격침당한 최초이자 유일한 정규항모가 되었다.(호위항모까지 넣으면 갬비어 베이가 최후) 그리고 이때 샤른호르스트는 26km라는 역대 최장거리 명중탄[15]을 냈으며 포탄이 함상갑판에 명중해 아무 대처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하게 가라앉는다.[16] 이때 샤른호르스트는 HMS 글로리어스를 호위하던 구축함 HMS 아카스타에게 뇌격을 맞아 승조원 약 50명이 사망하는 참사도 있었으나 빠르게 복구해 큰 피해는 없었다. 또한 본 전투 직전 우연히 인근 해역에 머물던 영국의 호송선단 소속 수송선들과 대잠 호위함으로 징발되었던 트롤어선 십여 척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전과를 호위하던 구축함들(해전 이후 연료문제로 회항)과 함께 이룬 바 있었다.
자매함 그나이제나우 함과 함께 모범함정으로 지정되어 전 승조원이 대양 함대 휘장을 수여받았다.

5. 여담


건조 중이나 운용 중에 죽은 사람이 많고 그래서인지 귀신 들린 배라는 도시전설 비슷한 이야기도 있다. 대표적으로 대모의 자살인데, 이는 사실. 단치히 포격전에서는 이유없이 포가 폭발하고 환풍구가 고장나는 등 여러 인명사고도 발생하였다.
그 외에도 설계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과적상태가 발생, 보급품이나 연료를 적당히 실은 평소에도 반침몰상태로 항해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하고 정작 바다에서는 고장이 잘 나는 장비를 가득 가지고 있어서 상당한 애로가 꽃피었다고 한다. 당장 개수 때 2만 미터에 이르는 쓸데없는 전선을 제거하였다 등의 문구가 기록될 정도였다.
전쟁 당시 영국에서는 콤비로 통상파괴전을 벌이고 튀어버리는 이 두척을 신데렐라의 두 언니들에 빗대어 추한 자매들(Ugly sisters)이라고 불렀다. 함선 자체의 손꼽히는 미모를 생각하면 다소 아이러니한 명칭이다.
이 전함에 쓰인 주포를 육지에서 움직이게 하려는 페이퍼플랜이 있었다.
타미야의 1/700 함선 라인업 워터라인으로 샤른호르스트와 그라이제나우가 발매되어 있다. 그런데 '''순양전함'''으로 분류했다. 가격도 보통 전함의 가격인 3600엔이 아닌 주로 순양함의 가격인 2200엔이다.

6. 기타 매체에서의 등장


  • 월드 오브 워쉽에서 7티어 독일 프리미엄 함선으로 등장한다. 또 자매함인 그나이제나우는 업건 계획이 적용된 버전으로[17] 정규 7티어 전함으로 나왔다. 둘 다 재빠른 기동성과 충분한 내구도와 부포로 무장했으며 특장점으로 어뢰를 달고 있어 근접전에서 우위를 가져가기에 탁월하다. 특히 샤른호르스트의 경우 안 그래도 뛰어난 관통력을 가진 주포에 연사력까지 겸비해 순양함의 시타델을 쓸어버리고 전함은 연사력으로 피해를 누적시키거나 근접전을 강요해 어뢰로 박살내는 등 7티어 내 상당한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그나이제나우는 포문 수도 적고 집탄도 안 좋아 운용이 상당히 까다로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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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샤른호르스트 / 아래 그나이제나우)
  • Naval Creed:Warships에서 4티어 1차 전함으로 그나이제나우와 4티어 프리미엄 순양함으로 샤른호르스트가 등장하며 모두 측면에 어뢰 튜브가 설치되어있어 근접하는 적들에게 서프라이즈 선물로 어뢰를 날려줄 수가 있다. 다만 은근 관통력 좋은 전함들과 독일 담당일진 영전떄문에 근접전 능력을 못살리고 용궁가는일이 가끔씩 있다.
  • 워쉽 플릿 커맨드에서 샤른호르스트가 4성급의 전함으로 등장한다. 생존력은 높지만 구시대적인 설계사상이 반영되어 화력과 방어력은 동급 함선에 비해 약하다.
  • 지금은 서비스가 종료된 대만의 강철소녀전함의 순양전함으로 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가 등장했었다

[1] 나중에 개장하면서 16기로 늘어남[2] 350mm라는 얘기도 있고 320mm라는말도 있다. 자료마다 다르지만 공식 설계도에는 320mm라고 나와 있다는듯.[3] 38cm 함포 자체의 남은 재고가 없었다. 비스마르크급 전함에 사용할 함포가 더 급했기 때문.[4] 주포로만 따지면 알래스카급이 더 상위체급이다. 물론 장갑을 따지면 알래스카가 훨씬 밀린다. 갑판장갑만은 67~102mm로 샤른호르스트보다 더 두껍지만 현측장갑은 9인치 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샤른호스트의 경우 주장갑대가 대부분의 열강 주력전함들보다 훨씬 두꺼운 350mm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주포도 11인치 밖에 되진 않지만 누가 독일 전함 아니랄까봐 KGV의 14인치보다도 측면 관통력은 우수했다.[5] 독일 전함들의 주포가 대체로 그렇지만 현측타격능력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KGV의 14인치보다도 측면 관통력은 우수했다.[6] 실제로, 리나운에게 낸 명중탄은 선체를 관통해서 전치 1개월을 끊어주었다.[7] 교전 이전에 관측되었을때도 순양전함으로 보고되었다.[8] 리나운급 순양전함이 대표적이다. 주포 구경은 15인치에 달하지만 주포의 포문 수는 고작 6문 뿐이다.[9] 이는 독일 해군 전함과 순양함은 구식 설계, 즉 유틀란트식 설계를 채용한 방어 설계를 가지고 있었고 이런 방어 설계는 주로 '''저낙각탄'''을 주장갑대와 내부 경사장갑을 이용해 관통을 막는 방식으로 1920년대 당시의 저각포를 단 전함에 대해서는 확실히 뛰어난 방어 성능을 가지고 있으나, 1935년 이후 설계된 전함들, 이른바 '포스트 유틀란트'식 전함들은 대부분 '''대낙각탄을 이용한 갑판 및 구조물의 관통 혹은 무력화'''를 목적으로 한 상대적으로 고각의 주포를 채용하고 있었고, 이는 당연히 구식 설계의 취약점인 갑판이나 주장갑대 상부의 좁은 틈새를 공략하기에 좋았다. 시대가 변해 공격방식도 같이 변화했으나 독일은 이런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구식 설계를 그대로 채용한것. 만약 샤른호르스트급이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면 저만큼으로도 뛰어난 방어력을 가졌다고 평가받을 여지는 있었겠지만 시대의 변화에 알맞게 방어 변화한 방어구조를 반영하지 않고 구식 설계를 그대로 신형 전함에 건조한 이상 바이탈파트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고 봐야한다.[10] 무기대여법에 의해서 대규모의 수송선단이 북극해를 거쳐서 아르한겔스크와 무르만스크로 향했는데 이 수송선단은 주요 공격대상 중 하나였다.[11] 전함이 수송선단 잡으러 가는 게 폼이 빠져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게 독일 해군의 현실이고 한계였다. 정면에서 맞상대하기에는 양국의 전력차이는 대전 초기부터 확연했다. 비스마르크조차 최후 출격 내용이 통상 파괴였다. 그러나 이를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1차대전 때 독일의 경순양함 SMS엠덴의 전과를 보면...또한 통상파괴를 이용해 상대를 말려 죽이는 것은 의외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상대에게 장기적으로 큰 타격을 입히는 데 좋은 전략 중 하나이다.[12] 영국 함대의 순양함들은 어찌어찌 상대가 가능했으나 하필이면 나타난 게 '''4연장 함포를 달은 괴악한 놈이었다.''' 저 4연장 함포는 안 좋은쪽으로도 괴악해 제대로 작동되는 주포는 여전히 절반에 불과했지만 샤른 호르스트를 상대하기에는 그걸로도 충분했다.[13] 여기서 노포크를 날려버리고 최대 항속으로 튀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으나 당시는 악천후였고 자칫 발이 묶인다면 오히려 포위당해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영 좋지 않은 상황임은 분명했다.[14] 모두 부사관수병으로, 장교는 전원 전사했다.[15] 기록에 따라서는 HMS 워스파이트지중해에서 약 23km 떨어진 이탈리아줄리오 체자레를 명중시킨 것이 최장거리 명중 기록이라고도 한다.[16] 이 항모는 노르웨이 전역에서 철수하는 공군의 전투기와 조종사, 정비사 등을 태우고 있었는데, 항모에 동승한 공군 장병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항모 탑재 능력보다 전투기 숫자가 더 많아서 일부는 자력 비행해 영국으로 돌아갔는데, 힘들고 위험한 비행을 투덜거리며 해야 했던 공군 조종사들은 귀국 후 편하게 배타고 돌아간다며 좋아하던 동료 조종사들이 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소름끼쳤다고 한다.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17] 두 사진중 윗 사진의 연장포탑이 15인치 업건 계획으로 등장한 그나이제나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