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1. 소개
+1 仁王山/仁旺山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우백호.
[1]서울특별시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쳐있는 높이 338.2 m의 산(참고로 한양도성의 산으로는 북악산이 가장 높으며 인왕산과는 3.8 m 차이). 바위산이다. 진경산수화의 대표격으로 흔히 언급되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가 바로 인왕산을 그린 산수화.
예로부터 한자 표기는 仁'''王'''山과 仁'''旺'''山 모두 병기하여 쓰였으나 현재는 仁'''王'''山이 표준 표기이다. 항간에는 인왕산의 표기가 원래는 仁'''王'''山이었으나 일제강점기때 일제가 이를 억지로 仁'''旺'''山으로 바꾸었으며, 1995년에야 뒤늦게 원래 이름인 仁'''王'''山으로 되돌려 잘못을 바로 잡았다는 이야기가 떠도는데, 이는 명백히 근거없는 얘기이다. 仁'''旺'''山의 '''旺'''을 파자하면 '''日王'''이 되고, 이를 풀이하면 '''‘인자하신 일본왕의 산’'''이 되며, 이를통해 조선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식민사관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王'''을 '''旺'''으로 일제가 억지로 바꾸었다는 주장인데, 이 주장이 낭설[2] 인 근거는 여럿 존재한다('''일본어 잔재설''' 문서 참조). 이미 仁'''旺'''山이라는 표기는 일제강점기보다 200년이나 훨씬 앞선 '''영조실록'''#에도 등장하며[3] '''승정원일기'''에서는 仁'''旺'''山표기가 일제 강점기 이전, 무려 총 102회나 발견된다. 또한, 조선 순조 8년(1808)에 편찬된 '''만기요람 '''(萬機要覽)[4] 에서도 仁'''旺'''山이라고 표기돼 있다. 따라서, 일제가 멀쩡한 仁'''王'''山을 仁'''旺'''山으로 바꾸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며 근거없는 이야기 이다. 참고로 '''旺'''은 '혈기'''왕'''성하다' 할 때의 그 '왕'이며 어문회 2급자로 지정될 정도로 예로부터 인명용, 지명용으로 널리 쓰이던 한자이다.
이를 모르고 XTM 편성 잡식남들의 히든카드 M16 34회차 방영분(2016.9.5.)에서 "일제는 '''日王''', 즉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 시키기 위해, 仁'''王'''山이라는 우리의 이름 대신 仁'''旺'''山을 썼다.", "1995년에야 원래 이름을 되찾은 인왕산(仁'''王'''山)"이라고 언급하는 일이 일어났다. 심지어 인터넷 기사에도 버젓이 올라와버렸다. 망상 논리와 불필요한 피해의식으로 멀쩡한 한자에 누명을 씌우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와 같은 이유'''로 일제강점기 때의 일제는 '''旺'''표기를 불쾌하게 여겨 '''王'''으로 바꾼 사례마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경기도 의왕시의 표기인데, 기존에 儀'''旺'''市였던 것을 일제가 불경하다 하여 義'''王'''市로 바꿔버렸다. 재밌게도 훗날 의왕시청 측에서는 이 같은 사실에 무지하여 2007년에 원 표기인 儀'''旺'''市를 원래 이름으로 되돌린답시고 다시 義'''王'''市로 바꿔버렸다. (의왕시 한자 지명 '儀旺'을 '義王으로' 어때요? (오마이뉴스))실로 탁상행정이 아닐 수가 없다. '''한 마디로 일본어 잔재를 청산한다는 사람들이 원래 이름을 일제가 바꿨던 이름으로 다시 되돌린 것이다.'''
2. 상세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없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조선 시대에는 호랑이로 매우 유명한 산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리산이나 금강산이 훨씬 더 웅장해서 호랑이도 많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야산 격인 이 인왕산의 호랑이가 더 유명하다.[5] 정조 대왕 때만 해도 호랑이가 서울에 흔했고, 이들 호랑이가 민가는 물론 궁궐까지 난장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인 듯. 참고로, 1868년, 북악산 등에서 잡은 호랑이 다섯 마리를 마지막으로 도성 내 호랑이는 모두 사라졌다.
바위산이다보니 기암 괴석이 있고 암벽이 있어서 규모는 작으나 경관이 좋은 편이다. 다만 높이도 그다지 높지 않은데다 규모도 작아서 지형보다는 역사/문화 쪽으로 더 유명한 산이다. 사실 인근 주민이 아니라면 서울 사람에게도 존재감은 없는 산. 다만 택견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성지에 가깝다. 구한말 택견꾼들이 마지막까지 수련했던 곳이 바로 인왕산이었기 때문. 지금은 감투바위 수련터가 복원됐다.
사진 촬영이 많이 까다로운 곳이다. 이는 청와대 외곽 지역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때문에 청와대를 경호하기 위한 군사시설이 있다. 그래서 인왕산에 가면 산 중턱이나 정상에서 경비를 선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사진 촬영 금지 구역에서 함부로 사진을 촬영하면 이들에게 제지당한다. 이 문제 때문에 이따금 등산객과 군인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최근에는 청와대 방향이 아닌 경복궁과 도심 쪽으로 촬영하는 것은 거의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도심의 스카이라인과 야경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데에는 별 문제는 없다.
2.1. 겸재 정선과 인왕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고향이 바로 인왕산 옆 현재의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 등지.[6] 인왕산이 코앞인 데다가 동네 어디에서나 인왕산의 암벽이 보이는 곳이다보니 인왕산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잘 알려진 '''인왕제색도'''를 비롯하여 당대 장동팔경(壯洞八景)의 하나로 꼽혔던 인왕산의 수성동 계곡을 그린 그림도 유명하다. 실제로 2000년대에 아파트와 콘크리트로 복개된 수성동 계곡을 복원할 때 정선의 그림을 참고했을 만큼 사실과 비슷한 작품.
3. 인왕산의 명소
- 황학정: 인왕산 남쪽 기슭에 있는 활터로, 1898년 활쏘기를 장려하는 고종황제의 칙령에 따라 세워진 국궁장이다.
[1] 경복궁 정전에서 남쪽을 봐라 봤을때 오른쪽에 인왕산이 있기에 우백호이다. 마찬가지로 좌종묘•우사직에 해당되는 사직단도 인왕산 인근에 있다.[2] '''日王'''은 일왕, 곧 일본의 왕('''천황''')을 의미할 것이라는 흔한 망상 연쇄 논리이다. 그러나 일본 측에서는 ‘'''천황'''’도 아닌 ‘'''일왕'''’을 기리고자 '''王'''을 '''旺'''으로 고칠 이유가 없다. 일본 당국은 천황과 일왕을 전혀 다른 개념으로 보고 있으며, 실제로 현재까지도 '''日王''' 표기를 쓰는 한국 언론사 측에 '''‘천황’이라는 표기를 따르고 있는데 왜 자꾸 ‘일왕’이라고 하냐며''' 시정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그만큼 일본 왕실에서도 신과 동급인 하늘의 '''황제'''를 일개 '''왕'''으로 격하시키는 ‘일왕’ 표기를 대단히 불경스러운 행위로 여긴다. 한때 조선은 일본의 실권자인(다만 엄밀히 따지면 천황의 신하인) '''쇼군'''을 일왕으로 인식하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사회 정서를 일본에 밑도 끝도 없이 그대로 대입해 버리면서 만들어진 잘못된 루머이다.[3] 다만 딱 한 번 仁旺山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전부 仁王山으로 표기되어있기는 하다. 고종실록에도 마찬가지로 딱 한 번 仁旺山이라는 표기가 나오는데,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신뢰성의 문제로 정통 실록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는 논외로 한다.[4] 군정편(軍政編) 훈련도감(訓鍊都監) 조에는 왕을 호위(扈衛)할 때 척후와 복병이 지켜야 할 도성 분담 구역을 거론하면서 북악,인왕산,안현,돈의문 바깥 삼거리를 들고 있는데 여기서도 인왕산은 '仁旺山'이라고 표기돼 있다.[5] 태껸의 송덕기 옹의 별명도 인왕산 호랑이였다고...[6] 당시엔 '장동'이라고 불렸다.[7] 문학관은 과거 이용되던 상수도시설을 활용해 만들었는데,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18위에 오를 정도로 잘 지은 건물이니 방문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