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면
1. 개요
가평군에 위치한 읍면동 행정구역의 단위이며 군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면사무소 소재지는 신천리이다.
2020년 7월 말 기준으로 인구는 10,025명이며, 남자는 5,094명, 여자는 4,931명이며, 가구 수는 5,054가구이다.
2. 역사
백제시대에는 거사참(去斯緻), 항양(恒陽), 양근(楊根)군에 속해 있던 미원장(迷源莊)이었다. 757년 신라 경덕왕16년에는 빈양 (濱陽)군에 속해 있었고, 940년 고려 태조(고려) 23년에는 양근군에 예속되었으며, 그 후 광주부(廣州府)에 편입되었다가, 1175년 양근현에 감무가 부임하여 편입되고, 고종(고려)44년인 1257년 영화(永化)현의 감무를 받고, 1267년 위사공신 김자정(金自廷)의 고향이라는 덕으로 익화현(益化縣)으로 승격되어 현감이 부임하니 미원장은 익화현 북면이었다.
공민왕5년인 1356년 국사승(國師僧), 보우(普愚)의 세거지라하여 익화현은 양근군(楊根郡)으로 승격되고, 미원장은 미원현(迷源縣)으로 격상되었으나, 미원현은 인구가 희소하고 교통이 불편하여 현이면서도 양근군 감무의 지시를 받아야 했다.
효종(조선) 9년인 1658년에는 양근군과 더불어 지평군(砥平郡)에 예속되었다가, 현종(조선) 9년인 1668년 양근군에 감무를 받고, 영조4년인 1728년 양근군이 현으로 강등되고 미원현은 상북, 하북면으로 갈려 예속되었다.
영조17년인 1741년 양근군으로 다시 승격되고 미원현은 상도면 하도면으로 개칭되었다. 영조23년인 1747년 군을 갈산(葛山)으로 옮기고, 군수가 부임하여 미원은 상도,하도 그대로 두었다. 정조(조선)9년인 1785년에 강등되었던 현이 다시 군으로 승격되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미원현은 상도와 하도로 있었고, 계속하여 속현으로 예속되었다. 이때의 관할은 여주진(驪州鎭)이었다. 1895년 관재개혁에 의하여 양근군 설악면으로 개명되고, 1942년 행정개편에 의하여 설악면은 가평군으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1973년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 일부가 설악면으로 편입되어 이천리가 되었다.
3. 하위행정구역
- 신천리
본래 미원현이 있었으므로 미원(美元) 또는 현동이라 불리웠는데, 고려말기에 양평군에 편입되고 조선때 북면(북하도면)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사근천리, 신촌리, 한거리, 명자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촌과 사근천의 이름을 따서 신천이라고 부름. 설악면 주민센터와 설악버스영업소, 설악도서관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미원초등학교, 설악중고등학교가 있다. 서울양양고속도로의 설악IC가 있다.
- 선촌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울업리와 탐산, 탐선리, 석촌리, 명압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그중의 탐선리와 석촌리의 이름을 따서 선촌리라고 하여 설악면에 편입함. 또한 신선이 놀던 자리가 울업산 신선봉 에 있다하여 선촌리로 부른다고 하며 지금도 신선이 놀았던 자리로 추축되는 구덩이가 파헤쳐진 곳이 있다. 미원천이 흐르며 사회인야구장인 '가평무브베이스볼파크'와 이화여자대학교 수목원이 있다.
- 회곡리
본래 양평군 북하도면으로 회(檜)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라 하여 '회골' 또는 '회곡'이라고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회곡리'로 명칭이 정해져 현재에 이르고 있음. 북쪽으로 청평호와 청평댐이 있다. 화야산과 뾰루봉의 능선을 따라 청평면과 경계를 이룬다. 청평호반을 따라 펜션과 수상리조트가 줄지어있다. 회곡분교가 한때 있었으나 폐교.
- 사룡리
본래 양평군 북하도면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사점리, 용문천리, 소사리를 병합하고 사점과 용문천의 이름을 따서 사룡리가 됨. 청평호반을 따라 나있다. 신선봉터널을 지나 가평대교로 청평면 고성리로 연결된다.
- 송산리
본래 양평군 북하도면으로, 청평댐을 건설하기 전에는 땟목이나 배를 이용하여 서울이나 춘천으로 오고 갔는데 강원도에서 서울로 왕래하는 배사람들이 주로 지금의 송산리를 중간숙소로 이용하게 되면서 많은 주막들이 생겨나고 과객들이 노독을 풀기위하여 술을 마시고 노래(소리)를 하였다고 하며, 그후부터 '소리'라 칭하다가 '송산리'가 되었다고 하며 또한 소나무가 이곳에 많이 있다고 하여 '솔이'또는 '송산리'라고 불렀다고도 함. 청심국제중고등학교의 소재지로 알려져있음.
- 미사리
본래 양평군 북하도면으로, 미륵불이 있어서 '미사' 또는 '메수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운담을 병합하여 미사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평호 동편 미사천을 따라 나있으며, 미원초등학교 장락분교장이 있다. 서울양양고속도로 가평휴게소가 자리잡고 있다.
- 위곡리
옛날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하여 위육(位育)이라고 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위육(3 리), 위곡/도곡(1리), 창리(2리)를 병합하여 위곡리라 하였다. 장락산과 보리산이 있으며, 미원초등학교 위곡분교가 있다. 86번 지방도를 따라 널미재를 지나 강원도 홍천군 서면과 이어진다.
- 창의리
- 엄소리
본래 양평군 북상도면으로 무당이 빠져 죽었다는 '무당소' 또는 '엄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천안리 일부를 병합하여 현재의 엄소리가 되었다. 분교가 있었으나 폐교되었고 반딧불마을이 있으며 여길 지나면 설곡리와 묵안리가 연계된다.
- 설곡리
본래 양평군 북상도면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소설리와 설곡 , 음방 , 양방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이들중 소설과 성곡의 이름을 따서 설곡리라 하였고, 일설로는 소설리와 성내에 유독 눈이 많이내려 설곡이라 하였다고 함. 설곡천이 흐르며 미곡천으로 흘러들어간다. 동부에 봉미산이 있다. '밥퍼목사'로 유명한 최일도 목사의 다일공동체 자연치유센터가 산자락에 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UFO 사진이 찍힌 곳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가평 UFO참조. 설악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학생수 부족으로 분교가 되었다가 폐교되었다.
- 묵안리
- 가일리
마을한복판에 아가위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어느 나그네가 정자밑에서 쉬어가면서 가정(嘉亭)이라고 부를만하다고 한 후 '가정'으로 써오다가 지금은 가정(可亭)으로 쉬운 글자로 바뀌어 쓰게되고, 지명도 가정이 있는 동네라고 하여 가정리로 됨. 또한 윗가정 동남쪽에 대일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대일이란 숨어살기에 좋은 외딴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옛날 검사가 나면 큰 동네라고 하였는데 이마을에서 이(李)검사가 나와 대일이라고 불려졌다는 설도 있다. 유명산자연휴양림, 어비계곡, 가일미술관이 있으며 펜션과 캠핑장이 즐비하다. 37번 국도를 통해 선어치를 지나면 양평군 옥천면으로 이어진다. 한때 가일분교가 있었으나 폐교되었다.
- 방일리
옛날부터 밤(열매)이 많이 나는곳이라하여 '밤자골'이라고 하다가 '밤일' 또는 '방일'로 되었다.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생방리, 음방리, 양방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방일리'라 하고 가평군 설악면에 편입함. 방일초등학교, 신가평변전소가 있다. 중미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있다. 그 외엔 해장국으로도 유명.
- 천안리
본래 양평군 북상면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불기리(또는 부지리), 천현리 일부를 병합해서 천현과 안성골의 이름을 따 천안리라 부르게 되었다. 곡달산과 통방산이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용문산전투가평지구전적비가 있다.
- 이천리
본래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의 일부였으나 1973년 7월 1일 대통령 제6542호에 의하여 노문리의 일부였던 영천, 배치 왕배지역을 가평군 설악면으로 편입하고, 배치의 배 이(梨)자와 영천의 천(泉)자를 합하여 이천리라 명명한것임. 스위스 에델바이스마을과 프리스틴밸리GC, 화야산과 곡달산이 있다. 다락재를 넘어가면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와 이어진다.
4. 교통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생긴 이후 서울로 나가기 매우 용이해졌다. 설악IC를 통해 서울 출입이 용이하다.
설악IC나들목에는 설악(가평군)으로 표기되어있는데, 이곳과 많이 오해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잠실로 가는 광역버스편이 생겨서 서울로 왔다갔다하는 점에 있어서 조금 개선된 부분이 있다.
국도로는 86번 지방도를 통해 이동하거나, 청평으로 나가서 46번 국도나 45번 국도를 이용하여 이동 할 수 있으며,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기 때문에 교통은 매우 열악한 곳이다.
5. 출신인물
조세희
[1] 28행정리 75반[2] 2021년 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