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널족
1. 개요
Sentinelese
인도의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에 속한 노스 센티널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원시 부족. 세계에서 현재까지 가장 고립된 것으로 유명한 미접촉부족이다.
이들 숫자가 정확히 얼마인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는 일절 모른다. 대략 50~200명 사이일 거라고 추정만 하고 있다. 인도 정부에서 외부인 접근을 철저하게 막기 때문이며, 센티널족도 외부인의 접근에 매우 공격적인 태도를 보임과 동시에, 굳이 섬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가 이 영토를 국제 사회에서 인도령으로 인정받는 대신, 이들의 생활에 일절 끼어들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해외 취재진과 인류학자, 오지를 찾아가는 개신교 선교사들도 강제로 막아, 그들에 대하여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센티넬족을 인도 정부에서 격리 조치하는 이유가 또 있다. 부족민들이 질병에 대해서도 면역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외부와의 접촉이 치명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1]
이들 외에도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에 사는 숌펜 족을 비롯하여 옹게 족, 자라와 족같은 이들이 여러 섬에 고립되어 자기들의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부족들은 짧게는 십수 년, 길게는 백여년간 탐사팀과 외부인들이 여러 차례 다녀가 개방이 된 편이지만, 센티널족은 영국 식민지 시절의 영국조차도 자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지구상에서 정말 찾아보기 어려운 원시 생활을 유지하는 고립된 부족으로 관심을 모은다.
2. 생활상
문명 수준은 중석기 시대 정도로 추측된다. 농업을 모르고, 수렵채집으로 활과 화살을 이용해 섬의 동물을 사냥하거나, 해산물을 채집하는 듯하다. 다만 금속의 가치를 이해하는 듯하여, 수집한 금속을 이용하여 무기 등을 제작한다고 알려졌다.
옹게족들과 음식, 장식, 물질문화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카누의 외형 또한 이들과 유사하다. 또한 활에 그려진 문양 또한 자라와족과 유사하다고 한다. 화살촉과 칼날은 다른 안다만 민족들의 것보다 크고 무거운 편이다.
잎으로 된 지붕이 비스듬히 덮인 작은 오두막에서 거주하며, 카누는 어획용으로만 쓸 뿐, 섬을 횡단하는 용도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또한 남녀 모두 나무껍질로 만든 끈을 매고 있으며 남성들은 허리띠에 단검을 끼우고 있다. 목걸이나 머리띠 등의 장신구를 하나 기본적으론 나체로 다니며 사망한 친척의 턱뼈를 차고 다닌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2014년 주항[2] 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평균 키는 160-165cm 정도로 추정된다. 또한 다른 안다만 민족들처럼 어둡지만 광택있는 검은색 피부를 지녔으며, 근육이 두드러진 체형이라고 한다.
3. 근원
제대로 연구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들이 얼마나 외부와 고립되었는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다. 일부 보고서에서는 최대 6만 년 또는 수만 년 정도 고립되었다고 주장하기는 하나, 널리 통하는 주장은 아니다.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의 원주민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인류학자 Vishvajit Pandya에 따르면 그보다는 훨씬 최근에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에서 표류하거나 이주했다고 추정한다.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에 오스트랄로이드계 민족들이 정착했을 때 분화된 무리라는 듯. 물론 최근이라고 해서 1, 2백 년 전쯤에 온 것이라는 소리는 아니고, 대략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민들과 같이 2만 년 전에 섬에 정착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연구에 따르면, 안다만 니코바르 원주민이 Y 염색체 하플로그룹에 따라 26,000년 전에 정착한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센티널족도 그 정도의 역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정체는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에 정착하여 각 섬으로 흩어진 오스트랄로이드계 주민들 중의 한 부류의 후손인 만큼, 이는 당연한 얘기다.
언어는 센티넬어(Sentinelese language)를 사용하는데,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 영국령 시절 탐험대에서 통역 목적으로 데려간, 섬 인근의 현지 부족인 옹게족 사람과도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았다고 하니 고립된 기간이 상당히 길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4. 외부인과의 접촉사
1967년 탐험대의 일원으로 인도의 인류학자 T.N. 판딧이 방문한 적이 있다. # 하지만 이 때 센티널족은 활과 화살로 무장하고, 호전적인 태도를 보여 제대로 접촉하지 못했다고 한다.
1991년에 T. N 판딧이 포함된, 인도 정부 조사단이 현지인들을 만나 교류를 하며 그들의 생활 양식을 어느 정도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를 위해 조사단이 코코넛 등을 포함한 선물을 17년 동안이나 놓고 가는 등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였다.
1981년 화물선 Primrose가 센티널 섬 근처에서 좌초되었는데, 구조되기까지 거의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호시탐탐 침공을 시도했으나 거센 파도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한다. 선박의 해체를 맡은 업자들이 도착하였을 때도 썰물에 맞춰 센티널족들이 접근했으나, 작업자들이 챙겨온 바나나를 보이고 싸울 의지가 없음을 통보하자 화물선에 올라와 별다른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18개월 동안 작업을 하는 동안 센티널족들은 월 2~3회씩 방문하여 금속 조각을 모아갔다.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으로 일어난 쓰나미, 해일이 이 해역을 휩쓸고 가면서 인도 해양경비대가 헬리콥터를 타고 수색하다가, 센티넬 부족의 섬을 둘러보던 해양경비대 아닐 타플리얄 부대장은 센티넬 섬의 해변에서 벌거벗은 한 남자를 발견했는데, 그는 헬리콥터를 향해 화살을 쏘며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냄을 목격했다. 이들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추정될 뿐, 여전히 지금도 신비에 싸인 생활을 하고 있다.
2년 뒤, 두 인도 어부가 술에 취해 잠드는 바람에 표류해서 여기에 왔다가 주민들에게 그 즉시 살해당했다. 시체를 찾으러 온 헬리콥터에게도 활을 쐈다고. 출처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pp. 119~120, 이 책에서 출처로 주석으로 단 것은 이코노미스트 2007년 10월 19일자 "Noble or savage?" 기사로 나왔다. 언론보도로 확실히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더불어 저 어부들의 정체는 관련 보도 내용에 따르면 불법으로 어업을 하는 이들이라고 한다.
인도 정부에서 이들의 생활 및 의료 실태 파악과 인구 조사를 위하여 몇 번 접촉을 했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들이 코코넛과 과일, 도끼 등 선물을 놓아두고 우호적인 접근을 시도했지만, 죄다 화살을 쏘면서 경고했기에 주저 없이 물러서야 했다고 한다. 사실 인도 정부가 군경을 동원해서 원주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한다면야 못할 것도 없겠지만, 이들이 섬 밖으로 나와서 누굴 해친 것도 아니고, 섬 안에서 자기들끼리 행복하게 살겠다고 저러는 것 뿐인데 진압해 봐야 세계 여론과 인류학계의 질타를 맞을 것이 뻔하다. 또 인도 정부에서도 접촉하지 않고 이들을 가만 놔두기만 하면 알아서 자급자족하고 밖으로 나오려 하지는 않기에 방치하는 것에 가깝다. 식인이라던가 뭔가 전인류적으로 용납 못할 위험 요소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런 게 발견된 것도 아니다. 다만 주변을 순찰하는 인도군이나 인도 해경을 몇 번 공격한 적이 있는데, 이럴 때는 위협을 목적으로 경고 사격 정도는 한다고 한다. 물론 사살은 엄금.
이런 상황에서 원주민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건, 국가 차원의 군대보다는 해적과 같은 별도의 무력 집단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노스 센티널 제도는 해적들이 들끓는 말라카 해협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고, 무장도 원시적이고 인구도 소수에 불과할 이들에게는 소수의 해적 집단만 해도 매우 위험한 상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침공해봐야 현대에 이익이 될 만한 생산품도 없을 테고, 함부로 침입하면 섬의 법적 주인인 인도 정부의 공권력을 상대해야 할 테니, 해적들도 쓸데없는 곳에 힘 뺄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2018년 11월 21일, 한 미국인 선교사가 이 부족에 선교를 시도했다가 화살에 맞아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BBC 등을 통해 보도되었다. # 마침 이 선교사가 사망 며칠 전 SNS 계정에 ''''하나님의 이름을 들을 기회조차 없던 사탄의 마지막 요새'''' 운운하는 글을 올려놨고, 어부들을 매수하는 등 여러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간지라 자업자득이라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결국 그는 2018년에 다윈상을 수상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