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 센티널 아일랜드

 

노스 센티널 아일랜드(섬)
North Sentinel Island

'''국가'''
인도
'''면적'''
약 60 km²
'''인구'''
최대 400여명
'''언어'''
센티널어
'''시간대'''
UTC+5:30
'''한국과의 시차'''
3시간 30분
North Sentinel Island
1. 소개
2. 생활상
2.1. 외부인을 대하는 태도
3. 사건 사고
3.1. 구글 지도 트롤링
3.2. 미국 선교사 살해 사건
4. 기타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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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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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에서 바라본 풍경. 섬 전체에 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기 때문에 내부를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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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 동부 벵골 만에 있는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포트블레어가 있는 남안다만 섬으로부터 서쪽으로 30 km 정도 떨어진, 면적 59.67 km²의 유인도이다. 51.18 km²인 백령도보다 조금 크고, 72.56 km²인 울릉도보다 조금 작다. 서울특별시의 약 10분의 1 정도. #
이 섬은 산호초에 둘러싸여 있으며, 배를 댈 만한 천연항구가 없다. 해변은 모래사장인데, 해변에서 한 1 km~1.5 km쯤 들어가면 숲이 빽빽한 절벽이 나온다. 최고점은 122 m.
'노스'라는 명칭답게 남쪽에 '사우스 센티널 섬'도 있으나 넓이는 1.61 km² 정도에 불과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타' 문단에 있다.

2. 생활상


'센티널족'으로 불리는 오스트랄로이드 계열 원시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6만 년 넘게 현재도 고립되어 있다. 니코바리인 같은 외부인이 옛적부터 제도 곳곳에서 도적질을 한 이유도 있고, 식민지 시절의 영국군이 제도에서 벌인 무력 시위, 특히 모리스 비달 포트먼(Maurice Vidal Portman)이 이끄는 탐험대가 1880년에 여기서 6명을 납치했고, 면역력이 떨어진 노인 부부는 병사했고, 4명의 아이들에겐 선물을 줘서 돌려보냈다. 하여간 이 사건은 노스 센티널 아일랜드의 원주민들에겐 큰 트라우마가 되었기에 외부인을 극도로 배척하게 된 것이다.[1]

1974년안다만 니코바르 제도 사람들을 다룬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Man in search of Man - Andaman Peoples'의 끝 무렵에 해당 섬에도 접근을 시도했는데 두어 명이 이를 발견하였고, 이내 열댓 명이 나와 환호 또는 과시용 춤을 추면서 제 키만큼 큰 화살을 쏘았다. 게다가 12분 57초 쯤은 2.5미터 가량의 창이나 작살 같은 화살이 나오고, 이것이 스태프의 허벅지를 뚫었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2] 하여간 이 영상 내용처럼 외부인은 닥치고 공격한다. 그래서 어지간한 방호를 갖추지 않으면 접근이 어렵고, 인도군이나 해양 경비대가 철통 같은 경비로 이곳으로의 진입을 강력하게 막으며, '''세계에서 방문하기 가장 힘들고 미스터리한 섬'''으로 SNS를 거쳐 잘 알려져 있다.
이 와중에 인도 정부는 꾸준히 조사팀을 보냈는데, 첫 방문은 1967년에 이뤄졌으나 원주민들은 정글 속에 숨어버렸다. 1970년과 1973년 재방문 때엔 화살을 쐈다. 하지만 1974년부터 선물을 해변에 지속적으로 놓고 간 결과, 원주민들이 상당히 호의적으로 변했다고 했다. 특히 현지에 없는 코코넛을 좋아했다고.
비교적 우호적인 접촉은 조사단보다 약간 앞선 시기에 이루어졌다. 1981년은 화물선 Primrose가 센티널 섬 근처에서 좌초되었는데, 구조되기까지 거의 일주일 동안에 원주민들이 호시탐탐 침공을 시도했으나 거센 파도로 인해 접근하지 못하였다. 반면 선박의 해체를 맡은 업자들이 도착하였을 때 역시 썰물에 맞춰 센티널족들이 접근했으나, 작업자들이 챙겨온 바나나를 보이고 싸울 의지가 없음을 통보하자 화물선에 올라와 별다른 가해를 않았다. 장장 18개월 작업 기간에 센티널족들은 월 2~3회씩 방문하여 금속 조각을 모아갔다고 했는데, 이로써 센티널족이 금속의 가치를 이해하고 수집한 금속으로 무기 등을 제작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화물선의 선원들은 그 뒤에 무사히 구조되었다.
인도 정부의 조사팀과의 신뢰가 충분해진 뒤 1991년, 연구자 Trilok Nath Pandit이 속한 조사팀은 섬에 상륙해 28명의 무장하지 않은 현지인들과 만났고, 대화하고자 이들 역시 옷가지를 거의 벗었다. 묻지마 공격으로 조사단들의 진입을 거부하고 내쫓던 옛날에 비하면야 장족의 발전이다. 이 조사는 1997년에 종료됐으며, 이 사람들의 문화와 언어를 세밀히 연구하는 데까진 실패했고, 그저 어떻게 사는지만 간단히 조사했다. 이 때 섬을 방문한 사람들은 드물게 이 섬을 찾아가서 안 죽고 돌아온 외부인들이다. 이 25년짜리 이야기는 2018년에 한 미국인이 이 섬에 선교하러 가서 비명횡사한 사건 때문에 이 섬에 갔다가 살아돌아온 연구자의 이야기를 재조명한 기사에 실려 있다. 선교사 관련 내용은 아래에 있다.
이렇게 취합된 이들의 생활상은, 농업 개념이 없어 해산물물고기가 주식이고, 숲에서 야생돼지와 큰 도마뱀도 사냥한다. 또한 불을 이용하지만 지피진 못하며, 좌초된 배의 잔해에서 철을 채취해 화살촉으로 쓴다. 숫자는 둘까지 세며, 그 이상은 많다고 여긴다. 인구는 100명 이상이며[3], 세부적인 사회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신석기 시대 정도로 추측된다.
접촉한 사람들은 센티널어가 지금껏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언어라고 했다. 본래 '센티널'은 영어로 감시병, 보초병이란 뜻으로 외부에서 임의로 붙인 명칭이고, 원주민들의 행동 때문에 정정할 수가 없다. 일단 추정되는 바로는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의 다른 언어들과 같은 안다만어족에 속한다고 여겨진다.

2.1. 외부인을 대하는 태도


다만 그 호의는 그 옛 조사단 한정이고, 외부인에게서의 적대감은 여전해 2004년에 발생한 남아시아 대지진 당시의 이 섬도 (빽빽한 정글 때문에) 크지는 않지만 다소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돼 조사를 위해 헬기를 보냈으나 여전히 제 키만한 화살을 쏴대는 통에 자세한 피해 내역 조사나 구호를 포기하고 알아서 복구하도록 방치해버렸다.
그래서 인도 및 니코바르 제도 자치 정부는 센티널족들에게의 접촉과 간섭을 더는 추구할 의지가 없다고 2005년에 공표했다(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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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2006년 1월 26일, 술에 취한 채 불법으로 어획을 하던 48세의 순데르 라즈드크(Sunder Rajdhk)와 52세 폰디트 티와리(Pondit Tiwari)의 첫 번째 사진의 배가 이 섬까지 떠밀려갔는데, 이를 본 원주민들은 하던 대로 이들을 바로 죽였고, 시체를 회수하러 온 인도군마저도 이러는 식으로 거부해 돌아왔다.[4] 인도군이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제압하고 시체를 가져올 수 있으나[5] 이는 세계 인류학계의 비판 및 인권 문제로까지 비화되기 때문에 그러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기사. 그리고 2020년 현재도 구글 지도그 좌초 배를 위성 사진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사진의 좌초 배는 이들보다 앞서 1981년 좌초 배인 프림로즈이며, 이 배의 선원들은 위 내용처럼 헬기에 무사히 구조되었다. 해당 기사 1, 해당 기사 2. 섬의 북서쪽(11시 방향) 끝에 위치.
또한 섬 주민들이 항공기 소음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하루에 이 섬 위를 통하는 항공기만 해도 100대가 넘는다.[6] 하지만 본인들이 교류를 거부하니 스트레스를 받아도 호소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만약 이 외부인을 대하는 특유의 공격적인 태도가 자신들의 섬을 벗어나 육지까지 건너와서 약탈을 하거나, 지나가는 주변 배들에 해적 행위를 하거나, 순찰중인 인도 해군이나 해양경비대를 공격하는 행동 등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었다면 진작에 없어졌을 섬이다. 원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 섬은 현재 인도의 영토인 만큼 이렇게 뒤집어도 전쟁 활동이나 침략이 아니라 국가의 내부 치안 활동으로 분류될 것이다. 자기네 영토 안에서 하는 일이니 설령 반격할 수도 없는 원주민들 때려 잡는다고 욕을 먹을 순 있어도 그게 끝이라는 것. 국내 문제라 복잡한 외교관계도 따질 필요 없어서 수틀리면 인도군이 전투기 한 대 끌고 가서 섬 자체를 뒤집어버리면 끝날 일이고, 자연적, 문화적 가치를 조금 신경 써서 최대한 파괴 안 하는 쪽으로 결정하면 특수부대 파견해서 정교하게 뒤집으면 끝날 일이다.
어찌 되었건 현대의 기술력으론 늦어도 몇 시간 내에 섬을 장악할 수 있다. 그러나 섬에서 나오지도 않고 딱히 이렇다할 피해도 끼치지 않는 사람들을 이렇게 했다간 국제적 지탄은 당연하고 쓸데 없는 낭비가 될 것이다. 이렇듯 굳이 건들 가치가 그리 크지 않다고 판단, 현재는 사실상 방치 상태다.

3. 사건 사고



3.1. 구글 지도 트롤링


구글 지도가 누구든지 위치를 추가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걸 이용하여 누가 이 지역에 공원을 하나 등록했는데 그게 시초로 많은 장난성 장소가 연이어 등록되었다. 개드립들이 판을 친 리뷰들은 덤. 사실 이런 리뷰들은 부족민들의 편견에 기반해서 인종차별적으로 마구 적은 농담류이기에 보기에 따라 매우 불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내 친구가 여기 갔다가 잡아먹혔어요' 같은 리뷰. 섬 부족민들이 외부인에 대해서 극도로 적대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식인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전혀 확인되지도 않았다. 이 사람들이 섬 안을 조사해서 사실을 밝혀야 편견을 깰 수 있겠지만, 애초에 뭐가 뭔지도 모를 테니. 바도 하나 등록되어 있었고, 최근엔 모스크(...)와 주유소가 등록되었었고, 심지어 '''스타벅스애플 스토어, 맥도날드 까지 등록되었었다.''' 이렇게 추가된 장소의 평점엔 개드립들로 도배되었다.
보다못한 구글이 이를 제거했고, 더 이상은 이 지역에 무엇을 등록하려 하면 심사단계로 넘어가는데, 이 섬에 장소를 추가할 수 없게 되자 이런 트롤들은 사우스 센티널 아일랜드와 평양[7] 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역시 마찬가지로 여기도 구글의 칼질을 받았다. 구글의 제거 행위를 보고 트롤러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구글에 항의했지만, 구글은 구글 정책 위반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내놓았다.[8] 홈페이지까지 개설해놓은 정성도 있다.

3.2. 미국 선교사 살해 사건


알라바마 출신의 미국인 선교사 존 앨런 차우(John Allen Chau)는 2018년 어느날에 노스 센티널 아일랜드 소식을 들었고, 이들에게 현대 문명과 개신교를 전하고자 가위축구공을 가지고 인도로 갔다.
이 집념의 사나이는 이미 한 번 상륙에 실패했지만 그 해 11월 어느날에 지역 어부들을 매수해 인도 해군의 경계망을 피해 몰래 섬에 다가갔고, 섬 근처에서 인도 어부들이 진입을 거부하자 혼자 카약으로 옮겨타 노를 저어가며 기어코 섬에 들어갔다. 물론 이렇게 요란하게 상륙했으니 원주민들이 못 보는 게 더 이상한 일. 차우 선교사는 당연히 상륙 예상지점을 뒤지던 원주민들에게 걸렸고, 마주치자마자 화살 세례를 받고 그대로 붙잡혀 목에 밧줄이 걸려 끌려다니다가 살해당했다(향년 26세, #1, #2). 그가 사망 며칠 앞서 SNS 계정에 ''''하나님의 이름을 들을 기회조차 없던 사탄의 마지막 요새''''라는 글을 올린 것을 보아 여론은 자업자득이라고 평했다. 위키백과 해당 사건 설명으로는 더 황당한데, 인도양 안다만어족인 센티널족들에게 남아프리카의 코사어로 대화를 시도했고, 심지어 그가 들고 있던 성경 책에 센티널족이 화살을 쏘았으나 또 방문해서 사망했다고 했다. 당연히 불법임을 안 상태로 죽을 생각까지 하고 갔음이 명백하게 밝혀진 상태이다.
덤으로 그가 보균자였어도 문제가 됐을 텐데, 시체를 그대로 방치하거나 식인하여 (유럽 풍토병에 면역이 없던)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들처럼 떼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지 말라는 곳에 기어이 가서 사망해서 그는 다윈상받았다.[9] 점수는 그렇게 받기 힘들다는 9.0점을 받았다.[10]
인도 정부는 시신 수습에 따르는 센티널족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시신을 수습하지 않고 살인 혐의로 기소나 수사를 안 한다 했으며, 인도 경찰은 난처한 상황 속에서 그의 입도를 도와준 어부들을 검거하고 체포했고,[11] 미국 정부도 부족민에게 살인 혐의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은 원래 자국민이 해외에서 살해당하는 것에 강경하게 대응하지만, 센티널섬은 주권국가도 아닌 일개 부족이 사는 곳이고, 본인들이 화살을 쏘며 오지 말라고 하는 곳에 기어이 불법으로 들어가서 죽음을 자초한 선교사의 책임도 크며, 굳이 처벌하고자 공권력을 투입해도 센티널족들은 현대법은커녕 중세법도 모르며, 말조차 안 통하니 책임 소재가 애매한 상황이어서 현지 정부의 판단을 존중해준 것이다.[12] 참고 뉴스 1, 참고 뉴스 2.

4. 기타


사실 인도 정부가 센티널족을 내버려둔 건 법적 문제이기도 하다. '''인도 정부는 센티널 섬을 센티널족의 동의 없이 인도 땅으로 지정했는데,''' 센티널족이 섬 밖으로 나와서 자기들 땅이 자기들 모르게 인도령이 됐음을 알고는 자기들은 인도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독립을 요구하면 지리적 위치의 문제가 있기도 해서 쉽게 독립시킬 수 없는데 억지로 땅을 유지하려니 국제법상은 골치가 아파질 수 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 안에서 살다가 죽으라고 방치한 셈.
코난 도일네 개의 서명에서 이곳이 언급된다.
2018년 11월 25일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방영되었다.
사우스 센티널 아일랜드는 이 섬에서 59.6 km 정도 남쪽에 있는, 넓이가 약 1.6 km²인 작은 섬이다. 지도를 보면 '센티널'이라는 이름이 아니면 한 카테고리로 연상하지 못할 만큼 노스 안다만 섬은 안다만 섬 본토에, 사우스 안다만 섬은 리틀 안다만 섬에 가깝고, 두 센티널 섬간의 거리는 훨씬 멀다. 사우스 센티널 아일랜드도 노스 센티널 아일랜드처럼 숲이 우거져 있지만, 노스 센티널 아일랜드와는 달리 거주민이 없는 무인도이고, 사전에 인도 정부에서 허가를 받으면 들어갈 수 있다. 대개 레저 스포츠를 하려는 사람들과 생태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가끔씩 들른다.

5. 관련 문서




[1] 즉 이 대영제국 시절의 사건으로, 부족 내에서 '섬 바깥에서 온 자'들을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는 식의 이야기가 대대로 구전되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2] 다행히도 사망까지는 안 갔으나, "He will carry this scar till his death."(평생 흉터가 남을 것이다)란 말이 나왔을 만큼 큰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사실 이 스태프는 대단히 운이 좋았는데, 허벅지 문서에도 서술됐듯이 대동맥이 끊기면 십중팔구 과다출혈로 사망할 수 있다.[3] 지나친 유전적 기형과 근친 교배를 피할 수 있는 존재 가능한 집단의 최소 크기는 160명 정도이다.[4] 아직도 이 진위 여부에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Survival International, Telegraph 등의 단체 및 외신의 보도가 확인됨에 따라 사실로 판별되었다.[5] 설령 직접적 살상 무기의 사용은 자제해도 최루탄, 고무탄 등의 비치사성무기를 멀리서 날려보내면 못할 것도 없다.[6] 주로 싱가포르항공 유럽 노선이 지나간다.[7] 대표적으로 평양 곳곳에 김정은을 놀리는 이름(Ex: 맥도날드 주체사상점, 맥도날드 돼지점) 으로 된 맥도날드나 버거킹 지점 수십곳이 등록되어 있다.[8] 사실, 완벽한 자유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는 식으로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면 윤리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 애당초 명확한 사실을 적시할 이유가 있는 지도에 이런 엉터리 정보를 마구 등록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9] 다윈상의 수상 조건에 사람한테서 죽은 것은 제외라는 말은 없다. 사람한테서 죽은 것은 대개 고의는 아니지만 이것 말고도 여럿 있고, 다윈상의 조건상으로 사람한테서 고자가 되어 다윈상을 받은 사람도 있다. '다윈상' 문서 참고.[10] 9.0점대를 받은 또 한 명은 한국인 이 모씨. '서대전네거리역 추락사고' 문서 참고.[11] 상술했듯이 인도 정부에서는 허가 없이 입도하거나 섬 원주민들과 접촉하면 징역 3년 이하의 실형에 처한다.[12] 반면에 비슷한 사고를 친 적이 있는 북한 정권, 탈레반 정권은 국가 또는 그에 준하는 집단이어서 책임을 묻고 직접 조지고 부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