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안데르송
1. 개요
브라질 국적의 축구인이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스위스 내셔널 리그의 세르베트 FC에서 첫 시즌 18골을 넣었고, 두 번째 시즌 상반기에만 11골을 넣어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스위스에서의 활약으로 프랑스의 명문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 입단했으나 마르세유가 뇌물 스캔들로 인한 징계로 강등 당하면서 6개월만에 AS 모나코로 이적했다.
모나코에서의 첫 시즌인 1994-95 시즌 16골을 넣었고,
1995-96 시즌 리그에서만 21골을 넣어 프랑스 디비시옹 1 득점왕에 올랐다.
1996-97 시즌에는 47경기에 나서 27골을 넣는 활약으로 모나코에게 리그 우승을 안겼다.
모나코에서 세 시즌동안 113경기에 출전하여 66골을 기록했다.
모나코에서 보여준 경쟁력을 인정 받아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였다. 첫 시즌인 1997-98 시즌 리그 초반 3경기에서 2골을 뽑아내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이후 루이스 엔리케와 파트릭 클라위베르트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해 리그에서 넣은 10골을 포함하여 37경기 11골에 만족해야 했다.
두 번째 시즌인 1998-99 시즌에는 루이 판할 감독과의 트러블까지 겹치면서 31경기 10골에 그쳤고 1800만 유로에 프랑스의 올랭피크 리옹으로 이적했다.
리옹에서의 첫 시즌인 1999-00 시즌 32경기에 출전하여 23골을 넣었고, 2000-01 시즌 29경기에 출전하여 22골을 넣어 두 시즌 연속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러한 안데르송의 활약들로 리옹은 리그앙 2연패를 달성했다. 리옹에서 총 160경기 94골을 기록했으며 다시 스페인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비야레알 CF로 이적했다.
비야레알에서의 첫 시즌인 2003-04 시즌 리그에서 12골을 넣었고, UEFA컵에서 6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에 오르는 동시에 비야레알의 UEFA컵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카타르에서 말년을 보낸 뒤 2006년 은퇴하였다.
2.2. 국가대표 경력
1997년 8월 친선전을 앞두고 마리우 자갈루 감독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에 승선했다. 8월 10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 선발 출전하면서 데뷔하였고 이 경기에서 죄측면에서 낮게 깔려오는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크로스를 골로 연결시켜 국가대표 데뷔골이자 마지막 골을 기록하였다.[2] 이후 호나우두, 베베투와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에 밀려 가끔 보결 자원으로 국가대표에 차출되었으며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에서의 출전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였다.
3. 기록
3.1. 대회 기록
- CR 바스쿠 다 가마 (1988~1991)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1989
- 비야레알 CF (2003~2004)
- UEFA 인터토토컵: 2003, 2004
3.2. 개인 수상
- 스위스 슈퍼 리그 득점왕: 1992-93
- 스위스 슈퍼 리그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 1992-93
- 리그 1 득점왕: 1995-96, 1999-00, 2000-01
- 리그 1 에투 알 도르: 1995-96
- 리그 1 베스트 플레이어: 1996-97
- UEFA컵 득점왕: 2003-04[3]
- 카타르 스타즈 리그 득점왕: 2004-05[4]
4. 여담
[image]
앙투안 그리즈만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선수였다. 왼쪽의 아이가 그리즈만이다.
[1] 격투기 선수 앤더슨 실바와 본명이 같다.[2] 이 골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참고로 동점골은 호나우두의 PK 골이었다.[3] 6골[4] 20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