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 자갈루
1. 개요
브라질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00년부터 2001년까지 CR 플라멩구 감독, 2002년에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대행을 맡았다.
FIFA 월드컵 역사상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우승한 최초의 인물.[5]
2. 축구인 생활
2.1. 클럽
1948년 아메리카 FC에 데뷔한 자갈루는 1년간 뛰다가 1950년에 CR 플라멩구로 이적하여, 1953년부터 1955년까지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에서 3연패를 이끌었다.
이후 1958년에 보타포구 FR로 이적하여 1962년에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리그, 리우-상파울루 토너먼트를 비롯한 6개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클럽 축구 역사상 최초의 6관왕을 달성한다. 이후 1965년에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1958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한 자갈루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해 웨일스와 프랑스를 꺾고, 결승전에서는 개최국 스웨덴을 상대로 펠레, 바바, 그리고 자갈루 본인이 골을 넣으며 5:2 대승을 거두며 브라질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끈다.
1962년 칠레 월드컵에도 참가했는데, 조별리그에서 펠레가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겪게 되지만, 아마리우두가 펠레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고, 가린샤가 제대로 폭발하여,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스페인을 상대로 아마리우두가 2골을 넣어[6] 2:1로 승리했다.
이후 8강에서 잉글랜드, 4강에선 칠레를 꺾고 브라질은 다시 한번 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전 상대는 체코슬로바키아였고, 요제프 마소푸스트에게 선제골을 먹혔으나, 브라질은 3골을 득점하며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한다. 자갈루는 이 대회에서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2.3. 감독
국가대표팀에서 펠레와 마찰을 빚었던 감독 주앙 사우다냐가 월드컵을 세 달 앞둔 시점에서 경질된 직후 자갈루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이 때 자갈루는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제르송&펠레가 자발적인 회의로 직접 고안해낸 전술을 팀 메인 전술로 받아들이며 팀 선수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꾀하였다. 이러한 자갈루의 개방적인 성격 덕에 전임 감독 사우다냐의 압박에 눌려 있던 브라질 팀은 창의성과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결국 1970년의 브라질은 가히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FIFA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성적(예선 포함 12경기 12승, 본선 6경기 19골 등)을 거둘 수 있었다. 참고로 자갈루가 감독을 맡았을 때 나이가 38세였는데, 이는 역대 월드컵 우승 감독 중 두 번째로 젊은 나이이다.[7]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기술고문으로 다시 한 번 월드컵을 들어올렸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다시 한번 감독을 맡아 브라질 대표팀을 결승전으로 이끌었으나 지네딘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에 0대 3으로 완패했다.
명실상부한 브라질 축구계의 제일 큰어르신이지만 소싯적에는 이 사람도 극성맞은 브라질 축구팬들에게 욕을 사발로 퍼먹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욕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다. 흔히 하는 개의 자식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센 욕을 퍼먹었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펠레와 토스탕의 은퇴부터 시작해서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죽을 쑤는 경기력을 보였는데 유고슬라비아와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0 : 0 유기농 무를 캐는 굴욕을 당했고 겨우 최약체인 자이르를 3 : 0으로 꺾어[8] 스코틀랜드를 골 득실 차에서 1골 차로 앞서 밀어내고 겨우 2라운드에 진출했다. 그러나 요한 크루이프가 버티던 네덜란드에 0 : 2로 처참하게 발리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는데, 이에 빡돈 브라질 축구팬들이 자갈루 감독의 자택을 습격해 기물을 파손하는 짓거리를 했다. 그 뿐 아니라 당시 브라질에는 독감이 유행했는데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에 실패했다는 죄목으로 이 사람의 이름을 따 '''자갈루 독감'''이라고 명명했다. 즉, 사람을 독감 바이러스 취급했다. 독감 바이러스와 동급인 취급을 받을 정도로 인격 모독을 당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2002년 11월 20일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3-2로 승리하며 '''감독으로서 A매치 통산 100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호나우두가 2골을 넣고 호나우지뉴가 페널티 킥으로 결승골을 넣어 브라질 축구계의 위대한 원로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 참고로 이 경기는 대한민국의 축구영웅 홍명보, 황선홍의 은퇴경기로도 유명하다.
3. 플레이 스타일
자갈루는 기술적이고 헌신적인 윙어였다. 엄청난 스피드와 체력으로 수비 진영에서 볼을 달고 역습하는 것을 즐겼으며, 헌신적으로 수비 가담을 하기도 했다.
[1] 마세이오(Maceio)[2] 세컨드 스트라이커 및 레프트윙[3] 기술고문(Coodinator)가 아니라 단순한 조언 역할을 맡는 '고문(Advisor)'이다.[4] 자갈루는 레바논계 이민자의 후손이다.[5]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한 인물은 프란츠 베켄바워와 디디에 데샹, 그리고 이 사람 셋 뿐이다. 참고로 자갈루는 우승 당시 주장은 아니었고 베켄바워와 데샹은 주장이었다.[6] 결승골은 자갈루의 환상적인 크로스를 받아 넣었다.[7] 제일 젊은 감독은 1930년 월드컵 우루과이의 감독이었던 31세 알베르토 수피시다.[8] 참고로 당시 자이르 대표팀은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가 유고슬라비아전을 앞두고 유고슬라비아 출신 비디치 감독을 경질하는 바람에 '''감독없는 팀'''이었다! 그런데 유고슬라비아가 자이르를 9-0으로 뭉개는 동안, 브라질은 우주의 기운을 받고도 고작(?) 3-0으로 이겼다.
분류
- 1931년 출생
- 브라질의 축구선수
- 공격수
- 브라질의 축구감독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브라질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참가 선수
- 1962 FIFA 월드컵 칠레 참가 선수
- FIFA 월드컵 다회 우승 선수
-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감독
- 1974 FIFA 월드컵 서독 참가 감독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감독
- 1997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사우디아라비아 참가 감독
- FIFA 월드컵 우승 감독
- FIFA 월드컵 준우승 감독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감독
- AFC 아시안컵 준우승 감독
- 코파 아메리카 우승 감독
-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