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작법/구체적 요소/문체
1. 개요
문체를 연습하라는 건 글을 '화려하게' 쓰라는 얘기가 '''아니다.''' 작문의 기본은 간결체. 즉, 간단하게 쓰는 것이다. 형용사, 부사 같은 꾸밈말을 최소화하고 주어, 동사, 목적어로 이루어진 '건조한' 문장을 만드는 연습을 한다.[1] 대부분의 경우 꾸밈말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지 너무 적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꾸밈말에 신경쓰느라 문장의 핵심 요소인 '주어'나 '목적어'를 누락하는 경우가 더 많다.
만연체를 쓰고 싶어도 최소한 주술구조를 파괴하지 않은 채 핵심 단어를 알 수 있도록 다듬는 연습이라도 하는 게 좋다. 기교를 부리기 전에 기본부터 세워야 하는 건 분야를 막론하고 언제나 진리가 된다. 한국어는 주어를 생략해도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남들이 읽기 어려운 문장은 '나쁜' 문장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나친 묘사는 밥이나 빵은 먹지 않고 후추나 겨자로만 식사하는 거나 다름없다. 어느 게 적정한 수준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고 본인이 감으로 익혀야 한다. 나중에는 이런 것도 기계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2] 본인의 감을 키워야 한다. 독자 피드백을 열심히 받는 게 좋다.
라이트 노벨 중 만연체를 사용하는 몇몇 히트작이 있다. 라이트 노벨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간결체를 선호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히 아이러니. 최고의 히트작 중 하나인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만연하며 문장 호흡이 길고, 나스 키노코의 Fate 시리즈#s-2.2나 니시오 이신의 이야기 시리즈, 헛소리 시리즈 등의 작품은 특이한 연출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동어반복이나 자잘한 묘사를 길게, 많이 하는 경우가 있다. 상술했던 작품을 쓴 작가들의 문체는 호불호가 꽤나 갈리며 싫어하는 사람들은 폼만 잡고 읽는데 시간만 걸린다고 말한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 쓴 글도 이런 인상인데 그 문체를 아마추어가 흉내내면 그거야말로 언어 폭력이다. 술술 넘어가거나 사람을 빨아들이는 글은 쓰기 정말 어렵다.
초보 작가는 문체가 희미하나 글을 쓰다 보면 자신만의 문체가 생겨 점점 작가의 개성으로 굳어진다. 글을 많이 쓰는 것 말고는 문체를 향상시키는 방법은 없다. 어떤 작품을 감명깊게 봐서 영향을 받았더라도 글을 많이 써야 비슷해진다.
아주 간혹 1인칭만 주야장천 파는 작가나 다중 1인칭 작품을 쓰는 작가는 문체가 두드러지지 않기도 한다. 정확히는 상황을 서술하고 묘사하는 인물이 바뀔 때마다 그 인물의 성격과 지식수준, 특성에 맞는 서술방법으로 바꾼다. 물론 초보 작가가 어줍잖게 시도했다간 '''망한다'''. 이런 기술은 웬만한 프로 작가들도 못 하는 경우가 대다수.[3] 당장 다중 1인칭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거나 고평가를 받는 경우가 전무하거나 거의 없다는 점만 봐도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자세한 것은 소설의 시점 참조.
소설의 문장은 시의 문장과 다르다. 시 세계에서 문장은 그 자체가 알파이자 오메가이며, 독자 역시 문장 '''그 자체'''가 주는 느낌과 아름다움을 음미하기 위해 시를 읽는다. 하지만 소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양식의 문학이다. 단언하자면 소설의 문장은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도구' 이다.
한국에서 순수 문학의 영향력이 가히 '지배적'인 탓에, 이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 소설의 문장 하나 하나를 시처럼 추상적이고 아름다워 보이게 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시가 일러스트라면 소설은 만화다. 그림이 좀 아니어도 이야기를 문제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그리고 이야기가 좋다면 독자는 만화를 본다. 하지만 그림 자체의 느낌이 허접한 일러스트는 독자들이 좋아해주지 않는다. 이와 같은 맥락이다. 좋은 문장은 이야기를 빛내주지만, 문장에 집착하다보면 이야기라는 본질을 잊을 우려가 있다. 주의하자.
더불어 간결체와 만연체, 건조함과 화려함의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 모두 쓸모 있기 때문이다. 지금 말하려는 이야기가 갖고 있는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문장의 성격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화려한 문장이 안 좋다고 해서, 소녀를 사랑하는 소년의 심경을 건조하고 간결하게만 쓸 것인가? 반대로 학교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주인공이 수업 듣는 심경을 굳이 아름답고 장황하게 쓸 것인가? 문체를 인물과 이야기에 '''맞춰서''' 쓰는 것이 소설 문장의 기본이자 완성이다.
2. 시점
소설의 시점 참고.
3. 묘사
앨런 스피겔은 저서 《소설과 카메라의 눈》에서, 근대소설은 시각을 깊이 의식했음을 지적한다. 그 증거로, 다양한 문자 매체 중에서 소설은 영화화가 쉬운 편이다. 따라서 소설 구성의 기본 원리 정도는 숙지하는 편이 좋다. 만약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면, 작품 속 가상의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라이트 노벨 등 대중 소설은 대사와 설명의 양이 묘사를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묘사가 적은 장르라도 기본은 같다. 대사가 오가는 중에도 인물들의 동세와 카메라의 위치를 의식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서적을 참고하자.
비문과 오문은 치명적이다. 좋은 묘사는 정확한 문장에서 나온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모든 군더더기를 없앤 하드보일드 문체를 선보였다. 만약 문장에 불필요한 요소들이 남았다면, 헤밍웨이의 성취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원칙이 하드보일드 문체에만 통용될까? 그렇지 않다. 만연체나 화려체에도 불필요한 요소들이 있다면 독자들은 위화감을 느낀다. 작가는 독자들이 가진 무수한 눈을 상대해야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안다.
대사에 오문과 비문이 허용되어야 할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현실의 대화는 단속적이고 불분명한 주술 관계를 가지며 불필요한 가지를 친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는 편이 좋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선택이 옳을까?
'''대사는 정확한 문장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우리가 소설 세계에서 보는 묘사들은, 그 속에서 취사선택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잠꼬대나 웅얼거림 전부가 소설에 들어가야 할까? 엑스트라가 몰두한, 그러나 소설의 줄기와는 무관한 대화가 등장할 수는 없다. 우리가 보는 소설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 정제된 세계이다. 독자는 소설의 인공성을 인식한다. 소설의 인공성을 억지로 거스르면 위화감이 발생한다. 만약 소설 속 세계와 대화를 통째로 묘사한다면, 우리가 인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영화, 연극, 만화 등 다른 장르도 같다. 만약 비문과 오문이 대사에 등장한다면 분명한 의도가 있어야 한다. 의도가 불분명하다면 제외한다. 훌륭한 소설의 좋은 비문 대사는, 고도로 정제된 결과이다.
참고로 영어권과 우리나라의 형식은 대화문(대사)과 지문의 배치가 다르다. 영어권에선 대화문 뒤에 바로 지문을 붙여 한 문장으로 구성되게 하고, 우리나라는 대화문과 지문을 '반드시' 단락으로 분리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기본적인 "원고지" 작성법을 존중해서 다른 매체에 글을 쓸 때에도 대화문과 지문을 문단 분리해서 쓰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권은 마치 레제드라마를 보듯이 대사가 많이 표현돼서 '외적인 감성'이 좀더 강조되고, 우리나라는 대사보다는 지문이 더 많이 표현돼서 '내적인 감성'이 좀 더 강조된다.
맞춤법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가령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신문사 기자였음에도, 철자법과 맞춤법에 약했다고 고백했다.[4] 스티븐 킹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소홀하라는 뜻은 아니다. 헤밍웨이는 하드보일드 문체를 완성하려 문장 성분을 정확하게 분석했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인 자가 무수한 오류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높은 수준의 맞춤법을 달성하려면 문장 완성과는 다른 노력을 기울어야한다. 좋은 문장은 예체능처럼 지속적이고 반복된 훈련을 통해 달성된다. 맞춤법은 법전을 외는 듯한 연구와 암기가 필요하다. 맞춤법 연구량이 문장 쓰기량를 넘는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맞춤법을 정확하게 안다면 좋다. 그러나 어려움을 느낀다면 기본만 갖추고, 나머지는 편집자 몫으로 넘기자. 편집자가 없다면 부산대학교에서 만든 맞춤법 검사기를 쓰자. 맞춤법은 기계가 인간보다 낫다. 순 우리말이나 명사 대체어는 참고만 해도 좋다.
소설 필사도 추천된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표절 논란없이 문장을 잘 쓰고 싶다면 외국어를 배우듯 단어를 암기하는 것보다 문장을 암기하고 자기 식대로 쓰는 편이 좋다.
본인이 원고지 200매 내외의 단편 소설을 집필할 능력을 갖췄다면 '소설작법/구체적 요소' 문서에 언급된 작법 이론들을 공부하자. 순서를 바꾸어 작법 이론을 먼저 공부해도 되지만, 그보다 이 편이 낫다. 일단은 '즉흥적 글쓰기' 방법으로 단편 소설을 여러 편 써보면 큰 도움이 된다. 소설을 완결지어본 경험이 많은 것이 소설을 시작해본 경험만 많던 상태보다 당연히 나을 것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시작하자마자 대하 장편소설을 기획하지 말라는 것이다. 첫 작품 혹은 글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최대 3권 분량을 넘지 않는 것을 권한다. 긴 작품을 처음부터 쓰려고 하면 힘들 수밖에 없다.
소설을 쓰는 방법에 왕도는 없다. '즉흥적 글쓰기'와 '계획적 글쓰기'라는 두 가지 방법은 기본 지침만 제공한다. 각각 특장점이 다르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자.
소설에서 사용하는 '''어휘'''도 중요한 요소이다. 사람마다 사용하는 단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나, 자기가 알고 있는 단어만을 가지고 좋은 소설을 만드는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어휘력의 높음이나 많음이 무조건 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설 속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수준이 떨어지면 많은 사람들의 눈을 잡지 못한다. 그러니 사전이나 유의어 사전의 도움을 받자.
4. 설명
묘사와 설명은 다르다. 묘사란 무대, 인물, 행동 등을 직접적으로 그려내는 작업이다. 반면 설명이란 인물과 행동, 사건(행동)과 사건을 밝히고 그 인과관계를 드러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상황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묘사란 굉장히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많으면 오히려 소설의 몰입에 방해가 된다. 독자의 상상력을 방해한다는 말이다. 이를 테면 플롯(줄거리)의 진행상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혹은 작가가 분위기를 강조하려고 굳이 그러는 경우가 아니라면, 방 안에 사물이 몇 개나 있는지, 주인공이 왼손을 사용하는지 오른손을 사용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너무 뭉뚱그리고 대충 그려내면 그것 또한 좋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시시각각 벌이는 자세한 묘사는 독자에게 피곤함을 준다.
반면 설명은 소설을 풍부하게 해주는 살점이 된다. 묘사를 통해 인물의 행동과 상황이 드러나면, '설명'을 통해 왜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지 독자에게 납득을 선사해주고, 주인공의 의도를 밝혀 독자의 이해까지 돕는다.
5. 대화
그 외에 사극계의 바이블 조선왕조실록도 인터넷에 검색기까지 붙어서 제공되고 있고 성경도 http://holybible.or.kr이라는 데서 번역판별로 다 제공하고 있다. 그 다음에 영화대본 아카이브인 IMSDB라는 곳도 있는데 정말 방대한 양의 영화대본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묘사기법 같은 건 대본봐선 연마가 안되겠지만 최소한 대화 및 연출의 기법, 명대사와 해당 맥락 등을 연습할 수 있다. 단 신작개봉영화나 인기가 없었던 영화는 검색이 안 되고, 설령 대본이 있다고 하더라도 (개봉될 때와 다른) 제작 단계의 물건이라 내용이 다른 경우도 있다. 만약에 신작영화나 개봉작의 내용을 참고하고 싶다면 YIFY같은 곳에서 영어자막을 다운받아 읽어보길 권한다.
더 좋은 소스를 원하나? 도서관이 있다. 깔끔하게 도서관 가서 '''합법적으로''' 대출받는 게 좋다. 영화도 도서관 영상자료실 가면 폐관시간까지 무료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책 없으면 도서관에 신청해라. 대다수의 문학은 구입해준다.[5] 유명한 고전이면 스테디셀러라 해서 신간을 계속 내므로 도서관에 항상 있을 것이다. 특히 사서는 개인의 수준과 요구에 맞는 맞춤형 추천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도서관에 들어오는 책을 전부 읽어보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책의 개요는 훑어본 사람이고 무엇보다 대출 통계를 열람할 수 있는 사람이다.
6. 어휘의 선택
그리고 자기가 한국인이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고 해도 일단 작가라면 국어사전을 반드시 끼고 살자. 그 다음으로 중요한 사전은 유의어 사전. 다만 한국어 유의어 사전은 인터넷에 공개된 사전이 매우 부실하므로 영미권의 시소러스 사전을 영한사전과 함께 사용해서 써먹는 것도 좋다.[6] 유의어 사전을 어디에 쓰냐고? 본인 어휘력에 일시적으로 부스터를 걸어준다. 부스터를 계속 받다 보면 아예 영구적으로 어휘력이 상승한다. 작가에게 어휘력은 '''가장'''까진 아니어도 '''매우''' 중요하니까 꼭 사전 끼고 살자.[7] 동어반복을 피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어휘력은 높여 둘 가치가 충분하다. 네이버 사전이나 낱말-유의어,반의어에 단어를 치고 유의어들을 찾아보자.
7. 맞춤법
마지막으로 맞춤법 검사기는 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이점이 많다. 독자의 만족도와 글의 질을 동시에 잡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개요에서 말한 것처럼 독자에게 예의는 지켜주자.
[1] 특히 주어 앞에 주어를 수식하는 절이 길어지면 문장에서 주어와 서술어의 힘이 약해지므로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피하도록 한다.[2] 영화 쪽에서는 흥행예측 분석이라고 이걸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알고리즘이 있지만 소설쪽은 아직 없다.[3] 가령 중견작가인 구효서의 〈비밀의 문〉은 아예 대놓고 화자 3인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서술한다며 시작하는 액자식 소설이다. 그래서 액자를 설명하는(즉 3인칭 관찰자)화자 1인(작중에선 인기 소설가)과 액자에 해당하는 당사자들(1인칭 주인공-소설가 지망생과 고전 시대 즈음의 인도 제상) 2인의 서술자가 섞여 있는데 개성도, 직업도 다른 3명의 말투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 해당 작품이 잘 쓴 소설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4] 하지만 신문사는 교정교열 부서가 따로 있으므로 기자로서 큰 문제는 아니다.[5] 라노벨이나 양판소 같은 '''문학적 가치가 없는 책들'''은 당연히 거부된다.[6] 종이책으로 된 유의어 사전을 서점에서 팔긴 하지만 사전이라는 매체에서 중요한 신속성과 최신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7] 어휘력이 좋아야 문장력도 상승한다는 점에서 굳이 순위를 놓자면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에 든다. 아무리 에누리 줘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정도로 어휘력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