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르체 카펠레

 

1. 개요
2. 특징
5. 대표 인물
6. 관련 문서


1. 개요


'''Schwarze Kapelle'''
한국어로 해석하면 검은 관현악단. 영어로는 '''Black Orchestra'''라고 불리운다. 독일 제3제국 당시 반(反)히틀러 성향의 우익 세력들을 게슈타포가 한데 묶어서 부르던 명칭이다. 반면, 공산당 지지자들을 포함한 좌익 세력은 "로테 카펠레"[1]로 불렀다.

2. 특징


주로 기독교계 인사, 구 제2제국 귀족, 심지어 독일 국방군 고위 인사들까지 포함되었다. 이들은 보편적으로 소위 부잣집 출신들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연합국 측 정치 성향에 가까웠기에, 아돌프 히틀러를 포함한 나치당이 선전하는 사상에 대해 굉장히 큰 회의감과 경멸감을 느껴 파리 - 베를린 - 스몰렌스크를 잇는 활동 비선을 중심으로 저항 운동을 주도하거나 쿠데타 음모를 세우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7•20 음모", "라슈텐베르크 암살 음모 사건" 등으로도 불리워지는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이 이들이 한 일.

3.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1944년 7월 20일,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면서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패배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인해 짙어진 나치 독일의 패색이 드리워지자 오랫동안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반감심을 품고 있었던 몇몇 독일 국방군아프베어의 고위 간부들이 일으킨 암살 계획이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가 슈바르체 카펠레 일원들이 일으킨 해당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4.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그 후


'''대부분은 살아남지를 못했다.'''
게슈타포는 이 사건을 빌미로 슈바르체 카펠레와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으면 곧바로 잡아갔다. 게슈타포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무려 7,000명 이상이나 되는 일원들을 모조리 처형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슈바르체 카펠레의 일원들은 1944년 8월부터 1945년 2월까지의 기간 동안 롤란트 프라이슬러의 인민재판소로 회부되어 재판을 받았고 이들의 결말은 대체적으로 참혹했다.

5. 대표 인물



6. 관련 문서



[1] '''Rote Kapelle''', "붉은 관현악단"이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Red Orchestra"라고 불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