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빈 폰 비츨레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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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수, 상급대장 시절의 비츨레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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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왼쪽이 아돌프 히틀러, 가운데가 보병대장 시절의 비츨레벤, 오른쪽이 SS 최상급집단지도자였던 요제프 디트리히다.
1. 개요
독일의 육군 장교이자, 제2차 세계 대전의 독일군 사령관으로,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의 공모자이다. 1940년에 원수(Generalfeldmarschall)가 되었다.
2. 생애
1881년 프로이센 왕국 슐레지엔주의 브레슬라우[2] 에서 태어났다. 부친 게오르크 폰 비츨레벤은 프로이센 왕국군대의 대위였다.
그리고 1901년 독일 제국군에 입대하고 1차대전에서 베르됭 전투, 상파뉴 전투를 겪으며 큰 부상을 입게되고, 1급과 2급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그뒤 독일 참모 훈련을 마치고 121사단으로 보내진다.
전간기 동안인 1923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그는 소령으로 진급하고, 1929년엔 중령으로 진급한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비츨레벤은 상급대장으로 진급하여 서부 전선의 1군을 맡았다. 프랑스 침공 당시 C집단군에 소속되어 마지노선을 돌파하는 임무를 수행하였고 3일만에 프랑스의 몇 사단들을 항복시키는 전공을 기록하였다. 이때의 공로로 비츨레벤은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프랑스 침공의 대승으로 히틀러는 원수 진급 대잔치[3][4] 를 치루는데 이때 비츨레벤도 원수로 진급한다.
이후 1941년,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의 후임으로 서부전선사령관으로 취임하였으나 1년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하였는데 바르바로사 작전의 개시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였다는 이유로 해임당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이후 비츨레벤은 퇴역군인으로써 지내는 듯 했지만...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에 포섭되어 쿠데타의 성공 이후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는 계획에 동의하였다. 얼굴마담 역할이었기 때문에 비츨레벤이 크게 기여한 것은 없었고 암살이 실패로 돌아가자 국방군에 체포되어 군사재판에 회부된다.
▲ 영상의 첫번째 인물이 비츨레벤이다. 체포 당시 인사사령부에서 군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민간인 신분이었으며 군복이 아닌 평복을 입고 있다. 이 재판을 맡은 판사는 바로 그 유명한 롤란트 프라이슬러이다.
군사재판에서 당연히 사형이 언도되었다. 원래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녹화된 재판 내용을 공개하려고 했었으나 비츨레벤이 끝까지 나치식 경례를 하였다는 점과 마지막에 했던 멘트 때문에 비공개로 결정하였다.
비츨레벤은 재판이 끝나고 당일 교수형되었다."지금은 우리를 처형시키지만, 3개월 후면 너희들이 성난 독일 국민들 손에 거리를 산 채로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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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8월 18일 군사재판에서''[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