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닝 폰 트레슈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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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3년 대령 시절의 헤닝 폰 트레슈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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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제국, 나치 독일의 군인.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의 주요 인물.
2. 생애
히틀러에 대해 반감을 품은 인물들이 대부분 귀족 출신이듯 트레슈코프 또한 프로이센의 브란덴부르크에서 태어난 귀족가문의 자제였다. 아버지는 빌헬름 1세의 대관식에도 참여한 프로이센 육군 기병 장군이었으며, 어머니는 프로이센 교육부서의 관료였다.
제1차 세계 대전에는 2차 마른 전투(Battle of the Marne)에서 공훈을 인정받아 2등급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군을 잠시 떠났다가 힌덴부르크 원수의 추천으로 다시 군으로 복귀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는 A집단군의 룬트슈테트 상급대장[2] 과 만슈타인 중장의 참모장교로 배속받아 낫질 작전 입안 및 건의, 실행 등을 보좌하였다.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이 육군최고사령부(OKH)에 의해서 거절되었지만 트레슈코프가 세계 1차대전 시절 9보병연대 동료였던 루돌프 슈문트 대령이 히틀러의 군사고문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트레슈코프가 직접 슈문트에게 작계 내용을 전달하여서 히틀러에게 보고될 수 있었고 결국 승인을 받게될 수 있었다.
1941~1943년 동안 바르바로사 작전에 투입되어 중부집단군 사령관 보크[3] 원수(이후 클루게 원수로 교체됨)의 참모진에 배속되었다. 나중에는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르 강의 수비를 맡는 제442척탄병연대장으로 발령받았고 1943년에 2군단의 참모장으로 근무하였다.
3.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트레슈코프는 원래 베르사유 조약을 점점 파기해 나가던 나치당을 열렬히 지지하였다. 하지만 장검의 밤, 블롬베르크-프뤼치 사건 등을 목도하면서 점차 나치당에 대해 환멸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를 알아챈 에르빈 폰 비츨레벤은 트레슈코프가 군대에서 퇴직하려는 것을 말리고 히틀러 암살 계획의 일원으로 초대하였다. 특히나 유대인 대량 학살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히틀러로부터 완전히 마음이 돌아섰으며 당시 중부집단군 사령관이었던 보크에게 중부집단군이 반 히틀러 운동을 주도하자고 권하기도 하였다. 보크 또한 유대인 대량학살과 같은 인종차별적 학살 및 관련 명령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중부집단군의 참모진들이 트레슈코프를 중심으로 대부분이 반 히틀러 성향을 보이게 되면서 에르빈 폰비츨레벤, 프리드리히 올브리히트 장군 등의 베를린에 있었던 인물들과 결탁하게 되고 이후의 쿠데타 및 암살작전에 중부집단군 사령부가 주도적인 작전기지가 된다. 대부분이 검은 오케스트라의 멤버이기도 하였다.
동부전선 중부집단군의 보크, 클루게 두 사령관들이 완전한 친-히틀러 성향도 아니고 반-히틀러 성향의 성향도 아닌 중립적인 입장을 항상 견지했기 때문에 트레슈코프 이하의 중부집단군 소속 지휘부 장교들이 히틀러 암살과 관련된 작전을 수행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4] 물론 두 사령관들의 성향 때문에 히틀러의 의심을 강하게 받기는 했고 클루게는 의심을 받은 끝에 베를린 소환 직전 자살한다.
이후 트레슈코프와 올브리히트 장군이 이끄는 중부집단군의 반 히틀러 성향의 장교들이 불꽃 작전(Operation Spark)이라는 이름 아래에 무수한 히틀러 암살 시도를 주관하였다. 특히 트레슈코프 본인도 작전명 발키리에서 나오는 것처럼 코앵트로로 위장한 폭탄으로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한 바 있다. 히틀러가 중부집단군을 시찰 차 방문하였을 때, 트레슈코프는 베를린으로 복귀하는 비행기에 히틀러와 동승하는 중령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친구인 헬무트 스티프[5] 소장에게 줄 것이라고 속인 뒤 코앵트로 두 박스로 위장된 폭탄을 건네 준다. 하지만 기폭제는 작동했지만 폭탄이 폭발하지 않았고 실패로 돌아가자 다시 그 중령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암살시도가 걸리지 않도록 회수하고자 하는데 애를 먹는다.
트레슈코프와 올브리히트 장군의 여러 시도들은 실패로 끝났었고 이 때문에 히틀러는 늑대굴과 자신의 별장에서만 주로 활동하였고 그 외부로 나가야 할 때는 더더욱 불규칙적인 동선으로 움직였다. 따라서 나중에 본격적인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때는 늑대굴에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직접 폭탄을 가져다 두는 방식을 선택해야 했다.
이때의 실패 이후에 2군단의 참모장이 되었기 때문에 히틀러 암살계획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동료였었던 루돌프 슈문트가 여전히 히틀러의 군사 참모였기 때문에 그에게 히틀러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부서 신설에 대해서 건의하였으나 슈문트는 트레슈코프의 히틀러에 대한 충성심을 의심하였던 터라 실패하였다. 이 밖에도 아돌프 호이징어[6] 장군에게도 부탁했으나 같은 이유로 실패하였다.
이후 부상으로 예비군사령부의 참모장으로 배속받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을 만나게 되면서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을 준비하게 되고 트레슈코프는 발키리 작전을 수정하여 히틀러 사망 이후의 베를린 장악 작전을 구상한다. 하지만 늑대굴에서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고[7] 2군단으로 돌아가있었던 트레슈코프는 주둔지였던 폴란드 비아위스토크(Białystok)의 한 마을에서 관용차 운전병과 전속부관만 대동한 채 숲으로 들어가 수류탄으로 자살한다.
4. 각종 매체에서의 등장
영화 작전명 발키리에선 케네스 브래너가 맡았다. 군복 고증이 완벽에 가까운 영화이니만큼, 장군들이 잘 입지 않던 M40 전투복에 장군용 부착물을 단 모습 등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게임 Hearts of Iron IV의 나치승리 대체역사모드인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에서는 독일을 민주화시키려는 개혁파의 주축 4인방중 한명으로,독일군의 군제개혁을 주도적으로 맡는다.
[1] 외래어 표기법대로는 '폰트레슈코프'가 된다. 외래어 표기법상 로망어와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2] 당시 계급[3] 트레슈코프는 보크의 조카였다.[4] 만슈타인도 마찬가지로 히틀러 암살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중립적 입장을 취했다. 모두 반 히틀러 세력의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하는 대신에 그 사실을 SS나 게슈타포에 알리지는 않았다.[5] 검은 오케스트라 일원은 아니었지만 반 나치 성향의 인물이었다. 나중에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이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된다.[6] 나중에 전후 독일 연방군의 재창설, 재무장에 기여하고 연방군의 첫번째 대장에 오른다. 호이징어와 함께 연방군의 대장이 되는 인물이 마찬가지로 독일국방군 출신인 한스 슈파이델 장군이다.[7] 늑대굴에서의 폭탄 암살시도로 히틀러는 경상을 입었다. 하지만 트레슈코프를 옛날에 도와줬던 슈문트 장군이 중상을 입고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