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메들리 버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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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edley Darlington "Old Gimlet Eye" Butler
1881.07.30 - 1940.06.21
1. 개요
2. 생애
3. 비즈니스 플롯
4. 전쟁은 사기다
5. 매체


1. 개요


스메들리 달링턴 버틀러는 미해병대 장성이자 반전 평화 운동가이다. '늙은 송곳눈'(Old Gimlet Eye)'라는 별명이 있다.
저서로 '전쟁은 사기다'(War is a Racket)가 있다.

2. 생애


버틀러는 펜실베니아에서 퀘이커(종교) 집안의 삼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미서전쟁 중 입대했으나 임관하기 전에 종전해서 참전하진 못했다
그후로 필리핀 전쟁, 의화단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바나나 전쟁으로 불리는 남미 바나나 공화국들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에 참전했다. 1차대전에도 참전하여 전부 16개 무공 훈장을 받았으며 명예 훈장을 2개 수훈한 유일한 해병대원이다.
1924년에는 필라델피아 치안감으로 부임했다. 당시 필라델피아 시장은 프리랜드 켄드릭이었는데, 그는 버틀러 부친의 권유로 출마해 당선됐다. 켄드릭은 버틀러에게 해병대를 나와 필라델피아 치안감으로 오지 않겠냐고 제안했는데 버틀러는 거절했다. 그러자 켄드릭이 캘빈 쿨리지 대통령에게 부탁해 특별히 해병대에 복무하면서 치안감으로 부임할수있게 재가를 받자 버틀러는 치안감직을 수락했다.
당시는 금주법 시대였기 때문에 버틀러는 기동 타격대를 조직해 900여 개소의 밀주 관련업소를 폐쇄했다. 그외에도 도박, 매춘, 경찰부패를 근절하고자 노력했다. 6개월 후 버틀러가 너무 해병대식이라는 비판여론이 일어나자 1년 임기만 채우고 해병대로 복귀하려했는데, 버틀러 지지자들이 시위하였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임기가 1년 연장되었다.
버틀러는 48세에 최연소 미해병대 소장으로 진급했는데, 당시에는 소장이 미해병 최고계급이었다.
1931년 당시 베니토 무솔리니가 어린이를 차로 치여 숨지게 한적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는데, 이에 파시즘을 싫어했던 버틀러는 무솔리니를 '어린애를 차로 치여 죽인놈'이라고 욕한적이 있다. 그런데 이게 이탈리아 외교관 귀에 까지 흘러들어가 외교문제가 발생해 제대하게 되었다.
제대후 참전군인회에서 활동하며 보너스 아미 활동을 지원했는데, 버틀러가 보너스 아미를 방문한 다음날 맥아더조지 S. 패튼이 전차를 끌고와 전우들을 짓밟아 버렸다.
1940년 위암으로 사망했다.

3. 비즈니스 플롯


1934년 11월 버틀러는 이른바 '비즈니스 플롯'(Businees Plot; 사업가들의 음모)을 폭로했다. 루즈벨트 정권에 불만을 품은 J.P 모건을 비롯한 자본가들이 유럽 파시즘 국가들을 시찰한 뒤, 재향군인회와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켜 미국을 파시즘 국가로 만들려 했으며 참전군인회 간부인 자신에게 쿠데타군 지휘관을 제안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많은 파장이 일었고 진상조사위가 조직되었으나 명확한 결론없이 끝났다. 이에 대해 실제로 그런 음모가 있었다는 설과 당시 복지정책을 추진하던 루즈벨트와 참전군인들을 위한 복지증진을 주장하던 버틀러가 손잡고 복지정책에 반대하던 재계를 억누르기 위해 꾸며낸 것이라는 등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각자 반론도 만만치 않다.

4. 전쟁은 사기다


전역 후 반전 반파시스트 연맹(American League Against War and Fascism;ALAWF) 등에서 반전 평화운동을 하던 버틀러는 자기 연설내용을 정리해서 '전쟁은 사기다'(War is a Racket)이란 제목으로 출판했다.
그는 저서에서 전쟁은 비용은 인명으로 계산하고 수익은 달러로 계산하는 사기라고 지적했다. 전쟁은 침략을 당했거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만 해야하는데 실제로는 바나나 공화국들에서 플랜테이션을 지키기 위해, 대기업들의 영리를 위해 싸웠다는 것이다. 또 전쟁의 값을 치루는 건 얼마되지도 않는 급료를 받고 싸우다가 전사하거나 불구가 된 참전용사와 그 가족, 그리고 세금을 낸 시민들이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전쟁을 위해 수많은 차량과 항공기를 구매했지만 그중 상당수가 아예 전장으로 가지도 않았고, 심지어 모기장이나 사륜마차처럼 원래 프랑스 전선에 필요없었던 물자들까지 어마어마한 양이 구매된 뒤 지금은 쓸모없다고 버려지는걸 비판했다. 그와중에 1,800%에 달하는 수익률을 낸 기업들은 아무것도 잃은게 없다. 뺑이치는 사람 따로있고 번 사람 따로있는 이런 사기가 또 어디있단 말인가. 버틀러는 알 카포네는 3개 도시에서 사기를 쳤지만 자신은 3대륙에 걸쳐 사기를 쳤다며 회한을 드러냈다.
또 그는 입대할때는 정훈장교들이 민간인들을 군인으로 만들지만 군대에서 사회에 돌아갈때는 알아서 하란 식으로 아무 지원도 해주지 않고, 그 결과 적응에 실패한 수많은 전우들이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며 울분을 드러냈다.
버틀러는 국내문제를 가라앉히려고 남의 전쟁에 기웃거리는 정치인들을 비판하며 일정이상의 재산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선거가 있듯이(당시엔 지금만큼 보통선거가 확립되지 않았다.) 침략을 당한게 아닌데 참전하려면 국민투표로 결정하되 투표권은 입대가능연령인 사람들에게만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여든 먹은 재벌 사장은 전쟁을 결정한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전시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사장들은 본인이 참전용사거나 가족 중에 전사자나 상이용사가 있어야 한단 자격제한을 둬야하고 참전 중인 이등병보다 급료를 더 받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미 해군이 훈련한답시고 본토에서 수천마일 밖까지 나가는 것을 비판했다. 미군이 본토에서 200마일 이상 나갈 필요가 없고 그랬다면 미서전쟁도 없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만약 일본 함대가 훈련한답시고 로스 앤젤레스 서부해안에 나타나면 미국인들이 퍽이나 좋아하겠다고 빈정거렸는데 이 구절은 진주만 공습 이후 재조명되기도 했다.
버틀러는 군인이지 학자가 아닌만큼 그가 울분에 가득차 제안한 정책들은 비현실적이지만, 문제가 산적한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많이 공감할만한 내용들이다.
버틀러는 반기업적 성향 때문에 미국 공산당 대회에도 자주 연설자로 참석했지만, 입당 권유에는 '뭐하러 굳이?'란 반응을 보이며 거절했다.
그의 주장들은 21세기인 지금에도 통하는 바가 많이 있어 수많은 반전운동에 영감을 주었다.

5. 매체


Hearts of Iron IV의 모드인 카이저라이히에 미 생디칼리즘 진영의 장군으로 등장한다. 만약 극좌 전체주의자가 집권한다면 버틀러가 쿠데타를 일으켜 급진사회주의 정부지도자로 집권하는 선택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