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로지즈
1. 개요
'''The Stone Roses'''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매드체스터 밴드. 1983년 결성되었다.
이름은 더 잼의 곡 'English Roses'하고 롤링 스톤즈의 스톤즈를 따와서 지었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언 브라운은 인터뷰에서 그런 소문을 부정하며 "단지 '돌'과 '장미'라는 두 단어가 주는 대비감이 마음에 들어서 스톤 로지스라는 밴드명을 지은 것"이라고 밝혔다.
2. 음악적 성향
멤버들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으로 비틀즈, 버즈, 사이먼 앤 가펑클,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플린, 그리고 지저스 앤 메리 체인, 더 잼, 조니 마, 소닉 유스, 섹스 피스톨즈, 클래시 등을 꼽았다. 특히 존 스콰이어와 이안 브라운은 클래시의 광팬이라 Bankrobber를 커버하거나 하였다. 크게 봐서 60년대의 록/팝음악과 70년대 후반~80년대의 펑크/인디록, 이 두가지로부터 주요한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모타운, 노던소울, 레게 등 흐느적거리는 댄스풍의 음악들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약물에 쩔어 살았던 동향의 해피 먼데이즈와 달리 밝고 상큼한 댄스 기타 팝(말이 팝이지 얼터너티브 록의 장르 중 하나다.)을 추구한걸로 유명하다.[2] 이들은 훗날 '매드체스터'로 명명되는 댄서블한 사운드의 선구자 격이기도 하다.
3. 역사
그래머 스쿨 동창이었던 이안 브라운과 존 스콰이어가 클래시의 영향을 받아 1980년에 결성한 'The Patrol'이란 밴드가 전신이다. 앤디 쿠젠스(Andy Couzens)와 사이먼 울스턴크로프트(Simon Wolstencroft)[3] 역시 이 초창기 시절 멤버들이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이들은 해체했고 사이먼은 더 스미스로, 이안은 베이스를 팔아치우고[4] 스쿠터를 사서 전국 일주를 떠난다.
존 스콰이어와 앤디 쿠젠스는 새 베이시스트 게리 마운필드(Gary "Mani" Mounfield), 드러머 크리스 구드윈(Chris Goodwin), 그리고 '카이저'란 별명을 사용하는 새 보컬을 영입해 워터프론트(The Waterfront)[5] 라는 이름의 새 밴드를 결성한다. 참고로 이 시기 녹음된 두 개의 곡이 유튜브에도 올라와있으니 스톤 로지스의 팬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자. 이안 브라운은 1983년 말 보컬로서 다시 합류했다.[6]
그러나 이 밴드 역시 이전에 결성된 '패트롤'처럼 오래 가지 못했다. 앤디 쿠젠스는 이안 브라운, 스미스에서 탈퇴한 사이먼 울스턴크로프트, 베이시스트 피트 가너(Pete Garner), 그리고 존 스콰이어를 설득해 다시 한 번 새 밴드를 결성하려 했고, 몇 달의 리허설 이후 존 스콰이어가 '스톤 로지스'란 밴드명을 들고 나오며 이들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결성한지 얼마 안 되어 드러머 사이먼 울스턴크로프트는 탈퇴하였다. 어쩔 수 없이 워터프론트 시절 드러머 크리스 구드윈을 다시 불러들였으나 그 역시 리허설 한 번하고 다시 탈퇴하자 결국 밴드는 구인 광고를 내서 새 드러머를 영입하는데, 그가 이후 밴드의 전성기를 함께한 레니(Alan "Reni" Wren)였다.
이 시기 나온 곡들로는 'So Young', 'Tell Me', 'Elephant Stone', 'I Wanna Be Adored', 'This Is the One', 'Sally Cinnamon' 등이 있다. 그리고 당시 녹음했던 곡들을 모아서 해체 이후 발표한 앨범이 'Garage Flower'이다.
1987년 6월, 베이시스트 피트 가너가 탈퇴하고 대타로 롭 햄프슨(Rob Hampson)이 들어왔지만 그 역시 얼마 안 가 탈퇴한다. 결국 찾아낸 대안이 워터프론트 시절 함께한 베이시스트 '매니'였고 드디어 우리가 알고 있는 라인업이 구성된다.
뉴 오더의 피터 훅[7] 이 프로듀싱한 'Elephant Stone'로 주목받은 뒤, 60년대 사이키델릭 록과 영국 전통의 기타 팝, 댄스 리듬을 황금비율로 섞은 뒤 모던한 감각으로 승화시킨 첫 앨범 'The Stone Roses'는 엄청난 호평과 무난한 판매고를 자랑하며 80년대 말의 명반으로 자리잡게 됐다. 'I Wanna Be Adored'는 지금도 영국에서 자주 애창되는 곡이라 한다.
빼어난 작곡능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연주력도 출중한 밴드이다. 드러머 레니의 혁신적인 비트 운용[8] , 그리고 슬라이딩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날아다니는 느낌을 주는 존의 기타, 이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매니의 꽉찬 베이스로 구성된 밴드 사운드는 후배 밴드들에게 하나의 지침서로 남을 만큼 새로운 것이었다.
1990년 5월 27일에 영국 체셔에서 '''스파이크 아일랜드'''라는 콘서트를 가졌는데,[9] 영국에서 열린 가장 유명한 콘서트 중 하나다. 매드체스터의 우드스톡 페스티벌이라고 불리우며, 매드체스터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이다.
참고로 표지의 그림은 밴드 내 기타리스트인 존 스콰이어가 그렸으며[10] , 잭슨 폴락의 오마쥬라 한다. 표지의 레몬은 68혁명 당시 시위 학생들이 최루탄의 효과를 경감시키기 위해 레몬을 핥던 사실에서 착안했다고.
하지만 소속사의 막장 행동과 그 뒤 이어진 소송들, 그외 멤버 개인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멤버들은 창작 의욕을 모두 날려버렸다. 그 후 나온 2집은 다른 멤버들의 무관심 속에서 존 스콰이어가 주도해서 겨우 완성됐다. 이 2집에선 레드 제플린과 올맨 브라더즈의 향취가 짙게 밴 블루스 록적인 스타일로 방향전환했는데, 신선하고 혁신적이었던 1집과는 달리 옛날 음악에 안주하는 퇴보적인 음악이라는 썰렁한 평가를 음악팬들과 비평가들에게 받았다. [11] 밴드 내 상황도 악회되어 결국 차례차례 탈퇴한 뒤 1996년 해산해버렸다. 이안 브라운은 솔로 활동 중이고, 존 스콰이어는 이것저것 손대다가 음악에 손을 뗐었다. 베이시스트 게리 '매니' 마운필드는 프라이멀 스크림으로 넘어가 이들의 전성기에 같이 활동을 하였다.
음악사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앨범이 1집 하나밖에 없는 셈이지만, 이 1집이 워낙 먼치킨 수준의 명반인지라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높은 대접을 받고 있다.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도 찬양할 정도. 동생인 리암 갤러거와 동네 친구들은 전설로 남은 이들의 블랙풀 공연을 보고 영감을 받아 밴드를 꾸렸었는데 이게 오아시스의 전신인 레인이었다. 브릿팝과 댄스 록의 선조로 대접받고 있다.
2011년 10월 17일 재결성을 발표했다. 매니 어머님 장례식에 멤버들이 모여서 화해한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매니는 이를 계기로 잘 활동하던 프라이멀 스크림에서 탈퇴, 향후 목표는 월드투어, 3집 앨범이라고...
2012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뱀발로 첫날 헤드라이너인 라디오헤드땐 보이는 백인관객들은 거의 미국인이었는데 셋째날 헤드라이너인 스톤로지스때 백인관객들은 열이면 열 영국인이었다. 이는 스톤로지스의 재결합이 영국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간접적으로 느낄수 있는 부분이다.
2016년 3월 24일, NME를 통해 이안 브라운이 새 앨범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2016년 5월 10일 맨체스터 곳곳에 레몬 모양의 포스터가 나붙기 시작했다. 기사 많은 음악팬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스톤 로지즈의 새앨범 발매가 임박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루머에 따르면 한 팬이 맨체스터 길거리에서 매니를 마주쳤는데 그가 '이번주 라디오를 들으라'는 얘기를 전했다고 한다.
2016년 5월 13일 '''20년만에''' 새 싱글 All For One이 나왔다만 평은 그다지 좋지 않은듯.
대부분 '노래가 나쁘진 않은데 '스톤 로지스' 노래라 별로다(과거 1집, 2집 노래들과 비교가 안 된다는)'라는 분위기다.
2016년 6월 9일 Beautiful Thing이 공개되었다.
2017년 6월 24일 글래스고 햄튼 파크 공연 막바지에 이안 브라운이 관중들에게 '끝났음에 슬퍼하지 말고, 이게 일어난 것에 기뻐하세요.'라는 해체를 암시하는 발언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밴드는 더이상 공연을 하지 않았다. 이에 공식적으로 해체를 발표한 것은 아니라 팬들이 행복회로를 태우고 있던 중...
2019년 9월 16일 The Gardian지에서의 존 스콰이어의 인터뷰로 해체가 기정사실되었다.
4. 여담
1집 시기 작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밴드가 런던 씬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 BBC Late Show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Made of Stone을 연주하는 도중 무대 전원에 이상이 생겨 도중에 곡이 끊기는 방송 사고가 일어 났었다. 이와중에 애써 진행을 하려는 진행자 뒤에서 맨큐니안 방언으로 투덜거리는 이안 브라운의 볼멘 목소리가 일품. 한번 들어보자
국내에서는 1집이 삼성 뮤직을 통해 소개되는 바람에 매드체스터 밴드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1집 수록곡 'This Is the One'이 2000년대 중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 입장곡으로 쓰인다. 실제로 맨시티 팬인 드러머 레니를 제외한 셋은 맨유 광팬이다.[12] 이안 브라운은 내한때 박지성은 최고의 선수다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관객들의 격한 호응을 이끌어냈었다.
멤버 중 이안 브라운은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카메오로 잠깐 출연한 적이 있다. 리키 콜드런에서 마법으로 찻잔을 저으며 책을 읽는 마법사 역. 그런데 이 때 읽는 책은 '시간의 역사'. '''스티븐 호킹'''의 그 책이다.(책 표지에 대놓고 BRIEF HISTORY OF TIME과 '스티븐 호킹'이라고 쓰여져 있고, 휠체어에 앉은 호킹의 사진이 실려 있다.)
수많은 영국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준 밴드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갤러거 형제. 노엘 갤러거는 Sally Cinnamon을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꼽았고 처음 들었을 때 마치 운명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스톤 로지스가 그들이 밴드를 시작한 이유라고 하였다. [13] 또한 인터뷰에서 스톤 로지스의 노래가 자신들의 것보다 더 좋은데도 그들보다 자신들 밴드가 더 커진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하기도. 노엘은 특히 기타리스트 존 스콰이어의 열렬한 추종자로, 오아시스가 유명세를 타기 전 자신은 존 스콰이어의 모든 것을 따라하려 했다며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담으로 노엘은 넵워스 공연 당시 존 스콰이어를 게스트로 초대해 Champagne Supernova의 연주를 맡긴 적이 있다.
리암 갤러거 역시 광팬으로 유명한데, Standing Here이 그의 최애곡이라고 밝혔다.
영국에서의 유명세와는 별개로, 미국에서의 인지도는 매우 낮다. 매드체스터 장르 자체가 미국에서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도 있고, 밴드가 미국으로 진출하려고 하기도 전에 레코드 회사와의 갈등 등으로 침체기를 맞은 탓도 있다. 그래도 재결합 이후 2016년 뉴욕 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선보이긴 했다.
5. 디스코그래피
[1] 왼쪽부터 개리 '매니' 마운필드(베이스), 존 스콰이어(기타) , 이안 브라운(보컬), 알란 '레니' 렌(드럼) [2] 이와 별개로 이안 브라운과 해피 먼데이즈의 보컬 숀 라이더는 절친이라고 한다.[3] 더 폴에서도 활동한 그 사람이다.[4] 당시엔 베이시스트였다.[5] 동명의 미국 영화에서 따왔다고 한다. 웨일스 출신의 팝 밴드와는 관련이 없다.[6] '카이저'와 분담[7] 이 인연 때문에 이들도 팩토리 레코드에 편입 될 뻔 했으나 동향 친구들하고 별로 친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산됐다.[8] 더 후의 피트 타운센드는 그를 가리켜 키스 문 이후에 본 가장 재능있는 드러머라고 평했다.[9] 27,000명을 끌어모았다.[10] 참고로 스콰이어는 그림에도 재능이 있어서 미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재결성 이전엔 아얘 본업이 이쪽이었을 정도.[11] 1집에 비하면 처참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망한 건 아니고 몇몇 비평가들은 호평하기도 했다. 가디언 지는 만점을 주기도.[12] 베이시스트 매니가 맨체스터 시티 팬으로 유명한 오아시스의 리암 갤러거에 대해 평가 하기를 "훌륭한 싱어이자 미남이고 옷도 잘 입는데 유일한 문제점은 쓰레기같은 축구 클럽을 응원한다는 것이다"면서 농담을 하기도 했다.[13] https://youtu.be/dfR6JoDEx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