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

 


원어[1]
'''''Cinéphile'' '''
영어
''Cinephile''[2]
1. 개요
2. 역사
3. 현재
4. 참고


1. 개요


'''영화광'''(映畫狂) / 프랑스어로 '''영화'''(''Cinéma'')와 '''사랑'''(''Phil'')[3]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영화팬'이나 '영화 마니아'도 있지만, '시네필'은 주로 학문적·전문적 성향의 영화팬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4][5]
주로 블록버스터 영화 보단 작가주의 영화를 선호하며,[6] 영화 지식이 상당한 경우엔 공동체 안에서 아마추어 영화 평론가 대우를 받기도 한다.

2. 역사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이들은 전세계에 많았다지만, 용어 자체는 프랑스 영화 역사와 함께 했다.
1930년대부터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 극장에 뼈를 묻겠단 각오로 매일 영화를 보는 젊은이들이 대거 생겼는데,[7] 장 피에르 멜빌도 당시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로서 수많은 영화를 섭렵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계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도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해 많은 이들의 꿈이 좌절되고 말았다.
1950년대부터 파리를 중심으로, 다시 영화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결집하기 시작했는데, 이 중심에 있었던 것이 앙드레 바쟁과 《카예 뒤 시네마》로, 이를 발판삼아 프랑스 영화계엔 새로운 젊은이들이 쏟아지게 된다. 특히 이들이 만든 영화는 예전과 달리 전혀 새로운 영화들이었고,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물결''' (''Nouvelle Vague'')"이라 불리며 구분지어졌다.
이 새로운 젊은이들은 한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어렸을 적부터 매일 영화를 관람하고 토론하며 살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광적인 영화사랑을 지칭하여 "'''영화광''' (''Ciné-phile'')"이라는 말이 만들어졌고, 이 단어는 곧 이후 세대의 모든 영화광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시네필' 단어가 처음 쓰일 당시 인물로는, 전쟁 전부터 영화를 좋아한 장 피에르 멜빌, 전쟁 이후에는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등이 있다. 이들은 파리 시내에서 자주 모이곤 했는데, 그래도 연륜을 무시할 수 없는지라, 항상 멜빌이 맏형 노릇을 하고 나머지가 동생으로 어울리는 모양새였다고 한다.

3. 현재


'시네필' 단어를 활용해서, 거의 매일·매주 영화를 보다시피 하는 감독들을 "'''시네필 감독'''"이라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마틴 스콜세지, 쿠엔틴 타란티노, 레오스 카락스, 왕가위 등이 있다. 보다 젊은 시네필 감독으로는 에드거 라이트, 라이언 존슨, 폴 토머스 앤더슨 등이 꼽히며, 한국에서는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김지운 등이 꼽힌다.
'영화광'이라는 원래 뜻만 따지면, 사실상 지금의 모든 영화 업계인들은 시네필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대부분 어렸을 적부터 영화를 좋아하며 꿈을 키웠기 때문.
국내에 유명한 시네필 영화인으론 정성일 평론가가 있는데, 애초에 국내에 '시네필'이란 단어를 퍼뜨린 장본인이기도 하고,[8] 근래에도 열심히 「시네필 안내서」 같은 글을 쓰며 꾸준히 한국 시네필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4. 참고


[1] 프랑스어[2] 영어로는 '시네파일' 이라고 발음한다.[3] '페도필리아'와 같이, 여러 도착증을 뜻하는 단어들의 어미 '필리아(''philia'')'가 이 뜻이다.[4] 해외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5] 그런데 '필(''phil'')' 어미가 변태성욕을 뜻하기도 해서, 가끔씩 조롱의 의미로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 일종의 '영화박이' 같은 뜻으로(...)[6] 어디까지나 취향 차이라서, 마이클 베이를 선호하는 시네필도 있다.[7] 이 시기에 영화시장과 제작기술이 안정되면서, 현대적인 의미의 오락영화들이 대거 제작됐다. 일례로, 블록버스터의 시초라 불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1939년 영화다.[8] 1990년대에 《키노》를 연재하면서부터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