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머스 앤더슨

 

'''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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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칸 영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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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 제54회
(2001년) '''

''' 제55회
(2002년) '''

''' 제56회
(2003년) '''
조엘 코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데이비드 린치
(멀홀랜드 드라이브)

임권택
(취화선)
'''폴 토머스 앤더슨
(펀치 드렁크 러브)'''

거스 밴 샌트
(엘리펀트)


'''Paul Thomas Anderson'''
'''이름'''
'''폴 토머스 앤더슨 (Paul Thomas Anderson)'''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70년 6월 26일 (53세)'''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직업'''
'''영화 감독, 각본가, 프로듀서'''
'''활동'''
'''1988년 – 현재'''
'''배우자'''
'''마야 루돌프'''
'''학력'''
'''뉴욕대학교 영화학(중퇴)'''
1. 소개
2. 생애
2.1. 작품 활동
3. 평가
4. 연출 특징
5. 여담
6. 필모그래피


1. 소개


"'''영화계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 수 있는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도 아니고, 코엔 형제도 아니고, 바로 폴 토머스 앤더슨이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미국의 영화 감독. 팬들은 줄여서 PTA라고 부른다. 미국의 90년대에 새롭게 대거 등장했던 젊고 독특한 신인 영화 감독[1]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감독 중 한명.

2. 생애


성우인 어니 앤더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미 어린 시절부터 영화제작에 관심을 보여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영화 감독이 되는 것을 응원해주기도 했다. 12살 때부터 베타맥스 비디오 카메라로 단편영화를 찍기도 했으며, 고등학생 때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새장 치우는 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첫 영화를 찍기 위한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18살에 30분 분량의 모큐멘터리 <덕 디글러 스토리>를 만든다.
영화광을 자처하던 시절에는 주로 1970년대 미국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기수들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로버트 올트먼 감독[2], 시드니 루멧, 조나단 드미[3],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4]의 영화들을 보면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레이징 불》과 《좋은 친구들》은 백 번 넘게 봤다고 술회할 정도.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마틴 스코세이지, 올리버 스톤, 스파이크 리를 배출한 뉴욕 대학교 영화학과에 진학하지만, "'''터미네이터 2 따위'''"의 시나리오를 제작하고싶으면 여긴 그런데 아니니 나가라"는 교수의 말에 '''실망'''[5]하고 그 다음날, 입학비를 환불받고 뉴욕대를 '''이틀''' 만에 자퇴하여 그 돈으로 단편 영화를 찍을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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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작품 활동


뉴욕대를 자퇴한 후, LA와 뉴욕을 전전하면서 게임쇼, TV, 광고 제작에 조수로 참여하면서 영화 제작의 기초를 배우다 1993년, 도박에서 얻은 돈(?), 여자 친구의 신용카드(...)등으로 지원(??)받아 짐 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의 제목을 패러디한 담배와 커피라는 단편을 만들어 선댄스 영화제 단편 부문에 초청된다. 그리고 신인 감독들의 신병 훈련소(...)라고 불리는, 선댄스 영화제작 워크숍에 참여한다. [7]
선댄스 영화제작 워크숍에서 교육받는 동안, 한 제작사로부터 장편 영화 제작 의뢰를 받는데, 그 작품이 그의 데뷔작, 리노의 도박사.[8] 그러나 그의 데뷔는 순탄치 못했는데. 제작비가 상승해 출연 배우인 귀네스 팰트로존 C. 라일리가 지원한 20만 달러로 제작비를 메꿨고, 첫번째 편집본이 2시간 반(...)인 것에 열받은 제작자가 감독 맘대로 재편집하고, <Sydney>란 제목을 <Hard Eight>으로 제목을 바꾸기도 했다. 배급업자를 구하기도 힘들어서 2년 동안 허공에 붕 떠 있었으며,[9] 겨우 자신의 의도대로 만든 편집본이 1996년 칸 영화제 주목한 만한 시선에 초청되어 호평받는다.[10]
그렇게 고생고생한 <리노의 도박사>는 만 26살의 청년이 만든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숙련된 장인이 만든 기품이 있어 보인다는 평을 받고, 현재는 제임스 그레이의 리틀 오데사, 쿠엔틴 타란티노저수지의 개들, 웨스 앤더슨의 바틀 로켓과 함께 1990년대의 가장 뛰어난 데뷔작으로 평가받는다.[11]
그 사이 1995년, 리노의 도박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앤더슨은 자신이 만든 단편영화, 덕 디글러 스토리를 토대로 각본을 완성해 뉴 라인 시네마의 사장 마이클 더 루카에게 각본을 보내는데 그것이 지금의 PTA를 만든 <부기 나이트>. 덤으로 루카는 각본을 읽고 너무 좋아서 이성을 잃을 뻔했다는 후문이 있다(...)
부기 나이트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성난 황소를 모델로, 동시에 로버트 올트먼의 영화들처럼 여러 등장인물들의 여러가지 다층적인 이야기를, 탁월한 연출력으로 한 덩어리로 만들어 평단으로부터 단번에 주목 받는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와 수영장 시퀀스의 복잡한 스테디캠 롱테이크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 스코세이지와 브라이언 드 팔마에게 물려받은 듯한 뛰어난 영화적 테크닉과 알트먼 감독에게 물려받은 듯한 많은 인물들을 요리하는 뛰어난 극작술이 제대로 아우러져 27살에 이미 포텐을 터트리고, 1970년대의 섹시 스타였던 버트 레이놀즈를 많은 비평가 협회 시상식에서 조연상을 수상하며 다시 부활을 알렸으며, 앤더슨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른다. 또한 이후 매그놀리아에서 다시 뭉치게 되는 줄리앤 무어, 필립 시모어 호프먼, 리키 제이, 윌리엄 H. 머시, 멜로라 워터스, 존 C. 라일리, 루이스 구즈만, 필립 베이커 홀 같은 뛰어난 연기파 배우들이 앙상블을 이룬 작품이기도 하다.
앤더슨은 부기 나이트 편집 도중에, 매그놀리아를 구상하는데, 그는 매그놀리아를 the epic, the all-time great San Fernando Valley movie, 즉 거대한 최고의 샌퍼낸도 밸리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고. 이 프로젝트는 부기 나이트의 비평, 상업적 성공에 힘이 붙어 뉴 라인 시네마에서 제작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앤더슨은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만[12]의 솔로앨범과 앞으로 신보를 낼 데모를 들으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13]그리고 부기 나이트의 캐스트의 대부분이 출연했으며, 톰 크루즈와 제이슨 로바즈가 합류했다.
하지만 제작사측에서 영화를 편집하고 있는 중에도, 포스터나 예고편을 만들지 않고 태만한 태도를 보여 결국 앤더슨이 포스터와 예고편, 사운드트랙까지 직접 참여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개봉 후 공개된 매그놀리아는 로버트 올트먼숏컷을 연상시키게 하는 다중 플롯(그리고 러닝타임 188분까지 오마주)을 이용한 묵시록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만난 작품으로, 대단한 걸작이라는 반응과 과욕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반응으로 엇갈렸는데, 영화의 러닝타임은 물론 일종의 감정과잉에 부담스러워 하는 반응도 있었다.[14] 그래도 영화의 전반적인 기술적으로 완성도는 완벽했으며,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도 훌륭했다는 평. 간혹 데어 윌 비 블러드와 함께 감독의 최고작 떡밥에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매그놀리아는 제작비 3700만불에서 북미기준 2200만불의 수입을 거두어 흥행에 실패하고, 아카데미에서는 남우조연상(톰 크루즈), 주제가상(에이미 만), 각본상(폴 토머스 앤더슨)만이 후보에 올랐으며, 그것마저 무관으로 그쳤다. 하지만 이후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고, '''황금곰상'''을 수상하는데 PTA의 나이 '''29살'''의 일이었다. 당시 독일 언론들은 "오스카가 저버린 영화, 우리가 살렸다"며 수상 결과에 대해 자부심을 내비쳤다.
이후 펀치 드렁크 러브로 칸 영화제 감독상, 데어 윌 비 블러드로 베를린 은곰상, 마스터(영화)로 베니스 은사자상을 수상하면서 3대 영화제 감독상 트로피를 갈아치운 영화계의 괴물 중 괴물이라 할 수 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감독 최고의 걸작으로 뽑히며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됐지만 하필 상대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여서(...) 수상은 하지 못했다. 대진운이 안좋았다.[15]
조나단 드미, 마틴 스콜세지로 대표되는 미국식 현대영화 문법에 의거한 영화를 만들어 왔으나 펀치 드렁크 러브에 이르러 각성하였는지 점점 초현실주의자에 가까운 시각을 기반으로 연출이 실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점점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영화를 벗어나 직관적인 실험영화와 내러티브 영화의 경계로 이동하는 중이다.
덧붙이자면, 그래서인지 데어 윌 비 블러드 이후로 영화들이 어째 다 흥행에서 실패한다(...). 마스터는 3천만불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2천 8백만불에 그쳤고,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제작비 2천만불에 북미에서는 1천만불도 벌지 못해 폭망하고 국내에선 개봉도 못한 채 바로 IPTV로 직행. 영화가 점점 난해해지면서 평론가들은 호의적이지만 관객의 평이 미묘하다는 얘기도 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워너 브라더스의 합작 프로젝트 피노키오 실사판의 각본가로 정해져 감독까지 맡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작자와의 의견충돌로 하차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은퇴작이기도 한 팬텀 스레드란 작품으로 돌아왔는데 굉장히 난해했던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매우 차분하고 섬세한 영화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많은 상에 노미네이트 됐었으며, 의상상을 받았다. 특히 인히어런트 바이스 이후 PTA 감독의 작품 방향에 대해서 우려했던 팬들에게 걱정을 씻어주었다. 흥행면에선 3500만달러로 4626만달러를 벌어서 실패했지만, 애초에 흥행을 노리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래도 제작비의 반토막 수준의 흥행성적이었던 전작들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그 다음 작으로 1970년대 미국 고등학교의 이야기를 그린다고만 알려져있다.#

3. 평가


"'''폴 토머스 앤더슨과 데이비드 핀처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멍청이들을 설득해, 지적이고 도전적인 영화에 투자하도록 만드는 능력을 가진 유이한 사람이다.'''"

ㅡ 토니 레인즈[16]

"'''미국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유지하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은 많지 않다. 폴 토머스 앤더슨 정도랄까.'''"

자크 오디아르[17]


4. 연출 특징


작품마다 스타일이 많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유사 가족 관계, 폐쇄된 집단, 사이비 종교, 깊은 상처를 가진 캐릭터 등의 소재에 집중하는 편이다. 소재에선 같은 성씨의 웨스 앤더슨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18] 화법이 많이 다르다. 웨스 앤더슨은 동화적인 접근을 하는 반면, 폴 토머스 앤더슨은 인간 내면의 불완전성을 낱낱이 파헤치는 드라마를 만든다.
PTA의 영화는 장면장면마다 완벽한 구도를 구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촬영은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사전에 계산이 된 후 이루어지며, 이는 PTA의 머릿속에 이미 영화 전체가 장면 단위로 구상된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영화인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한 부기 나이트의 유명한 첫 롱테이크 씬에서의 복잡한 카메라 워킹은 PTA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영화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시나리오이며, 시나리오가 훌륭하면 연출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기 힘든 PTA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말이다.
펀치 드렁크 러브와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분기점으로 하여, 현란하고 리듬감 있는 연출보다 좀 더 정적이고 고전미 넘치는 연출로 나아가고 있다.

5. 여담


  • 그의 영화들은 철저히 미국을 통찰하지만[19] 정작 아카데미에선 외면받는다. 전세계 영화팬들은 이 젊고 뛰어난 감독이 왜 본토인 미국에선 아직 상을 못 받았는지 아리송한 눈치.[20] 아무래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작품성과 흥행을 동시에 추구하는 시상식이다보니, 예술성이 강 한 폴 토머스 앤더슨에게 상주기를 꺼리는 것도 있겠고, 영화가 통찰하는 미국의 어두운 부분들과 그가 공공연히 하는 국가주의와 권위를 부정하는 반골정신을 담고 있는 말들이 여전히 보수적인 아카데미 백인 원로들에게는 눈엣가시여서 그런 것도 있는 듯. 대신 유럽에서 상을 싹쓸이했다.
  • 관련 기록을 훑다보면 놀라운 것이, 그의 행보가 그가 존경하는 로버트 알트만과 비슷하게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알트만도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감독이고 특출난 흥행작이 없다는[21] 것까지 비슷하다. 꿈을 꾸다보면 꿈을 닮는다는 말이 어울리는 대목이다.
  • 그는 LA의 근교, 샌퍼낸도 밸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미국에서 유통되는 포르노의 90%가 생산되는 곳이었다. 때문에 그는 포르노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수천 편의 포르노를 섭렵했다고 한다.
  • 심각한 마약 중독자이기도 하다. 펀치 드렁크 러브 찍는 도중에 마약하다 코피 흘리고 쓰러졌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 혈기왕성한 청년 시절에는 코카인 없이는 시나리오를 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애가 넷인 현재는 많이 자제하는 것 같지만, 웬만한 배우 뺨치던 미남이 폭삭 늙은 것은 마약 중독의 대표적인 부작용. 영화계의 톰 요크라고 불리기도 한다.
  • 펀치 드렁크 러브까지는 존 브라이온이 음악에 참여했고 심지어 존 브라이온이 프로듀싱해준 뮤지션인 피오나 애플과 사귀기도 했지만[22], 데어 윌 비 블러드부터는 라디오헤드조니 그린우드가 음악에 참여하고 있다. 아무래도 데어 윌 비 블러드를 기점으로 영화 색깔이 확 바뀌어서 그런듯.
  • SNL 크루 출신 마야 루돌프와 2001년부터 교제해오고 있다.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슬하에 아이를 넷 낳은 사실혼 관계이다.
  • 미국 현지에서는 하모니 코린[23]과 함께 굉장한 반골이자 꼴통거장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한 GV에선 "나도 사랑받고 싶은 인간이다. 내가 쿨해보이고 싶긴 하지만 당신들에게 사랑받으려고 평범한 플란넬 셔츠를 입고 왔다. 나 그리 쿨하지 않다. 귀여워해달라" 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자신의 영화에 대해 설명하기를 혐오하지만 이 양반 청년 시절만 해도 타란티노마냥 열심히 자기 영화에 대해 설명하며 행복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 이름이 비슷한 SF 작가 폴 앤더슨, 감독 폴 W.S. 앤더슨[24]과는 다른 사람이다. 작품 성향 도 꽤 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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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커리어 초창기 시절'''
  • <데어 윌 비 블러드> 시절농담이 아니라, 위의 위대한 감독 드립(...)의 웃음 코드로 사용돼서 그렇지, 정말 굉장히 잘생긴 미남이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주연 남배우급의 미모를 자랑했다.
  • 묘하게 3대 영화제 수상 당시 두번이나 한국과 관련이 있었다. 칸에서는 임권택과 감독상을 공동 수상했고[25], 베니스에서는 김기덕에 이은 2등상을 수상했다.
  • 영화 파이트 클럽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폴 토머스 앤더슨이 파이트 클럽을 30분 보고는 암 환자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며 극장에서 뛰어 나왔다고 한다. 그리곤 그런 감독은 응징 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했다. 그리곤 후에 파이트 클럽인 감독인 데이비드 핀처에게 자신이 유머러스 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해서 예민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 크리스토퍼 놀란과 사적으로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가족을 데리고 같이 디즈니 랜드도 갔었다고.
  • DC 코믹스의 10대 청소년들로 구성된 슈퍼히어로 팀을 다룬 만화 틴 타이탄을 영화화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이들을 위한 카툰 영화화를 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본 질문에 답한 것. # 차기작 이 1970년대 배경의 10대 청춘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보면 최근 들어 정말 진지하게 틴에이지물 소재에 대한 관심이 있었나보다.
  • 폴 토마스 앤더슨이 좋아하는 영화들#[26]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는 마스터를 가장 좋아한다고.#
  • 뉴욕대 입학하기 전에 다니던 에머슨 대학(Emerson College)에서 영문학 시간 강사로 역임하던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에게 배운 적이 있다고 한다. 스승으로서 정말 좋았던 사람이라고 술회했다.#
  • 봉준호감독은 약에 취해서 영화를 찍는 감독이라고 평했다.#
  • 생전의 스탠리 큐브릭을 만났는데 자기가 부기나이트 감독뿐만 아니라 각본까지 썼다고하니까 휠씬 자상하게 대해줬다고한다. #

  • 자신의 모든 연출작에 단독으로 각본을 써왔다. 이게 뭐가 놀라울 만한 일인가 싶지만, 단독 각본 자체만으로도 감독으로나 각본가로서도 큰 역량이 부담되는 일이고, 각본가 출신 감독들도 자신의 모든 작품에 각본을 쓰는 일도 드물다. 각본으로서도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탄탄하지만, 독특하고 뛰어난 연출력을 자랑하는 것을 보면 천재 감독이라는 부재가 안 아깝다. 하지만 이런 점이 자신의 특성이 너무 세게 들어가서 대중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6. 필모그래피



'''연도'''
'''제목'''
'''역할'''
'''비고'''
1993년
'''담배와 커피'''
연출, 각본
단편
1996년
'''리노의 도박사'''
연출, 각본

1997년
'''부기 나이트'''
연출, 각본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1999년
'''매그놀리아'''
연출, 각본, 단역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2002년
'''펀치 드렁크 러브'''
연출, 각본
칸 영화제 감독상
2007년
'''데어 윌 비 블러드'''
연출, 각본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2012년
'''마스터'''
연출, 각본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2014년
'''인히어런트 바이스'''
연출, 각본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2015년
'''주눈'''
연출, 각본
다큐멘터리
2017년
'''팬텀 스레드'''
연출, 각본, 촬영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2019년
'''아니마'''
연출
넷플릭스 독점 공개 단편
2021년
'''제목 미정 신작'''
연출, 각본, 제작


[1] 쿠엔틴 타란티노, 데이비드 핀처, 제임스 그레이, 웨스 앤더슨, 대런 애러노프스키, 알렉산더 페인, 제임스 맨골드 등.[2] 매그놀리아는 소위 알트만 감독식 촬영 기법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알트만은 앤더슨을 재능있는 감독으로 인정하고, 그를 매우 아꼈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의 유작이 된 <프레리 홈 컴패니언 A Prairie Home Companion>(2003) 촬영 당시 자신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하여, 앤더슨을 유사시 감독으로 직접 채용할 정도. 다행히 직접 영화 촬영을 무사히 끝마쳐서 그럴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3] 양들의 침묵, 필라델피아(영화), 레이첼, 결혼하다(2008)로 유명한 영화감독이며 2017년 4월 26일 타계하셨다. 유작은 어바웃 러키(2015).[4]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버지.[5] 앤더슨의 세대는 터미네이터 2의 센세이션을 극장에서 직격으로 감명받은 세대이다. 실제로 앤더슨 본인은 터미네이터 2가 "정말로 멋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당시 헐리우드 영화계는 터미네이터 2의 영화의 기술적 진보에 대해 환영하였으나 '''예술성'''을 고집하는 감독들은 터미네이터2의 단순한 스토리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6] 직역하자면 "교수가 '터미네이터2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거라면 당장 나가라' 라고 말했어요. 교수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아요. 제가 만약 터미네이터2같은 작품을 쓰고 싶다면요?" [7] 그때 그를 가르쳤던 마이클 케이튼 존스 감독은 "재능있고 창의적인 목소리로 가득 차 있지만, 경험이 부족해보였다"고 술회한다.[8] 1992년에 2주만에 쓴 각본으로 만들었다고. 장 피에르 멜빌의 도박사 밥에 영향받았으며, 3백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었다.[9] 1994년에 찍은 영화였다.[10] 그것도 영화제 하루 전에 겨우 의도대로 감독판을 만들었다고 한다.[11] 동시에 그와 계속 작업할 촬영감독 로버트 엘스윗과 처음 만난 작품이기도 하다.[12] 1980년대에 활동했던 뉴웨이브 밴드 Til Tuesday의 보컬. 부기 나이트의 음악을 맡은 같은 싱어송라이터 마이클 펜의 아내이기도 하다.[13] 윌리엄 H. 머시가 가지고 있는 오두막에서 시나리오를 썼다는데, 밖에는 뱀이 우글거렸다고...[14] 오죽하면 국내 모 잡지에서 부기 나이트는 리듬감이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매그놀리아는 그 과욕의 에너지와 리듬감이 영화를 지치게 하고 만다는 반응까지 짤막하게 넣었다. 그것도 다른 영화를 소개하면서. 또한 케빈 스미스는 이 영화를 엄청나게 싫어해서, 제이와 사일런트 밥의 역습에 '매그놀리아 팬보이'를 사정없이 깠다.[15] 하지만 순수히 작품성면에서는 오히려 이쪽이 위였다는 견해가 많으며 최소한 대등했다는 평가이다. 게다가 주인공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역대급 연기를 펼치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16] 영국의 영화 평론가이자, 한국 영화 전문 연구가. 2008년 씨네21 설문에서[17] 발언 출처[18]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도 폐쇄집단이나 유사가족이 자주 나온다.[19] 부기 나이트,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인히어런트 바이스등 PTA의 영화들은 그 짧은 역사동안 미국의 정신을 또래 미국 감독 중 가장 독하고 정확히 통찰하는 영화들이란 평을 받는다.[20] 매그놀리아로 각본상 후보에 올랐던 2000년에는 아메리칸 뷰티(수상작), 존 말코비치 되기, 식스센스 등의 강적들이 있었고, 데어 윌 비 블러드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의 후보에 올랐던 2008년에는 하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같은 해에 나오는 바람에...[21] 알트만을 유명감독으로 올려준 1970년작 <매쉬> 이후, 알트만은 끝내 <매쉬>의 흥행 성적을 넘는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정도로 흥행과 먼 영화감독이었다. 매쉬 바로 다음 흥행작이 2002년작인 <고스포드 파크>였을 정도.[22] 연인 사이일 당시 피오나 애플의 뮤직비디오를 여러 편 연출하였다. 2000년 을 마지막으로 끝난 둘의 협력이 2013년 연출로 다시 살아나는 듯 하다.[23] 구모나 줄리언 동키 보이, 스프링 브레이커즈 같은 10대들의 일탈과 반항을 과격하게 다룬 영화들로 유명한 인디 영화 감독. 데뷔 초기엔 굉장한 돌아이 이미지로 유명했다. 나이를 먹은 지금은 자제하는 편이다. 국내에서는 스토커(2013년 영화) 카메오와 박찬욱과의 친분으로도 유명하다.[24] 모탈컴뱃의 실사영화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로 유명하다. [25] 덕분에 수상하면서 임권택과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26] 폴 토마스 앤더슨은 예술 영화들 또한 좋아하지만, 상업 영화들 또한 정말 좋아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