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 곤잘레스
1. 소개
스페인의 축구선수. 포지션은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겸 공격수이다.
2. 커리어
2.1. 발렌시아 CF
알바세테 발롬피에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하던 시시는 2001년에 발렌시아 CF 산하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게 된다.
2003년, 당시 스페인 3부 리그 세군다 디비시온 B의 발렌시아 CF B팀에서 프로 데뷔를 하였는데, 당시의 나이는 17세 였다.
2004년 3월 14일, 29라운드 UDA 그라먼트 전에서 프로 데뷔골을 넣었으며, 최종적으로 리그에서 10경기 출전 2골을 기록, 팀은 리그 7위로 마감하는 등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프리메라리가에 소속된 발렌시아 CF 1군으로 당당히 승격하게 된다. 그러나, 시시가 1군으로 승격한 2004년에 발렌시아는 '''2003-04 시즌 리그 우승, UEFA컵 우승, 코파 델레이 4강'''에 이르는 미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시시가 16세부터 청소년 대표팀에 들어가 좋은 활약으로 17세에는 스페인에 U-17 준우승[2] 을 이룬 재능있는 선수라는 건 발렌시아에서도 눈여겨보고 있었으나, 이미 최상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발렌시아 CF로서는, 그를 임대 보내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2.2. 승격의 기쁨을 함께한 에르쿨레스 CF
2004년, 1부 리그 프리메라리가의 발렌시아 CF에서 3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 B 에르쿨레스로 임대되었으나, 시시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에르쿨레스에서 주전으로 뛰며 빠르게 적응한 그의 활약으로, 작년 시즌 9위였던 팀은 2위로 6년 만에 2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승격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에르쿨레스는 발렌시아 CF에게 임대 연장을 요청했고, 시시는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1년 더 경험을 쌓게 된다.
에르쿨레스에서 73경기를 뛰며 2골을 기록하며, 2006년에 기간 만료로 다시 발렌시아 CF로 돌아가게 된다.
2.3. 레알 바야돌리드에서의 감격의 우승, 그리고 프리메라리가 입성
좋은 활약을 펼치고 발렌시아 CF로 돌아왔으나, 시시의 입지는 변하지 않았다. 팀의 상태가 2004년에 비해 나빠지긴 했지만 발렌시아는 여전히 상위권에 있었고 당시 19세 밖에 되지 않았던 시시를 기용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다.
결국 발렌시아 CF는 시시를 다시 한 번 임대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때, 당시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전력 보강을 하던 레알 바야돌리드 CF에서 시시를 임대 영입한다. '''그리고'''는
[image]
'''2006-07 시즌 세군다 디비시온 우승을 이끌어냈다.'''
바야돌리드는 프리메라리가에서 강등되고, 세군다 디비시온 2004-05 시즌 6위, 2005-06 시즌 10위의 중위권 팀이었다. 시시는 이 팀에 빠르게 녹아들며 바야돌리드 중원의 핵심이 되어 팀의 상승을 이끌었다.
세군다 디비시온 8라운드에서 전반전 8분 만에 골을 기록하는 것을 시작으로, 40경기[3] 를 뛰면서 4골을 기록한다.
시시는 골을 넣는 것뿐만 아니라, 팀의 중원을 책임지며 공격과 수비를 주도했는데, 시시의 이러한 활약으로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2위 UD 알메리아를 8점차로 따돌리며 우승을 차지, 프리메라리가 승격의 주역이 된다.
이 때의 활약으로 스페인의 골닷컴에서는 스페인의 젋은 재능 6인 중 한 명으로 시시를 꼽았고, 그는 U-21 대표팀에 입성하게 된다. 말 그대로 시시의 전성시대.
[image]
프리메라리가에 입성한 시시
당연히 바야돌리드는 승격의 주역인 시시의 임대 연장을 신청했다.
2007-08 시즌 프리메라리가에 데뷔한 시시는 팀 내에서 가장 많은 36경기를 뛰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2007년 9월 2일 프리메라리가 2라운드 RC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전에서 1-2로 뒤진 후반 77분에 프리메라리가 데뷔골을 극적인 동점골로 기록하며 2-2 무승부를 만들었다.
이후 13라운드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전에서 1-2을 만드는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자신의 프리메라리가 2호골을 성공시켰다. 다만, 90분에 팀의 자책골이 터지면서 결국, 4-3으로 패배.
프리메라리가 36경기 2골로 준수한 활약을 성공적인 프리메라리가에서의 첫 시즌을 보냈다. 팀의 순위도 승격팀으로는 나쁘지 않은 15위.
이후, 임대기간 만료로 친정팀인 발렌시아 CF로 돌아간다.
2.4. 레크레아티보 우엘바로의 이적, 그리고 강등의 아픔
발렌시아 CF로 복귀한 시시는 계약기간 만료로 새로운 팀을 찾게 되고, 그때, 프리메라리가의 레크레아티보 우엘바에서 전력 보강으로 시시를 영입한다.
이제 임대생 신분도 아니고 제대로 된 소속팀에서 뛰어볼까 했는데...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A형 간염''' 판정을 받으면서 두 달간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게 된다.
비록 33라운드에서 1골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시즌 중 잔부상으로 2008-09 시즌 28경기에서 제대로 풀타임을 뛴 게 '''6경기'''밖에 안 될 정도로 컨디션 난조에 빠지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시즌 초반에 팀의 에이스 골키퍼인 야센호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실점률이 엄청나게 늘었다. 레크레아티보 우엘바는 30라운드부터 거의 강등이 확실시 되어버렸고, 마지막 카드로 남은 9경기[4] 동안 시시를 풀타임으로 혹사시키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고 레크레아티보는 프리메라리가 최하위인 20위로 강등되고 만다.
2.5. 이젠 임대생이 아닌 정식 팀원, 레알 바야돌리드로 돌아오다.
레크레아티보 우엘바는 강등되었고, 주축 선수들도 대거 이탈한다. 시시도 마찬가지였는데, 2년 전 승격의 기쁨을 함께한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바야돌리드 CF가 3년 계약으로 시시를 영입한다.
9월 20일 프리메라리가 3라운드에서 선발 출장하여 1-1로 비기고 있는 상황에서 역전골을 넣으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고 팬들의 기대감을 높게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시는 시즌 초반에 부상을 당하고 만다. 6라운드 이후 시즌 내내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한 시시의 부재 속에 바야돌리드는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17위인 말라가 CF와 1점 차이로 강등되고 만다. 시시는 부상으로 인하여 5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고, 팀의 강등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09-10 시즌은 시시 개인적으로 지우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그러나 레알 바야돌리드와 시시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2010-11 시즌에 마음을 다잡고 프리메라리가 입성에 다시 한 번 도전하게 된다. 시시 본인도 전 시즌에 부상으로 인한 부진을 만회하고자 노력했고.
2010-11 시즌에 리그 7위로 안타깝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지만, 그 다음인 2011-12 시즌에 본인의 리그 최다 골인 5골을 기록하고 팀도 리그 3위를 하면서 당당히 프리메라리가에 재입성하게 된다.
하지만, 2012년을 끝으로 시시는 레알 바야돌리드와 계약기간이 만료되었고, 시시는 CA 오사수나로 떠나게 된다.
'''당시 레알 바야돌리드 CF에서 시시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image]
참고로, 주장 완장도 찬 적이 있다. 그것도 '''FC 바르셀로나 B전'''에서.
2.6. CA 오사수나, 되살아는 부상의 악몽
2012-13 시즌, 시시는 CA 오사수나와 계약하며 다시 한 번 프리메라리가에 입성한다.
CA 오사수나에서 초반 준수한 활약을 하며 주전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던 시시는 13라운드 라요 바예카노 전에서 부상으로 35분에 그라운드를 내려오고 2012-13 시즌의 남은 기간에 휴식을 취하게 된다. 2012-13 시즌의 오사수나 최종 순위는 16위.
'''그런데....'''
[image]
다음 시즌인 2013-14 시즌 2013년 10월 9일 프리메라리가 9라운드 FC 바르셀로나전에서 '''경기 시작 5분 만에 부상을 당하고 만다.'''
그냥 부상도 아니고, 시즌 아웃이 될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중원의 핵심인 시시가 빠진 CA 오사수나는 2009-10 때의 바야돌리드를 재현이라도 하듯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시시의 부재 속에서 결국 18위로 강등되고 만다.[5]
당시 영상[6]
2009-10 시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부재 속에 팀이 강등되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시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시즌이 되었다.
긴 시간 재활에 매달린 시시는 2014-15 시즌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경기력 회복에 힘을 썼고, 언론 앞에서도 과거와 같은 움직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상에서 회복했다고 말했다. 2014-15 시즌 CA 오사수나는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잔류하게 되었고 시시에게 재계약 협상을 문의했으나, 시시는 스페인 잔류가 아닌 해외무대로 나가기 위해 재계약 거부 의사를 밝힌다.[7] 그리고, 그런 시시의 '''다음 행선지는 놀랍게도...'''
2.7.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그의 다음 행선지'''
[image]
그의 다음 행선지는 놀랍게도 '''대한민국''' '''K리그,''' 그것도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 소속의 '''수원 FC'''라는 것이 밝혀졌다. 등번호는 8번이다.
그간 K리그 무대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들을 봐도, 시시처럼 유소년 시절부터 스페인의 연령별 국가대표를 두루 거쳤고 프로 데뷔 이후에 프리메라리가에서 주전급으로 활약하기도 한 네임드 선수는 절대 흔치 않았고, 그런 선수가 1부 리그도 아닌 2부 리그에 온다는 사실이 다소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고가 같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착각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자신이 소속될 팀이 2부 리그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같은 연고의 팀과 착각한 것도 아니라고 본인 입으로 인증했다. 떠나기 전, 친구가 "수원 삼성으로 간다며?"라고 물어보자 "아니, 연고만 같은 작은 팀이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8]
다른 나라에서 뛰어보고 싶었던 차에 아시아 리그에서 오퍼가 들어왔고, 특히 인도에서 적극적이었으나 선수 본인이 싫다 하여 한국으로 왔다. 치안이 좋고 임금 체불이 없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 모양. 그리고 스페인에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오스마르 바르바가 성공한 것에 자극을 받은 것 같다. 시시는 인터뷰에서 한국에 온 이유에 대해 '''"모든 것이 경쟁이고 치열함의 연속이었던 스페인 생활에서 벗어나 축구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언급했다.#
대략적인 연봉은 2억 5천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시민구단인 데다가 원래 무리하지 않는 수원 FC의 경영스타일을 보면 이례적으로 투자를 많이한 셈. 올해가 승격의 적기라고 생각하고 과감히 지른 것으로 보인다. 시시를 영입한 이후 수원 FC가 K리그 승격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게 됨으로써 이 선택은 상당히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부산 아이파크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여 '''수원 FC의 K리그 클래식 승격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시즌 종료 후 가족 중 아픈 이가 있어 되도록 가족과 가까운 곳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싶었다는 의사를 밝혔고, 구단 측에서도 승격에 크게 공헌했던 시시를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긴 했지만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시시의 생각을 존중하여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아름답게 이별했다.[9]
그래도 한때 같은 팀 출신에 같은 에이전트를 두고 있는 하이메 가빌란에게 한국행을 적극 추천하며 끝내 가빌란의 수원 FC 입단을 성사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폴란드로 떠나는 시시의 수원 FC에 대한 마지막 선물인 셈.
[image]
그리고 이적이 확정된 후 수원 FC 측에게 쓴 장문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2.8. 다시 유럽으로, 폴란드와 그리스 생활
[image]
KSS 레흐 포츠난 시절.
[image]
베리아 FC 시절.
결국 1년만에 유럽으로 돌아간 시시는 폴란드의 KKS 레흐 포츠난에 입단했고, 같은 해 8월 그리스 수페르리가 엘라다 소속 팀인 베리아 FC로 이적하여 반 시즌 간 11경기를 뛰었다.
2.9. 일본으로 가다
[image]
그리고 해가 바뀐 2017년 1월, J2리그 소속인 FC 기후에 1년 계약으로 입단하면서 다시 아시아 무대를 밟게 되었다. # 이적하기 몇달 전에 자신의 트위터에 J리그 경기 영상[10] 을 올렸던 것으로 보아, 이번에도 수원 FC에 입단했을 때와 똑같이 자신의 의지로 아시아 복귀를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고, # 2018년 같은 리그의 도쿠시마 보르티스로 이적하였다.
2019년 5월 전치 4~6개월의 왼쪽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상 시즌 아웃. #
결국 시즌 종료 후 재계약 없이 팀을 떠났고, 2020 시즌을 앞두고 에히메 FC로 이적했다.
3. 이야깃거리
- 스페인에서 U-17, U-18, U-21 대표팀 코스를 밟은 전형적인 엘리트형 선수이다. 그와 함께 당시 대표팀을 꾸렸던 선수들로는 전술했듯 세스크 파브레가스, 다비드 실바, 로베르토 솔다도, 산티 카솔라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과는 달리 성인 대표팀에는 승선하지 못했는데, 위의 커리어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전성기의 시절인 22세 때부터 부상으로 인해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 어느 팀에 있든 간에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선수이다. 본인도 팬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CA 오사수나를 떠날 때에도 팬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작성하는 등, 매우 호감형 선수다.
- 한국 축구 팬들에게 친숙한 맨체스터 시티의 다비드 실바와 유소년 때부터 함께한 친구다. 실바는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할 때인 2010년에 인터뷰에서 "만약 과거와 현재에서 함께 뛸 수 있는 선수를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랑 함께 하고 싶습니까?"라고 묻자 "발렌시아 유소년 팀에서 함께 뛰었던 마누엘 루즈, 시시니오 곤잘레스와 함께 뛰고 싶네요. 그들은 정말 훌륭한 선수예요."[11] 라고 답할 정도. 안타깝게도 이듬해 시시는 시즌 초반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되며 팀의 강등을 지켜보는 아픔을 겪었다.
- 시시가 수원 FC로 이적한다는 사실을 안 다비드 실바가 한 소리가 "너 미쳤냐?"였다고. 이후 수원 FC가 승격하자 "1부 리거가 된 걸 축하해"라고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1] 스페인에서는 미드필더로 활동했으나, 수원FC에서는 공격수로 기용됐었다.[2] 당시 스페인 17세 대표팀에서 시시와 함께 미드필더 진을 구성한 선수가 '''세스크 파브레가스''', '''다비드 실바'''다. 스페인은 이 대회 조별 예선에서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한국 U-17 대표팀과 맞붙어 3-2로 승리하기도 했는데, 그 때 한국 대표로 활약한 선수들은 정인환, 양동현, 이용래, 이상협 등이 있다.[3] 세군다 디비시온은 총 경기수가 42라운드다. 40경기 중 선발이 36경기에 교체 투입이 4경기다. 팀 내에서 시시의 입지를 알 수 있는 대목.[4] 레크레아티보에서 풀타임 6경기 중 5경기가 30라운드 이후다. 그만큼 레크레아티보의 입장에서는 시시의 활약이 절박했다는 소리다.[5] 운명의 장난인지, 2009-10 시즌에도 시시의 부상으로 인한 부재 속에서 팀은 17위와 1점 차이로 강등되었다.[6]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카를레스 푸욜과의 충돌 후, 몸에 이상을 느낀 시시가 교체 의사를 밝혔으나, 감독이 '''계속 뛰라고 했고''', 그 직후 참사가 일어났다.[7] 그냥 거부한 것도 아니고 장문의 편지를 써서,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정도다.[8] 수원 삼성의 경우는 친선전이지만 호나우지뉴의 FC 바르셀로나와 경기해서 승리한 적도 있으니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편인 듯.[9] 시시는 수원 FC가 가족들의 병원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걸 원했지만 비교적 영세한 시민구단인 수원 FC는 그럴 수 있는 사정이 못 된다. 시시의 요구 사항을 들어줄만한 구단은 K리그 내에서도 거의 극소수인지라.. [10] 사족을 달자면 이 경기는 나고야 그램퍼스와 아비스파 후쿠오카의 경기이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이 두 팀은 2016년 나란히 J2리그로 강등되고 만다 (...)[11] 참고로 다비드 실바는 시시보다 1년 먼저 발렌시아 1군으로 승격했다. 다만 당시 발렌시아의 스쿼드가 가히 엄청났기 때문에, 다비드 실바 역시 2년 동안은 임대로 실력을 키웠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