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환
1. 소개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K리그 클래식의 FC 서울 소속이었다.
2.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파이터형 수비수로 187cm, 84kg이라는 좋은 체격과 점프력으로 제공권 장악과 몸싸움에 특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발밑이 굉장히 둔탁해 빌드업은 기대할 수 없고, 수비 지능도 떨어져 간혹 본인의 실수로 전체적인 라인까지도 흐트러뜨리는 문제점이 있다.
3. 경력
3.1. 유소년 시절
중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며 어렸을 때는 태권도를 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부모님은 맞벌이라서 자식인 정인환을 돌보기 힘들었는데 태권도 도장에선 밤 늦게까지 운동을 시키고 집으로 데려다주기 때문이었다고. 그래서 정인환이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축구부에 들고싶다고 했을때 그 때마다 거절을 했다고 한다. 중학교도 축구부없는 곳으로 갔다가 부모님을 졸라서 축구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후 축구부가 있는 인근의 다른 중학교로 전학을 가려 했는데 같은 지역이라서 불가능했었으나 아버지가 시청에 가서 조른 끝에 그 곳으로 전학을 갔었으나 학원축구의 특성상 구타가 너무 심한데다 축구에 대한 기초도 없었기 때문에 일주일만에 관두려고 했었다고 한다.
중 3때 자기가 가야 할 고등학교가 이미 정해졌으나 잘하는 친구 따라서 가는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당시 허정무가 유소년을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만든 용인유소년축구센터(백암고등학교)에 몰래 시험을 봐서 자신의 특기인 점프력과 체격덕으로 최종시험까지 합격을 했으나 축구부 감독이 그 곳으로 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회비도 자기가 가야 할 고등학교 학비보다 5배는 더 비쌌다고 한다. 그래서 용인유소년축구센터의 코치였던 박광현 감독이 학비지원을 약속했으며 허정무가 직접 정인환의 부모님을 만나 설득한 끝에 용인축구센터 산하고등학교인 백암고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가서도 기량은 늘 생각이 없었으며 중국으로 유학갔을 때 다롄 스더 유소년팀과의 경기에서 자신 때문에 6실점을 하게 되자 허정무가 '너 관둬라'라는 소리를 했고 자존심이 무너진 그는 축구를 관두려 했으나 부모님의 설득으로 개인훈련을 열심히 했다. 그러한 모습을 본 허정무가 어느날 정인환에게 기회를 줬고 그에 부응을 했다. 달라진 그의 모습에 허정무도 감탄을 했으며 이후 주전으로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그리고 17세 대표에도 뽑히고 실력은 계속 늘었으며 마침내 20세 이하 대표에도 뽑혔다. 고3 때는 넘버 원 수비수로도 인정을 받았다. 이후 연세대학교에 진학했고, 그로부터 1년 후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했다.
3.2. 프로 입단 후
3.2.1. 전북에서 전남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 입단 당시 전북의 방패이자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주역인 최진철에게 직접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했으나 2군 경기에서 헤딩 경합 중 광대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당해 슬럼프에 빠지고 부상에서 회복한 후 허정무의 요청으로 전남으로 트레이드된다. 상당한 박탈감을 느꼈지만 자신의 은사이기도 한 허정무가 있는 곳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이적을 했는데...
하필이면 2008년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허정무가 A대표팀 감독이 되어 떠나버렸다. 은사 허정무를 보고 전남으로 간 건데 정작 허정무가 딴 데로 가버리면서 전남에서 다시 슬럼프가 찾아왔고, 결국 2009시즌에는 겨우 9경기 출장에 그쳤다. 어찌어찌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입지를 넓혀가던 차에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인천의 감독으로 부임한 허정무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인천으로 갔다.
3.2.2. 전남에서 인천으로, 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전북으로
당시 인천의 짠물수비를 책임졌던 임중용과 짝을 지어 활약했던 센터백인 안재준과 트레이드가 되었으며 인천의 레전드인 임중용의 등번호인 20번[2] 을 달았는데 초반에 좀 부진해서 인천 팬들에게 많은 질타를 받았다.[3]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팀에 녹아들어 갔으며 인천이 눈부신 상승세를 보여준 2012년 여름부터는 리그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줘 드디어 꿈에 그리던 태극 마크를 달게 되었다.
2012시즌 종료 후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에서 베스트 11에 뽑혔다. 13시즌을 앞두고 광란의 영입을 선보이던 전북에 팀 동료 정혁, 이규로와 함께 20억+@로 팔려갔다. 하위 스플릿에서 눈부신 선전을 펼치며 팬들의 기대를 높였던 인천은 핵심 선수 3명을 세트로 팔아먹으며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4]
이 때까지만 해도 아챔을 제패하던 곽태휘 못지 않은, 관점에 따라서는 능가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리그 최고의 센터백으로 인정받았으나 이후 폼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정인환이 전북에 오던 시절만 해도 방출 후보 1위였던 윌킨슨이 최강희 감독 복귀 이후 확실하게 살아나면서 윌킨슨-김기희 라인에 밀려 버렸다. 김기희가 라이트백을 겸했을 때는 그나마 선발 출전할 수 있었지만, 최철순의 전역으로 김기희가 센터백으로 고정되자 완전히 밀려났다.
2014 시즌이 끝난 후 군 입대가 유력했으나 상주 상무에 지원 하지 않았고 안산 경찰청 입대 이야기도 없어서 팬들에게 일반 현역병으로 입대하려는 건가하는 의문을 갖게 했다. 전북은 같은 장신 파이터형 센터백 김형일을 영입해 정인환의 공백을 대비했다.
3.2.3. 중국 진출과 서울 이적
2015년 2월 26일 중국 슈퍼 리그의 허난 젠예 이적이 발표되었다. 정황상 병역면제를 받은 모양. 1년 뒤인 2016년 FC 서울로 이적하면서 다시 K리그 클래식에 복귀했다. 그러나 서울이 본래 쓰리백을 쓰는 팀으로 부동의 주전 오스마르와 인천 임대 이후 포텐 폭발한 김원식에 김동우, 김남춘, 심우연 등 중앙 수비수 자원이 줄줄이 늘어서 있어 경쟁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부상을 당해 시즌 초반에는 출전하지 못하다가 6월 12일 수원 FC전에 처음으로 선발출장 했다. 앞선 제주전에서 수비진이 너무 안좋은 모습을 보여 매우 중요한 시합이었는데 무난한 플레이를 보여주며 팀의 대승에 일익을 담당했다. 그러나 여름 이적 시장에서 곽태휘가 영입되고 황선홍 감독 부임 이후 김남춘이 급성장하면서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버렸다. 오스마르-곽태휘 센터백 듀오가 8월부터 가동되었고 오스마르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라간다 쳐도 김남춘이 있다. 정인환도 황선홍 감독 부임 직후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6월 29일 성남전, 7월 2일 상주전에서 수비불안이 심한 가운데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황선홍 감독의 플랜에서 사실상 제외되었다. 부상에서 복귀할 김원식과 김동우까지 감안하면 그에게 주어진 자리는 없다.
대다수의 팬들은 16시즌 종료 후 정리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김남춘이 시즌 종료 후 입대하고 김주영 영입이 실패로 돌아가 수비진에 믿을맨이 없는 상황에서 잔류했고, 17시즌에는 중앙 수비 백업으로 김동우와 황현수의 뒤를 받치고 있다. 다만 평은 정말 안 좋다. '''안 나오느니만 못한 실력으로 17시즌 서울을 말아먹고 있다.'''
일단 발밑이 둔탁해서 빌드업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황선홍 감독도 빌드업은 전혀 신경쓰지 말고 경합만 열심히 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맨마킹에서도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황선홍의 양아들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총애를 받으며 황현수와 김원식을 밀어내고 철밥통 자리를 꿰차고 출전 중이다.''' 그러다가 포항전에서는 경기 종료 15분을 남겨두고 어이없는 백태클 퇴장으로 팀 역전패의 원흉이 되었고, 결국 이후로는 주전에서 완전히 밀린데다가 막강한 경쟁자인 이웅희까지 제대하고 서울로 복귀하면서 이번 시즌에야말로 방출이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시즌이 끝난 뒤 재계약 없이 FA로 풀렸다. 그러나 서울에서 2년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새로운 팀을 찾는 것도 꽤나 힘들 것으로 보인다. 부정하기 힘든 커리어 로우.
4. 은퇴
서울에서 방출된 뒤에는 근황이 일절 들리지 않고 있다가, 은퇴한 이후 유소년 축구 지도자를 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
2020년 6월에는 대한민국 6부 축구리그인 K6리그 서울리그에 참가하는 TNT 핏투게더 FC에 입단했음이 알려졌다.#
5. 기타
K리그 올스타 vs 2002 월드컵 전사들과의 경기에서 올스타 대표로 뽑혔는데 박지성을 보고 속으로 ‘와, 박지성, 와, 맨유, 와, 리버풀한테 헤딩골 막 넣는 그 형’이라고 하면서 넘어질 뻔했다고 한다.
이청용, 기성용, 손흥민을 형이라고 부른다. 정인환은 86년 생이고, 이청용은 88년, 기성용은 89년, 손흥민은 92년 생으로써 다 본인보다 동생들이지만, 자기 말로는 자신보다 축구 잘 하고 스타면 다 형이라 부른다고...
전북 최철순과 단짝이라고 한다. 나이도 비슷한 데다 전북 현대 입단 동기이기도 하기 때문. 다만 군 입대를 제외하고 전북에서만 뛰던 최철순과 달리 정인환은 적을 자주 옮겨다녔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둘 다 2014 시즌이 끝난 12월 6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6. 같이 보기
[1] 2016년 7경기, 2017년 6경기에 출전했다.[2] 아이러니하게도 정인환이 전북으로 이적한 뒤, 인천의 20번은 안재준이 다시 인천에 돌아와 달게 된다.[3] 사실 이 과정에서 인천 팬들이 보여준 모습은 표리부동했다. 안재준 보내고 정인환 데려왔다고 그렇게 욕을 퍼붓더니 정인환이 잘하자 정인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싸고돈건 그렇다치고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허정무의 공로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4] 며칠 지난 후 인천이 해명의 글을 발표했는데 요약하자면 돈 없어, 정인환은 가고 싶어하더라, 이규로나 정혁은 내년이 계약 만료인데 연봉 올려서 재계약 해 줄 돈은 없고 그냥 잡으면 내년에 공짜로 풀어줘야 되고, 아무튼 돈 없어. 결론은 돈 때매 팔았다는 것 (...) 사실 이는 인천만의 문제가 아닌 시민구단 전반적으로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민구단들은 에이스들 팔아서 운영비 버는 셀링클럽들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