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기

 

1. 개요
2. 구성
3. 현대의 십팔기
4. 관련 항목


1. 개요


십팔기(十八技, 18기)는 1759년(영조 35년)에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던 시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절강병법[1] 6가지 무예를 수록한 《무예제보》를 토대로, 당시 병영에서 훈련하던 12가지 무예를 합쳐 만든 《무예신보》에 수록된 무예들의 총칭이다. 이름에서 보듯이 "18가지 무예"란 뜻으로 각종 고서에는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2], 십팔반무기(十八般武技)[3]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십팔기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사도세자의 문집인 《능허관만고》에 기록되어 있다.
현재 《무예신보》는 전해지지 않으나 정조 14년 박제가, 이덕무, 백동수 등이 왕명에 의해 이를 계승하고 보완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普通志)》에 기록이 남아 있다. 십팔기는 본국검, 예도같은 조선의 무예와 중국, 일본의 무예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총 18가지 보병무예를 그림과 함께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십팔기란 명칭은 '십팔기'라는 하나의 무예가 아니라 《무예신보》,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보병무예 18가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나온 수사적 명칭이다. 때문에 십팔기가 "고유명사"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라 할수 있다. 역사적으로, 십팔기에 포함된 무예들은 각각 그 무예들만의 역사와 단독성이 묻어나 있다. 십팔기는 구한말까지 수련된 것으로 추정되며 1880년 오군영이 해체되면서 맥이 완전히 끊기게 되었다.
또한 우슈의 옛 이름도 18기이다. 88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십팔기라 하면 쿵후를 떠올릴 정도였으며, 이러한 점은 당시의 소설들에서도 잘 나타난다.[4]
'''오늘날 무예신보의 십팔기를 수련중인 단체들은 모두 재해석 단체이며 전승 단체는 단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다.'''

2. 구성


십팔기는 《무예신보》,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18가지 보병무예를 이르는 수사적 명칭이므로, 6가지 기병무예를 뜻하는 마상육기는 십팔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 찌르는 무예 : 장창(長槍), 죽장창(竹長槍), 기창(旗槍), 당파(鐺鈀), 낭선(狼先)
  • 베는 무예 : 쌍수도(雙手刀), 예도(銳刀), 왜검(倭劍), 교전(交戰)[5],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쌍검(雙劍), 월도(月刀), 협도(挾刀), 등패(藤牌)
  • 치는 무예 : 권법(拳法), 곤방(棍棒), 편곤(鞭棍)

3. 현대의 십팔기


현대에 들어 십팔기란 명칭은 1967년에 설립된 중국무술십팔기협회(現 대한쿵후협회)가 가장 처음 사용하였다. 창립자인 황주환 회장이 한국의 전통무술을 조사하던 중 십팔기란 이름을 발견하고 이를 사용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1968년에 "대한십팔기무술협회"로 개명하였다.
이후 등장한 대한십팔기협회는 '''황주환 회장의 제자 최상철 사범에게서 중국무술을 배운 김광석쿵후를 베이스로 무예도보통지의 무술을 복원해 십팔기로 명명하고 세운 단체다'''.[6] 그 제자들이 세운 십팔기보존회에서도 시연과 보급에 힘쓰고 있다.[7]
대한십팔기협회 측의 주장에 따르면 1969년 서울 남영동에서 십팔기 도장을 열면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당시 도장은 중국무술 도장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정식 단체로 결성된 때가 1976년, 사단법인을 받은 때는 1985년인데 사실상 무예도보통지 복원무예 전수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어찌 됐든 대한민국에서 무예도보통지 무술을 보급한 단체 중에서 가장 오래된 단체인 것은 사실이다.
'''무술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역사적인 주장만을 놓고 본다면 십팔기에 대한 독점이 타 단체에 비해 매우 지나치며, 그에 따른 역사왜곡이 복원 단체들 중에서 가장 심각하다'''. 단체 자체가 서울대 출신이 많아서 영향력이 높은데, 중국 무술가 출신이었던 사람을 전통문화재로 등록하려 한다거나, 십팔기를 전통무술이자 조선의 국기(國技)라고 소개하거나[8][9] 무예도보통지의 무술은 십팔기협회가 적통이라 주장하며 타무술단체들을 비방한다거나, 김광석이 한국 무술계의 지존으로 숭앙받고 있다고 주장하여 거의 모든 무예도보통지 단체들과 대립하고 있다. 십팔기협회에선 왜검 4가지와 마상무예를 다루지 않는데 왜검에 경우, 대외적으로는 '전수받지 못해서'라고 한다. 즉 복원이 아니라 전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마상육기에 대해선 놀이, 부록이라 주장하며 십팔기를 익히고 기마술을 배우면 그것이 마상육기라는 주장을 한다. 또한 마상육기 중 실질적으로 무기를 다루는 4가지를 십팔기에 포함시켜 "십팔기는 본래 22기"라는 희대의 개드립을 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십팔기협회 측에서 마상육기에 대한 시연은 커녕 연구했다는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쿵후를 기반으로 무예도보통지의 내용을 구현했기에 실제 무예도보통지의 내용과 어긋난 동작들이 판을 친다. 사용하는 도검부터 쿵후에서 흔히 보는 한손 도검이라 무예도보통지에 뻔히 나오는 양손 동작들을 전부 무시해버리고 한손으로 재현을 했으며 심지어 본국검에 대한 설명에서는 조선 시대에 실전에서 쓰지도 않았던 중국식 양날검을 사용하는 오류를 냈다. 한마디로 쿵후를 가지고 와서 한국 전통 무예를 재현한다고 나대는 꼴이다.
또한 십팔기협회가 주장하는 십팔기에 대한 개념정리 같은 면에서도 사실 엉망에 가까워서 다른 단체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하고, 택견에 대해서도 "비천한 문화" 같은 개드립을 날렸다가 도기현 결련택견협회 회장에게 개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누가 감히 택견을 비천하다 하는가?!.
때문에 무예계와 역사계에서 무수한 까임을 받지만 십팔기협회에 극단적인 적의를 보이는 월도마왕의 역사블로그에서는 보다 상세하게 근거를 들어서 까고 있다. 해당 블로거의 대표적인 비판글 십팔기협회의 서울시 무형문화재 지정 반대 선언문.
여담으로 출판사 동문선 대표[10]이자 십팔기보존회 회장인 신성대 씨는 극우 보수언론인 데일리안에 칼럼을 연재하였다. 신성대의 무예이야기 [11]
최근에는 십팔기보존회의 박금수 사무국장[12]국립중앙도서관과의 인터뷰 등에서 십팔기에 대한 역사왜곡을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주로 하는 말이 십팔기를 삼국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실전무예라는 주장. 그러나 십팔기의 실제 역사는 길어야 명나라 때부터 시작되므로 삼국시대 기원설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다.
2019년 3월, 무예도보통지의 무예가 전통군영무예란 이름으로 서울시 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는데 신성대 십팔기보존회 회장이 이것은 자신들의 노력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통군영무예 지정기준에 '''보유자와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항목이 있으므로 십팔기협회의 주장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한 실제로 지정에 힘썼다면 십팔기협회는 전승이 아닌 복원단체임을 자신들 스스로가 인정한 꼴이 된다.
그 외 단체들은 무예도보통지 문서 참조.
(사)대한십팔기협회
십팔기보존회 - 현재 자유게시판이 폐쇄된 상태.
한국무예원 십팔기

4. 관련 항목



[1] 명나라 장군 척계광이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고안한 병법. 원앙진 참조[2] 이익 《성호사설》[3]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4] 일례로 이외수의 <칼>에 언급되는 십팔기 묘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러한 호칭은 2000년대 초반까지 신문 기사에서도 쓰였다.[5] 왜검을 이용하여 만든 약속대련[6] 이는 팔괘장 6대 전인인 한병철 씨의 저서 고수를 찾아서에도 실려있는 에피소드. 참고로 김광석 씨는 최상철 사범에게 쿵후를 배우기 전엔 무술을 경험해 본 바가 없다고. 자세한 내용은 김광석(동명이인) 항목 참조.[7] 두 단체를 합쳐 편의상 '십팔기협회'라고 하기도 한다.[8] 조선에 국기라는 표현은 없었을 뿐더러 굳이 국기를 꼽자면 국궁이 되어야 맞다.[9] 또한 특정 기관, 특정 직군 만이 독점하다시피 한 활동을 국기라 하기엔 어폐가 있다.[10] 이 때문에, 동문선에서 출판한 무예도보통지 번역본은 십팔기협회의 시각에서 출판되어있다.[11] 택견이 비천한 문화라는 개드립도 이 칼럼 <신성대의 무예이야기14, 태권도와 택견은 무예가 아니다> 에서 나왔다.[12] 십팔기로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지만 어째서인지 <역사저널, 그날> 같은 역사프로그램에 자문위원으로 자주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