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카리옷 유다

 


아람어
ܝܗܘܕܐ ܣܟܪܝܘܛܐ
(Ihuda Skariuta)
히브리어
יהודה איש קריות
(Yehûdâh Κ-Qrîyôth)
그리스어
Ιούδας ο Ισκαριώτης
라틴어
Iudas Iscariot
영어
Judas Iscariot
한국어
공동번역 성서
가리옷 사람 유다
가톨릭
유다 이스카리옷
개신교
가룟 유다
[image]
1. 개요
2. 이름에 대하여
2.1. 동명이인
3. 세기의 배신
4. 배신의 이유
5. 유다와 예수의 관계
6. 창작물에서
7. 관련 문서


1. 개요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그러나 예수를 배신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살인과 버금가는 죄인 자살로 생을 끝마친다. 때문에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최악의 죄인으로 손꼽히며, 기독교 전승에서는 자살한 후에 악마에게 잡혀갔다고 한다. 때문에 당연하게도 다른 사도들이 다 성인으로 분류되어 축일을 가지는 데 비해 유다는 성인은커녕 가톨릭정교회, 개신교 등 종파를 막론하고 기독교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인간으로 분류되어 아직까지도 저주와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단테신곡에서는 지옥 최하층에 있는 루시퍼의 입에 물려 놓았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배신자의 대명사(혹은 아이콘)'''로 통한다. '유다 같은 새끼'라고 하면 무슨 뜻인지 다 안다. 한마디로 매국노 자체를 들먹이는 것이라고 할까. 일단 유다의 배신에 대한 묘사나 여파가 과장된 것이고, '''그저 예수와의 개인적인 마찰과 배신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사소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인류 세계에 큰 영향을 주는 기독교의 탄생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세계 역사를 바꾸는 데 일조(?)한 인물'''임과 동시에, '''예수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만든 장본인'''임은 확실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 상대로는 굉장히 심한 욕이며, 기독교를 국교로 믿거나 실질적인 국교인 나라에서는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을 정도다. 국내에서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유다 같은 자!'라고 하면 대단한 모욕이 된다. 신자가 정말 최선을 다하여 이 사람을 실드 쳐준다고 하여도, '조국의 정치적 독립을 원했기에 예수를 배신한, 의도는 좋았던 사람'이 한계이다.[1] 이마저도 복음서의 저자들이 정말로 그런 의도에서 유다를 묘사했다고 볼 건덕지가 적으므로, 기독교 신자들과 문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쭉 욕을 먹을 예정.
13이란 숫자가 재수없다는 속설의 원흉. 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와 열두 사도 중 13번째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후의 만찬이 벌어진 식탁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인물이기 때문에, 13명이 앉은 식탁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사람이 좋지 않은 최후를 맞게 된다거나 불길해진다는 속설이 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가능한 한 13 자체를 피하는 편.[2][3] 가끔 이를 잘못 알아듣고 "유다는 예수의 13번째 제자"라고 아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예수의 사도는 늘 12명이었다.''' 유다 배신 이후 사도 마티아스라는 사도가 새로 뽑혀서 12명을 유지한다.[4]

2. 이름에 대하여


히브리인의 이름 뒤에 붙이는 호칭은 성씨나 Last name과는 다른 일종의 별명으로, 그 사람의 출신지나 본적, 자란 고장, 직업이나 친척, 아버지, 할아버지 이름이거나 신체적 특징 등을 주로 붙인다. 이름이 같은 사람이 워낙에 많아 구별해야만 하는데, 당시에는 성씨란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의 성씨들은 이렇게 수식어를 써서 구별하는 과정을 거치다 가문의 형성과 함께 고착화된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유다 이스카리옷'이라, 한국 개신교에서는 '가룟 유다'라 음역하였다. 이스카리옷 유다의 '이스카리옷'이 무슨 뜻인지는 불명확하지만, 뜻을 풀이하는 3가지 설이 있다.
  1. 카리옷 사람 유다
여기서 카리옷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는 지명이다. 구약에서 언급되었을 때는 히브리 왕국의 외부였으나, 예수 당대에는 히브리인이 거주하는 지역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5] 또한 직업이 세리였으므로 적어도 본인대에는 고대 로마 제국 영역 안의 히브리인 거주지역에서 살았음이 분명하다. 카리옷이 출생지이고 나중에 로마 제국 내 히브리인 거주지역에 들어와 세리를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 개신교계에서 사용하는 '가룟 유다'라는 음역은 이 해석에 기반한다. '카리옷 사람'이란 뜻으로 보고 '카리옷'을 구한말식으로 음역한 것이 '가룟'이다.[6]
  1. 열성당원 유다
이스카리옷을 sicarii(시카리, 단도의)란 말에서 유래한 단어로 보아, 무력투쟁을 동원해서라도 이스라엘 왕국의 광복을 이루어 신정(神政) 다윗 왕국을 재건해야 한다고 생각한 단체의 일원이라고 보는 해석이다.
  1. 거짓의 아들 유다
유다가 종적을 감춘 후 행방이 묘연해지자 초대교회 신자들 사이에서 경멸조로 붙인 이명이 '거짓의 아들'이란 뜻의 '이스카리옷'이었으며, 이대로 기록됐다는 설이다.
3가지 설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종교학계는 1번과 3번에 무게감을 두는 편이고, 2번은 여러 가지 음모론이나 가설을 세우기 좋아 인지도는 비슷비슷하다.
일부 신학자들은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유다에 대한 반감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로마 제국에 대반란을 일으켰다가 대대적인 탄압을 당하면서 비유대인 기독교 신자들과 분리되기 시작했고, 결국 3세기 즈음을 기준으로 사실상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은 서로 갈라진 별개 세력으로 구분되었다. 이 때문에 가장 먼저 작성된 마르코 복음서에선 악인으로 묘사되는 유대인들이, 가장 나중에 작성된 요한 복음서에선 악랄한 악마 등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단, 마르코 복음서가 가장 먼저 쓰였다는 설은 신약성서학계에서 주류이나 이 가설로는 설명되지 않는 문제도 많아 새로운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다.
유다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는 전승을 따라, 그의 이름을 딴 지옥이 바로 저 유명한 '''쥬데카'''다. 또한 그의 이름의 영문식 표현인 쥬다스 자체도 창작물에서 많이 인용되는 이름(쥬다스 프리스트 등).

2.1. 동명이인


유다라는 이름이 유다 카리옷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중세시대에는 기도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유다는 '하나님을 찬양하다'라는 뜻을 지니며 당시 유대인 사이에서 흔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하누카 축제의 기원이 되는 유대인 영웅이자 하스몬 왕조의 시조인 마카베오 유다 때문에 당대 유대 사회에서는 마카베오 유다 같은 영웅이 되라고 유다라는 이름을 흔하게 붙였다. 간단히 말해 예를 들어서 안중근 의사를 존경해서 아들 이름을 중근이라고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후대에 중근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팔아먹는 바람에 사람들이 중근이라는 이름을 기피하게 된 셈.
게다가 유다는 이스라엘 12지파의 하나이며, 현재의 '유대'인이라는 민족명칭도 유다와 어원이 같다. 당장 이 지파에서 예수다윗 왕이 나왔다(!). 신약의 편지 중 하나인 유다서를 쓴 유다[7]가 있고, 병자들의 성인인 유다가 있다. 특히 병자들의 성인 유다는 호주에 있는 '성 유다 종합병원'의 주보성인이다. 이 외에도 성 유다 고등학교 등 이 유다의 이름을 딴 시설들은 정말 많다. 심지어 12사도들 중에서도 유다가 한 명 더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유다 타대오''''라고 구별해서 불러야 한다.
다만 이렇게 이들은 사실 모두 같은 이름이지만, 실제 영어로 쓸 때에는 악인인 유다 카리옷은 Judas, 그 외의 유다는 Jude로 표기하여 다르게 쓴다. 영어뿐만 아니라 유럽어권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구별을 한다.

3. 세기의 배신


날이 저물었을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아 같이 음식을 나누시면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몹시 걱정이 되어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지금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사람이 바로 나를 배반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성경에 기록된 대로 죽음의 길로 가겠지만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 그 때에 예수를 배반한 유다도 나서서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 하고 묻자, 예수께서 "그것은 네 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 마태오의 복음서 26장 20-25절 (공동번역성서)-

예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줄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셨다. 그리고는 을 적셔서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가 그 빵을 받아 먹자마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 때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왜 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유다가 돈주머니를 맡아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러는 예수께서 유다에게 명절에 쓸 물건을 사오라고 하셨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하신 줄로만 알았다. 유다는 빵을 받은 뒤에 곧 밖으로 나갔다. 때는 이었다.

- 요한의 복음서 13장 26-30절 (공동번역성서) -

예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리가 떼를 지어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유다라는 사람을 앞세우고 나타났다. 유다가 예수께 입맞추려고 다가서자, 예수께서는 "유다야, 입을 맞추어 사람의 아들을 잡아 넘기려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 루가의 복음서 22장 47-48절 (공동번역성서) -

예수가 유다의 배신을 알면서도 그를 제자로 뽑아준 건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느 시점에서건 최후의 만찬 전에 예수는 이미 유다의 배신에 대해 예견하고 있었다. 사실 예수는 그 뿐만 아니라 나머지 제자들의 간접적 배신도 예견하고 있었다. 반면 다른 제자들은 유다가 그 유명한 배반의 입맞춤을 하러 현장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눈치조차도 채지 못했다.
마태오의 복음서에 따르면, 최후의 만찬에서 자리에 앉은 예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말한다. 현장에 있는 제자 중 하나가 자신을 배신하여 팔아넘길 거라는 이야기였다.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서로 의심하면서 앞다투어 예수에게 설마 그 배신자가 자기냐고 묻기 시작했고, 예수는 자신과 함께 대접에 손을 담그는 자가 그라고 한다.
요한의 복음서에서는 묘사가 살짝 다른데, 제자들이 쩔쩔 매던 와중에 베드로가 예수의 품에 의지해 누워있던 예수가 가장 사랑하던 제자에게 물어보라고 신호를 주었고, 이 제자의 물음에 예수가 자신이 빵을 적셔주는 사람이 그라고 답한다. 마르코의 복음서에서는 예수 자신과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가 그 배신자라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모든 복음서에서 예수는 유다가 배신자란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만찬 당시 유다 본인에게도 자신이 그의 배신에 대해 알고 있다는 언질을 넌지시 주었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건지, 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빵을 떼어준 후 그를 보내주고, 질책하거나 만류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후 유다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서도 알았던 건지, 예수 자신이 억울하게 죽게 되는 것은 신의 계획대로 일어나는 일일 뿐이지만, 그 죽음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유다는 화를 입게 될 것이라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유다 본인에게는 더 나았을 것"이라고 탄식하는 등, 분노나 배신감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태오의 복음서는 만찬 당시 예수가 유다 본인의 배신에 대해 알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음에도 유다가 예수와 제자들 앞에서 대담하고 뻔뻔하게 행동한 것으로 묘사한다. 모든 제자들이 예수에게 앞다투어 설마 자기가 배신하게 되냐고 묻는 중에 유다 역시 예수에게 "(그 배신자가) 접니까, 선생님?"이라고 물었는데, 예수는 "네가 말하였다"라고 그의 대답을 긍정한다.[8] 유다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소름 돋을 장면.
요한의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내가 빵을 적셔서 떼어준 사람이 그 배신자"라고 '사랑하는 제자'에게 말하며 유다에게 빵을 적셔서 떼어주고 유다는 그걸 받는다.[9] "가서 네 할일을 하라"며, 유다가 곧장 자신을 팔아넘기러 갈 것임을 알면서도 그를 먼저 보내준다. 유다는 바로 수석 사제에게로 가버리는데, 베드로가 '사랑하는 제자'에게 다가가서 그게 누군지 추궁을 했음에도 '사랑하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말을 안 했는지, 다른 제자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며, 예수가 해야 할 일을 하라고 그를 보내자 그 할 일이 뭔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기도 하는데, "유다가 회계 담당이고 이제 명절이니까 심부름 시키려고 보내셨나 보다~" 라고 받아들인 제자들도 있었던 것 같다.
이후 겟세마네에서 기도를 마친 예수가 제자들을 깨워서 자신을 팔려는 자가 다가왔다고 보여주고, 그 현장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스카리옷 유다였다. 유다는 자신이 입 맞추는 자가 예수이니 그를 잡으라 하고, 예수에게 입을 맞추러 다가와서는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건넨다.
마태오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유다에게 무슨 일을 하려고 온 줄 알고 있으니 해야 할 일을 하라고 말하고, 루가의 복음서에서는 유다가 다가오자 입을 맞추고 자신을 팔아넘길 셈이냐고 묻는다. 요한의 복음서에서는 이 유명한 유다의 입맞춤이 등장하지 않는다. 유다와 군대가 다가오자 예수가 먼저 누굴 찾느냐고 묻고 사람들이 "예수 찾으러 왔는데요" 하자 자신이 그 예수라고 본인이 먼저 나서고, 이에 군인들이 놀라서 어버버거리자 자신이 예수가 맞으니 자기만 잡고 제자들은 해치지 말고 보내주라며 자신의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이후 예수는 끌려가서 재판받고 십자가형을 받으며,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유다는 은 30냥을 반환한다.
이후 유다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는 출처마다 내용이 다르다.
  • 마태오의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를 판 후 후회하여 자신과 작당한 대사제들에게 은전 서른 닢을 되던져준 후 목 매달고 자살했으며, 그가 되돌려준 돈이 껄쩍지근했던 대사제들은 그 돈으로 근처에 땅을 사 나그네, 즉 무연고자들의 묘지로 썼다고 적혀 있다.
  • 사도행전에서는 자살이나 은전 반납에 대한 언급은 없고, 그가 산 밭에서 거꾸러져 배가 갈라지고 내장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 2세기 초에 활동한 교부 파피아스(Papias, 60?-130?)[10]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파피아스에 따르면 유다는 저주를 받아 온몸이 퉁퉁 부어 문을 빠져나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으며,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고름이 흘러나와 주변 땅을 적셨다고 한다. 파피아스가 쓴 기록은 복음서나 사도행전과 내용이 매우 다르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유다는 예수를 배반한 뒤 종적을 감추었고, 초대 교회 신자들 사이에서는 유다의 최후에 대해서 (아마도 비참하게 죽었으리라는 내용으로)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던 듯하다. 그런 소문의 일부가 전해져서 복음서나 사도행전 또는 교부의 글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후대의 우리로서는 '예수를 배반한 뒤 유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4. 배신의 이유


가장 흔하게는 물욕에 눈이 멀어서 팔아넘긴 것이라 하지만, 이런 설명은 약간 부족하다.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겼다는 서술은 마태오의 복음서에만 나오고, 그마저도 유다가 배신을 하기로 결심하고 대사제들에게 가서 얼마를 주겠냐고 하자 제시한 값이다. 사실 이 가치도 알기 힘든데, 그냥 '작은 은 30[11]'이라고만 써 있지 화폐 단위가 안 써 있다. 당시에 통용되던 은전만 해도 드라크마, 데나리우스, 스타테르 등 다양하다. 하지만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보면 거금도 아니고, 유대교 율법으로 성인 노예의 값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은전 서른 닢에 대한 기록은 구약성서를 읽다 보면 종종 나온다. 출애굽기 21장 32절에서는 남, 여종을 따지지 않고, 소(가축)가 뿔로 들이 받아서 노예를 죽게 한 경우 소의 주인은 30 세겔로 노예의 값을 지불하고 소는 돌로 내리쳐 죽인다는 구절이 있다. 즉 장성한 남자에게 율법상 목숨 값으로 줄 수 있는 최소 비용인 셈이다.
이럴 경우 문자 그대로 유다가 물욕에 눈이 멀었다고 받아들이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생긴다. 아무리 물욕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공동체를 배신하고 그 수장을 팔아넘기는 행위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다. 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를 행하기 전에 충분한 대가를 달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제시받은 대가는 고작 노예 1명의 값 뿐인데도 유다는 이걸 순순히 받아들이고 배신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저자의 의도가 담겨있는 문학으로 보는 신학인 성서비평학에서는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첫째는 창세기요셉이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로 노예로 팔려간 이야기를 모티브로 차용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 둘째는 즈카르야서 11장에서 '주님의 종'이 제사장들에게 경고하며 나를 믿으면 품삯을 달라고 했더니 제사장들은 겨우 은 30세켈만 줬고, 결국 '주님의 종'은 이스라엘을 망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차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자는 예수가 미리 천국에 가서 제자들을 기다릴 것을 암시하게 되는 것이고, 후자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유대인들은 저주받을 것임을 암시하는 셈이다.
유다는 예수가 이스라엘의 혁명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믿음에 의해 제자가 되었지만, 후에 자신이 생각하는 물리적 혁명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예수의 행보에 배신감이 들어 배반했다는 해석도 있다. 다만 끌려가는 모습을 본 직후 자신이 그저 무죄한 사람을 팔았다면서 예수를 팔아 받은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성전에 도로 던졌다고 한다. 후에 제사장들이 이 돈을 피가 묻은 돈이라 여겨 성전의 금고에 넣어두길 꺼렸기 때문에 바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무연고자, 나그네의 무덤으로 사용했다. 밭을 살 때 쓰인 돈의 출처를 따 지은 이 밭의 이름은 '''피밭'''(하켈다마하≒아겔다마).[12] 십자군 시대에는 이곳에 성 마리아 성당이 지어졌고, 그 후 성지에서 병자와 순례자들을 돌보는 일에 종사했던 기사수도회에 양도되면서 성지순례 도중 예루살렘에서 죽은 순례자들을 묻는 곳이 되었다. 현재는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이 세워져 있다. 아이러니.
사탄이 들어갔다는 루가의 복음서요한의 복음서의 주장을 무시한다면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가져오는 자, 즉 이방인(로마 제국)을 물리치고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영토를 회복할 부흥 군주라고 인식되어 왔다. 메시아 신앙의 기원이 남유다 왕국과 북이스라엘 왕국이 모두 무너지고 장기간에 걸쳐 포로 생활과 외세의 지배를 받을 때 생성됐기 때문. 더불어 예수가 활동하기 100여년 전, 그리스 계열 헬레니즘 왕조들에게 이스라엘이 지배받을 때 유다 마카베오가 무장 봉기를 일으켜 마카비 전쟁을 통해 하스몬 왕조를 세워 이스라엘 독립왕국을 일으켰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이른바 진짜 메시아가 등장했던 셈.
다만 후에 하스몬 왕조에게 정복당한 에돔 출신 안티파트로스가 하스몬 왕조의 내분을 틈타 로마를 등에 업고 이스라엘의 실권을 장악 했고, 안티파트로스의 아들인 헤롯이 하스몬 왕통을 단절시키고 새로운 헤롯 왕조를 열었다. 이 헤롯왕이 성경에 등장하여 갓난 아기들을 죽인 그 헤롯왕이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렸던 이유도 다윗왕의 자손인 메시아(=예수)가 새로운 다윗왕조를 일으켜 이스라엘 왕조를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당시 유대인들에겐 메시아=카리스마 쩌는 무장봉기세력의 리더라는 인식이 있었다 물론 이땐 예수 뿐만 아니라 다른 메시아 후보들도 있었다. 누가 됐든 로마로부터 무장봉기를 통해 독립을 쟁취하면 메시아가 됐기 때문.
그래서 12사도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 대부분도 예수가 그렇게 행동하리라 믿고 따라다녔을 것이다. 심지어 엄청난 기적 및 능력도 가졌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예루살렘 입성은 예수의 추종자들에게는 독립전쟁의 신호탄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를 지켜보던 유다는 아무리 보아도 예수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음 2가지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정통적인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이런 해석은 낭설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정말로 유다가 끝까지 예수를 구원자라 믿으며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면, 그가 십자가상 죽음 이전부터 예수가 수없이 언급한 부활의 결과를 보지도 않은 채 바로 자살을 하였다는 점이 설명되지 않는다. 또한 예수를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던 사도들 중 하나인 유다가 그리스도교에서 금기시되는 자살을 하였을 리도 없다. 유다는 예수를 넘기려고 마음 먹은 시점에서부터 이미 타락하여 사도가 아니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13]
  • 둘째, 자신이 믿고 따른 예수가 이제 와 보니 글러먹은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 혐의를 벗기 위하여 배신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예수가 보통의 인간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는 것을 직접 본 제자라면 모순이 된다.
유다가 예수를 따르기 전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는 성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세리로 알려진 경우가 꽤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사도들 가운데에서 회계를 담당하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신학자들은 그가 금전욕이 많았던 자라 해석한다. 따라서 그가 정말로 금전을 탐하여 배신을 하였을 경우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금전욕과 위 해석에서 언급된 예수에 대한 실망이 맞물린 결과라는 해석 또한 가능하다.
  • 셋째, 2006년 복원된 유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유다에게 자신을 팔아넘겨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도구, 즉 예수가 메시아로서 완성되는 것을 도운 인물이란 내용의 설이 나온다. 이 메시아 완성설은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제시된 것인데,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유다의 행동도 하느님의 의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유다의 배신은 그 자체로 예수의 대속을 완성하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었다.'는 식의 해석으로 오래된 철학적 문제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해석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서 그 죄를 대속하였지만, 핵심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살다가 죽고 나서 부활하였다.'''(즉 원죄의 처벌이었던 죽음으로부터의 극복이 이루어졌다)'는 것에 있는 것이지, ''''인간들이 그를 죄 씌워 못박아 죽였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 물론 예수의 비극적인 죽음이 핍박받는 신성과 그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인성(과 죄악에의 경향)을 더 극적으로 대조하고 있기는 하다. 또한 유다가 하느님의 계획의 일부라고 한다면, '인간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 역시 하느님의 뜻'이라는, 고전적인 자유의지 떡밥으로 넘어가버린다.
그러나 이 문단에서의 해석도 완전한 것은 아닌데, 세례자 요한은 처음 예수를 보았을 때 한 말이 '보아라,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는 주님의 어린 양이다' 이다(요한 복음서 1장 29절), 유대교 전통에서, 어린 양은 제물로 바쳐지기(살해당하기) 위해 준비된 제물이며, 그냥 자연사한 양은 제물로서의 가치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예수는 '단순히 죽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전 유대교 의식에서 어린양이 번제로 바쳐지듯 '죽임을 당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누군가는' 예수를 죽여야 하며, 이스카리옷 유다는 '예수를 죽게 만든' 제 1 원인제공자였다.
예수에 대한 인식이 다른 이슬람[14]에서는 이스카리옷 유다가 십자가에 예수(이슬람에서는 '이사'로 불림) 대신 못박혔다는 전승이 있다.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예수의 모습으로 변한 유다이고, 진짜 예수는 죽지도 않고 그냥 승천했다는 것.[15] 다만 예수 대신 죽은 사람이 유다로만 한정되지 않고 여러 전승이 전해지는 듯하다.
기독교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사건으로 남은 것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점에 집중해 그 이전의 상호모순적이며 검증하기 힘든 텍스트들을 무시하고, 모든 미스터리는 철저하게 인간의 소행이라는 관점을 견지한다면 이유는 나온다. 예수와 유다가 미리 합을 맞추는 것이다. 예수는 인간으로서 죽은 것이고 이후 행적이 불분명한 유다가 부활한 예수 대역을 맡았다면 개연성이 생긴다. 회계를 담당할만큼 똘똘한 유다라면 스스로 사후처리도 확실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흔한 추리소설같은 트릭이지만 당시엔 상상하기도 힘든 계획이니 아무것도 모르고 속아 넘어가는 것도 가능한 이야기다.

5. 유다와 예수의 관계


우선 유다에게는 나자렛 예수가 스승인지, 아니면 작은 선교 그룹을 이끄는 리더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를 배신하고 산헤드린 공의회의 비뚤어진 카야파 파벌에게 팔아치운 것이 인간적으로는 비난받을 배신 행위라는 사실은 변함 없다.
그러나 '''자신을 배신할 유다를 기꺼이 제자로 받아들인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예수 본인의 결정이다.''' 예수의 짧은 인생 마지막 시기에 배신했다고 하지만, 예수는 그에게 회계장부를 담당하는 경리 역할을 맡겼다. 어지간히 믿고 신용한 것이 아니라면, 제자라고 해도 선교 그룹의 얼마 되지도 않는 소중한 자금을 맡길 리가 없다.
사실 크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직전의 인간관계는 처참한데, 어머니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 요한 등을 제외하고는 예수 그리스도 체포 후 뿔뿔히 흩어진다. 골육지친인 모친, 제자 둘을 제외하고는 추종자 오천명을 먹이던 놀라운 인기는 급격히 식어 들어갔다.[16] 그 베드로마저 예수를 세 번 부인했고, 다른 제자들도 부활 이후 다시 모이기 전까지는 흩어져 있었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베드로나 유다나, 마리아와 요한,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를 제외한 다른 추종자들 모두 예수의 배신자인데, 그들 모두를 예수가 제자로 삼고, 무리의 일원으로 삼았다. 배신자마저 먼저 찾아가 거두려고 노력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베드로는 세 번 부인한 후 예수에게 세 번 사랑을 고백하면서 용서 받고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17]"을 받았지만, 유다는 그러지 못했다. 그의 말로를 자살로 검토한다면 회개하지 않고 인간적 죄책감에 빠져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된 것이고, 저주를 받아 병에 걸려 죽었다고 검토한다면 역시 회개하지 않은 채로 악에서 벗어나지 못해 저주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18]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기독교 신자, 역사학자, 호사가들이 미치도록 알고 싶어하는 배신의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다. 위의 항목에서 배신의 원인을 분석했지만, 진짜 자세한 내막은 당사자인 예수와 유다만이 알 것이고 후세 사람들은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성경이나 여러 복음에서도 유다가 뜬금없이 스승을 팔아넘겼다고만 이야기하지, 그 계기나 자세한 과정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제자들 모두 그냥 별 생각 없이 있던 와중에 최후의 만찬에서 갑작스럽게 배신자 이야기가 나왔고, 유다는 그로부터 얼마 후 그들 곁을 떠나버려 제대로 그 내막을 아는 제자가 없다.

6. 창작물에서


애니메이션 마왕 단테의 에피소드 제3화에서 이름이 언급된다.
단테신곡 지옥편에서는 지옥 밑바닥에서 카이사르를 배신한 브루투스, 카시우스와 함께 루시퍼에게 물어뜯기고 있다.
이탈리아 영화감독 프랑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의 미니시리즈 <나자렛 예수(Jesus of Nazareth, 1977)>에서는 예수와 화해하고 싶다는 제사장 세력의 속임수에 넘어가 예수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나중에서야 자신이 미끼가 된 것을 알고 비통하여 자살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직소>에는 예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배신하고야 마는 유다의 내면이 묘사되어 있다. 읽어보면 그야말로 위험하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유다는 예수가 히피적인 광신도들에게 휘말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믿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지나친 관심과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끝내 배신을 하게 되지만, 예수에게 가해지는 상상 이상의 폭력에 괴로워하다 자신을 악역으로 설정한 신을 저주하며 자살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실상 해당 작품의 진 주인공.
니코스 카잔차키스 원작의 마틴 스콜세지 작품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도 유다는 예수를 위하여 험한 일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예수가 유다에게 자신을 로마에 밀고할 것을 끊임없이 부탁하자 유다는 이를 계속 거절하면서 "당신이 나라면 당신을 배신하라는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느냐?" 묻는다. 그러자 예수는 "아니. 그래서 아버지는 나에게 더 쉬운 일을 맡기신 거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일을." 하고 대답한다. 유다는 끝내 예수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러나...[스포일러]
보르헤스의 소설 <Three versions of Judas>에서는 '유다가 사실 '''하나님이자 진짜 구세주''''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기독교에서 육체적 쾌락을 거부하고 고행을 선택하는 것처럼, 천국의 행복을 거부하고 지옥을 택했다는 이야기.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19]
데스노트 애니판 25화에서 L이 죽기 전에 빗속에 함께 서있다가 흠뻑 젖은 야가미 라이토의 발을 수건으로 닦아주는 장면이 있다. 작가 왈, 이 장면은 예수가 유다의 배신을 알면서도 발을 닦아준 것을 오마주한 것이라고 한다.
DC 코믹스의 히어로 팬텀 스트레인저의 정체.
헬싱에 나오는 이스카리옷은 유다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비밀결사다. 다만, 여기서는 신의 뜻을 어둠 속에서 행했다는 쪽의 해석을 바탕으로 성립한 듯 하다. 작중 안데르센의 말에 따르면 사도(使徒)가 아닌 사도(死徒)로, 때가 오면 은화 30을 신전에 바치고 밧줄로 목을 멘 뒤, 지옥으로 내려가 740만 5926의 악귀와 싸울 거라고(...) 여러모로 신을 위해서라면 살인조차 마다않는 광신도들다운 표어다.
만화 세인트☆영멘에서는 지옥으로 떨어졌다가 예수가 줬던 (오리지널) 면죄부를 이용해서 구원받았다는 설정이다. 물론 한 장으로는 안 되고 다섯 장을 모두 사용해서. 예수와 다른 제자들은 그를 용서해 줬지만 본인은 배신한 일 때문에 자책감과 자학 의식이 대단히 심한 편. 향유 일화 때문에 기름값 계산하는 데엔 도사가 되었다. 한 번 힐끗 보기만 해도 기름의 가치를 알아내는 능력자 수준. 한번은 성격을 바꿔보려고 긍정맨이 되려 시도했으나, 갑자기 바뀐 성격 탓에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이 여럿 피를 본다. 그리고 예수가 '다음에는 은화가 아니라 동전 30냥으로 나를 팔거라. 몇번을 팔아도 다 용서해 주마.'라고 말해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다시 자학 모드로 바뀐다.이 외에도 언제나 주님의 메세지를 받고 있는데...그게 다른 사람이 초코칩 스콘을 사면 초코칩이 많이 들어있지만 유다가 사는 초코칩 스콘은 플레인 스콘에 어쩌다가 초코칩이 하나 들어간 수준의 상태이거나 카레가 나와도 밥만 많고 카레는 조금 나온다거나 등의 처참한 상황. 부처는 그것을 '아들은 용서했어도 난 용서 못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 외에도 패션센스가 심하게 안 좋다. 예수와 제자들 왈 "오사카 아줌마 취항."
이 이스카리옷 유다에 대한 인문학 책이 나왔었다. 제목은 <예정된 악인, 유다(원제: Judas: The Troubling history of the renegade Apostle)> 현재는 절판.
GTA5에서 막판에 A엔딩을 선택하면 트레버 필립스가 죽으면서 마이클 드 산타프랭클린 클린턴에게 자신을 배신하고 죽이려 들자 '''"유다같은 새끼들"'''이라고 저주를 퍼부으며 불에 타죽는다.
모바일 게임 영원한 7일의 도시의 등장인물 이스카리오 역시 이스카리옷 유다에서 유래됐다.
만화 UQ HOLDER!에서는 여자로 등장한다. 본명은 '''이슈트 카린 오테'''지만 현재는 다른 이름으로 활동 중.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의 이벤트 환상체 백야는 12번째 세례자를 제외한 나머지 11명을 마귀 사도로 만든다. 이 사도는 유일하게 중립판정이며 직원과 환상체 둘에게 데미지를 받지 않는데, 흥미롭게도 유다를 모티브로 설계했음에도 오히려 백야를 처치하게 하는 단악수선에게 고해하는 인물이다. 단 한 번의 악과 수백번의 선행이 가장 착하고 혜자인 환상체인 것에 반해 백야가 알레프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환상체인걸 생각해보면....
2000년에 개봉했던 흔한 드라큘라의 2차 창작물중 하나인 드라큘라 2000 이라는 영화[20]에서는 최후에 드라큘라의 정체가 이스카리옷 유다라고 나온다. 은에 타격을 입는 이유가 예수를 '''은화''' 세닢에 팔았기때문에 저주를 받은거라고...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캐릭터 판나코타 푸고의 모티브'''였었'''다. 왜 과거형이냐 하면, 초기안에서는 푸고가 죠르노 일행을 배신하고 중간 보스가 되는 스토리로 가려고 했다가 암울해져서 포기했기 때문.
그래픽 노블 쥬다스(Judas)에서는 유다가 자살한 뒤 지옥에 내려가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본작의 유다는 예수가 펼친 기적들과 현실 간의 괴리를 보면서 그를 원망하지만 나중에는 예수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지옥에 있는 다른 이들을 인도하게 된다. 검은 색의 광배가 그려진 모습이 특징.
열렙전사의 등장인물중 하나인 콘스탄트는 유다의 혀라는 기술을 사용한다.[21]
다음웹툰 중 월요일에 연재되는 그라티아의 등장인물인 사신 진오기가 유다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악마들과 인간들을 배신하였다.

7. 관련 문서


  • 데바닷타 - 석가모니와 대적한, 불교의 유다라고 할 수 있을만 한 인물.
  • 유다 복음서
  • 이스카리옷
  •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 주다스 프리스트
  • 키스12
  • Judas
  • 킬링 지저스
  • 소설 빵과 장미
  • 성경 이외에 기독교에서 인정하는 고고학적 문헌과 복음서
  • 직소
  • 이광수 - 여운형이 이광수를 이스카리옷 윳다라고 욕했다.
  • [22]
  • 이만수 - SK 와이번스 감독대행 시절 안티팬들이 '인천유다'라는 별명으로 불러댔고 본인도 가장 아찔한 별명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만수는 매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 마리오 괴체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바이에른 뮌헨 → 다시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면서 뒤통수를 2번치며 유다라는 별명을 가진 축구계의 대표적인 사례.[23]

[1] 다만 유다가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열심당원이라는 속설은 정확한 근거가 남아있지 않고, 오히려 소심하고 찌질한 모습을 많이 보이거나 예수 공동체의 회계를 관리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본문이 있고, 예수를 판 돈으로 땅을 사는 등, 그냥 돈을 위해 예수를 판 것이다(...)라는 해석도 존재한다.[2] 파티를 계획할 때 초대할 사람이 13명이면 1명을 더 초대한다든가.[3] 이와 관련된 유명한 소설로 애거서 크리스티13인의 만찬이 있다. 원제 에지웨어 경의 죽음.[4] 케빈 스미스 감독의 영화 도그마에서는 이를 비틀어서, 13번째 사도 루퍼스가 등장한다. 원래 사도들은 13명이 맞는데 루퍼스가 하필이면 흑인(...)이여서 다른 백인 사도들의 견제를 받아 성경에 잘렸다고 한다. 근데 예수도 흑인이였지만 예수를 뺄 수는 없으니 졸지에 화이트워싱을 해야했다고.[5] 당장 예수가 성장하며 지낸 나사렛이 위치한 갈릴리 지방도 구약 시대에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리던 히브리 왕국의 외부였다.[6] 구한말의 외래어 음역에서는 요즘 같으면 ㅋㅌㅍ 등 거센 소리로 음역할 것을 예사소리나 된소리로 음역하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베드로'. 요새 같으면 '페트로스'라고 음역했을 것이다.[7] 예수의 (친척)동생 중 한 명이라는 설이 있다.[8] 한글판 성경 등에서는 유다가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는데 예수가 "네 말 그대로다" 라고 대답한 것으로 정반대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리스어판 원문을 보면 유다가 "μήτι ἐγώ εἰμι(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묻고, 예수는 "σὺ εἶπας(네가 그렇다고 이야기하였다)"라고 쓰고 있다. 이 부분을 현대 그리스어로 옮겨도 "Εσύ το είπες"로 의미는 동일하다.[9] 복음서에서는 요한복음 13장 27절에서는 조각을 받고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말한다.[10] 파피아스는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현재의 터키 파묵칼레)의 주교였으나, 생몰년을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단지 1세기 후반부터 2세기 전반에 걸쳐 살았으며, 100년 이후부터 저술활동을 했다는 정도로 두리뭉술하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11]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τριάκοντα αργύρια(triakonta argyria). 은전도 아니고 그냥 '작은 은 30'이다.[12] 다만 이 피밭 자체는 엄청난 대농장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유다가 3년간 횡령한 돈으로 산 것으로, 유다가 죽은 대농장 피밭과 제사장이 산 작은 피밭은 다른 것이라고 언급된다.[13] 다만 유다가 심각한 죄책감으로 인해 자기혐오에 빠짐으로써 부활에 대한 결과를 볼 자격이 없다고 판단해서, 베드로처럼 참회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를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14] 전지전능한 알라가 보낸 예언자이므로,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받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고 본다. 즉 알라가 보낸 예언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신이 '전지전능' 한 게 아닌데, 알라는 전능하므로 고통받지 않았다는 논리.[15] 이는 어찌보면 이슬람교에서는 필수인데 우선 이슬람교는 생각과는 달리 예수도 중요한 인물로 생각한다. 이슬람교에서는 25명의 에언자가 있었으며 무함마드를 그들 중 마지막 예언자로 예수는 무함마드 직전의 예언자로 여길 뿐더러 모세, 무함마드와 더불어 25명의 예언자들 중 가장 중요한 예언자로 꼽는다. (참고로 그렇기에 무슬림들에게 이슬람교의 창시자는 무함마드라고 말하면 안된다.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무함마드이겠지만 무슬림들은 이슬람교는 이미 이전부터 있었고 무함마드는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아 지금의 이슬람교로 만든 인물로 본다.)[16] 예수가 다윗처럼 로마를 물리치고 다시 새나라를 건국해주리라 기대했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17]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상징한다.[18] 기독교는 절대자가 사람을 꼭두각시처럼 사용하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의 인간론은 절대자의 모양과 형상을 닮은 인간들이 선한 선택 혹은 악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영원을 사모하고 선을 따르는 본연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인간을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더불어 하느님은 선하든 악하든 어떤 인간에게든지 구원의 은총을 베풀기를 원한다. 때문에 주어진 은총을 거부하고 그릇된 길로 가는 인간에 대해서는 죄악에 그저 내버려 둘 따름이다.[스포일러] 예수가 악마의 꾀임에 넘어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 임종에 임박하자 유다가 그를 찾아온다. 이 장면에서 유다가 예수에게 "배신자!!"라며 분노하는 모습이 백미.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지만 그러기 위해서 악역을 떠맡을 사람은 유다가 되었다. 물론 유다는 몇번이고 배신할 수 없다며 거절했지만 끝내 겨우겨우 배신을 했는데 그 대가가 이 모양이니 울화통이 치밀어오를만도 하다. 하지만 이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직전에 경험한 환상으로 밝혀진다.[19] 기독교에서는 사실 육체적 쾌락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는다. 식욕도 성욕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기 때문. 다만 지나친 것과 옳지 못한 방법으로 그것을 취하는 것을 거부한다. 혼외정사나 간통 등이 그에 해당된다. 그런 것을 거부하는 것이 육체적 쾌락을 거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해도, 그 까닭은 고통이 선이고 쾌락이 악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중에 올 더 큰 기쁨, 더 큰 쾌락인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위해서이다.[20] 무명시절의 제라드 버틀러가 허여멀건한 드라큘라로 나온다. 드라큘라는 관에 봉인되고, 반헬싱은 드라큘라의 혈청을 주사해가며 수명연장을 해가면서 드라큘라를 죽일 방도를 모색한다. 그와중에 딸을 낳았는데, 딸에게도 드라큘라의 피가 흐른다.[21] 그의 주요기술들이 거짓말을 사용한 기술이라 그렇다.[22] 사유는 사토 마사오 문서 참조.[23] 그 외에도 주장이면서 라이벌 팀으로 이적란 루이스 피구솔 캠벨, 그리고 괴체와 비슷하게 뮌헨-돌문-뮌헨-돌문 이적이 이루어진 마츠 후멜스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