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르크세스 1세

 



'''역사적 명칭'''
'''한국어'''
'''크세르크세스 1세'''(학계, 가톨릭 성경)
아하수에로(개역한글성경)
아하스에로스(공동번역성경)
고대 페르시아어
𐎧𐏁𐎹𐎠𐎼𐏁𐎠[1]
''[흐샤야르샤] [/xšayāršā/]''
현대 페르시아어
خشایارشا
''[하셔여르셔] [/xašâyâršâ/]''
고대 히브리어
אחשורוש
''[아하쉬웨로쉬]''[2] ''[/Aẖašwērōš/]''
고대 그리스어
Ξέρξης
''[크세르크세스] [/ksɛrkses/]''
라틴어
Ahasuerus[3]
''[아하수에루스]''
영어
Xerxes
''[저크시스] [/zûrk'sē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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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제8대 샤한샤(왕중왕). 생애 B.C. 519년? ~ B.C. 465년. 재위 B.C. 486년 ~ B.C. 465년.

2. 행적


아버지가 그 유명한 다리우스 대제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키루스 2세의 딸 아토사였으므로 결과적으로 키루스 2세의 외손자이다. 거대한 판도를 자랑하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을 맡아 이집트바빌로니아 지방의 반란 세력을 토벌하고, 아버지가 못 이룬 그리스 원정 성공을 위해 3년간 원정을 준비했다. 그 규모는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170만이라는 괴물 같은 숫자지만[4][5] 현대 추정에 의하면 대폭 감소하여 20~50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여하간 그리스보단 훨씬 많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는 시대적으로도, 특히 도시국가 위주인 그리스 국가들에겐 상상조차 어려운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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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채찍질하는 페르시아인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의하면, 자신을 능멸한 바다에 채찍질을 300번이나 하고 달군 쇳덩이를 던졌으며, 자신의 아들을 병역에서 빼려고 한 신하의 아들을 요참시키거나 병사들을 강제로 동원해 바다 위에 다리를 놓는 등 폭군으로 묘사되었다. 다만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이게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당시로선 납득 못할 행동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 바다 채찍질: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면, 대군을 이끌고 헬레스폰트 해협을 건너려고 부교를 놓았는데 그만 그것이 폭풍 때문에 박살이 났다. 이에 따라 크세르크세스는 부교를 다시 만들라 명하는 한편, 감히 왕 중의 왕인 자신의 걸음을 멈추게 한 바다를 징벌하기 위해 채찍질을 가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는 책임자를 처벌하는 대신 채찍질 퍼포먼스를 보임으로써 왕중왕의 권위가 포세이돈의 권위보다 높다는 것을 군사들에게 보여줘 떨어진 사기를 회복하고 군주로서의 권위를 확보하려는 퍼포먼스로 해석이 가능하다.
  • 요참: 리디아의 부호 피티오스가 전 재산을 바쳐 크세르크세스를 기쁘게 했는데 어찌나 기뻤는지 크세르크세스는 그의 재산을 돌려주고 그 액수가 금화 4백만에서 7천이 모자라다고 아예 4백만에 맞춰서 돌려주었다. 문제는 행군 도중에 피티오스가 종군한 다섯 아들 중 장남 하나만은 면제해달라고 청원한 일을 두고 이전의 기쁨이 고스란히 분노로 바뀌어버렸다. 이유인 즉 세계의 왕인 자신의 운명, 제국의 운명, 온 신하의 운명을 걸고 전쟁을 치르는데 일개 신하 주제에 왕에게 선행을 베풀었다고 나댔다는 것. 그나마 죽여도 마땅하지만 일전의 일을 생각해서 다른 아들들은 봐주고 바로 그 장남만 반으로 쪼개서 행군로의 좌우에 늘어놓았다 한다. 이 역시 함부로 권위에 도전한 신하를 처벌한 정상적인 행위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경고만 줘도 되는 것을 굳이 요참이라는 잔혹한 형벌로 죽였어야 하느냐와 변덕스런 기분파라는 비판은 가능하다만.
  • 다리 놓기: 장병을 동원해서 다리를 놓는 것은 자연스러운 전쟁 수행 과정이다. 또한 바다 위에 다리를 놓았다는 것은 무식하게 망망대해에 무작정 다리를 놓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위에 언급한 해협을 건너기 위한 부교 건설을 의미한다.
B.C. 480년 그리스와의 전쟁을 개시하여 아테네까지 거침없이 진격하였으나 살라미스 해전의 패배와 바빌론의 반란이 결정타가 되어 2년 만에 원정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 전쟁의 여파로 페르시아는 상당한 손실을 입는데, 이 전쟁의 결과로써 페르시아는 에게 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현재 터키의 서부 해안 도시들이 몽땅 아테네에게 붙어버리게 된다. 게다가 아테네는 매우 강력해졌으며 이들은 에게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여 페르시아에 적극적으로 군사원정을 하였는데 가령 페르시아가 해군을 재건한다는 소식을 듣자 아테네는 해군을 이끌고 터키 한복판까지 강을 거슬러와 해군을 궤멸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이집트가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진압하긴 하였으나 뒤이어 키프로스 섬을 잃게 된다. 이로써 아테네는 제국화되었고 페르시아는 그 이후로 그리스에 대해 군사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즉 크세르크세스의 군사원정의 실패는 마르도니우스가 이끄는 10만 병력과 천여척에 달하는 해군의 소멸이라는 직접적인 손실과 에게 해의 제해권에 이오니아 도시들 및 키프로스의 상실로 이어졌으므로 명백히 페르시아에 큰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불태운 전과가 있으나 아테네 시민들은 뒤에 곧바로 아테네 제국이나 다름없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아 상당수의 재산을 보전한 듯 하며[6] 따라서 이것만으로 페르시아 전쟁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게다가 마르도니우스는 크세르크세스에게 명백히 '우리가 패배했다'라고 말하였다. 즉 페르시아 측에서도 살라미스 해전 때 이미 그들은 패배하였다고 생각하며 설령 그 시점에서 아직 해볼 만하다고 했다 하더라도 플라타이아 전투와 미칼레 해전에서 각각 10만 병력과 3백여 척의 전함이 궤멸퇴고서도 '아테네를 불살랐으니 이 전쟁의 목적을 달성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전쟁의 승리 이후 연맹 도시들한테 아테네는 우리가 중심이었고 쟤네 주적이었고 그래서 우리 도시가 불탔으니 너네 우리한테 보상금 줘라! 라고 말하면서 막대한 보상금을 긁어모아 도시를 고대도시답지 않게 계획도시로 화려하게 재건했고, 화려한 예술품들도 함께 건축하는 것을 통해 완전히 문화 경제 학술 중심지로 거듭났다.
따라서 고대 세계에서 경천동지할 만한 대군을 일으키고도 무리할 정도로 초장기 원정, 작전과정에서의 혼란 등으로 관련도 없는 머나먼 그리스에서 병사들 목숨을 날리고 영토와 영향력을 잃었으며, 적에게는 승리와 자신감과 번영이라는 선물을 안겨준 암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의외로 성경에도 등장하고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현명한 유대인 에스델의 남편이자 페르시아의 황제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크세르크세스 대제다. 유대인을 몰살시키려다 에스델의 설득으로 그만두었다는 점 때문에 덩달아 대인배로 취급받는다.[7] 단, 개신교에서 주로 쓰는 성경에서는 히브리어 성경에 따라 '''아하수에로(Ahasuerus)'''[8]라고 나오기 때문에 이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얼핏 봐서는 알기 힘들다.[9] 성경을 읽어보면 에스델은 그리스 원정 전쟁을 기점으로 간택되기 시작했다가 그리스 원정 실패 후에 비로소 왕비가 되는 것으로 추측된다.[10] 전 왕비가 폐위되고 에스델이 새로 왕비가 되는데 전 왕비인 와스디[11]를 폐한 이유가 술자리에 불렀는데 안 나와서.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다. 고대에 여성이 남성들의 연회에 함께 하는 것은 고급 매춘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왕비가 모욕감을 느껴 오지 않았다는 것[12] 혹은 크세르크세스가 추구한 왕권 강화에 와스디가 방해를 했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크세르크세스가 예의를 어겼던 왕후의 정치적 목적이 있었건 전국의 유력인사를 다 모아놓고 벌인 연회에서 왕비가 왕의 명령을 공개적으로 무시한 셈이니 크세르크세스 입장에서는 모욕이라고 여길 소지가 있는 셈이다.
페르시아로 철수한 이후에는 수도 페르세폴리스에 머무르면서 방대한 건축 사업을 벌였다. 수도에 자신만의 궁전을 세웠고 그의 보물창고도 이 때 만들어졌다. 말년에는 정치에 관심을 잃고 하렘에 빠져 정사를 내팽개치다가 B.C. 465년 아르타바누스 등의 신하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암살하고 그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를 옹립했다.
보물창고를 건설한 말년의 행적 때문에 후대왕중왕들과 함께 호프 다이아몬드와 연관이 있다는 설도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3. 창작물에서



3.1. 영화 300


'''"나는 관대하다."'''라는 대사와 함께 매우 개성적인 모습으로 등장해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덕분에 저 대사도 너무나 유명해져서 사실 본명이 '''관대하''' 씨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원작에선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레오니다스와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만, 영화판에선 열폭 찌질이로 왜곡당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의 열연에서 나오는 포스와 카리스마가 워낙에 후덜덜해서 오히려 진 주인공이 아닌가하는 소리까지 나오기도.
그리고 한국에서는 크세르크세스의 담당배우였던 호드리구 산토루마저도 본명보다 '''관대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배우의 실제 모습을 보고 놀라는 인터넷 반응도 많았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영화 300의 모습과 실제 모습과는 굉장히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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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도 담당배우인 호드리구 산토루는 키도 크고 상당한 미남이다. 그리고 영화의 크세르크세스의 목소리는 저음으로 음성변조된 것이라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
300의 후속작으로 기획된 영화 크세르크세스와 영화 300: 제국의 부활에선 주역급인데, 배경이 살라미스 해전이다. 거기다가 상대측은 테미스토클레스. 여기선 마개조당해서 저 꼴이 되기 전의 훈훈한, 역사 고증으로 따지면 그나마 말이 되는 모습으로 잠시 등장한다.
300을 패러디한 영화 미트 더 스파르탄에선 지독한 비만 뚱보로 등장하는데, 이 영화의 등장인물이 다들 그렇듯 처절하게 망가진다. 관대하다면서 자기 쓰러지게 한 병사를 바로 쏴죽인다든가, 레오디나스에게 신발끈 풀렸다 말해 몸을 숙이자 드디어 절받았다 의기양양해하든가 그 외에도 수없이 많다. 막판 바닥에 굴러다니던 트랜스포머 큐브를 손에 넣어 차와 함께 변신해 메카 '''크세스트론'''이 되어버린다. 흉부 중앙의 모니터에 '''유튜브'''도 나온다. 그러나 전선에 연결되어 힘을 발휘하는 탓에 걸어나오던 중 짧은 전선이 콘센트에서 뽑히는 바람에 기동 정지해 앞으로 쓰러져 그 앞에 있던 레오디나스를 비롯한 남은 스파르탄군이 전멸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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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의 원작가 프랭크 밀러에게 많은 영향을 준 고전영화 <300명의 스파르타인>에서는 이런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쪽은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에 가깝게 고증된 편으로, 300보다는 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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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표기가 거꾸로 읽으면...[13]
히토리(만화가)가 그린 쾌락 히스토리에 고대 그리스편에 등장. 의외로 고증에 충실한 모습으로 나온다. 에로 망가에 찌든 레오니다스 1세를 보고 당황한다. 히네르다스 장군이 이끄는 1만여 아타나토이[14]가 에로 망가로 좁혀진 테르모필레 협곡 때문에 2명의 스파르타군에게 막힌다.[15] 하지만 에로 망가를 발매 이틀 전에 미리 보게 해준다는 약속에 배신한 배신자 덕분에 승리한다. 이때 레오니다스에게 같은 제안을 하며 자신의 부하가 되라고 설득하나 레오니다스는 불법공유를 거부 하고 사망. 이후 레오니다스가 남긴 에로 망가를 읽느라 시간을 허비해 살라미스에서 패한다. 여담으로 레오니다스가 보는 에로 망가에서 여체화되어 레오니다스와 성관계 하고 있었다.[16]

3.2. 아르미안의 네 딸들


국내 순정만화가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도 크세르크세스가 등장한다. 영민하고 야심 넘치는 황제로서 아르미안의 왕녀 와스디 스와르다를 네 번째 황후로 맞아서 총애한다. 스와르다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그녀의 운명의 상대였다. 하지만 스와르다는 이미 그와 만나기 전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은 터라 끝끝내 그에게 마음을 열지 못 했다. 결국 스와르다가 마음에 두고 있던 것이 친척이자 신하인 리할 오타네스였음을 알고, 질투에 미쳐 스와르다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만다. 이후로는 점점 영민함을 잃어 야욕에 물든 추한 권력자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세상은 스와르다를 점차 잊어갔으나 결국 그녀를 잊지 못 한 크세르크세스는 점차 망가져간다. 최후에는 아르미안 출신 병사에게 암살당하며, 레 샤르휘나의 예언대로 이후 황위는 그의 자손이 아닌 리할의 자손에게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3.3.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템플 기사단(고대 결사단)의 일원이라고 알려졌으며, 본인의 호위병으로 위장한 다리우스에게 최초의 암살검으로 암살당한다.[17] 그리고 이 암살검은 약 2500년이 지난 뒤에도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예리함과 내구성이 굉장히 뛰어나다.
[1] 왕들의 통치자라는 의미이다. 유니코드 6.0의 쐐기문자를 지원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다.[2] 아하스 페르쯔의 어원.[3] 성경 개역한글판은 라틴어음을 토대로 음역한 것.[4] 삼국지를 읽었다면 익숙할 법한 과장된 추산법이다. 제갈량이 적벽대전을 앞두고 동오에 건너가서 '조조의 원래 병력 + 형주군 병력 + 기타 등등 = 도합 100만'이라고 주장했던 것과 같은 이치로, '얘들을 데려오고 쟤들을 복속시키고 걔들이 자진 참전했고 걔들이 동원 가능한 병력 수는 얼만큼이니 다 합쳐서 이만큼이다' 하는 서술이다.[5] 1차대전 때까지의 독일 육군의 군대 대형을 대입해 계산한 연구자에 따르면 170만 명을 실제로 동원했다면 12열 종대로 편성해서 출발했어도 당시 건설된 가도를 따라 헬레스폰트 해협에 선두부대가 도달했을 즈음에 마지막 부대가 페르세폴리스를 출발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수송부대라던가 공병 등의 기타 부대 제외 '알보병만'으로 부대별로 구분되는 공백 없이 줄을 짜서 움직였을 때 그렇다고.[6] 사실 아테네 시민들은 페르시아군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재산을 모두 도시 밖으로 빼놓은 상태였다.[7] 다만 유대인 몰살을 주도한 건 하만이었다. 이후 유대인 몰살을 취소한 뒤엔 도리어 하만 자신이 처형되었다고 나온다.[8] 페르시아 원어 Xšayārša의 히브리어 → 라틴어 중역[9] 21세기 영어 번역본(NIV 등)이나 천주교에서 2005년에 새로 번역한 성경에는 널리 알려진 명칭(그리스식 음역)을 반영하여 크세르크세스로 나왔다. 다만 페르시아 사람인데 페르시아식 'Xšayārša(흐샤야르샤)'가 아닌 다른 나라 이름으로 불리는 게 에러라면 에러.[10] 즉위 후 3년 만에 큰 잔치를 열었는데 이게 그리스 원정 전인지 후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전이라면 일종의 군사력 점검 차원 연회라는 설이 있다.[11] 신일숙아르미안의 네딸들에 나오는 와스디 스와르다는 이 왕비를 모티브로 했다.[12] 고대의 격식 있는 연회는 남녀가 분리되어 거행되었다고.[13] 앞의 세 글자는 당연히 sex, 뒤의 rex는 라틴어로 왕을 뜻한다.[14] 온갖 소수 성취향에 대응할 수 있는 미녀들로 이루어졌다. 히네르다스도 여자로 TS화.[15] 원래 레오니다스까지 합쳐서 3명이었는데 1명이 에로 망가를 너무 읽어 눈병이 나 집에 가버렸다.[16] #[17] 그리고 이 다리우스의 본명이 바로 아르타바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