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프니크급 구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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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Разарач Дубровник'''[1]
'''razarač Dubrovnik'''[2]
'''cacciatorpediniere Premuda'''[3]
두브로브니크급은 유고슬라비아 왕국 해군이 구식 어뢰정[6] 12척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아드리아해를 방어하기 위해 신형 선도 구축함 계획을 하면서 영국 야로우(Yarrow)사에 의뢰를 했다. 곧 3척을 계획했으나 결과적으로는 1척만 주문하게 되었고 글래스고에서 건조되었다. 마침 야로우 사는 영국이 제1차 세계 대전이후 불황을 겪으면서 돈이 부족한 편이었고 대형구축함 기술을 축적하고 싶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으나[7] 유고슬라비아의 보급 사정때문에 무장은 전부 체코슬로바키아제를 달았다. 1929년, 건조를 시작했고 1931년, 10월 11일 취역하게 된다. 함명은 독립한뒤 막 이름을 크로아티아식으로 바꾼 두브로브니크항에서 따왔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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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프랑스에 방문한 알렉산다르 1세
유고슬라비아 해군에서 가장 큰 군함이자 최신 전력으로 취역한 뒤 해군 총 기함이 되었다. 마침 유고슬라비아가 외교관계를 위해 국왕이 프랑스에 방문하게 되자 두브로브니크를 타고 마르세유 항으로 가게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9] 나중에 베오그라드급 구축함 3척이 건조되자 같은 함대에 배속되었다. 이때도 유고슬라비아 '''제독'''이 타는 기함이었다고(...)
[10]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구축함 '''프레무다(Premuda)'''.
유고슬라비아 침공이 일어나고 초 단시간만에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지자 이탈리아가 해군 함정을 나포한 뒤 전쟁 배상으로 두브로브니크와 베오그라드급 구축함을 가져가며 이후 함명이 프레무다(Premuda)로 바꿔 취역하였다. 프레무다는 크로아티아 인근 섬으로 이탈리아 해군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의 전함 센트 이슈트반(Szent Istvan)[11] 을 격침시키기도 한 곳이었다.[12]
프레무다는 보조무장을 이탈리아제로 교체한뒤 이탈리아군 함정으로 운용되게 된다. 나름 함체가 크다보니 무장 개량이 쉽고, 장거리 주행이 가능하며 화력도 준수, 이탈리아 군함들과 속력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판명되자 이탈리아는 이 나포한 구축함을 '''1선'''에서 운용했다. 첫 실전에서 가라앉은 영국 잠수함의 수병들을 구조한 뒤 트리폴리 항에 가보기도 했다. 다만 운용중에 포탄 수급이 귀찮아 지자 이탈리아가 자국제 신형 135mm 함포로 교체할려고 했으나 19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하게 되면서 구현되지 못했다.
독일이 이탈리아 북부에 살로 공화국을 세우고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군함들을 나포했는데 프레무다는 제노아 항에서 개장을 준비하던 중에 나포되었고 독일은 이것은 Torpedoboot Ausland 32라고 명명하고(뜻은 그냥 해외 어뢰정이라는 뜻으로 독일이 나포한 어뢰정 및 구축함에 붙이는 표현이다.) 주포를 독일제 10,5cm SK L/45로 교체한 뒤 대공무장을 독일제 기관포로 바꾸고 독일제 사통과 레이더를 단 뒤 1944년 8월, 재취역하게 된다. TA32는 지중해에서 기뢰를 설치하며 활동하다가 1945년, 3월 코르시카 일대를 점령하기 위해 영국군 구축함 2척과 교전하게 되었는데, 아군 어뢰정 2척이 격침되었고 TA32는 미미한 손상을 입고 항구로 돌아갔다. 포격으로 영국 구축함에 약간의 타격을 주었으나 대단하지 않았고 뇌격도 실패했다. 결국 TA32는 항구에서 자침하는 것으로 파란만장한 함생이 끝이났다.
나중에 유고슬라비아가 해방된 뒤, 베오그라드급 구축함도 두브로브니크와 함께 귀환하지 못했다. 여담으로 두브로프니크의 후계함으로 스프리트(Split)급을 만들어 보고 있었는데, 이 함체는 다시 유고슬라비아가 공산화된 뒤 완공되게 되었다고 한다. 스프리트의 무장은 5인치 38구경장 함포였다고.
워게이밍사의 월드 오브 워쉽에 나올 가능성이 있는 범유럽(유고슬라비아) or 이탈리아의 함선이라고 한다. 다만 정규트리에 나올 가능 성은 없다고.
'''Разарач Дубровник'''[1]
'''razarač Dubrovnik'''[2]
'''cacciatorpediniere Premuda'''[3]
1. 제원
2. 개발
두브로브니크급은 유고슬라비아 왕국 해군이 구식 어뢰정[6] 12척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아드리아해를 방어하기 위해 신형 선도 구축함 계획을 하면서 영국 야로우(Yarrow)사에 의뢰를 했다. 곧 3척을 계획했으나 결과적으로는 1척만 주문하게 되었고 글래스고에서 건조되었다. 마침 야로우 사는 영국이 제1차 세계 대전이후 불황을 겪으면서 돈이 부족한 편이었고 대형구축함 기술을 축적하고 싶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으나[7] 유고슬라비아의 보급 사정때문에 무장은 전부 체코슬로바키아제를 달았다. 1929년, 건조를 시작했고 1931년, 10월 11일 취역하게 된다. 함명은 독립한뒤 막 이름을 크로아티아식으로 바꾼 두브로브니크항에서 따왔다.[8]
3. 유고슬라비아 해군 기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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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프랑스에 방문한 알렉산다르 1세
유고슬라비아 해군에서 가장 큰 군함이자 최신 전력으로 취역한 뒤 해군 총 기함이 되었다. 마침 유고슬라비아가 외교관계를 위해 국왕이 프랑스에 방문하게 되자 두브로브니크를 타고 마르세유 항으로 가게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9] 나중에 베오그라드급 구축함 3척이 건조되자 같은 함대에 배속되었다. 이때도 유고슬라비아 '''제독'''이 타는 기함이었다고(...)
4.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손에 넘어가다.
[10]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구축함 '''프레무다(Premuda)'''.
유고슬라비아 침공이 일어나고 초 단시간만에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지자 이탈리아가 해군 함정을 나포한 뒤 전쟁 배상으로 두브로브니크와 베오그라드급 구축함을 가져가며 이후 함명이 프레무다(Premuda)로 바꿔 취역하였다. 프레무다는 크로아티아 인근 섬으로 이탈리아 해군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의 전함 센트 이슈트반(Szent Istvan)[11] 을 격침시키기도 한 곳이었다.[12]
프레무다는 보조무장을 이탈리아제로 교체한뒤 이탈리아군 함정으로 운용되게 된다. 나름 함체가 크다보니 무장 개량이 쉽고, 장거리 주행이 가능하며 화력도 준수, 이탈리아 군함들과 속력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판명되자 이탈리아는 이 나포한 구축함을 '''1선'''에서 운용했다. 첫 실전에서 가라앉은 영국 잠수함의 수병들을 구조한 뒤 트리폴리 항에 가보기도 했다. 다만 운용중에 포탄 수급이 귀찮아 지자 이탈리아가 자국제 신형 135mm 함포로 교체할려고 했으나 19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하게 되면서 구현되지 못했다.
5. 또다시 주인이 바뀌다.
독일이 이탈리아 북부에 살로 공화국을 세우고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군함들을 나포했는데 프레무다는 제노아 항에서 개장을 준비하던 중에 나포되었고 독일은 이것은 Torpedoboot Ausland 32라고 명명하고(뜻은 그냥 해외 어뢰정이라는 뜻으로 독일이 나포한 어뢰정 및 구축함에 붙이는 표현이다.) 주포를 독일제 10,5cm SK L/45로 교체한 뒤 대공무장을 독일제 기관포로 바꾸고 독일제 사통과 레이더를 단 뒤 1944년 8월, 재취역하게 된다. TA32는 지중해에서 기뢰를 설치하며 활동하다가 1945년, 3월 코르시카 일대를 점령하기 위해 영국군 구축함 2척과 교전하게 되었는데, 아군 어뢰정 2척이 격침되었고 TA32는 미미한 손상을 입고 항구로 돌아갔다. 포격으로 영국 구축함에 약간의 타격을 주었으나 대단하지 않았고 뇌격도 실패했다. 결국 TA32는 항구에서 자침하는 것으로 파란만장한 함생이 끝이났다.
6. 기타
나중에 유고슬라비아가 해방된 뒤, 베오그라드급 구축함도 두브로브니크와 함께 귀환하지 못했다. 여담으로 두브로프니크의 후계함으로 스프리트(Split)급을 만들어 보고 있었는데, 이 함체는 다시 유고슬라비아가 공산화된 뒤 완공되게 되었다고 한다. 스프리트의 무장은 5인치 38구경장 함포였다고.
워게이밍사의 월드 오브 워쉽에 나올 가능성이 있는 범유럽(유고슬라비아) or 이탈리아의 함선이라고 한다. 다만 정규트리에 나올 가능 성은 없다고.
[1] 세르비아어, 구축함 두브로프니크.[2] 크로아티아어, 구축함 두브로브니크.[3] 이탈리아어, 구축함 프레무다.[4] 만재시 4.1m로 올라감.[5] 순항시 사용.[6]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패망이후 얻은것.[7] 영국의 세익스피어급 구축함의 설계를 이용했다고 한다.[8] 다만 본 문서는 세르비아어 기준으로 함명을 작성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브와 프 사이의 미묘한 발음이라고 한다.[9] 다만 파리에서 국왕 알렉산다르 1세가 국내 과격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되면서 돌아올 때는 '''유해'''를 실고 돌아왔다고(...) 참고로 유고슬라비아의 국왕이었던 알렉산다르 1세는 유럽 국왕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암살된 사람이라고 한다. [10] 이탈리아가 나포한뒤 베오그라드와 함께 찍은 사진, 왼쪽의 큰 배가 두브로브니크다.[11] 테게토프급 전함 4번함, 하지만 자매함과 제법 달라서 하위함급으로 분류하기도 한다.[12] 이탈리아의 행진곡 라구나리의 행진(la marcia dei lagunari) 2절에서 언급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