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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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o Stroessner Matiauda
1912. 11.3 ~ 2006. 8.16
1. 소개
2. 생애
3. 집권
4. 말년


1. 소개


파라과이의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무려 '''35년''' 동안 파라과이의 대통령으로 집권했었다.

2. 생애


스트로에스네르라는 그의 성씨에서 알 수가 있듯이 독일인의 후손이다. 슈트뢰스너(Strößner) 가문 출신인데,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파라과이의 특성상 "스트로에스네르"가 된 것. 일단 외모로 봐도 독일인의 흔적이 강하긴 하나, 아버지가 독일인이지 어머니는 전형적인 스페인인이다.
1929년에 군입대를 한 뒤 여러 직위를 맡았으며, 전쟁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수많은 공을 세웠다. 그 덕에 1940년대에 들어서는 매우 젊은 나이에 높은 직책까지 맡으면서 승승장구했다.

3. 집권


1954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대통령 페데리코 차베스를 축출하고 집권했다.
무려 '''35년'''을 집권한 스트로에스네르는 세계 최장기 집권자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름아닌 '''부정선거''' 때문이였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반대파들을 구금하거나 외국으로 추방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한편, 노골적인 선거조작을 거친 덕에 수차례 별 반대 없이 장기집권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를 개발독재자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실제로 파라과이의 경제 성장을 위한 정책을 취하긴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경제가 성장한 데 반해 국민들의 생활 수준은 (2020년 현재에 들어서도 거의 바뀌진 않았지만) 거의 그대로였다. 특히 토지개혁을 한답시고 부자들의 땅을 몰수한 뒤에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질 목적으로 지지자들에게 차별적으로 토지를 나눠준 일은 파라과이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힌 삽질이다. 결국 상당수의 빈농들과 원주민들은 외딴 곳으로 쫓겨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현재까지도 파라과이에 막대한 후유증을 남겨주고 있다.
동부 지역에다가 자기 이름을 붙인 선전도시 푸에르토프레시덴테스트로에스네르를 건설하기까지 했다.[1]
1970년대에는 더러운 전쟁에도 관여했으며, 아나스타시오 소모사가 파라과이로 망명할 때 같이 받아주는 행보를 보였다. 당시에는 미국반공을 내세우기만 하면 그 어떤 독재정권도 노터치하는 막장 정책을 내건 덕택에 축출되지 않고 그대로 정권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업적이라면은 원주민들의 언어인 과라니어를 부흥시킨 것 정도가 있겠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전통 말 아할 테케를 보전한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와 비슷한 면도 있다.
이 시기 파라과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군사정권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글귀가 많이 보였다. 예를들어 아들이 군사 퍼레이드를 보고 "아빠 나도 군인이 되고싶어요." 이러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넌 이미 군인이란다."라고 답을 해주는 내용.

4.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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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민들의 반발이 지속되었고, 1989년, 자신의 '''오른팔'''인 안드레스 로드리게스의 쿠데타로 축출된다. 로드리게스는 국민들과 민주화를 약속했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부정선거를 저지르는 뻘짓을 일삼으며 전임자와 수준이 도찐개찐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증했다.
집권기의 꼬락서니 덕에 법정 최고형도 갈 뻔했으나, 옆동네 브라질로 도주하였으며 그곳에서 참도 잘 살다가 2006년 8월 16일,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사망했다. 향년 94세. 당시 같은 콜로라도당 소속의 니카노르 두아르테가 대통령이었으나, 그는 양심이라도 있었는지, 국장을 거부했으며, 심지어 유해송환도 거부했다.
한국에서는 파라과이라는 나라 자체의 인지도가 다소 낮은 탓에 이 인간도 심히 파묻혔으나, 파라과이 역사속에도 이보다도 더 잔인한 독재자는 없었다.[2] 심지어 그의 옛 저택에서 반정부 인사로 추정되는 유골들이 발견되었다.#

[1] 비슷하게 말레이시아에도 반다르 툰 라작(압둘 라작의 선전도시)이 있다.[2] 그나마 비교된다면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밖에 없지만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는 워낙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심하게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