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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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어: Alhambra[6]
아랍어: القلعة الحمراء (Al-Qalat al-Ḥamrā)[7]
영어: Alhambra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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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했던 무어인들이 그라나다에 지은 궁전.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극도로 세련된 아름다움이 있어 높이 평가받는 건물이다. 그리스도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건축이 절충된 예이기도 하다. 지금은 전형적인 기독교 문화권이 된 도시에서 이슬람의 흔적이 듬뿍 담긴 궁궐을 보는 기분이 묘하다. 정반대 사례가 바로 과거에는 동방 정교 예술의 정수이자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이슬람교의 도시가 된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크게 4개 공간으로 구성된다. 처음 지어진 건축물이자 가장 전망 좋은 요새인 알 카사바, 아라베스크 양식의 꽃인 나사리 궁전,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의 헤네랄리페, 스페인 르네상스 시기의 건물인 카를로스 5세 궁전과 산타 마리아 성당과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다.
세계의 건축 장식을 연구했던 <Grammer of Ornament>의 저자 오웬 존스는 알함브라, 무어인의 장식을 최상으로 꼽기도 했다. 아라베스크 무늬와 종유석 모양의 세밀하고 방대한 장식을 가진 아치와 기둥, 돔, 각종 수로와 수변, 담담한 벽의 대비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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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이미 로마시대에 조그만 요새가 있었고, 9세기에 그라나다의 에미르가 성벽과 토대를 올렸다. 1238년에 그라나다의 술탄 무함마드 1세가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100년에 걸쳐 점차 화려한 궁궐로 변모시켰다. 이 시기에는 이미 나스르 왕조 외의 모든 이슬람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휩쓸려 나가버렸고, 유일하게 남은 그라나다도 카스티야에 막대한 상납금을 지불하는 대가로 겨우 국체를 유지하는 상태였다. 무어인 최고의 예술이라 불리는 알함브라 궁전은 '알 안달루스'의 황혼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워졌던 것이다.
여길 빼앗기고 북아프리카로 가야했던 그라나다의 나스르 왕조 마지막 에미르[8] 무함마드 12세 보압딜은 '영토를 빼앗기는 것보다 이 궁전을 떠나는게 슬프구나.' 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9] 그렇지만 패자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보고 그의 어머니는 한심하다는 듯이 "남자처럼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여자처럼 울기라도 해야지." 라며 툭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결국 여길 잊지 못하던 보압딜은 북아프리카에 알함브라보단 못해도 대충 비슷한 궁궐을 만들어 거기서 살다가 죽었다.
이사벨라 1세가 인근에 신도시이자 그라나다 포위망의 완성인 산타페를 건설하고 결국 1492년에 이슬람 세력의 항복을 받아낸 뒤에, 기독교 세력은 이 궁전도 접수했다. 이교도 상징이 빼곡한 공간이었음에도, 스페인 국왕이나 귀족들은 이 곳을 궁궐로 쓰길 원했다. 이사벨라 1세의 손자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스페인에선 카를로스 1세)는 이 궁전에서 거주하기 위해 새로운 카를로스 5세 궁전을 알함브라 한가운데에 지었다. 그렇지만 양식이 이질적이었고 오랜기간 완성되지도 못했다. 그는 거기서 한술 더 떠서 이교도 상징을 지우기 위해[10] 궁궐 일부분인 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축하고, 성당에 딸린 수도원도 짓고, 궁궐의 일부도 기독교식으로 새롭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이전에 있던 아름다운 여러 건물들과 장식이 훼손되었다.
그 뒤로 알함브라 궁전을 왕궁으로 쓴다던 계획도 흐지부지되어 중앙 정부에서는 슬슬 이 궁전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18세기 초에 펠리페 5세가 며칠 들렀던 것이 마지막 왕실의 방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알함브라는 계속 훼손되는데, 계속적인 개수공사가 있었음에도 이베리아 반도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 말미인 1812년에 프랑스의 세바스티앵에 의해서 탑들이 철거되어 피해를 입고, 1821년에는 지진피해까지 입었다. 그 뒤로는 지역 총독마저 알함브라 맞은편의 헤네랄리페에서 거주하면서 궁전을 완전히 방치하는 바람에 집시와 강도들의 무단거주지로까지 퇴락했다.
이 궁전이 다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이후 미국인 작가이자 외교관인 워싱턴 어빙에 의해 1829년 알함브라의 이야기(Tales of the Alhambra)가 출판되면서부터였다.[11] 그리고 1828년부터 호세 콘트레라스에 의해 원형을 찾기 위한 공사 및 보수 공사가 시작되었다. 1830년에 페르난도 7세의 기부로 지속적으로 공사를 할 수 있었으며, 1847년 호세가 사망했으나 그 아들이 물려받아 계속 공사하였다. 1870년에는 국보로 지정하였고 이후 1984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21세기에도 계속해서 원형 회복을 위한 공사나 보수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는 주로 천장과 기둥 사이 레이스를 묘사한 부분들을 복원하고 있다. 지금은 세월의 풍파로 색이 바랬으나 원래대로 복원하면 알록달록 색이 입혀져서 아름다울 거라고. 이외에도 약해진 구조 때문에 기둥과 건물 사이에 쇠파이프로 지탱해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건축
- 나스르 궁전(Nasrid Palace): 알함브라 궁전에서 가장 아름답고 곳이다. 사자의 정원(Patio de los Leones) 등 유명한 알함브라의 장소는 거의 다 이 곳에 있다.
- 카를로스 5세 궁전(Palace of Charles V): 이 알함브라 중심에 있는 커다란 기독교 양식의 네모 건물이다. 카를로스 5세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이 건물은 오랜기간 완성되지도 못했다. 이 궁전은 현대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 무거운 하중을 다른 건물들에 떠넘기고 있어 알함브라 전체의 유지 보수에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500년이 넘은 역사인지라 철거할 수는 없다. 그래도 알함브라 궁전에서 진행되는 모든 문화행사를 이 곳에서 치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 헤네랄리페(Generalife)
4. 관광
알함브라 궁전의 핵심인 나스르 궁전은 동시 입장 인원 제한을 두고 공개하고 있어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만 입장 가능'''하다.
기대거나 만지는 것도 내부에서 엄격하게 금지할 정도로 훼손에 민감하다. 바코드가 찍힌 입장표를 지니고 다녀야 구역 별로 이동이 가능하니 나가기 전까지 소중히 지참할 것. 또한 랜덤으로 불심검문에 걸릴 수 있는데 이때 여권을 보여줘야 하며 여권의 이름과 입장표의 이름이 다를 시 퇴장당할 수 있다.
궁전 입구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수 있다. 가격은 2019년 1월 기준 6유로. 한국어도 있으나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 차라리 영어가 더 낫다는 평가도 있다.
5. 기타
밤이 되면 건물 외벽에 불이 켜져서 아름답다. 알바이신 지구에서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함께 볼 수 있다.
주변 학교에서 소풍 장소로 선정을 자주 하는 듯. 어린 학생들이 관광객들 사이로 떼지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곡가이자 기타 연주가인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이 궁전을 여행한 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음악을 작곡하였다.
카를 5세가 알함브라에 유럽식 건물을 지어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안어울려서 탄식했다는 야사는 알함브라 궁전의 것이 아니라 코르도바의 이슬람 성전인 메스키타의 일부를 부수고 가톨릭 성당을 지은 것과 관련된 것이다. 상황이 비슷하니 혼동되는 듯.[12]
6. 각종 매체에서의 알함브라 궁전
- KOF 98의 스페인 스테이지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 문명 5에선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등장한다. 건설한 도시에서 생산하는 군사 유닛은 거친 지형에서 전투력을 올려주는 훈련 I 진급을 가지고 시작하고, 건설한 도시에 성이 무료로 제공되며, 건설한 도시의 문화 생산량이 20%만큼 증가하는 효과도 있는 걸출한 원더.
- 문명 6에서도 등장. 알람브라 궁전으로 불리며, 유흥에서 쾌적도 +2, 위대한 장군 점수 +2에, 군사 정책 슬롯 1개 추가 제공하며 해당 불가사의가 건설된 타일에 요새 보너스를 준다. 5와 마찬가지로 매우 좋은 원더다.
- 베르세르크에서 세르피코와 가츠가 싸울때 나오던 건물이 바로 이 곳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잘못 아는 경우도 있다. 이슬람풍 기둥이 세워진 곳에서 세르피코가 오래전 이교도가 살던 성을 차지하여 그 건물을 그대로 썼다는 말을 하는데 가츠가 이 기둥들을 닥치는 대로 베며 둘이 신나게 싸웠다... 그런데, 가츠와 세르피코가 싸우던 이 곳 모티브는 알함브라 궁전이 아니라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라는 곳이다. 이곳은 원래 이슬람 모스크였는데 레콩키스타로 정복된 뒤 성당으로 개조된 곳이다.[13] 알함브라 궁전도 모스크가 파괴된 점은 같다.
- 어쌔신 크리드(영화)에서 무함마드 12세와 템플 기사단의 거래 장소가 바로 알함브라 궁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론 알 도리가 없다.
- tvN의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배경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 세미와 매직큐브에서도 테셀레이션을 다루며 함께 소개되었다.
[1] 1994년 등록확장[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사자의 중정, 기둥 사이 폭포수처럼 묘사된 것은 레이스다.[6] 스페인어에서 H는 묵음이므로, 알람브라라고 읽는 것이 맞다.[7] '붉은 요새'이라는 뜻이다.[8] 기록상 에미르로 칭하고 있다. 사실 나스르 왕조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9] 사실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여기에 남는걸 허락했지만 보압딜은 그냥 자기가 떠났다고 하는 야사도 있다. 나스르 멸망 이후 벌어진 이교도 탄압을 생각하면 떠나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10] 카를 5세의 가톨릭 신앙은 매우 충실하였고, 그런 성향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영향을 주었다.[11] 그는 알함브라에 거주하면서 책을 집필하였고, 그 덕분에 다시 빛을 본 궁전 내에 그를 기념하는 명패도 새겨 놓았다.[12] 그 야사는 막상 그렇게 만들어진 건물이 기존의 이슬람 양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자 카를 5세가 이렇게 탄식했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을 지으려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을 부수어 버렸구나!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13] 스페인의 상당수의 대성당이 이런 식으로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