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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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로 작성된 토라.
羊皮紙. 즉 양의 가죽으로 만든 종이 이전의 기록매체. 영어로 쓰면 parchment. 이는 양피지가 만들어진 페르가몬(Pergamon)에서 유래한다.
양의 가죽에서 털을 벗겨낸 뒤에 고대 및 중세 유럽에서 문서 기록용도로 사용한 것. 몹시 질기다는 특징이 있다. 양가죽으로 만든 양피지 이외에도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독피지(犢皮紙: vellum)도 있다. 만들기가 양피지보다 어려웠지만, 가죽 자체의 질이 양피지보다 훌륭하다. 양피지의 등장으로 코덱스 형태인 서적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소아시아의 페르가몬에 도서관이 생기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입지를 위협하게 되자 이집트에서는 페르가몬 도서관의 견제를 위해 파피루스의 수출을 금지해버렸고, 이로 인해 페르가몬 도서관의 자구책으로 인해 발명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사실 양피지는 그보다 오래 전에 페르가몬 사건 이전에도 많은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양피지는 주로 이집트를 중심으로 사용하던 파피루스에 비하여 가격이 비싸고 제작이 어려웠지만, 파피루스는 습한 지역에서는 곰팡이가 생기거나 손상되기 쉬웠던 반면, 양피지는 내구성과 보존성이 뛰어났다. 또한 파피루스는 섬유의 특성상 양쪽 면을 쓰기 어려웠지만, 양피지는 양쪽 면을 모두 쓰기 쉬운 점, 필요할 때는 원래 쓰인 글을 칼로 살살 긁어내어 지울 수 있어 기존의 기록 내용을 비교적 쉽게 고쳐서 사용할 수 있는 등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피지는 생산가격이 너무나도 비쌌다. 양피지로 책 한 권을 만들려면 새끼양 수십 마리를 잡아야 했다. 당연히 아무나 함부로 쓸 만한 것은 아니었고, 이 때문에 중세 유럽의 도서는 지식의 저장의 측면 외에도 재산이란 측면 역시 상당히 강했다. 중세까지만 해도 책은 재력이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지배계급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일반 대중 대다수가 책을 사서 읽을 수 있게 된 때는 종이와 인쇄술이 발명되어 책을 양산하고 교육이 보편화되어 문맹이 퇴치된 이후이다.
양피지가 아까웠기 때문에 양피지 책에는 일반적으로 여백조차 두지 못하고 빼곡하게 내용을 채워 넣었다. 현존하는 양피지 도서 중에는, 이전 내용을 지우고 그 위에 덧쓴 것들도 많다. 이런 탓에 내용의 첫 부분이 어딘지 표시하기 위해, 첫 글자를 다른 글자보다 크고 화려하게 채색하여 내용의 시작을 표시하였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쓰여진 양피지를 재활용해 쓰기까지 했다. 그러나 학자들에게는 로마 문헌도 중요는 하지만 이전에 쓰인 그리스 문헌이 훨씬 더 중요하므로, 지워진 그리스어 내용을 복구하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재활용한 양피지를 전문 용어로 팰림프세스트(Palimpsest)라고 한다.[1]
무두질하지 않은 동물 가죽이라 습기에 상당히 민감한 것이 특징이다. 습도가 변하면 모양도 미세하게 변해 양피지가 뒤틀어진다. 한 장만 쓸 때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특히 여러 장을 한데 묶어 제본한 책으로 만들면 각 페이지가 제멋대로 뒤틀려 책이 심하게 일그러질 수 있다. 그래서 양피지 책은 굵은 실과 튼튼한 가죽 끈으로 페이지를 꿰매고 두꺼운 나무 판자로 표지를 만들어 제본했다. 페이지가 뒤틀려 책이 흉하게 벌어지는 사태를 막고자 책을 덮은 상태로 표지를 고정하는 잠금 장치까지 달아놓았다. 쉽게 말해, 양피지로 책을 만들려면 현대의 간단하고 저렴한 제본 따위로는 어림도 없다는 말. 양피지 자체도 매우 비쌌지만, 필경사가 직접 한자 한자 손으로 쓰고, 화가가 화려한 그림을 그려넣고 금박과 울트라마린 등 온갖 귀금속을 사용해 장식하고 나서 이렇게 비싸고 번거로운 방식으로 제본하여 만들어지는 것이었기에 당시에 책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품이었다.
제지술이 중국과 이슬람을 걸쳐 유럽으로 전파되기 전까지 파피루스와 함께 서사재로 병용되었다. 파피루스 쪽이 양피지보다 값이 쌌고, 자유롭게 필요한 만큼만 잘라 쓰기 편하였으므로 외교문서 등에서는 파피루스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책을 저술할 때도 파피루스에 초고를 써 두고 퇴고를 거쳐 양피지에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탈라스 전투 이후 제지법이 전래되자 종이가 서사재로서 확고히 자리 잡았으므로 양피지는 서사재로서는 사실상 사장되었다.
현대에는 parchment craft라는 공예용 등등 특수한 경우에만 더러 사용한다. 수요도 유대인들 외에는 별로 없다.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을 양피지에 적은 토라를 시나고그에 비치한다. 유대인 외에도 아직 문서용으로 쓰는 사람들이 없진 않으나 매우 드물고, 고작해야 메뉴판 따위를 만들 때 가끔 쓰는 정도이다. 그 외에는 값비싼 취미용 수준이다.
영국 의회에서 법률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면 조문을 독피지에 적어 보관하는 전통을 2010년대까지 보존했다. 독피지에 적어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했는데, 사회가 복잡해져 법률이 길어지다 보니 말아 둔 독피지의 지름이 30cm는 넘는 경우도 흔했다. 그러나 중세 때만큼 비싸지는 않다 해도 쏟아지는 각종 법률을 전부 쓰려니 비용이 쪼들렸는지 결국 2016년 종이로 전환했다.기사
현대에는 A4크기 장당 1.5만 원 정도이지만 중세시대에는 지금보다 가격이 비쌌다[2] . 대략 현대 가치로는 장당 5만 원 가량이라고 보면 된다. 2000쪽짜리 책에 양 200마리 분 양피지와 거위 수십 마리의 깃털을 사용해서 필경사가 18개월간 작업했다. 가격도 중세 중산층 상인 석조주택 가격의 1/5 정도로 오늘날 가격으로 치면 노동자 3~5년 연봉인 5천만 원~1억 원 정도의 가격이다. 양피지는 양면으로 쓸 수 있어 1장이 2페이지 분이다. 수백 페이지 남짓한 얇은 책이라도 줄잡아 수백만 원대라는 것. 대략 책 한 페이지당 평민이나 노동자의 임금이나 수입 0.5~1일 치에 맞먹는 비싼 가격이다. 1455년 당시 수제 필사본 성경은 약 60~100굴덴이었고 인쇄된 1286 페이지(2권 1질) 구텐베르크 성경은 독피지(vellum) 본이 50굴덴, 종이 인쇄본이 20굴덴에 팔렸다고 한다. 일반 노동자 월 수입이 2굴덴, 신학교수 월급이 8굴덴 정도였다. 대략 평민 월수입이 양피지 책 25-40 페이지분에 해당된다. 양피지와 종이의 장당 가격은 초기에는 3:1 정도였고 인쇄술의 발전으로 종이가 대량생산되자 10:1 비율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현재 종이는 양피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값이 저렴하다.
이렇듯 가격이 대단히 비쌌기 때문에 결함이 있어도 울며 겨자먹기로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 재료가 된 동물의 가죽에 상처가 있거나, 제조 과정에서 작업자가 실수하면 양피지에 상처가 생기는데 건조하는 과정에서 이 상처 주변의 가죽이 수축해 타원형 구멍이 뚫린다. 그래도 차마 그 부분을 버리지 못하고 실로 대충 꿰매거나 아니면 구멍을 피해 글을 적는 등 어떻게든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중세 양피지 책을 직접 보면 의외로 구멍난 페이지가 많다.
동물 가죽이라는 특성상 양피지에 글을 쓰려면 현대의 종이와는 달리 준비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단 양피지 표면을 거친 화산석인 부석(pumice)로 살짝 문질러 표면을 약간 까슬까슬하게 하고, 아라비아검(gum arabic)등 접착성이 있는 가루를 약간 발라 잉크가 양피지 표면에 잘 달라붙도록 해야 한다. 잉크 또한 아무 잉크나 되는 것이 아니고 철분과 참나무에 기생하는 곤충이 생산한 탄닌을 섞은 산성 잉크[3] 를 사용해야 한다. 이 잉크는 일반적인 잉크와는 달리 철분 용액과 탄닌 용액으로 분리되어 있고 사용 직전에 섞어서 쓰는데, 탄닌 덕분에 일단 굳으면 물에 다시 녹지 않는데다 산성이어서 양피지 표면을 미세하게 부식시켜 글자가 완전히 새겨지게 된다. 그러나 농도 조절을 잘못할 경우 강한 산성 때문에 당시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을지 몰라도 수백 년 후인 현대에는 양피지가 지나치게 부식되어 글자 부분이 양피지에서 아예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생겨 박물학자들의 고충이 크다.
히브리어로 작성된 토라.
1. 소개
羊皮紙. 즉 양의 가죽으로 만든 종이 이전의 기록매체. 영어로 쓰면 parchment. 이는 양피지가 만들어진 페르가몬(Pergamon)에서 유래한다.
양의 가죽에서 털을 벗겨낸 뒤에 고대 및 중세 유럽에서 문서 기록용도로 사용한 것. 몹시 질기다는 특징이 있다. 양가죽으로 만든 양피지 이외에도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독피지(犢皮紙: vellum)도 있다. 만들기가 양피지보다 어려웠지만, 가죽 자체의 질이 양피지보다 훌륭하다. 양피지의 등장으로 코덱스 형태인 서적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2. 역사
소아시아의 페르가몬에 도서관이 생기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입지를 위협하게 되자 이집트에서는 페르가몬 도서관의 견제를 위해 파피루스의 수출을 금지해버렸고, 이로 인해 페르가몬 도서관의 자구책으로 인해 발명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사실 양피지는 그보다 오래 전에 페르가몬 사건 이전에도 많은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양피지는 주로 이집트를 중심으로 사용하던 파피루스에 비하여 가격이 비싸고 제작이 어려웠지만, 파피루스는 습한 지역에서는 곰팡이가 생기거나 손상되기 쉬웠던 반면, 양피지는 내구성과 보존성이 뛰어났다. 또한 파피루스는 섬유의 특성상 양쪽 면을 쓰기 어려웠지만, 양피지는 양쪽 면을 모두 쓰기 쉬운 점, 필요할 때는 원래 쓰인 글을 칼로 살살 긁어내어 지울 수 있어 기존의 기록 내용을 비교적 쉽게 고쳐서 사용할 수 있는 등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피지는 생산가격이 너무나도 비쌌다. 양피지로 책 한 권을 만들려면 새끼양 수십 마리를 잡아야 했다. 당연히 아무나 함부로 쓸 만한 것은 아니었고, 이 때문에 중세 유럽의 도서는 지식의 저장의 측면 외에도 재산이란 측면 역시 상당히 강했다. 중세까지만 해도 책은 재력이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지배계급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일반 대중 대다수가 책을 사서 읽을 수 있게 된 때는 종이와 인쇄술이 발명되어 책을 양산하고 교육이 보편화되어 문맹이 퇴치된 이후이다.
양피지가 아까웠기 때문에 양피지 책에는 일반적으로 여백조차 두지 못하고 빼곡하게 내용을 채워 넣었다. 현존하는 양피지 도서 중에는, 이전 내용을 지우고 그 위에 덧쓴 것들도 많다. 이런 탓에 내용의 첫 부분이 어딘지 표시하기 위해, 첫 글자를 다른 글자보다 크고 화려하게 채색하여 내용의 시작을 표시하였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쓰여진 양피지를 재활용해 쓰기까지 했다. 그러나 학자들에게는 로마 문헌도 중요는 하지만 이전에 쓰인 그리스 문헌이 훨씬 더 중요하므로, 지워진 그리스어 내용을 복구하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재활용한 양피지를 전문 용어로 팰림프세스트(Palimpsest)라고 한다.[1]
무두질하지 않은 동물 가죽이라 습기에 상당히 민감한 것이 특징이다. 습도가 변하면 모양도 미세하게 변해 양피지가 뒤틀어진다. 한 장만 쓸 때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특히 여러 장을 한데 묶어 제본한 책으로 만들면 각 페이지가 제멋대로 뒤틀려 책이 심하게 일그러질 수 있다. 그래서 양피지 책은 굵은 실과 튼튼한 가죽 끈으로 페이지를 꿰매고 두꺼운 나무 판자로 표지를 만들어 제본했다. 페이지가 뒤틀려 책이 흉하게 벌어지는 사태를 막고자 책을 덮은 상태로 표지를 고정하는 잠금 장치까지 달아놓았다. 쉽게 말해, 양피지로 책을 만들려면 현대의 간단하고 저렴한 제본 따위로는 어림도 없다는 말. 양피지 자체도 매우 비쌌지만, 필경사가 직접 한자 한자 손으로 쓰고, 화가가 화려한 그림을 그려넣고 금박과 울트라마린 등 온갖 귀금속을 사용해 장식하고 나서 이렇게 비싸고 번거로운 방식으로 제본하여 만들어지는 것이었기에 당시에 책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품이었다.
제지술이 중국과 이슬람을 걸쳐 유럽으로 전파되기 전까지 파피루스와 함께 서사재로 병용되었다. 파피루스 쪽이 양피지보다 값이 쌌고, 자유롭게 필요한 만큼만 잘라 쓰기 편하였으므로 외교문서 등에서는 파피루스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책을 저술할 때도 파피루스에 초고를 써 두고 퇴고를 거쳐 양피지에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탈라스 전투 이후 제지법이 전래되자 종이가 서사재로서 확고히 자리 잡았으므로 양피지는 서사재로서는 사실상 사장되었다.
현대에는 parchment craft라는 공예용 등등 특수한 경우에만 더러 사용한다. 수요도 유대인들 외에는 별로 없다.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을 양피지에 적은 토라를 시나고그에 비치한다. 유대인 외에도 아직 문서용으로 쓰는 사람들이 없진 않으나 매우 드물고, 고작해야 메뉴판 따위를 만들 때 가끔 쓰는 정도이다. 그 외에는 값비싼 취미용 수준이다.
영국 의회에서 법률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면 조문을 독피지에 적어 보관하는 전통을 2010년대까지 보존했다. 독피지에 적어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했는데, 사회가 복잡해져 법률이 길어지다 보니 말아 둔 독피지의 지름이 30cm는 넘는 경우도 흔했다. 그러나 중세 때만큼 비싸지는 않다 해도 쏟아지는 각종 법률을 전부 쓰려니 비용이 쪼들렸는지 결국 2016년 종이로 전환했다.기사
현대에는 A4크기 장당 1.5만 원 정도이지만 중세시대에는 지금보다 가격이 비쌌다[2] . 대략 현대 가치로는 장당 5만 원 가량이라고 보면 된다. 2000쪽짜리 책에 양 200마리 분 양피지와 거위 수십 마리의 깃털을 사용해서 필경사가 18개월간 작업했다. 가격도 중세 중산층 상인 석조주택 가격의 1/5 정도로 오늘날 가격으로 치면 노동자 3~5년 연봉인 5천만 원~1억 원 정도의 가격이다. 양피지는 양면으로 쓸 수 있어 1장이 2페이지 분이다. 수백 페이지 남짓한 얇은 책이라도 줄잡아 수백만 원대라는 것. 대략 책 한 페이지당 평민이나 노동자의 임금이나 수입 0.5~1일 치에 맞먹는 비싼 가격이다. 1455년 당시 수제 필사본 성경은 약 60~100굴덴이었고 인쇄된 1286 페이지(2권 1질) 구텐베르크 성경은 독피지(vellum) 본이 50굴덴, 종이 인쇄본이 20굴덴에 팔렸다고 한다. 일반 노동자 월 수입이 2굴덴, 신학교수 월급이 8굴덴 정도였다. 대략 평민 월수입이 양피지 책 25-40 페이지분에 해당된다. 양피지와 종이의 장당 가격은 초기에는 3:1 정도였고 인쇄술의 발전으로 종이가 대량생산되자 10:1 비율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현재 종이는 양피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값이 저렴하다.
이렇듯 가격이 대단히 비쌌기 때문에 결함이 있어도 울며 겨자먹기로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 재료가 된 동물의 가죽에 상처가 있거나, 제조 과정에서 작업자가 실수하면 양피지에 상처가 생기는데 건조하는 과정에서 이 상처 주변의 가죽이 수축해 타원형 구멍이 뚫린다. 그래도 차마 그 부분을 버리지 못하고 실로 대충 꿰매거나 아니면 구멍을 피해 글을 적는 등 어떻게든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중세 양피지 책을 직접 보면 의외로 구멍난 페이지가 많다.
동물 가죽이라는 특성상 양피지에 글을 쓰려면 현대의 종이와는 달리 준비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단 양피지 표면을 거친 화산석인 부석(pumice)로 살짝 문질러 표면을 약간 까슬까슬하게 하고, 아라비아검(gum arabic)등 접착성이 있는 가루를 약간 발라 잉크가 양피지 표면에 잘 달라붙도록 해야 한다. 잉크 또한 아무 잉크나 되는 것이 아니고 철분과 참나무에 기생하는 곤충이 생산한 탄닌을 섞은 산성 잉크[3] 를 사용해야 한다. 이 잉크는 일반적인 잉크와는 달리 철분 용액과 탄닌 용액으로 분리되어 있고 사용 직전에 섞어서 쓰는데, 탄닌 덕분에 일단 굳으면 물에 다시 녹지 않는데다 산성이어서 양피지 표면을 미세하게 부식시켜 글자가 완전히 새겨지게 된다. 그러나 농도 조절을 잘못할 경우 강한 산성 때문에 당시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을지 몰라도 수백 년 후인 현대에는 양피지가 지나치게 부식되어 글자 부분이 양피지에서 아예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생겨 박물학자들의 고충이 크다.
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양판소에서는 주로 종이를 대체하는 물품으로 등장하지만, 분명 양피지가 귀하다고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마냥 도시마다 길거리에 책장을 몇 개씩 채울 정도로 책을 파는 서점이 있다. 이에 대해 개연성을 좀 부여하자면 소재가 몬스터를 토벌해서 얻은 가죽이라든가, 크기가 큰 거수(巨獸)들이 날뛰는 세계라서 양피지가 생각 만큼 그렇게 비싸지 않을지도.. 라고 변호해볼 수 있겠다. 사실 그러면 羊피지라고 쓰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다른 단어를 만들기도 거시기하니 그냥 대충 양피지라고 때우는 듯.
물론 드물지만, 어느 정도 상식이 좀 박힌 작가들은 '작은 도시에서는 종이 1장 분량의 스크롤로 구할 수 있다.'라든지, '책 같은 경우는 번화한 큰 도시나 수도에 가야 운 좋으면 몇 권 정도는 스쳐 지나가듯 구경 정도는 해볼 수 있는 희귀품', '대부분 교육이나 지식에 관련된 도서, 마법서이고 더욱 희귀한 고서는 암시장이나 던전에 가야 구할 수 있다.'고 하는 등 위에 것들 중 한두 가지 정도는 서술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물론 등장인물이 학구파나 마법사 계열 같은 지식인이나 두뇌파가 아닌 이상, 사실 그렇게까지 세밀하게 묘사할 일이 많진 않지만...
- D&D에선 일반적인 캠페인 세팅(포가튼 렐름 기준)의 경우 제지술은 있지만, 인쇄술은 널리 퍼지지 않았다.[4] 이 때문에 D&D의 책들은 인쇄로 찍어내는게 아니라 필사해야 하니까 현대의 인쇄한 책보다는 비싸다. 하지만 재질이 양피지가 아니라 종이라서 현실 중세에 양피지로 만들어진 책보다는 싸다. D&D의 일반적인 책은 25gp정도로 평범한 사람의 한 달 생활비 정도. 반면 스펠북은 송아지 가죽(vellum)을 쓰기 때문에(5판 기준) 일반 책보다는 훨씬 비싸다. 빈 스펠북도 최소 100gp에서 시작하고 어떤 주문이 있느냐에 따라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이처럼 판타지는 판타지니까, 중세에 가까운 배경이라도 종이책 정도는 있는 경우도 많다.
- 외국 사이트에서 마법재료로 팔기도 한다. 물론 진짜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마법 세계에서는 양피지에 깃펜을 쓴다.
- 일본의 판타지 소설 늑대와 향신료의 10주년 기념 외전 시리즈의 제목이 늑대와 양피지다. 작중 토트 콜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양피지. 또한 동일한 작가가 쓴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든다에선 양피지를 이용한 중세 제본 과정을 상세히 묘사했다.
- 오버로드에서는 인간 가죽으로 마법 스크롤을 제작한다고 한다.
- 책벌레의 하극상에서 주인공이 만든 새로운 종이가 등장하기전에 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가격이 한장에 평민 한달 월급 수준이라 귀족들도 대부분의 경우 목패를 쓴다. 양피지는 계약서나 책을 만드는데 사용하는데 양피지에 필사해 만들어진 책은 한권에 대금화 4~5개로 대략 5억원대 가격을 자랑한다.
[1] 가장 유명한 팰림프세스트의 사례라면 아마 아르키메데스가 쓴 글일 것이다. 수학 이론을 적어놓았는데 누가 그걸 지우고 기도서로 재활용한 것. 또한 셜록 홈즈의 '금테 코안경' 편에 홈즈가 팰림프세스트를 연구하는 장면이 초반부에 나온다.[2] 현대에는 가축을 워낙 대량으로 키우기 때문에 가축을 도축해도 고기만 팔고 가죽은 버리는 경우가 많을 정도라 가죽의 원가 자체는 대단히 저렴하다. 양피지든 기타 가죽 제품이든 완성품의 가격은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거의 전적으로 이후 들어가는 인건비 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그러나 중세시대에는 가축 자체가 귀했기 때문에 가죽의 원가만 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3] 일반적으로 Iron gall ink라고 부른다.[4] 인쇄술이 있기는 있다. 카라투어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페이룬에도 일부 드워프들이 사용하지만 널리 퍼지진 않았다. 주문은 인쇄할 수 없어 스펠북을 찍어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