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사키 데쓰마

 

'''일본 중의원 (아이치 10구)'''
''선거제도 개편''

'''제41대
에사키 데쓰마'''

'''제42대'''
사토 간쥬
'''제42대'''
사토 간쥬

'''제43~44대
에사키 데쓰마'''

'''제45대'''
스기모토 가즈미
'''제45대'''
스기모토 가즈미

'''제46~48대
에사키 데쓰마'''

''현직''
'''江崎鉄磨(えさきてつま
에사키 데쓰마
'''
'''출생'''
1943년 9월 17일 (80세)
아이치현 이치노미야시
'''국적'''
[image] 일본국
'''학력'''
릿쿄대학 문학부 교육학과
'''가족'''
아버지 에사키 마스미[1], 이복동생 에사키 요이치로[2]
배우자, 장남
'''정당'''

'''의원 선수'''
'''7''' (중)
'''의원 대수'''
40, 41, 43, 44, 46, 47, 48 (중)
'''지역구'''
아이치 10구
'''현직'''
중의원
'''약력'''
나카노 마사오 비서
에사키 마스미 중의원 의원 비서
이치노미야 축구 연맹 회장
학교법인 이치노미야 여학원 이사
중의원
외무성 총괄 정무차관
국토교통부대신
중의원 법무위원장
중의원 소비자 문제에 관한 특별 위원장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1. 개요
2. 생애
3. 에피소드
4. 소속 정당
5. 기타
6. 둘러보기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2. 생애


아이치현 이치노미야시에서 태어났다. 이치노미야시립 무코야마 소학교, 이치노미야시립 미나미 중학교, 아이치현립 이치노미야 고등학교를 거쳐 릿쿄대학 문학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61년 4월, 소림사 권법의 창시자 나카노 마사오의 비서가 되었으며, 1971년 1월부터 아버지 에사키 마스미의 비서가 되었다. 1986년 이치노미야 축구 연맹 회장에 취임했다.
1992년 12월 초 아버지 마스미가 선거법 위반 건으로 수사받고 있어서 차기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지반을 데쓰마에게 양보했다. 1993년에는 학교법인 이치노미야 여학원 이사에 취임했다. 비록 데쓰마는 아버지가 자민당 의원이었지만, 하타 쓰토무와 함께 개혁을 하고 싶어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하타와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그 선택을 존중하며 둘이서 하타의 사무실에 가 하타에게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신생당 공천으로 구 아이치현 제3구에서 당선되었으며, 신진당 결성에 참여한 뒤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아이치현 제10구에서 당선되었다. 신진당 해산 후 자유당, 보수당에 입당했다. 이후 모리 요시로 내각에서 외무성 총괄 정무차관에 취임했으나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했다.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보수신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어 국정에 복귀했고, 지금까지 스기모토 가즈미에게 패한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제외하면 모든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보수신당 해산 후 자유민주당에 입당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국토교통부대신으로 임명되었으며, 니카이 도시히로의 파벌에 가입했다.
이후 중의원 법무위원장, 중의원 소비자 문제에 관한 특별 위원장을 역임하다가 제3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이 되어 첫 입각했다. 하지만 2018년 2월 19일 다리가 아파지면서 입원했고, 다음 날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이 뇌경색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같은 날부터 공무도 취소되었고, 27일에 특명담당대신을 사임했다. 

3. 에피소드


  • 원래 에사키는 2014년 중의원이 해산하고 정계를 은퇴할 생각이었는데, 지역에서 출마하라고 요구가 빗발쳐서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나가 당선되었으며, 그 다음 2017년에도 은퇴하려고 했는데 그때는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이어서 다시 출마했다고 한다(...)
  • 2017년 입각 전의 비화가 있는데, 원래 니카이파에선 입각하지 않은 사쿠라다 요시타카를 비롯한 4명을 추천했다. 하지만 아베는 이부키 분메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이부키가 거절하는 바람에 에사키를 찍었다고 한다. 정작 에사키는 입각에 관심조차 없어서 아베 비서가 전화를 걸었을 때 "어디 아베 씨에요?"라고 되물었다고(...).
  • 2018년 5월 30일 장남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전화가 있었는데 아내가 경찰에 신고해서 사기는 당하지 않았다.#
  • 2019년 10월 31일 슈리 성이 불타버리자 자민당의 도시공원녹지 대책 특별 위원장으로서 도시공원 정비 촉진에 관한 긴급 결의를 실시할 것을 국토교통성 및 당에 요청했다. 아카바 가즈요시 국토교통대신은 "슈리는 국영 공원에서 소중한 문화재로,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대처하겠다"고 대답했다.#
  • 2020년 7월 2일, 니카이 간사장과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이 도쿄도 기오이초의 요리점에서 회식할 때 같은 파벌인 하야시 모토오 전 경제산업대신, 기시다파의 네모토 다쿠미 전 후생노동대신, 오노데라 이쓰노리 전 방위대신과 동석했다. 넷은 한때 야당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던 추억을 이야기했다고.#
  • 입각에 의욕이 없고 자신의 신조에 어긋나면 반발하는 등 성격이 올곧기로 유명해 여야 가리지 않고 인정받고 있다. 젊은 시절 같은 정당에 있던 노다 요시히코는 "에사키 씨는 매우 정직한 사람. 그래서 솔직히 (입각을) 거절한 것이다"라고 평했다.

4.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3 - 1994
정계 입문

1994 - 1997
합당

1997 - 1998
정당 해산

1998 - 2000
창당

2000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00 - 2002
창당

2002 - 2003
신설 창당

2003 -
합당

5. 기타


  • 1993년 초선 이후 지속적으로 니카이 도시히로와 정치 행동을 같이 한 측근이다. 실제로 보수신당 출신 가운데 현재도 니카이 파벌에 속한 중의원 의원은 에사키 밖에 없다.
  • 니카이에게 "텟쨩"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고 한다.

6. 둘러보기




[1] 1915~1996. 중의원 의원, 자치대신, 통상산업대신, 방위청 장관을 역임했다.[2] 1958~. 가나가와현 제12구 중의원 의원이었으며, 2006년 사토 유카리 의원과 불륜 논란이 터져 이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