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영화

 


Film of Estonia
기본정보 (2018년)
출처(EFP: 유럽 영화 프로모션)
인구
130만 명
순수 자국생산 장편영화
12편
관객 수
360만 명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
2.77회
자국영화 점유율
17.8%
스크린 수
104개
1. 개요
3. 역사
3.2. 에스토니아 제1공화국(1919년 ~ 1939년)
3.3. 소련 지배
3.4. 1990년 에스토니아 독립 ~ 1990년대
5. 주요 작품
6. 기타


1. 개요


에스토니아영화.

2. 영화 시장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가 2.77회로 영국 영화 시장의 같은 숫자(2.65회)보다도 높다. 총 인구가 너무 적어서 영화 시장 발달이 미약한 게 문제.
자국 영화 점유율은 2011년 5.1%에 불과했으나 서서히 성장하여 2018년 기준 17.8%까지 올라섰다.

3. 역사



3.1. 러시아 제국


1896년탈린에 최초로 영화가 상영되었다. 1908년 탈린에 최초로 영화관이 들어섰다.
최초의 에스토니아 영화는 요한네스 페수케(Johannes Pääsuke)가 1912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면서 시작된다. 1914년 Karujaht Pärnumaal (Bear Hunt in Pärnumaa)라는 드라마 영화가 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에스토니아에 영화 문화가 들어왔다.

3.2. 에스토니아 제1공화국(1919년 ~ 1939년)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에스토니아는 에스토니아 제1공화국으로 독립한다.

3.3. 소련 지배


1939년 8월 아돌프 히틀러이오시프 스탈린폴란드발트 3국, 루마니아동유럽 국가들을 둘이서 반띵하는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는다.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라 에스토니아는 1940년 소련붉은 군대가 쳐들어와서 1919년 독립한 지 20년 4개월만에 에스토니아는 멸망한다. 소련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발트 3국을 인민공화국이 아닌 러시아 제국때처럼 소련의 연방직할주로 직접 편입했다.

3.4. 1990년 에스토니아 독립 ~ 1990년대


1989년 동유럽 혁명의 분위기에 발트 3국탈린부터 빌뉴스까지 인간띠를 만들면서 노래를 부르는 "노래 혁명"을 통해 1990년 나란히 소련으로부터 독립한다. 에스토니아는 소련에서 독립하자마자 탈린에 있는 스탈린 동상을 치우고 그 자리에 히틀러 동상을 갖다놓는[1] 반러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에스토니아 영화는 이 때부터 "에스토니아" 영화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3.5. 2000년대


2000년대에 차근히 성장하던 에스토니아 영화 시장은 대침체로 인해 큰 침체를 맞는다. 금융위기 여파에 국내 영화 제작사들이 줄도산하여 한 때 거의 명맥이 끊길 뻔했다.

3.6. 2010년대


대침체 여파로 인해 자국 영화들이 줄도산하여 2011년에 5.1%까지 떨어졌던 자국 영화들은 2013년부터 에스토니아 국내 경제가 회복되면서 다시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
2015년1944라는 에스토니아 영화가 한국에 개봉하면서 엄청난 반향을 이끌어낸 바 있다.

3.7. 2020년대



4. 영화 감독



5. 주요 작품



6. 기타



[1] 전 유럽의 어그로를 끌어모은 뒤에 결국 얼마 안 있어서 탈린에 세운 히틀러 동상을 철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