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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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
집시(Gypsy)는 서아시아, 유럽, 특히 동유럽에 주로 거주하는 인도아리아계의 유랑민족을 일컫는 영어 표현이다. '집시'라는 표현의 어원은 '이집트인'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귀프토이(Γύφτοι, Gyphtoi)'[3] 에서 유래하였다. 집시라는 표현 이외에도 그리스어 '칭가노스(Τσιγγάνος, Tsingános)'에서 유래한 '치간(Tzigane)'이라는 영어표현도 사용된다.[4] 다만 두 표현 모두 현대에는 멸칭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집시계 민족 중 하나인 롬인(Romane manusha)이 모국어인 롬어로 자민족을 지칭하는 표현[5] 에서 유래한 '롬인'이나 '로마니인' 혹은 독일어권의 '진티 운트 로마(Sinti und Roma)'와 같은 표현으로 대체해가는 편이다.
이란이나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중동 국가들에도 돔인(دومر), 나와르인(نوار) 등으로 불리는 소수의 집시가 살고 있다.[6] 터키에서는 친게넬레르(Çingeneler)라고 불리며 터키에서도 꽤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이스탄불에 많다.
다만 '집시(Gypsy)'가 꼭 롬인만을 가리키는 단어는 아니며 넓은 의미로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족(Travellers)'을 뜻하기도 한다. 과거 집시라고 간주된 민족들 중에는 외모나 혈통상으로는 백인에 더 가까운 '예니셰인(Jenische, Yenish people)'[7] 과 아일랜드에서 이 두 민족과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생겨난 '아일랜드 유랑민(Irish Travellers)'라는 유랑집단이 존재한다. 예니셰인은 정확한 기원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8] 아일랜드 유랑민은 대체적으로 올리버 크롬웰의 침공으로 토지를 잃거나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인해 파산한 농부들 중에서 땅을 잃고 유랑생활을 하게 된 이들의 후손임이 알려져 있다.[9] 한반도에서도 일제강점기에 농민들이 땅을 잃고 만주로 달아난 경우가 많았으므로, 농민이 유랑민으로 돌변한 사례는 생각보다 매우 흔하다.[10] 일본에서도 다이쇼 시대에 지주들의 수탈이라는 이유로 땅을 잃고 산 속으로 달아난 사람들이 산카(サンカ)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으며, 이스라엘에서도 유대인들이 출애굽기에서 언급되는 바에 따르면 흉년으로 인해 몰락하여 풍요로운 이집트로 가서 유랑생활을 한 적도 있었고, 중국에도 영가의 난으로 인한 이민족들의 침공을 피해서 남쪽으로 달아난 한족 이주민들의 후손인 객가인들이 있다. 그래서 인류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집시의 기원도 고대 인도의 인도유럽어족계 농민들이 어떤 이유로 인해 몰락해서 유랑민이 된 케이스가 아닐까하고 추정해보기도 했으나, 이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2. 기원
인도 북서부, 주로 라자스탄 지방에서 이주해왔으며, 갈색 피부를 지니고 있다. '집시(Gypsy)'라는 단어 자체는 이들이 유럽에 들어올 때 이집트에서 발행된 통행증을 들고 이집트의 민족임을 자칭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집시와 이집트인은 별 관계가 없음이 밝혀졌다.[11] 다만, 이에 따른 오해때문에 집시들 스스로가 자기들이 이집트인의 후손이라고 착각한 사례도 있어서 유랑 생활을 중단하고 발칸 반도에 정착해서 농경민이 된 집시들의 후손인 발칸 이집트인(Balkan Egyptians)들의 민족명도 이런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일단 아바스 왕조 중기에 반란을 일으켜 페르시아만에서 활동하다가 단체로 추방당하면서 디아스포라하게 되어 동로마 → 서유럽으로 계속 쫓겨왔다는 것이 역사의 설명이지만, 이때 추방된 집시의 수는 겨우 수만 명이었고 모두 집시였던 것은 아니어서(인도계의 다른 부족들도 다수) 이 사건(잔즈 반란으로 추정되기도)은 일종의 계기, 혹은 전형적인 집시 추방의 예 정도로 생각된다. 더욱이 인도나 이란, 이집트 등지에는 100만 명 이상의 집시가 있다.
3. 특징
나라 없이 살다보니까 지역에 따라 문화나 종교가 다 다르지만[12] 나라없이 사는데다가 유랑생활을 하거나 저임금 노동자로 오랜기간 살다보니 여러모로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같다. 물론 이것도 나라에 따라 은근히 차이가 커서 유럽계 이주민이 사회의 주류인 아메리카의 집시들은 어차피 메스티소나 물라토같은 혼혈인들이 많고, 백인들도 처음부터 정착해야되는 입장이다보니까 자연스럽게 현지사회에 융합되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집시가 차별받는 유럽과 중동이라도 농경민족으로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이나 후세인 시절의 이라크의 사례처럼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대접받는 경우도 존재하기는 한다.
집시들은 부모님들이 정해준 신붓감 혹은 신랑감과 결혼한다.
유대인과 더불어 나라 없이 오래 살아온 민족으로서, 그나마 금융업, 상업으로 부를 거머쥐어 나름 사회적 입지를 확고히 한 유대인과는 달리 일정한 거주지 없이 이곳저곳 마을 단위를 이루어 유랑하며 살아온 탓에 항상 유럽인들에게 박해와 차별을 받았다.
특히 집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유럽 전역에서 도둑질, 사기, 유괴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아돌프 히틀러가 홀로코스트에 유대인이나 동성애자들과 함께 끼워넣어버릴 정도였다. 수용소에 끌려가 죽은 집시의 수가 매우 많음에도 독일은 아직까지도 이에 대해서 별 사과를 하지 않고 있고, 다른 승전국들도 인권단체 몇 개를 제외하곤 이에 대해서 별 요구를 하지 않는다. 프랑스나 체코, 그리스같이 현재도 집시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동네는 더더욱. 구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집시들을 동화시키는 과정에서 동시에 불임시술도 강제로 시행해서 인구를 억제하는 모습도 동시에 보여주었다.
현대에 와서는 '자유로운 집시 여자'라는 이미지가 꽤 유행하고 있다. 집시들은 방랑하는 동시에 생계를 위해 잡화상이나 말장수, 일용직, 믿거나 말거나 식 점술[13] 이나 '''돌팔이 의료''' 등에 종사한다. 간혹 기타나 우쿨렐레 같은 악기들을 들고 길거리에서 공연하며 돈 버는 자들도 있다.
집시들은 '집시'라는 용어를 아주 싫어한다. 특히 미국계 집시의 경우 인종차별적인 표현에 민감하기 때문에 로마니계열이나 하프시(모계나 부계가 집시계인 혼혈)인 사람이 '집시'라는 표현이 쓰인 것을 발견했을 경우 '''귀신같이 달려와서''' '씨XX아, 니가 뭔데 그딴 X 같은 단어를 쓰냐'면서 화를 낸다. 특히 트위터나 텀블러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경우 십중팔구 영혼이 털릴 정도로 심한 욕설을 들을 수 있다.
집시들이 동족 이외의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면 파울로 코엘료의 《포르토 벨로의 마녀》를 읽어보는 게 좋다. 그 책에 묘사된 집시들의 성격은 현실의 집시들의 성격에 아주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정착하고 주류사회에 동화된 집시와 유랑하는 집시의 사고관은 다르다. 정착집시의 경우 집시어를 모어로 하지 않는 비율도 상당수이다. 체류국과 사용언어, 체류국가의 동화정책의 차이에 따라 집시집단이 달라지며, 이런 서로 다른 집단의 집시가 같은 사고관을 공유한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과 북한인, 조선족, 고려인, 재미교포와 재일교포가 같은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러다보니 집시는 정치인 중에서는 찾기 힘들며 유럽의회 의원이 불과 3명밖에 안된다. 관련 기사. 해당인물은 독일의 로메오 프란츠(Romeo Franz, 1966년 10월 28일 ~ ), 슬로바키아의 페테르 폴라크(Peter Pollák, 1973년 4월 20일 ~ ), 헝가리의 야로커 리비어(Járóka Lívia, 1974년 10월 6일 ~ )이다. 관련 기사.
4. 매체에서의 모습
브럼 스토커의 소설인 《드라큘라》나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에서도, 집시들은 마녀나 흡혈귀들로부터 돈을 받고는 아이와 여자를 납치하는 일도 얼마든지 하는 것으로 언급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노트르담의 꼽추)》에 등장하는 집시 여자 에스메랄다는 진짜 집시가 아니라 아기 때 집시들에게 유괴되어 그들 사이에서 성장한 프랑스인이다.[14] 이렇게 대우가 나쁜 소설에서는 거의 무슨 인간이 아니라 오크나 고블린 같은 몬스터급으로 묘사된다.
대부분의 매체에서 묘사되는 집시들은 어쨌건 간에 일은 안 하고 무언가 밥값 안 되고 신비로운 일[15] 에 몰두하고, 여자의 경우는 남자를 유혹해 어쨌든 무언가 나쁜 결과를 낳게 하는 인종들로 묘사된다. 대표적인 작품이 프랑스인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érimée)의 소설 《카르멘》으로, 흔히 퍼져있는 아름다운 팜 파탈인 떠돌이 집시 여인의 이미지는 100% 카르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메리메 자신이 《카르멘》의 뒤에 붙인 저자 해설(?)에서 밝히기를 '''"스페인에는 아름다운 집시 여자가 극히 드물다. 독일에는 흔히 아름다운 집시 여자가 있다"'''고 한 것이다. 스페인 집시 여자의 추한 몰골에 대해서는 메리메가 직접 '''"안달루시아 집시 아낙네의 머리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제아무리 이와 때투성이인 말갈기를 떠올리더라도 그 더러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정작 《카르멘》의 배경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팜 파탈인 떠돌이 집시 여인'''의 이미지는 남유럽에서 더욱 강해, 프랑스의 담배 상표 중 하나로 '''지탄(집시)'''이라는 것이 있다. 필터 없는 독한 담배로, 움베르토 에코가 이 담배를 즐긴다. 또한 루팡 3세의 주인공 루팡이 피우는 담배가 지탄 카포랄이다. 뭐 그래봤자 소설의 창작일 뿐이지만.
크리미널 마인드의 시즌4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신부로 쓸 여자를 구하기 위해 소녀를 유괴하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1차대전 직후 영국 버밍엄 갱단을 그린 영국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의 셸비 가문이 집시 혈통이다.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 스내치에선 브래드 피트[16] 가 아일랜드계 집시 복서 역을 맡았으며, 극중 주연인 제이슨 스타뎀의 나레이션에서 집시들을 만나서 힘든 점은 아일랜드 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집시 특유의 억양을 알아들기 힘든 점이라고 말하고, 극중에 보여지는 그들은 유랑민족의 이미지처럼 캠프장의 트레일러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산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영화감독인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1988)은 세르비아 집시의 생활상과 고민을 밀도 깊게 그려낸 수작으로 꼽힌다. 서구권 영화계 사상 최초로 대본 전체에 집시 언어인 롬어가 사용되었다. 드라마와 영화, 다큐멘터리를 막론하고 집시에 대해 이 정도로 공을 들여 만든 경우는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 영화가 나온지 30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 등장하지 않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이 연기 경험이 없다시피한 일반인이다. 쿠스트리차는 이 영화로 1989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었는데, 시사회 당시 5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다.
1980년대 후반에 '이치현과 벗님들'이라는 가수를 히트시킨 <집시 여인>이 바로 이 집시를 모티브로 한 노래이다. 88년 후반에 나온 노래로 당시 상당한 히트를 쳤고, 한국에서 집시의 인지도를 올려준 노래라고 볼 수 있겠다.
5. 각 지역별 대우와 현황
현재도 집시들은 오랜 빈곤과 차별, 특유의 유랑 문화 때문에 정주민들과 마찰이 많으며 여러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당연히 유럽에서나 인도에서나, 있는 나라에선 크게 차별받는 편. 그나마 아메리카 국가에서 살고 있는 집시 이민자들 정도가 예외이다. 사실 동유럽의 집시들이 차별받는데에는 90년대 체제전환 이후로 실업률이 큰폭으로 늘었을때 만만하게 집시이다보니까(...) 일종의 화풀이격으로 차별 받은 이유도 있기는 했다.
5.1. 유럽
현재 유럽의 많은 집시들은 빈곤층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남유럽과 동유럽의 집시들은 소매치기 등 경범죄로 식생활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이로 인한 반(反)집시 정서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2008년에 해수욕장에서 행상을 하던 두 집시 소녀가 파도에 휩쓸려 죽었는데, 경찰이 1시간 뒤에 관을 들고 와 치울 때까지도 휴양객들이 거의 개의치 않고 집시 소녀가 사망한 자리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던 사진이 공개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
아돌프 히틀러도 당연히 집시들을 미워하여, 홀로코스트 과정에서 유대인 못지않게 많은 집시인들을 학살하였다. 거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집시를 같이 끼워넣은 셈이었는데 다행히(?) 생존률은 유대인보다는 높았다. 홀로코스트와 같이, 집시인 집단학살을 의미하는 "포라이모스(Porajmos)"나 "사무다리펜(Samudaripen)"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유럽 각지에서 50만에서 100만 정도가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될 뿐, 자세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 정부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에 대해 깊이 참회하고 사과하는 것에 비해서, 집시들을 학살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도 안 하고 잘 짚고 넘어가지도 않고 있다. 나치독일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의 극우 민족 단체인 우스타샤 또한 크로아티아 영내의 세르비아인, 유대인과 함께 자국내 집시들도 학살했다.
2006년에 동유럽 국가들이 대거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집시 대상으로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동유럽 내에 있는 집시들에 대한 대우가 좀 나아지나 싶었지만, 2008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해 집시 대상 증오범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제가 나빠지자 무지한 사람들이 아무런 힘이 없는 집시들에게 분노를 돌리는 것. 사실상 경제위기의 근원은 미국에 있는데도 집시 때문에 일자리가 줄었다며 집시를 대상으로 집단 구타나 심지어 살인까지 자행되고 있다.
특히 헝가리 농촌에서는 집시라는 이유만으로 노인이나 어린아이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증오 범죄가 늘어가고 있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아예 집시들을 추방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당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비비안 레딩은 '''''아마 프랑스에 선거철이 다가오나 보다. 사람들은 예산이나 부채 같은 중요한 문제를 다루기 싫을 때 로마인 얘기를 꺼낸다.''''' 하는 말로 사르코지를 비판했다. 사르코지는 이로 인해 프랑스의 좌파 대부분으로부터 거센 비판과 비난을 받았는데, 사르코지의 뒤를 이은 중도좌파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사회당 정부 시절에도 집시 추방 조치를 중단하지 않아 나머지 좌파 인사들로부터 또 다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루마니아에서는 이들을 불가리아나 세르비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같은 다른 동유럽권의 이웃 나라로 추방하려다가 그 나라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바람에[17] 집시들이 갈 곳 없는 처지에 처했다. 다만 넷플릭스의 다큐 지상 최악의 교도소에 의하면 루마니아의 특정 교도소 수감자 중 80%가 집시일 정도로 범죄율이 매우 높으며, 루마니아 법을 거부하고 집시들의 법[18] 을 고집 하고 있다. 교육 수준이 낮은데 공교육까지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라 사실상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게 거의 불가능 하다고 한다.
2011년 5월 1일 체코 브르노에서 네오 나치들의 집회와 시위가 열렸고, 브르노에 꽤 많은 집시 인구가 있는 관계로 주 타겟은 집시였다. 이 시위 얼마 전에는 이 지역 집시 협회의 회장에게 인종차별적 내용이 담긴 익명의 편지가 도착했는데 '집시 여자들은 강간 같은 거 걱정 마라. 짐승보다도 역겹고 냄새나는 너네들은 안 건드린다'라는 식의 편지였다. 이 시위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체코 국립영화학교인 FAMU의 다큐멘터리과 학생들에 의해 촬영되었다. 영화 중간쯤 이 익명의 편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레이션처럼 등장한다. 제목은 <Film jako Brno>.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브르노 같은 영화'.
2011년 9월에는 불가리아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인 플로브디프에서 대규모 반(反) 집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불가리아 집시들은 먹을 게 없어서 고슴도치 고기까지 먹던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유럽 각지에서 서유럽으로의 인구유출로 노동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1990년대 이후에 출생한 저출산 세대들이 사회의 중축을 담당하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집시를 무시하고 다닐지 언정 경제적으로나 재정적으로는 더 이상 집시를 더 이상 마냥 무시하고 다닐수있는 처지는 아니게 되엇다. 연금을 대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서유럽이나 북유럽으로 빠져나가는데다가 인구감소속도도 위낙에 가파른지라 지방 곳곳이 유령마을로 변하고 있지만 동유럽권 국가 다수는 이민자들을 끌어모으기에는 임금수준이 어중간하고 난민들조차도 서유럽이나 북유럽에 정착하는것을 선호하기때문에 노동수요를 채워줄만한 사람은 집시밖에 없기 때문이다. 집시들이 아무리 기피대상이 된다해도 처음부터 정착해야되는 이민자들보다는 그래도 현지문화에 익숙한 집시가 적응상의 애로사항이 적은데 집시들까지 모조리 내친다면 연금을 누가 대주냐 혹은 일할사람을 어디서 구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차별이 상대적으로 완화된다해도 문화적인 차별이 완화된다는것과는 별개라서 집시에 대한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구 유고슬라비아인, 불가리아인, 루마니아인, 알바니아인 등 타 동유럽인들이 그렇듯이 동유럽 집시들도 서유럽으로 가서 일용직 노동자이나 노점상으로 벌이하는것이 많다. 서유럽에서도 정도가 덜할뿐 차별받기는 매한가지지만 적어도 동유럽에 남아있는것보다는 훨씬 벌수있으니까 가는것이다.[19]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같은 구유고권 국가에서도 집시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1960, 70년대 구 유고 연방 시절 유고내 민족 통합을 주창하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 전 대통령으로부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시민권을 부여받는 등 많은 우대를 받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잘 살때도 있었다.[20] 그러나 1980년에 유고슬라비아를 장기통치해온 티토 대통령이 노환으로 사망하고, 1980년대 이후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으로 유고 연방이 내전으로 해체, 붕괴되는 과정에서 연방의 분열로 독립했던 각국들이 자기 민족 우선의 정책을 펼치면서 이 나라들에서 살던 집시들도 큰 타격을 받았고, 특히 유고 내전 와중에도 크로아티아군과 보스니아군,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내의 세르비아인 민병대들에 의해 간첩 또는 회색분자들로 몰려 집시인들도 덩달아 학살당하기도 했는데 내전 와중에 학살과 탄압을 피하기 위해 집시들을 안 좋게 여기거나 차별하던 헝가리나 이탈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같은 옛 유고 연방과 인접해있었던 다른 주변국 나라들로 도피했을 정도였다. 물론 유고 내전 당시 상대적으로 내전의 피해가 적었던 세르비아[21] 와 북마케도니아에서는 보스니아나 크로아티아처럼 학살당하지 않았지만 여기에서도 민족주의를 앞세운 각국 정부의 자민족 우대 정책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큰 홀대를 받으며 티토 대통령과 유고연방이 존속했던 냉전 시대때보다 더 낮은 수준의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세르비아의 집시들중에서도 여가수 타나 사비치와 축구선수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같이 집시계 세르비아인들중에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적지만 꽤 있다.[22] 아무튼 자신들이 거주하던 구유고 연방이 냉전 체제 몰락 이후에 내전과 분열 등의 혼란상을 겪으며 별도 국가들로 쪼개지다 보니 이들중에는 티토와 유고 연방 시기를 그리워하거나 티토 사후에 각각 민족우선주의와 분리독립을 앞세우며 내전 및 인종청소 대량학살을 촉발시켰던 크로아티아의 프라뇨 투지만 전 대통령이나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 보스니아의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전 대통령 등 유고 내전 당시 각 구유고권 국가들의 전 대통령들을 증오, 멸시하며 집시들에게 관용을 배풀었던 티토를 추앙하는 이들이 꽤 많다고 한다. 현재는 유고 연방이 내전으로 해체되면서 유고 연방 시절에 나름 누렸던 모든 위세와 재산들을 전쟁으로 다 잃고, 여타 동유럽 국가들의 집시인들처럼 범죄와 구걸 등에 노출되어 취약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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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의 부유층 집시
그래도 일부 집시들은 이를 악물고 노력해서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는 이들도 종종 보인다. 축구 선수로 성공한 집시들끼리 모여서 집시 축구 국가대표팀을 결성해서 NF-보드와 관련된 축구 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의 히카르두 콰레스마도 집시 출신인데 집시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이다.
이들은 대부분 유럽의 내로라 하는 나라의 2군에 해당되는 실력을 가진 선수들 위주라서, NF-보드에 소속된 팀 중에서는 꽤나 강팀에 속한다. FIFA 월드컵 유럽 예선을 뚫을 정도는 아니지만,
특히 루마니아의 '''부제스쿠'''라는 도시[23] 에 사는 집시들은 루마니아에서도 알아주는 부유층이다. 공산정권이 붕괴했을 때 상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수익을 거뒀는데, 워낙 돈이 많아 세금도 두둑히 내주다보니 루마니아 정부도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덕분에 으리으리한 집에서 금으로 도배된 온갖 사치품 속에서 살아간다. 관련 보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2012년 9월호에서도 이들을 다룬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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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그리스에서 집시 부부가 아동 "유괴"로 체포되었다. 이 까무잡잡한 집시 부부에게 금발 벽안을 가진 "백인" 소녀 마리아라는 딸이 있었던 것. 언론은 이 가엾은 소녀를 금발 천사(blonde angel)라고 부르며 진짜 혈육에 대해 조사했고, 아마도 북유럽계 부부 여행객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마리아의 실제 부모는 양부모처럼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집시로 드러났다. 심지어 이 부부의 슬하에는 마리아 외에도 백인처럼 보이는 자녀가 여럿 있었는데, 이에 대해 집시는 원래 인종이 많이 섞인 편이라 부부에게 일부 백인 피도 흐르고 있었다는, 즉 격세유전이라는 얘기가 있고 아니면 부친 쪽이 알비노 유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현재 마리아가 아동 인신매매로 넘겨졌는지에 대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모친 쪽은 "아이들을 기를 능력이 안 돼 마리아를 다른 이들에게 맡겼을 뿐, 돈은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마리아를 돌려받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어찌되었건 마리아는 유괴된 아이가 아니었고, 북유럽계가 아닌 집시 부부의 딸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로미 커뮤니티의 반발이 거세다. 집시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집시들은 피부가 모두 까무잡잡하다는 편견[24] 에서 일어난 사건. 사실 이런 케이스는 마리아뿐만이 아니라 여러 번 있다고 한다. 유대인이나 집시가 흔히 생각하기에는 철저한 순혈주의로 다른 인종과 전혀 통혼하지 않을거 같지만 그건 전혀 아니다.현지인과의 통혼이나 관계(...)등을 통해 현지인의 유전자도 많이 섞였고 격세유전으로 현지인처럼 생긴 사람이 꽤 나온다. 나치의 유럽 유대인 학살 과정에서도 '유대인스럽게' 생기지 않은 덕분에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상당히 많았다.
2015년에는 프랑스의 한 집시 여자아이가 생후 2개월 만에 사망하였지만, 부모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주지역 묘지 매장이 거부되어 논란이 되었다. # 공공 장례 시설 이용에 대한 패널티는 인종차별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융통성 없고 비인간적인 처사였다며 비난을 면치 못했다.
5.2. 서남아시아
이라크의 집시들은 아흐메드 하산 알 바크르, 사담 후세인 바트당 독재 정권 시기에 꽤 우대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제4차 중동전쟁과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에서 이라크군에 참전하여 이스라엘군, 이란군, 쿠웨이트군, 미국/서방 주도의 다국적군과 열심히 싸웠고 집이나 가게를 얻어 정착해 잘 살아가기도 했다. 이들이 무슬림이 아니라고 테러를 당하자 아예 군대를 보내 호위까지 해줄 정도라서 이라크 집시들은 사담 후세인을 강력하게 지지했고, 특수 공화국 수비대에 들어가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총력을 다하여 미군에 맞서 싸웠다. 미군이나 영국군, 다른 서방국가의 군대들도 집시들이 총에 맞아 죽어가면 자폭으로 같이 죽자고 할 정도로 아랍인 출신 이라크군 병사들 못지 않게 지독하게 싸웠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결국 후세인이 2006년 교수형으로 죽자 많은 집시들은 애도하며 슬퍼했다. 현재 이라크에선 살던 집에서도 내쫓기고 방황하면서 살아가거나 가까운 시리아나 요르단, 이란 같은 이라크 주변국들로 가서 난민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시리아에서도 독재자 부자였던 하페즈 알 아사드와 바샤르 알 아사드가 그럭저럭 잘 대우해준 편이긴 하지만, 거기서도 2011년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그래도 시리아 집시들도 이라크 집시들처럼 알 아사드 정권의 편을 들어주며 전쟁에서 시리아 정부군과 같이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나 시리아 반군, 터키군과 싸우기도 한다. 아사드도 자기 편들어주고 목숨바쳐 싸우는데 고마워하고 이들 가족들을 배려하고 국고금으로 돕기도 하면서 이들의 충성에 보답하기도 한다. 여하튼 자신들이 살던 이라크와 시리아가 커다란 혼란을 겪다보니, 이들 중에서는 친러시아, 반서방주의자가 많은 편이다.
터키에서도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집시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일부 몰지각한 여행객들이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고 대마초를 피워도 좀 봐주는 거와 달리, 집시들이 길거리에 공연하면 경찰들이 신고를 받고 나서서 무자비하게 팬다고 한다.
이란에도 집시가 있다. 현재 약 100,000–110,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 중.
5.3. 아프리카
이집트에서는 왕정 시절까지만 해도 자국민의 일원으로 대접 받았으나 왕정이 쿠데타로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던 1950년대에 집시들에 대한 마구잡이 구타를 비롯하여 재산몰수, 추방까지 일어나면서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일례로 그룹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일원이었던 그리스의 유명 가수 데미스 루소스도 이집트에서 태어난 집시 출신인데, 아버지는 집시이면서도 열심히 일해 상당히 잘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군사 쿠데타 이후에 들어선 나세르 정권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추방당해 방황 끝에 그리스로 왔고 그는 그리스에서도 차별을 받았지만 열심히 일하고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가수로 대박을 거두었다.
5.4. 아메리카
미국이나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같은 아메리카 국가들에서도 개국 이후에 아메리카의 각 나라들이 펼친 이민정책으로 유럽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일때 유럽에서 살던 집시들이 대거 이주해서 집시들이 많이 살고 있다. 준비만 되있으면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가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한다. 일례로 라틴아메리카 나라의 집시들 역시 유럽에서처럼 유랑생활을 유지하며 중고차, 고물상, 미술품 거래, 점성술 등으로 생활하곤 하나 어차피 이들 나라에서는 빈부격차가 위낙에 커서 그 정도면 나쁘게 먹고사는 축은 아닌지라 경제적으로 그리 괄시를 받는것은 아니다. 당장 대도시 빈민가에 가보기만 해도 집시을 걱정하는것이 한가해보일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차별이 아예 없는것은 아니고 브라질에서 집시들이 종종 편견으로 차별받을때도 있기는 한데 집시의 수가 많은게 아닌데다가 현실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치안이 집시 유랑단보다 눈앞의 마피아 졸개나 부패경찰관이 백배, 천배는 더 걱정되고 무서울정도로 개판이기도 하고 흑인이나 원주민과의 갈등이 훨씬 더 큰 문제점이다보니 묻혀지는 감은 있다.
그리고 특히 미국의 집시 같은 경우는 이민을 온 뒤에 집시 특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그냥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려는 평범한 동유럽계 이민자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에서 제대로 된 집시 정착촌은 없는데, 대다수의 집시계 미국인들은 이민 직후에는 자신들이 살던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과 동화되어 살았다고 한다. 따라서 미국에 이주한 집시들의 후손들 중에 자신이 집시의 후손임을 아는 사람도 극소수이며, 당연히 스스로 집시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더 적다.
6. 집시 문제
체코나 슬로바키아에서는 집시들에게 공동주택을 무료로 제공하고 사회에 정착시키려 노력했지만, 정작 집시들은 공동주택을 받자마자 여름엔 집 안에 있는 난방기, 창문, 변기 등 돈이 되는 모든 걸 다 팔아먹고 겨울엔 '''"우리 집에 난방기도 없다! 이 인종차별주의자 체코놈들아!"''' 하고 소리 지르면서 시위하는 어이 없는 일들이 잊을만하면 발생하고 있다.
체코 쪽에서는 분명 무료로 준 공동주택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자 더 이상 지원을 안 했고, 이 집시들은 단체로 캐나다로 이주하기로 결정, 캐나다로 이주했고 체코 정부에선 공동주택을 다시 수선하여 체코인들에게 팔았다.
그리고 몇 년 후. 캐나다에 간 집시들이 단체로 "캐나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라고 외치면서 다시 체코로 돌아왔고, 그들은 다시 체코 정부에게 집 내놔라 뭐 내놔라 외쳤다. 캐나다 정부에서는 집시로 인해 피해를 봤다면서 그 이후 체코인들의 입국 심사를 매우 까다롭게 하기 시작했고, 결국 체코 정부는 집시들에게 또 무료로 주택을 주었다. 하지만 극우단체를 비롯하여 여론의 질타를 호되게 받아서, 걸핏하면 무상 주택을 압수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체코 모스트 시의 루돌리체에 있는 Chánov라는 동네가 그곳인데, 근처 마을의 이름을 따왔다. 1970년대 공산치하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많이 지었던 아파트촌[25] 으로 현재 인구는 1,500명에서 2,000명 정도 세금을 안 내서 전기고 수도고 다 끊어졌는데 어떻게 불법적으로 끌어다 쓰고 있다고 한다. 치안도 당연히 엉망이고 현재 집시 게토 + 범죄의 온상인 동네이다.[26]
유럽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집시를 마주치는 경우가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자주''' 있다. 마주치는 목적은 보통 구걸이다. 때론 행상을 하거나 노점을 하는 집시도 보이긴 하지만, 이들에 대해서도 집시라고 구타와 차별이 벌어져서 포기하고 구걸로 나서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차별을 이겨내고 사업이나 일을 하는 경우는 극소수인데, 대다수의 집시들 때문에 바른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갈려는 집시들까지 싸잡아 멸시당한다.
떠돌이 집시들 중에는 간혹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디서 개를 구해와서 키우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는 처지라 제 몸도 제대로 못 씻는 사람들이 개를 정성껏 목욕시킬 리는 당연히 없다. 그래서 집시들이 키우는 개는 때가 꼬질꼬질하게 껴서 흰 개도 시커먼 개가 돼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 개와 함께 있는 노숙자들은 쫓아낼 수 없다.
영국에도 집시들이 많다. 그리고 당연하게 모든 욕이란 욕은 다 듣고 살며, 정말 꾸준히 그 욕에 걸맞은 활약을 하며 산다. 가령 임대한 집에서 본인 명의로 들어온 세금도 안 내고, 그 집에 있던 모든 가구들, 심지어 욕조까지 다 팔아먹은 다음에 뻔뻔하게 보증금 안 준다고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집시 부모들은 자식을 이끌고 자식을 미끼로 자식이 굶고 있다고 구걸을 한다. 종일 구걸해야 하므로 학교 따윈 가지 않는다. 그렇게 구걸로 성장한 자식들은 마땅히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구걸은 대물림되는 것이다. 그러나 체코와 슬로바키아 등지에서 집시 어린이의 학업은 차별되어 왔고 이들 국가에서 정신발달과 지능발달에 문제가 있는 아이를 위한 학교에 정상적인 집시어린이가 유의미한 비율로 입학당한다. 다만, 체코의 주류 정책은 집시아이를 위한 교육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 집시어로 집시 어린이를 가르치는 학급을 운영하기도 한다.
게다가 사지멀쩡한 남자들은 당연히 구걸을 해봐도 소득이 없어 도둑질이나 일삼게 되고, 이런 대다수의 집시 덕분에 정말로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집시까지 도매금으로 차별받게 된다. 집시라는 이유로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은 일조차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현실에 절망하고 그냥 다른 집시처럼 도둑질이나 하며 살게 되는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집시 출신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많은 무슬림들이 구걸하는 집시들에게 돈을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슬림들은 자선의 의무가 있기에 돈을 준다. 특히 라마단 때에는 금식과 더불어 자선 또한 더 행해진다. 현지인들은 눈도 깜짝 안 하고 지나간다.
이탈리아 같은 경우는 소매치기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시들이라고 한다. 이태리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빈집털이는 기본이고 집시가 당한 구타에 대한 보복으로 해당인과 주변 인물들의 집에 방화를 저지른다고 한다. 여행객들을 노려서 강도, 인신매매, 약물 유통도 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유랑 마피아 수준. 물론 진짜배기 마피아들하고도 사이가 별로 안 좋다. 나폴리의 빈민가는 마피아와 집시 갱단들의 전쟁터나 다름없다고.
과거 공산정권이 들어섰던 동유럽 쪽에서는 강제적으로라도 집시를 노동에 투입하게 하고 정주생활을 강요했었는데[27] 체제전환 이후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하다보니까 저 집시들 때문에 취직 안된다고 애꿏게도 손가락질 받았다는 사연도 많다.
위에 나온 루마니아 부제스쿠에 사는 집시들처럼 재물을 모은 집시들은 루마니아 정부도 무시 못하지만 돈 많은 집시라도 이라크와 시리아, 구 유고 연방 출신 국가들의 사례처럼 전쟁이나 내전으로 몰락하는 경우도 있다.
7. 집시 출신의 유명인
- 나지프 무지치: 제63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배우. 그러나 2018년에 생활고로 인한 건강 악화로 사망했다. 당시 자식들에게 3일 동안 밥을 먹이지 못해서 베를린 영화제에서 받은 트로피를 단돈 530만 원에 팔아 쓸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 조르주 치프라: 헝가리의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이자 리스트 스페셜리스트. 집시 혈통으로, 집시 풍의 <루마니아 환상곡(La fantaisie Roumaine)>을 작곡하기도 했다.
- 데미스 루소스: 그리스의 유명 가수. 부모가 집시 출신이다.
- 아지스: 불가리아의 가수.
- 율 브리너: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어머니가 집시라고 한다.
- 찰리 채플린: 집시와 영국인의 혼혈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찰리 채플린이 집시마을에서 태어났다는 내용의 편지가 찰리 채플린의 유품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 장고 라인하르트: 벨기에 태생의 기타리스트, 어릴적부터 집시 무리와 함께 유랑하면서 그들의 음악의 영향을 받아 집시재즈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유럽 재즈뮤지션들에게 있어서는 전설과도 같은 존재.
- 토니 갓리프: 알제리 태생 프랑스계 집시 영화 감독. 카바일계 아버지와 집시계 어머니를 두었다. 때문에 북아프리카 집시 문화에 대한 영화들이 많다. 대표작으로는 추방당한 사람들이 있다.
- 타이슨 퓨리: 퓨리는 아일랜드 집시의 후손이며 별명은 "집시킹" 이라 불린다. 하지만 현재 헤비급에서 꽤 강력한 복서중 한 명으로 그 별명은 허세가 아니다. 집안이 복싱에 유서 깊은듯 그의 할아버지도 집시 출신 베어너클 복서였고 그의 사촌인 휴이퓨리도 헤비급 복서로 활동중이다.
- 셰어 로이드: 영국의 가수.부모님이 집시 출신이며 어렸을때 유랑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 밥 호스킨스: 영국의 명배우. 영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로 유명하다.할머니가 집시였다고 한다.
8. 집시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들
- BLOOD+ - 하지(BLOOD+), 공식 설정에서 로마니족이라 확정. 작중에서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다"라는 대사로 언급된다.
-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28]
- 프란츠 슈베르트의 가곡 미뇽의 노래
- 불의 단서[29]
-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30]
- 빅토르 위고의 노틀담의 꼽추와 그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
- 어쌔신 크리드 : 레벨레이션[31]
- 트리니티 블러드의 등장인물 카야 쇼카
- 황금나침반
- 강철의 연금술사:샴발라를 정복하는 자
- 名犬ジョリィ(국내에서의 이름: 용감한 죨리-1981년 MBC)[32]
- 마더 러시아 블리즈
- 마비노기의 아브네아 호수의 집시캠프
- 마블 코믹스의 빌런 닥터 둠과 그가 국왕으로 있는 라트베리아 국민 대다수
- 사이퍼즈의 등장인물 악몽의 티샤
- 소설 연금술사에서 주인공 산티아고의 꿈을 해몽해주는 집시
- 소설 쥐(만화)에서 잠깐이지만 아냐 슈피겔만이 집시 주술사를 만나는데, 나방으로 묘사된다.
- 소설 포르토벨로의 마녀에서 주인공 아테나의 생모
- 울티마 시리즈에서 현실-브리티니아를 떠도는 집시 무리들. 메인 퀘스트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고 집시의 왕인 졸탄은 마법재료 상인이기도 하다. 특히 인트로에서 볼 수 있는 현실 집시 여인은 캐릭터 작성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도와주고 9에선 시작부터 엔딩에서 써야할 마법을 스포일러해준다.
- 코드 기어스 망국의 아키토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햄록그로브의 피터로만식
- 카우보이 비밥의 페이 발렌타인은 첫 등장에서 스파이크와 제트에게 자신을 집시라고 소개한다. 물론 개구라.
-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1989년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집시의 시간
- 피키 블라인더스의 셸비 가문
- 나탈리 새비지 칼슨의 떠돌이 할아버지와 집 없는 아이들 속 미렐리와 니키, 그리고 팅카를 비롯한 집시 아이들
9. 같이보기
[1] 다만 롬인은 서유럽에선 지역마다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프랑스에서는 마누시, 이베리아와 핀란드에서는 칼레 등 여러가지로 불린다. 물론 모두 롬족과 동일한 민족이다.[2] 인도 국기와 유사한데, 자신들이 인도에서 건너온 민족이라는 중의적 의미도 있다.[3] 현대 그리스어 기준으로 '이프티[ˈʝi.fti\]'로 발음한다.[4] '치간(Tzigane)'은 특히 게르만어파와 슬라브어파에서 집시인을 가리킬 때 더 자주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치고이너바이젠(Zigeunerweisen)>의 치고이너(Zigeuner)나 러시아어권의 성씨인 치가노프(Цыганов, Tsyganov)를 들 수 있다.[5] 남성형은 롬(Rom), 여성형은 롬니(Romni), 복수형은 로마(Roma), 그리고 여성 형용사형이 로마니(Romani)이다. 롬어의 R는 구개수음인 [ʀ\]로도 실현되기 때문에 Rrom, Rroma, Rromani로 표기하기도 한다.[6] 이집트 명배우 오마 샤리프가 주연한 <The Horsemen>(1971)이라는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의 집시를 다루고 있다.[7] 현대 독일인과는 사촌뻘되는 민족이라고 추정된다.[8] 다만 대체적으로 독일인과 가까울것으로 추정은 되고있다. 언어도 독일어와 가깝기도 하고.[9] 즉, 이들은 아일랜드인과 같은 민족이다.[10] 미국의 카우보이들도 가만히 생각하면, 흉년으로 농사를 망쳤거나, 가축을 키울 목초지를 자연재해 등으로 잃어서 미국 서부로 이주하여 유랑민 생활을 하게 된 경우다. 달리 베두인이라고 불리는 아랍인 유목민 집단도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화로 인해, 농지를 잃고 몰락한 고대 아랍인 농민들이 농업을 포기하고 유목민이 되었다가 현대까지 계속 이 생활을 유지하게 된 케이스다.[11]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들은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고대 인도인의 후손이다.[12] 유럽권 집시들은 기독교를 믿고, 중동권 집시들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인도 집시들은 힌두교를 믿는 경우가 많다.[13] 타로카드부터가 집시 여자 점술사가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14] 이때 에스메랄다와 바꿔치기된 진짜 집시 출신의 아이는 다름아닌 콰지모도.[15] 점성술이라든지.[16] 미국 국적의 브래드 피트가 싱크로율 100%인 아일랜드계 집시 연기를 선사했고 모두의 극찬을 받았다.[17] 이 나라들조차도 집시들이 일으키는 범죄 등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루마니아 못지 않게 겪고 있기 때문이다.[18] 공교육 거부, 사적 제재, 10대 조혼 등.[19] 다만 이러한 노동인구 유출로 동유럽의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격차가 많이 축소되었기는 했다.[20] 티토는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이었을 적에 남슬라브인 계열인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같은 구 유고 연방에 속해있는 유고 연방의 구성 공화국들뿐만 아니라 슬라브계 민족이 아닌 코소보의 알바니아인이나 보이보디나의 헝가리인들에게도 자치권을 부여하고 이들의 언어 사용과 문화 보존을 허용하는 등 다양한 민족우대 정책을 견지했다. 다만 세르비아계를 은근 홀대하는 경향이 있어서 유고내전 때 이게 발단이 되기도 했다.[21] 코소보 전쟁 당시 NATO군의 공습과 알바니아계 주도의 코소보 해방군과 세르비아 주축의 신유고 연방군과의 충돌이 있었지만, 90년대 초 중반 크로아티아 전쟁과 보스니아 전쟁 당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 비하면 전쟁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22]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출생민족이 집시가 아닌 세르비아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23] 알렉산드리아 서부에 있는 조그만 소도시이다. 알렉산드리아 자체도 인구 5만 정도에 불과한 수준인데, 부제스쿠는 더 적어서 알렉산드리아 인구의 1/10 정도의 수준.[24] 앞서 언급되었듯 집시는 애초에 코카소이드인 데다가 유럽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유럽계 주민들의 피도 섞였기 때문에 금발 벽안도 충분히 가능하며, 이 사건에 대해 자기 자식들도 피부가 희니까 아동 유괴범 취급할 것이냐며 비아냥거리는 로미들도 있다.[25] 말이 좋아서 아파트지 시멘트 벽돌을 조립하듯 지은 허접한 주거지다.[26] 이런 상황인데도 체코는 유럽 중에서도 그나마 집시의 정착화와 동화에 성공한 국가 중 하나이다. 집시를 정착화 하려고 시도한 국가 자체가 얼마 없는데 체코에 거주하는 집시 1/3은 체코인과 평범하게 어울려 살며, 전통적인 생활을 고수하는 비율도 비교적 낮은 편인데 역사적으로 체코의 집시들의 정착 비중은 높은 편이였다.http://www.korean.go.kr/nkview/nklife/2014_3/24_0309.pdf[27] 이런 탄압에도 유랑생활을 이어나가던 집시들도 있었다.[28] 이 소설을 조르주 비제가 오페라화한다.[29] 모바일 추리 게임이다.[30] 만리코의 엄마 아주체나가 집시이다.[31] 집시들이 주인공 에지오를 돕는 NPC로 나온다.[32] 이 작품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피레네 산맥에서 할아버지와 살던 주인공 세바스찬이 버림 받은 개 죨리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서 여행을 하는 스토리인데, 이 어머니가 유랑극단에서 공연을 하는 집시이다. 주인공도 집시인지는 확인 안 됨. 또한 이들이 여행하는 도중, 어느 집시 마을을 들르게 되는데, 이들은 경찰들에게서 우물에 독을 넣는 사람들이라며 탄압을 받고 있었다. 이 경찰들 중에 집시에게서 전향한 사람이 있고, 마을 사람들에게서는 배신자라며 배척을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