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군(1521)

 



'''영양군파의 역대 종주'''
영양군가 역사 시작

'''1대 영양군 이거'''

2대 흥녕군 이수전
'''조선 중종의 왕자'''
'''영양군
永陽君'''

'''군호'''
영양군(永陽君)[1]
'''시호'''
성도(成悼)
'''본관'''
전주(全州)
'''이름'''
거(岠)
''''''
탁보(卓甫)
'''부왕'''
조선 중종
'''생모'''
창빈 안씨(昌嬪 安氏)
'''부인'''
경양군부인 안방향(安芳香)
'''자녀'''
1남[2]
'''묘소'''
경기도 장단군 장도면 사시리
'''생몰
기간
'''
'''음력'''
1521년 4월 24일 ~ 1561년 7월 27일
'''양력'''
1521년 5월 29일 ~ 1561년 9월 6일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가족과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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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중종의 서4남으로 어머니 창빈 안씨에겐 장남이다. 전주이씨 영양군파의 파시조이다.
친남매로는 여동생 정신옹주와 남동생 덕흥대원군이 있다.

2. 생애


자세한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중종실록》에는 이복 누나 의혜공주와 함께 집을 화려하게 꾸몄으며 이에 비판받은 적이 있다는 기록이 나와있다.##
평소의 성품은 온화하고 겸손했다한다.
1561년(명종 16년) 1월 4일[3] 향년 4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4] 는 어머니 창빈 안씨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현 북면 동작리, 지금의 국립서울현충원 자리에 묻혔다가 1581년(선조 14년) 2월 26일 경기도 장단군 장도면 사시리로 이장했다.

3. 여담


  • 명종실록》의 이 기사에서는, 순회세자세자빈으로 황대임의 딸이 간택된 이유를, 황대임의 처형인 영양군의 아내가 윤원형의 첩 정난정과 서로 친했기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여담으로 황대임의 딸은 가례를 앞두고 맹장염으로 추정되는 심한 복통을 호소하였고 이에 1년이나 가례가 미뤄지자 세자의 후궁인 양제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자빈으로 윤옥의 딸 공회빈 윤씨가 간택되었 다.

4. 가족과 후손


판관 안세형의 딸인 경양군부인 안방향과 혼인했다. 그러나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성종의 서12남 무산군의 손자이자 부안도정의 아들인 흥녕부정을 양자로 삼았다. 흥녕부정은 흥녕군으로 승격되었다.
흥녕군은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적장남은 풍해군 이잠이고 둘째인 서자는 풍릉수 이혼이다. 풍해군은 7남을, 풍릉수는 2남을 낳았고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영양군파를 이루고 있다.
[1] 군호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별호인 영양(永陽)에서 유래했다.[2] 후술하겠지만 1남은 양자이다.[3] 음력 1561년 7월 27일.[4] 세는나이 4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