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회
日本プロ野球名球会 / Golden Players Club
전/현직 일본프로야구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 법인 단체.
‘사회의 풍족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환원과 일본 프로 야구계의 저변 확대를 위해 기여한다’라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국내외의 유소년 야구 교실이나 야구의 보급 촉진 및 사회 공헌, 강연과 자원 봉사 활동 등을 한다.
KBO 리그에도 이를 본뜬 단체가 있다.
1978년 7월 24일에 임의 단체로서 발족됐다. 발족 당시의 회원은 18명이었는데 투수는 이나오 가즈히사, 가지모토 타카오, 가네다 마사이치, 고야마 마사아키, 스즈키 케이시, 미나가와 무츠오, 무라야마 미노루, 요네다 데쓰야였고 야수는 에토 신이치, 에노모토 키하치, 오 사다하루, 다카기 모리미치, 도이 마사히로, 나가시마 시게오, 노무라 카츠야, 장훈, 히로세 요시노리, 야마우치 가즈히로 등이었다. 그 후 1981년 9월 8일, 세법상의 이유로 주식회사로서 법인화하여 ‘주식회사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株式会社日本プロ野球名球会)로 개편됐다. 대표이사는 가네다 마사이치, 이사는 오 사다하루, 나가시마 시게오 가 있다.
2010년 10월 15일에는 일반 사단법인으로서 현재의 조직을 설립하고 인사가 개편되었는데, 이사장은 오 사다하루, 부이사장은 시바타 이사오, 이사는 스즈키 게이시, 나가시마 시게오, 히가시오 오사무, 야마다 히사시, 야마모토 고지가 선임되었다. 주식회사로서 명구회 법인은 2011년 2월 12일 주주총회에서 해체되었다.
참고로 그 전해인 2009년 가네다 마사이치가 명구회를 떠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가네다의 독재 경영, 금전관계의 불분명함" 에 불만을 품은 몇몇 회원들의 쿠데타'''로 인한 것이라는 기사가 나와 논란이 된 바 있다. 가네다가 물러난 이후 이 후 명구회 사무소가 가네다가 경영하던 회사 내부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한 것을 보면 주작은 아닌 듯..
자격 조건은 다음과 같다. NPB 및 MLB에서 세운 기록만 인정한다. 또한 통산 기록의 시작점은 '''NPB'''여야 한다. 그렇기에 NPB에서 몇 경기만 뛴 후 MLB로 간 후에야 실력이 대성하여 2천안타를 기록한 알폰소 소리아노에게도 가입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며 MLB에서 백업으로 뛴 후에 NPB로 온 알렉스 라미레스의 미국 시절 기록은 명구회의 통산기록에 적용하지 않는다. 참고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레전드 외국인 선수 워렌 크로마티도 미일통산 2천안타를 달성했지만 기록 시작점을 NPB에 데뷔한 후로 따지면 1천안타만 넘기는 수준이라 가입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른 미일통산 2천안타를 달성했지만 NPB 데뷔 시점부터의 기록은 2천안타에 미달하는 외국인 선수들도 마찬가지.
여기에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
다만 타자부문에서는 그래도 꾸준하게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한 멤버가 배출되는 데에 비해 투수부문에서는 현대야구에서 투승타타가 유명무실화되고 투수의 분업화와 6인 로테이션이 정착이 되면서 선발투수의 한 시즌 등판회수가 30경기 미만에 머무는 현 상황에서 명구회 멤버의 명맥이 끊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대두하고 있다. 사와무라상을 3번이나 수상한 사이토 마사키나 쿠와타 마스미 등의 명투수는 물론이고 실력에 비해 팀을 잘못만나 승운이 없었던 미우라 다이스케, 보직전환으로 통산 승수와 세이브에서 훌륭한 숫자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쪽도 가입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우에하라 코지 등의 투수들이 명구회 가입에 실패했다. NPB 현역 최다승인 이시카와 마사노리, MLB 합산 통산 170승대인 이와쿠마 히사시나 마쓰자카 다이스케도 명구회 가입요건을 충족하려면 30승 가까이 남았는데 이미 40대를 바라보는 연령 상 달성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뒤를 잇는 그룹은 NPB 국내파는 최고가 통산 130승대에 머물러 있는데 이미 대부분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이고, MLB 진출파도 다나카 마사히로와 다르빗슈 유 그리고 마에다 겐타 가 통산 150~160승 대이다. 다르빗슈 유도 잦은 부상과 부진으로 과연 남은 50승을 채울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라 선발투수 중 그나마 매년 10승 이상은 꾸역꾸역 해주는 다나카 마사히로가 2020년 종료시점에서 미일 통산 177승으로 투수 부문에서는 차기 명구회 회원으로 가장 유력한 상황이다. 구원투수 부문에서는 후지카와 큐지가 2020년 종료시점에서 통산 245세이브로 2020년 명구회 가입은 실패했다. 그러나 구원투수 부문에서도 그 다음을 이을 유력한 주자가 2020년 시즌 프로 6년차인 야마사키 야스아키인데 야마사키가 명구회에 가입하려면 아직 80세이브가 넘게 남았다. 지금까지의 기세대로라면 3년안에 달성이 가능하나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이 언제 갑자기 부상으로 훅 갈지도 모르고 한번 훅 가면 5년동안 10세이브 올리기도 힘든데다[2] 지금까지의 활약이 유지가 된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눈독을 들일 가능성도 높기에 속단은 금물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투수부문에서 현대야구의 트렌드에 맞춰 가입요건을 완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2020시즌 종료 기준으로 이 가운데 현역으로 활동하는 선수는 후쿠도메 코스케, 아오키 노리치카, 우치카와 세이이치, 토리타니 타카시,사카모토 하야토 총 5명으로 모두 타자이다. 2019년 시즌을 끝으로 후쿠우라 카즈야와 아베 신노스케는 은퇴하며, 한신에서 방출당하고 시범경기 개막까지 팀을 못 구해서 은퇴가 기정사실화되었던 토리타니 타카시는 시범경기가 한창 진행중이던 3월에 간신히 롯데에 입단해 현역을 연장한 상태. 가장 최근에 명구회에 가입한 회원은 사카모토 하야토, 최연소 회원은 아오키 노리치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우치카와 세이이치는 2018년 5월 9일 2000안타를 달성했다. 그리고 1962안타를 기록한 치바 롯데 마린즈의 후쿠우라 카즈야도 팀 순위가 곤두박질한 시즌 후반에 꿋꿋이 묻지마 기용이 되면서 2018년 9월 22일 드디어 2000안타를 달성했다.[3] 또한 무라타 슈이치도 145안타를 남겨놓았으나 2017년 시즌 후 방출된 이후 팀을 찾지 못하고 독립리그에서 뛰었다 은퇴했다. 2020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유격수 사카모토 하야토는 2020년 11월 8일 2000안타를 달성했다.
투수로는 가입까지 9세이브를 남겨 놓은 후지카와 큐지, 16세이브를 남겨 놓은 데니스 사파테, 선발로 30승을 남겨놓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와쿠마 히사시가~~ 다음 가입자로 전망되었으나 2020년 시즌을 끝으로 모두 은퇴를 선언하며 NPB에서는 가입 후보자들이 모두 나가떨어졌고, MLB에서도 미칠듯한 승을 쌓고 있는 다나카 마사히로와 다르빗슈 유, 마에다 켄타 정도가 그 다음 가입자로 예상된다.
복수의 구단에 소속된 선수의 소속팀 중에서 굵은 글씨로 표시된 것은 해당 선수의 대표적 소속팀으로 해당 선수를 프랜차이즈로 간주하는 구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복수의 구단이 굵은 글씨로 표시된 선수는 해당 선수가 각 팀에서 남긴 족적이 너무도 뚜렷해서 어느 한 팀을 대표 소속구단으로 정하기 어려우며 각 구단이 해당 선수를 자신들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 간주하는 구단인 경우이다.
의외로 요미우리 원클럽맨이 한 명도 없고, 원클럽맨은 고사하고 발이라도 담궈본 적이 있는 투수도 한 명 뿐인데, 사실 이유가 있다.
일단 요미우리 원클럽 맨 중에서 명구회 가입 자격을 충족하는 선수는 딱 한 명 있다. 바로 왕년의 에이스 호리우치 츠네오.[4] 원래 명구회 회원이었으나 명구회가 주식회사에서 사단법인으로 개편된 이후에 명구회를 탈퇴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유는 아무래도 가네다 마사이치의 퇴임인 듯.
그 외에도 닛폰햄 파이터즈는 '''아예 200승 투수 자체가 나온 적이 없다(...)''' 구단 최다승이 전신인 '''토에이 플라이어즈'''의 도바시 마사유키의 165승이니(...)
이외에도 명구회 달성조건 만족 인물로 오치아이 히로미츠, 에노모토 키하치, 야자와 켄이치, 알폰소 소리아노(!)[11] 가 있으나, 오치아이는 가네다 마사이치와 겪은 불화 등을 이유로 가입하지 않았고, 에노모토와 야자와는 가입을 했으나 에노모토는 명구회 활동을 하지 않아 사실상 탈퇴나 마찬가지였으며 야자와는 호리우치처럼 가네다 퇴임 이후 자신도 명구회를 탈퇴한 사례다. 알폰소는 그냥 본인이 가입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진출한 선수로는 그나마 백인천이 1800안타 이상을 때려서 가능성이 높았지만 1982년 국내로 유턴하며 실패했고, 일본야구에서 백인천 이상 장기적으로 성공한 한국인 타자는 없다.[12] 투수는 세이브로 임창용이 128세이브를 넘겨 가입 조건의 절반을 넘겼지만 한국 귀국 후 은퇴, 오승환 역시 일본 이후 기록이 인정되는 메이저리그로 진출해서 기록이 진행되었고 가입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지만 결국 한국으로 복귀했다.
1. 개요
전/현직 일본프로야구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 법인 단체.
‘사회의 풍족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환원과 일본 프로 야구계의 저변 확대를 위해 기여한다’라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국내외의 유소년 야구 교실이나 야구의 보급 촉진 및 사회 공헌, 강연과 자원 봉사 활동 등을 한다.
KBO 리그에도 이를 본뜬 단체가 있다.
2. 역사
1978년 7월 24일에 임의 단체로서 발족됐다. 발족 당시의 회원은 18명이었는데 투수는 이나오 가즈히사, 가지모토 타카오, 가네다 마사이치, 고야마 마사아키, 스즈키 케이시, 미나가와 무츠오, 무라야마 미노루, 요네다 데쓰야였고 야수는 에토 신이치, 에노모토 키하치, 오 사다하루, 다카기 모리미치, 도이 마사히로, 나가시마 시게오, 노무라 카츠야, 장훈, 히로세 요시노리, 야마우치 가즈히로 등이었다. 그 후 1981년 9월 8일, 세법상의 이유로 주식회사로서 법인화하여 ‘주식회사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株式会社日本プロ野球名球会)로 개편됐다. 대표이사는 가네다 마사이치, 이사는 오 사다하루, 나가시마 시게오 가 있다.
2010년 10월 15일에는 일반 사단법인으로서 현재의 조직을 설립하고 인사가 개편되었는데, 이사장은 오 사다하루, 부이사장은 시바타 이사오, 이사는 스즈키 게이시, 나가시마 시게오, 히가시오 오사무, 야마다 히사시, 야마모토 고지가 선임되었다. 주식회사로서 명구회 법인은 2011년 2월 12일 주주총회에서 해체되었다.
참고로 그 전해인 2009년 가네다 마사이치가 명구회를 떠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가네다의 독재 경영, 금전관계의 불분명함" 에 불만을 품은 몇몇 회원들의 쿠데타'''로 인한 것이라는 기사가 나와 논란이 된 바 있다. 가네다가 물러난 이후 이 후 명구회 사무소가 가네다가 경영하던 회사 내부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한 것을 보면 주작은 아닌 듯..
3. 조건
자격 조건은 다음과 같다. NPB 및 MLB에서 세운 기록만 인정한다. 또한 통산 기록의 시작점은 '''NPB'''여야 한다. 그렇기에 NPB에서 몇 경기만 뛴 후 MLB로 간 후에야 실력이 대성하여 2천안타를 기록한 알폰소 소리아노에게도 가입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며 MLB에서 백업으로 뛴 후에 NPB로 온 알렉스 라미레스의 미국 시절 기록은 명구회의 통산기록에 적용하지 않는다. 참고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레전드 외국인 선수 워렌 크로마티도 미일통산 2천안타를 달성했지만 기록 시작점을 NPB에 데뷔한 후로 따지면 1천안타만 넘기는 수준이라 가입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른 미일통산 2천안타를 달성했지만 NPB 데뷔 시점부터의 기록은 2천안타에 미달하는 외국인 선수들도 마찬가지.
여기에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
이 때문에 기록상으로는 명구회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빅토르 스타르핀, 카와카미 테츠하루 등 왕년의 명선수들은 명구회 자격이 되지 않아서 명구회 회원이 아니다. 명구회 자격요건을 쇼와 이후 출생으로 국한한 까닭은 명구회 결성을 주도한 가네다 마사이치가 당시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다이쇼 출생의 선배들의 입김을 배제하고 명구회의 주도권을 자신이 가지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1] 쇼와 명구회라고 하지만, 향후 헤이세이 출생의 회원이 생겨도 그냥 받아줄 듯.'''쇼와 이후 (= 1926년 12월 25일 이후) 출생한 선수에 국한'''
다만 타자부문에서는 그래도 꾸준하게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한 멤버가 배출되는 데에 비해 투수부문에서는 현대야구에서 투승타타가 유명무실화되고 투수의 분업화와 6인 로테이션이 정착이 되면서 선발투수의 한 시즌 등판회수가 30경기 미만에 머무는 현 상황에서 명구회 멤버의 명맥이 끊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대두하고 있다. 사와무라상을 3번이나 수상한 사이토 마사키나 쿠와타 마스미 등의 명투수는 물론이고 실력에 비해 팀을 잘못만나 승운이 없었던 미우라 다이스케, 보직전환으로 통산 승수와 세이브에서 훌륭한 숫자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쪽도 가입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우에하라 코지 등의 투수들이 명구회 가입에 실패했다. NPB 현역 최다승인 이시카와 마사노리, MLB 합산 통산 170승대인 이와쿠마 히사시나 마쓰자카 다이스케도 명구회 가입요건을 충족하려면 30승 가까이 남았는데 이미 40대를 바라보는 연령 상 달성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뒤를 잇는 그룹은 NPB 국내파는 최고가 통산 130승대에 머물러 있는데 이미 대부분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이고, MLB 진출파도 다나카 마사히로와 다르빗슈 유 그리고 마에다 겐타 가 통산 150~160승 대이다. 다르빗슈 유도 잦은 부상과 부진으로 과연 남은 50승을 채울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라 선발투수 중 그나마 매년 10승 이상은 꾸역꾸역 해주는 다나카 마사히로가 2020년 종료시점에서 미일 통산 177승으로 투수 부문에서는 차기 명구회 회원으로 가장 유력한 상황이다. 구원투수 부문에서는 후지카와 큐지가 2020년 종료시점에서 통산 245세이브로 2020년 명구회 가입은 실패했다. 그러나 구원투수 부문에서도 그 다음을 이을 유력한 주자가 2020년 시즌 프로 6년차인 야마사키 야스아키인데 야마사키가 명구회에 가입하려면 아직 80세이브가 넘게 남았다. 지금까지의 기세대로라면 3년안에 달성이 가능하나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이 언제 갑자기 부상으로 훅 갈지도 모르고 한번 훅 가면 5년동안 10세이브 올리기도 힘든데다[2] 지금까지의 활약이 유지가 된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눈독을 들일 가능성도 높기에 속단은 금물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투수부문에서 현대야구의 트렌드에 맞춰 가입요건을 완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4. 회원
2020시즌 종료 기준으로 이 가운데 현역으로 활동하는 선수는 후쿠도메 코스케, 아오키 노리치카, 우치카와 세이이치, 토리타니 타카시,사카모토 하야토 총 5명으로 모두 타자이다. 2019년 시즌을 끝으로 후쿠우라 카즈야와 아베 신노스케는 은퇴하며, 한신에서 방출당하고 시범경기 개막까지 팀을 못 구해서 은퇴가 기정사실화되었던 토리타니 타카시는 시범경기가 한창 진행중이던 3월에 간신히 롯데에 입단해 현역을 연장한 상태. 가장 최근에 명구회에 가입한 회원은 사카모토 하야토, 최연소 회원은 아오키 노리치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우치카와 세이이치는 2018년 5월 9일 2000안타를 달성했다. 그리고 1962안타를 기록한 치바 롯데 마린즈의 후쿠우라 카즈야도 팀 순위가 곤두박질한 시즌 후반에 꿋꿋이 묻지마 기용이 되면서 2018년 9월 22일 드디어 2000안타를 달성했다.[3] 또한 무라타 슈이치도 145안타를 남겨놓았으나 2017년 시즌 후 방출된 이후 팀을 찾지 못하고 독립리그에서 뛰었다 은퇴했다. 2020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유격수 사카모토 하야토는 2020년 11월 8일 2000안타를 달성했다.
투수로는 가입까지 9세이브를 남겨 놓은 후지카와 큐지, 16세이브를 남겨 놓은 데니스 사파테, 선발로 30승을 남겨놓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와쿠마 히사시가~~ 다음 가입자로 전망되었으나 2020년 시즌을 끝으로 모두 은퇴를 선언하며 NPB에서는 가입 후보자들이 모두 나가떨어졌고, MLB에서도 미칠듯한 승을 쌓고 있는 다나카 마사히로와 다르빗슈 유, 마에다 켄타 정도가 그 다음 가입자로 예상된다.
복수의 구단에 소속된 선수의 소속팀 중에서 굵은 글씨로 표시된 것은 해당 선수의 대표적 소속팀으로 해당 선수를 프랜차이즈로 간주하는 구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복수의 구단이 굵은 글씨로 표시된 선수는 해당 선수가 각 팀에서 남긴 족적이 너무도 뚜렷해서 어느 한 팀을 대표 소속구단으로 정하기 어려우며 각 구단이 해당 선수를 자신들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 간주하는 구단인 경우이다.
4.1. 선발투수
의외로 요미우리 원클럽맨이 한 명도 없고, 원클럽맨은 고사하고 발이라도 담궈본 적이 있는 투수도 한 명 뿐인데, 사실 이유가 있다.
일단 요미우리 원클럽 맨 중에서 명구회 가입 자격을 충족하는 선수는 딱 한 명 있다. 바로 왕년의 에이스 호리우치 츠네오.[4] 원래 명구회 회원이었으나 명구회가 주식회사에서 사단법인으로 개편된 이후에 명구회를 탈퇴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유는 아무래도 가네다 마사이치의 퇴임인 듯.
그 외에도 닛폰햄 파이터즈는 '''아예 200승 투수 자체가 나온 적이 없다(...)''' 구단 최다승이 전신인 '''토에이 플라이어즈'''의 도바시 마사유키의 165승이니(...)
4.2. 마무리 투수
4.3. 타자
이외에도 명구회 달성조건 만족 인물로 오치아이 히로미츠, 에노모토 키하치, 야자와 켄이치, 알폰소 소리아노(!)[11] 가 있으나, 오치아이는 가네다 마사이치와 겪은 불화 등을 이유로 가입하지 않았고, 에노모토와 야자와는 가입을 했으나 에노모토는 명구회 활동을 하지 않아 사실상 탈퇴나 마찬가지였으며 야자와는 호리우치처럼 가네다 퇴임 이후 자신도 명구회를 탈퇴한 사례다. 알폰소는 그냥 본인이 가입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진출한 선수로는 그나마 백인천이 1800안타 이상을 때려서 가능성이 높았지만 1982년 국내로 유턴하며 실패했고, 일본야구에서 백인천 이상 장기적으로 성공한 한국인 타자는 없다.[12] 투수는 세이브로 임창용이 128세이브를 넘겨 가입 조건의 절반을 넘겼지만 한국 귀국 후 은퇴, 오승환 역시 일본 이후 기록이 인정되는 메이저리그로 진출해서 기록이 진행되었고 가입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지만 결국 한국으로 복귀했다.
[1] 참고로 카네다가 고인이 된 2020년 기준으로 이 조건으로 인해 명구회 가입조건을 충족하지만 명구회가 아닌 선수 중에 아직 생존자가 있다! 바로 1925년생('''다이쇼 14년''')인 스기시타 시게루. 통산 215승을 기록했고 주니치와 한신에서 감독을 했다. 1950년대 프로야구 감독 중 최후의 생존자라고...[2] 보통 이런 경우는 부상에서 회복하더라도 구위가 떨어져서 중간계투로 보직전환되는 경우가 많다.[3] 후쿠우라는 기량이 이미 한계가 온 지 오래된 선수였기 때문에 은퇴 전까지 남은 38개를 못 채울 가능성도 높았다. 그래도 당장 은퇴하지 않고 2000안타 달성까지 묻지마 기용을 하면서 꾸역꾸역 안타수를 채운 결과 2000안타를 간신히 채웠다.[4] 요미우리 원클럽 맨으로서 200승 이상은 호리우치 외에도 NPB 초창기에 활약한 나카오 히로시 등이 있으나 다이쇼 출생이기 때문에 쇼와 이후 출생이어야 한다는 명구회 가입자격을 충족하지 못한다. 게다가 나카오 히로시는 명구회 설립 전해인 1977년 고인이 되었다. 그 외에도 스기시타 시게루, 빅토르 스타르핀, 벳쇼 다케히코, 후지모토 히데오 등의 200승 이상 투수들이 있으나 역시 다들 다이쇼 태생이라서 가입이 되지 않았다.(빅토르는 창립 20여년 전에 사고로 고인이 된 탓도 있지만)[5] 1978년 일본시리즈 MVP. 야쿠르트가 본인이 팀에 소속되었던 1978년 이후 14년 만에 리그 우승을 탈환한 1992년에 공교롭게도 47세의 이른 나이에 명구회 멤버들 중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참고로 사상 최초로 센트럴, 퍼시픽 양 리그에서 각각 1000안타 씩을 친 타자이다.[6] 해외 출신 선수 최초의 가입자이다. 장훈, 왕정치, 아라이 히로마사, 아라이 타카히로, 카네모토 토모아키 등처럼 외국 국적을 가진 가입자는 일본 출신이니 제외.[7] 상단에 나오듯이 NPB 이전 MLB에서 기록한 86안타는 일본에 오기 전에 친 것이기 때문에 명구회 가입 요건에는 산입되지 않았다.[8] 다이에와 소프트뱅크는 동일구단[9] 2018년 10월 8일 기준 가장 최근에 가입했으며, 명구회에 가입한 타자 중 데뷔하고 나서 가장 늦게 데뷔안타를 친 선수이다.(데뷔 4년차에 데뷔안타를 침. 기존 기록은 3년차.)[10] 통산안타가 딱 2000안타인 타자는 후쿠우라가 일본프로야구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애초에 2000안타를 찍은 후 본인의 은퇴경기 딱 1경기만 나왔는데 여기서 무안타를 기록했다.)[11] 왜 그런지는 문서 참고.[12] 이대호와 이승엽은 이미 전성기를 국내에서 보내고 늦게 진출했기 때문에 일본+미국에서 700안타에 약간 못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