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대학교(서울)
友石大學校
1. 개요
과거 서울에 존재했던 사립종합대학교. 전라북도 완주군에 위치한 우석대학교와 전혀 관계 없는 학교이며, 학교의 교명은 한자도 다르다. 현존하는 우석대학교는 又石, 본 항목은 友石.[1]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및 고려대학교 의료원의 전신으로 여겨지며, 우석대학교병설의학기술초급대학은 고려대학교병설보건대학 문서를 참조. 고려대 병설 보건대는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의 전신으로 여겨진다.
2. 역사
2.1. 설립
1890년부터 조선에서 의학교육을 통해 후학을 양성하던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 의사, 미국인 여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2] (Hall, R.S.)이 1928년에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하였다. 이곳은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을 위한 의학교육이 시작된 곳이었다. 1933년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경성여자의학강습소'''로 개칭되었다.
이후 '''경성여자의학강습소'''를 1938년 4월 순천시의 거부 우석 김종익(1886~1937)[3] 이 남긴 유산을 통해 인수하여[4] 재단법인 우석학원(友石學園)을 조직, 4년제의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가 출발하였다.[5] 이는 김종익의 딸이 고등학교 재학 중 병으로 숨을 거두자, 여자 의사를 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실천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우석대학교 졸업앨범에 장녀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고 서술되어있다)
같은 해 5월에 경성의학전문학교[6] 의 병리학교실을 빌려 개교하였다가 1940년 경성고등상업학교[7] 의 교사를 인수하여 이전하였다. 1941년 부속병원이 준공되어 의료교육기관으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되었으며, 1942년 9월 제1회 졸업생 47명을 배출하였다.
1948년 '''서울여자의과대학'''으로 개편(승격 인가)되었으며, 1957년에는 남녀공학으로 개편하여 '''수도의과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했다. 1966년에 국학대학(國學大學)을 인수합병하여 종합대학인 ''''우석대학교''''로 개편하였다.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은 원래 여대였기 때문에 여의사 비중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유명했다. 나중에 고려대가 인수하고 난 시절까지 이런 현상이 이어졌다.
2.2. 고려대학교로 흡수합병
60년대 말에 재단 이사장의 잇다른 사업 실패로(...) 우석학원은 거액의 빚[8] 과 경영난에 부닥치게 되어 1971년에 고려대학교에 합병되었다. 고려대학교는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의대를 신설하고자 했는데, 마침 서울 한복판에 병원과 의대를 가진 우석대학교의 상황이 영 좋지 않은 것을 노려 우석대학교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에 성공한 것이다. 이에 따라 우석대 의대(구 수도의과대학)는 현재의 고려대 의대가 되었으며 다른 대학(구 국학대학)의 교수진과 학생은 그대로 고려대에 편입되었고 학생들은 1972년 졸업자부터 고려대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고려대 의과대학과 간호대학, 보건과학대학에서는 자신의 전신이 우석대학교 의과대학[9] , 의과기술초급대학이라고 써주기라도 하지만 우석대학교가 합병한 국학대학은 그것도 없이 싹 묻혀버렸다. 제대로 흑역사. 어느 정도냐면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국학대학'을 검색해서 들어가면 바로 고려대학교 항목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고려대학교 항목에서 국학대학이란 말은 어디에도 없다. 또한 고려대의 우석대 인수가 사실상 우석대 의대를 노린 것이라 그런지 우석대 의과대학 학생을 제외한 다른 단과대 학생은 고려대 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3. 캠퍼스
명륜동 캠퍼스(제 1캠퍼스)
정릉동 캠퍼스(제 2캠퍼스)
우석대학교는 종로구 명륜2가와 성북구 정릉동에 캠퍼스를 두고 있었다. 명륜동 캠퍼스는 옛 수도의과대학과 그 부속인 혜화병원이 있었으며, 정릉동 캠퍼스에는 옛 국학대학이 있었다. 그렇다보니 우석대학교 출범 이후 의과대학(의예/의학과, 간호학과), 그리고 의과기술초급대학을 제외한 모든 단과대가 정릉동에 있었다.
우석대학교가 고려대학교로 인수합병된 이후로도 명륜2가에 있던 혜화병원은 그대로 고려대학교 부설 혜화병원으로 쓰이다가 시설의 열악함과 협소한 부지 등을 이유로 1991년 안암캠퍼스에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을 지어 이전하였으며 지금은 그 부지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명륜2가 아남아파트가 당시 혜화병원이자 수도의과대학이 있던 곳.
정릉동 캠퍼스에는 인수합병된 이후 대학 자리에 1975년 우석대 의과기술초급대학의 후신인 고려대학교병설보건전문대학이 이전해왔었다. 이후 고려대병설보건대가 2006년 이후 본교로 통합되어 4년제 단과대학 고려대 보건과학대가 되고 2015년 안암동 자연계캠퍼스 하나과학관으로 이전했다.
정릉동 캠퍼스에 있던 과거 우석학원의 우석중학교/우석고등학교는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학교/고등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여 그 자리에 계속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교는 원래 교명이 우석상업고등학교였고 고려중앙학원에 흡수되면서 고려상업고등학교가 되었다가 1973년에 고려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현재의 교명인 '고려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중학교도 동일)
2015년부터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이 안암캠퍼스 자연계지역 하나과학관을 쓰게 되면서 정릉캠퍼스의 국민대학교 매각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현재 정릉캠퍼스는 KU-MAGIC Project One 및 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4. 기타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때 이 우석대 출신이라는 의문이 인터넷상에서 제기된 바가 있지만, 당장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옛 신문기사를 검색해보면 명백한 허위사실임을 알 수 있다. 거기 가보면 한일협정 반대 관련 기사에 고려대 학생이라는 설명이 나올 뿐만 아니라 심지어 1961년도 신문에 실린 고대 합격생 명단에도 실려 있었다(...) 게다가 우석대가 고려대에 흡수되기 몇 년 전이다. 따라서 이는 카더라 통신에 지나지 않다.
5. 동문
6. 관련 문서
[1] 두 우석대학교는 존재시기부터 전혀 다르다. 전라북도 완주군의 우석대학교가 설립되었을때는 서울의 우석대학교가 이미 통합된 후의 일이다. 참고로 현재의 우석대학교는 '''1995년'''에 지금의 교명으로 바뀌었다.[2] 의료 선교사, 교육자. 1865년에 태어나 1951년에 세상을 떴다. 1850년에 설립된 세계 최초의 여성의과대학인 필라델피아 드렉셀 대학교 의과대학(구 펜실베니아 여성의과대학)을 1889년 3월에 졸업하였다.[3] 순천대학교의 전신인 순천공립농업학교의 설립에 기여한 인물로 독립운동에도 막대한 사재를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순천시에서는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4] 1937년 김종익은 숨을 거두며 본인의 재산을 교육에 사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5] 하지만 전문학교 인가 과정에서 김종익의 부인에 의해 기존의 강습소를 전문학교로 승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문학교의 신설로 바뀌었는데, 이는 강습소의 소장인 김탁원이 3.1운동 참여로 투옥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문학교 개교 이후 교장도 일본인으로 바뀌었고, 학생도 새로 뽑았다. 다만 교수진이나 학생의 인적 구성이 이어지는 부분이 많았고, 어쨌거나 경성여자의학강습소에서 전문학교 인가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전문학교가 생긴 것이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물론이고 현 고려대 측도 경성여의전을 경성여의강의 후신으로 본다.[6] 훗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된다.[7] 훗날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이 된다.[8] 당시 돈으로 3억 8000만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라면 한 상자가 800~900원'''인 시절이었다.[9] 간호학과와 의예과/의학과가 둘 다 의과대학 소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