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연

 

1. 소개
2. 생애
3. 평가
4. 매체


1. 소개


元埏
1543년 - 1597년
임진왜란, 정유재란 시기 활약한 의병장.
그리고 희대의 졸장인 그 원균의 동생이지만, 원균과는 달리, 동생인 원전과 함께 남아서 싸웠다. 원전은 형의 부관으로서 끝까지 남아서 싸웠던 반면 원연은 국난을 맞딱드린 조국을 위해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 맞서 치열히 싸우고 끝내 전쟁터에서 전사한 위인이다.

2. 생애


병마 절도사를 지낸 원준량[1]차남으로 태어나 큰집인 원수량의 양자로 갔다.
1567년(명종 22년)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오르지 않다가 왜군이 쳐들어오자 청년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했다. 대개 지역에서 명망 있는 인물이 의병장이 되는데, 그 점을 고려하면 원연은 형이나 아버지와는 격이 전혀 다른 올바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진위현(오늘날의 경기도 평택) 남쪽에 진을 치고 적을 기다리던 중 용인에 왜군이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진에 처들어가 큰 승리를 거둔다.
여기서 원연은 명장으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는데 의병들 중에 기병들만 추려서 먼저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왜군들을 유인한 다음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2] 시간을 끌었고 그동안 나머지 병력을 몰래 매복시켰다. 그렇게 매복이 끝나자 기병이 왜군들을 지세가 험난한 햇골로 끌어들인 다음 입구를 막아버리고 화살과 죽창을 퍼부으며 대승을 거두었다. 기병을 직접 다뤄본 적이 없으면서도 불구하고 기병을 어떻게 쓰는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3][4]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 직전에 전라 순찰사 이광이끄는 3만의 근왕병을 기습해 후퇴시켰다.[5] # 재미난 것이 오늘날 김량장동으로 한국 전쟁 금양장리 전투가 벌어진 장소와 동일한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나올 지경이라는 거다.
이 전과로 인해, 용인시는 왜란 1등 공신들과 직간접적 인연을 고착하는데, 이순신의 경우에는 기시감 프리퀄을 선서한 이일의 본관이 여기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연기 현감에 올랐다가 적성 현감(오늘날의 경기 파주시 적성면) 겸 양주 진관 병마 절제 도위[6]로 전보(轉補)되었다. 적성 현감으로 재직할 때 고을에 불이 나 황폐화되자 백성들을 모아 황무지를 개척하는 등 민심을 아우르고 잘 돌보면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관찰사와 의견이 맞지 않아 사임하고 향리에 돌아와 벼슬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이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다시 의병을 모아 왜군을 막다가 전사했다.

3. 평가


과는 다르게 능력, 인품을 함께 갖추었고 의미있는 승전을 거둔 장수지만, 아버지와 형의 전무후무한 무능함과 부패 때문에 같이 묻혀버린 억울한 동생의 케이스다.
무능하고 부패한 아버지와 형에 묻힌 것도 슬픈데 후손이라는 원주 원씨 문중과 고향인 평택시는 한심하게도 진짜 존경받을 조상인 원연이 아닌 여러 악행을 저지르고 나라의 위기를 자초한 원균을 미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는 후손들이 장손과 적통만을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관을 고수하다 보니 작은 집에서 태어났다가 큰집에 양자로 간 원연을 서자 또는 서얼로 여겨 취급조차 안 하는 것이다.[7] 그래서 원연의 행적을 가지고 검증되지 않았다며 모르는 척하고 현재까지도 눈길조차 주지 않다 보니 존재가 잊힌 모양이다. 이런 점들까지 감안하면 원주 원씨 집안에선 정말로 홍길동과 같은 존재인 셈이다.

4. 매체


개막장으로 유명한 형과 달리, 인지도가 0이라 사극에 출연이 전무하다.
격류와 임진왜란의 공동저자이자, 독도 왜란의 저자인 안병도의 대체 역사 소설 일본 정벌기에 오늘날로 치면 견인포 부대 격인 마반차 부대장으로 등장한다. 작가의 설정에 따르면 군사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이순신과의 관계도 좋아서 이순신의 신임을 얻어 일본 정벌에 참가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기간 동안 원균에게 학을 뗀 이순신 부대의 장수들이 한 번씩 원연을 신경 쓰지 않고 원균을 욕하는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이순신이 원연의 눈치를 살핀다고.
슈타인호프의 대체 역사 소설 명군이 되어보세! 2부에서 언급이 되는데, 그나마 직접 출연하는 것도 아닌,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렸다는 게 언급되는 정도다. 상소문을 쓴 이유도, 니탕개 난 도중에 이순신이 생포해서 보낸 포로를 원균이 죽여서 수급으로 만들다 들켜서 귀양을 갔기 때문. 원균을 잘 아는 주인공이 바로 찍어낼 놈으로 분류하고 기군망상죄로 삭탈 파직시켜버렸다. 그래서 원연이 친형을 풀어 달라고 상소를 올린 것이다.
주인공은 원균 같은 놈을 옹호하는 녀석은 뭔가 싶다가 원균 친동생이라는 말에, 이름은 몰라도 원균 동생이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기억이 있어 원연에게 "형이 용서받길 원하면 네가 출사 해서 공을 세워라."라고 이르는 답신을 보내준다.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주인공은 원균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다. 죽을 때까지 북방에서 눈이나 쓸게 만들 속셈. 그러다가 어느 사이에 출사 해서 북한산성에서 관직 생활을 하고 있다. 원균이 일본의 수행 무관 자격으로 파견 갔다가 순왜로 배신을 해버려서 형제간의 상잔이 벌어질 듯.
경인왜란 수년 후 벌어진 보복 원정 중 전장에서 확인된 시신이 실제론 자신의 형이 아님을 파악했으나 거짓말을 하여 원균이 사망한 걸로 공식 결론이 내려지게 한다. 이후 대남도에 노비로 가게 된 일본 포로들 속에서 실제 원균을 발견한다. 이번에도 이를 묵인했으나, 죽지 않은 걸 후회할 거라는 폭언을 한다.

[1]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서 그렇지 이 원준량도 원균급으로 엄청난 개차반이었다.[2] 접전하는 듯하다가 도망가는 척하면서 험준한 산속으로 유인했다.[3] 원균이 최악의 졸장이라 그렇지, 원주 원 씨 가문은 대대로 무인을 많이 배출한 명문가였다. 탐관오리긴 해도 친부 원준량도 수군절도사를 지냈을 정도였고, 원연의 또다른 형제인 원전도 군문에 몸담고 있었다. 기본적인 무예나 병법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이런 가문에서 원준량이나 원균 같은 탐관오리와 졸장이 나온 게 이상할 정도.[4] 또한 원연이 선비(유생)이었다는 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는데, 조선의 선비들은 유교 학문들만 외운 것이 아니라 병법이나 행정 등 여러 가지를 섭렵했으니 전술의 기본은 적지 않게 알았을 것이다.[5] 다만 이 부분은 와해되었다는 말이 맞다.[6] 현대 한국으로 치면 적성군수 겸 경기북부의 군대를 감찰하고 보급선을 담당하는 직위에 오른 것이다. 전쟁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중요한 직책이었다.[7] 원전은 실제 서얼이 아니고, 원균과 같은 남원 양씨 소생의 차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