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삼국지)
1. 유장의 장남
劉循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 삼국시대의 인물로 유장의 장남이며 아내는 방희의 딸이다. 유천의 형.
213년에 유비가 유장을 배신하자 낙성에서 장임, 유괴와 함께 유비군을 상대로 버티지만 장임이 싸우다 사로잡혀서 참수되는 등 사태가 안 좋게 돌아가 결국 214년에 낙성은 함락된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봉거중랑장이 되었으며, 유장이 성도의 방희에게 유순을 맡기면서 유천과 함께 형주로 떠났다가 이 둘이 이릉전투 후에 손권에게 항복했기 때문에 유장의 자손은 형주와 서천 두 곳에 나누어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스스로 지원을 해 오의, 오란, 뇌동과 함께 낙성의 수비를 맡는다. 장임의 도움으로 여러 번 유비의 공격을 격퇴하나 잇달은 아군의 항복으로 열세가 되고 결국 수비대장 유괴가 장익에게 죽자 홀로 성도로 달아나는 것으로 등장 끝.
1.1. 미디어 믹스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하는데, 정사에 따르면 장임, 유괴 등과 같이 유비군을 1년 가까이 막았으니 KOEI에서 유순의 능력치를 좀 후하게 줘도 될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6/무력 51/지력 40/정치력 51로 안습 수준. 병법으로는 제사와 고무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7/무력 57/지력 46/정치력 37/매력 65로 역시 처참하지만, 특이하게 명사 특기가 있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상업, 일제, 고무, 명사. 총 4개다.
삼국지 12에서는 대부분의 능력치가 50~60대 사이라 잉여해보이지만 전법이 철벽이라 방어측에서 성문이 뚤리면 성벽아래로 내려가서 탱킹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지력이 약간 낮고 궁병이라 최후의 방어선으로 보는 게 좋다. 일러스트는 이마에 손을 대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63/46/41/50. 전작에 비해 무력과 지력이 하락했지만 통솔력과 정치력이 대폭 상승해 있다. 특기는 견수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견수이며 전법은 창속약화.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8, 무력 54, 지력 45, 정치 50, 매력 62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5, 무력이 8, 지력이 4 상승했다. 개성은 교련, 견뢰, 주의는 할거, 정책은 학익강화 Lv 2, 진형은 학익, 장사, 전법은 분전, 철벽, 친애무장은 방희, 유괴, 혐오무장은 없다.
[image]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는 짤막하게 등장하여 전세가 불리해지자 퇴각한다.
삼국지 영걸전에선 낙성전투1, 2에서 전차대로 등장하지만 레벨이 조금 높은 편인 걸 제외하면 특별할 게 없다. 아군이 되는 장수도 아니고, 전투 후 참전한 모든 장수가 전사했다는 말로 볼 때 낙성 전투에서 전사한 듯. 실제로는 연의던 정사던 생존했고, 정사에서는 아예 그 자손은 촉에서 계속 살았다.
삼국전투기에서는 크레용 신짱의 원장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원장 선생님의 과거 로컬라이징 명이 '유순해'였기 때문인 듯. 오의의 말마따나 이름과는 달리 유순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유장의 아들인데 어째 아버지보다 훨씬 늙어보인다(...).
기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낙성의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오의와 함께 낙성으로 파견됐다. 오의와 유괴의 제안으로 총지휘자 방통을 잃은 유비군을 공격하지만 패배하게 되면서 유괴와 장임이 죽고, 오의와 그의 부장들이 죄다 항복하면서 낙성을 포기하고 면죽으로 후퇴했다.
가맹 전투 편에서는 면죽으로 후퇴했었지만 면죽의 수비 담당인 이엄이 유비가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투항하고 면죽을 넘기면서 쫓겨나게 되었고 성도로 도망쳐왔다.
삼국지평화에서는 유진(劉珍)으로 유장의 아들이 아니라 동생으로 나오고 낙성에서 방통에게 활을 쏘게 해서 방통을 전사시켰다.
2. 원담의 부하
劉詢
(?~?)
후한 말의 인물로 원담의 부하였다.
202년 5월에 원소가 사망하면서 심배 등이 원소의 유언을 날조해 원상#s-1을 추대하자 원담이 이에 반발하면서 거기장군을 자칭해 원상과 싸우기로 했으며, 결국 원상과 원담의 싸움에서 원상이 이기면서 유순은 탑음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여러 성들이 호응해 원담에게 반기를 들자 원담이 "지금 청주 전체가 모두 배반을 하는 것이 어찌 내가 덕망이 없는 것인가!"라고 탄식을 하게 만들었다.
탄식하는 원담에게 왕수가 동래태수 관통만은 우리에게 올 것이라고 믿음을 가지라고 하면서 위로했는데, 왕수의 말대로 10여 일 후에 관통은 원담에게 왔지만 그의 처자식은 관통이 원담의 편을 들자 유순이 모두 죽였다고 한다.
2.1. 미디어믹스
소설 삼국지 화평자전에서는 1만의 병력을 이끌고 하비로 갔다가 곽가에게 연회에서 대접을 받고 술을 마시고 뻗었다가 우금의 칼에 죽었다.
3. 유선의 6남
劉恂
(? ~ 311)
삼국시대, 서진의 인물로 삼국시대 촉한의 황제 유선의 육남으로 정사 후주전에서 유선의 아들들이 허봉 제도로 준 왕들의 봉작을 나열할 때 잠깐 나오며, 259년에 여름 6월에 유심, 유거 등과 함께 왕에 봉해질 때 신흥왕이 되었다.
당연하지만 유순이 받은 지역은 허봉 제도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유순이 지배한 곳이 아니라 유순이 허봉으로 받은 신흥은 병주 북쪽에 있는 지역 중에서 하나이며, 263년에 촉한이 멸망하자 일가와 함께 위나라로 옮겨져 지냈다.
유선이 차남인 유요(劉瑤)를 놔두고 6남인 유순(劉恂)을 후계자로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촉한의 구신 문립이 이를 지적했으나 유선 사후 안락공은 유순이 물려받게 되었다. 유순은 도의를 잃은 행동을 자주 하였으므로 상용태수 왕숭, 부릉태수 장인(張寅)과 더불어 진간하고 문립과 함께 염려하는 말을 했다.
그러나 311년에 유요, 유종, 유찬, 유거 등과 함께 영가의 난으로 유요, 왕미 등의 공격을 받아 피살되었다고 한다.
유영의 손자인 유현만 살아남은 것으로 볼 때 후손은 남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