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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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관료.
2. 생애
1918년 평안남도 안주시에서 태어났다. 평양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네브래스카 주에 있는 헤이스팅스 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1950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51년 한국은행 도쿄지점장으로 부임해 경제관료로 입문했으며, 1953년 뉴욕사무소장, 1957년 조사부장, 1960년 외자청장(현 조달청장) 서리, 1961년에는 한국은행 총재, 1962년 상공부 장관, 1963년 경제기획원장관을 했다.
그러나 박정희의 군정 연장과 한일협정 조기타결 움직임에 반발해 공직에서 은퇴했고, 제3공화국 시기에는 유엔한국협회 부회장 등을 지내며 범야권에서 활동하며 한일협정 폐기 및 재협상, 월남전 파병 반대,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유진오 후보와 윤보선 후보의 후보단일화 협상에 개입하는 등 반 박정희 자세를 취했다.
대선 후 1967년, 도쿄지점장 시절 친분을 맺어왔던 신격호 일본 롯데 사장이 한국에 롯데제과를 세우면서 초대 대표이사 회장이 되어 기업인으로 변신해 롯데그룹의 한국 정착에 도움을 주었고, 1974년 칠성한미음료를 인수한 후 대표이사도 겸했다. 198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및 한국무역협회 회장, 롯데제과 고문 등을 지내다 1982년 1월, 남덕우의 후임으로 제15대 국무총리를 지냈다.[2] 그러나 그 해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일어나자 국무총리로서 제대로 일해보지도 못하고 다음달인 6월 경질되었다.
정계 은퇴 후 1982년부터 3년 간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거쳐 1985년 대신경제연구소 회장, 1989년 호남석유화학 회장 등을 거쳐 그해부터 1993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지냈다. 퇴임 후 전경련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어 아산재단 이사 등을 역임하며 왕성히 사회활동을 전개하다가 2010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 전임 총리인 남덕우의 사임으로 정식으로 취임 전까지 국무총리 서리 수행 (1982년 1월 4일 ~ 1982년 1월 22일)[2] 당시 남덕우 국무총리가 경질된 이유는 남덕우가 올림픽 망국론을 들어 1988 서울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여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