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락
1953년 5월 30일 ~
대한민국의 빈민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1953년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참조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국민학교만 졸업하였다. 먹고살기 위해 이것저것 하다가 80년대 구로공단으로 들어가 취업했는데, 중간 관리자가 그의 실력이 생산직으로 있기엔 아깝다고 사무직으로 전환을 시켜주는 배려를 해주었다. 그런데, 1달 뒤 사장이 국졸이 무슨 사무직이냐며 도로 생산직으로 돌아가버렸다. 이 사건은 그의 학력 컴플렉스를 극대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로는 주변에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상락이 한창 학교를 다녔을 1960년대에는 중등교육 보편화가 이루워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중학교 입학률이 50% 안팍이라서 국졸인 경우가 흔했던 점을 생각하면 굉장히 안타까운 일화라고 할수있다.
한편, 구로공단에서의 노동자 생활 과정에서 한국 빈민운동의 대부 제정구와 연이 닿았고, 그의 밑에서 빈민운동에 참여하였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1] 경기도 성남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당시 선거 기록(367p) 이때부터 학력란에 주산고교 졸업이라 허위기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시청 뇌물 수수 등을 폭로하다가 시의회에서 제명되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의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경기도의회 부의장을 지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의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다만, 지방선거 출마 당시에는 선관위에 학력을 '''주산고 졸업'''이라고 기재해버렸다. 참고로 주산고는 이상락의 고향 서천군에 인접해있는 보령시 주산면에 있는 고등학교다.(주산농고. 현 주산산업고) 이때 사실이 알려졌으면 영락없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겠지만 인지도가 거의 없는 지방의회 의원의 학력까지 검증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고향은 서천인데 고향이라면 모를까 머나먼 타지인 성남 중원에서 이상락과 비슷한 나이대의 주산고 출신자가 있을 가능성도 희박했다. 하지만 이런 거짓말은 점점 커져만 갔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는 선관위에 학력을 기재할 때 '''독학'''이라고 제대로 기재했다. 당연한 것이 일개 지방의회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차원이 다르다. 주요 정당 내부에는 상대방 후보에 대한 검증팀이 따로 존재할 정도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마저 학력을 허위기재해버리면 상대당이 매의 눈으로 검증해서 바로 소송에 들어가는 것이다. '''문제는 학력을 독학으로 기재함으로서, 지방선거때 선관위에 제출한 고졸 학력과 배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TV 토론회에서 상대 후보들은 이러한 맹점을 물고 늘어졌고, 기존의 학력위조를 인정할 수 없었고, 초졸 트라우마까지 겹친 이상락은 결국 '''위조된 주산고[2] 졸업증명서'''를 꺼내어 보여주기에 이른 것이다.[3][4] 상대 후보들은 주산고에 이상락이라는 졸업생이 있는지 문의했고, 그런 졸업생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선관위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를 해버렸고 2004년 12월 10일, 17대 국회의원 중 처음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학력위조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을 선고받고 2005년 12월 9일이 출소 만기였지만 모범수로 뽑혀 10월 초에 석방됐다. #
그의 사례는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학력차별, 그리고 그 당사자들의 컴플렉스, 그리고 높아진 한국 정치계에 대한 도덕성 기준을 동시에 보여준 경우라 할 수 있다. 당시 보수계열 언론인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마저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할 정도였다. 아울러 국회의원들의 학력위조가 만연되어 있는데 다른 거물들은 다 빠지고 '''고작 초졸을 고졸로 허위기재한 초선''' 하나 날렸다는 저격기사가 나오기도 했다.#[5] 그러나 어찌되었건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도 사실이며 그에 대한 처벌이 향후 반면교사가 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 조건으로 성남 중원 선거구를 통합진보당에게 양보하기로 하자 이에 승복하고 통진당 김미희 후보 지지를 선언한다. #
현재는 선거 출마는 하지 않고 있으며 성남시내 시민단체들의 간부를 맡으며 은수미 시장을 후방지원하고 있다.
1. 개요
대한민국의 빈민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1953년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참조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국민학교만 졸업하였다. 먹고살기 위해 이것저것 하다가 80년대 구로공단으로 들어가 취업했는데, 중간 관리자가 그의 실력이 생산직으로 있기엔 아깝다고 사무직으로 전환을 시켜주는 배려를 해주었다. 그런데, 1달 뒤 사장이 국졸이 무슨 사무직이냐며 도로 생산직으로 돌아가버렸다. 이 사건은 그의 학력 컴플렉스를 극대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로는 주변에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상락이 한창 학교를 다녔을 1960년대에는 중등교육 보편화가 이루워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중학교 입학률이 50% 안팍이라서 국졸인 경우가 흔했던 점을 생각하면 굉장히 안타까운 일화라고 할수있다.
한편, 구로공단에서의 노동자 생활 과정에서 한국 빈민운동의 대부 제정구와 연이 닿았고, 그의 밑에서 빈민운동에 참여하였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1] 경기도 성남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당시 선거 기록(367p) 이때부터 학력란에 주산고교 졸업이라 허위기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시청 뇌물 수수 등을 폭로하다가 시의회에서 제명되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의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경기도의회 부의장을 지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의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다만, 지방선거 출마 당시에는 선관위에 학력을 '''주산고 졸업'''이라고 기재해버렸다. 참고로 주산고는 이상락의 고향 서천군에 인접해있는 보령시 주산면에 있는 고등학교다.(주산농고. 현 주산산업고) 이때 사실이 알려졌으면 영락없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겠지만 인지도가 거의 없는 지방의회 의원의 학력까지 검증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고향은 서천인데 고향이라면 모를까 머나먼 타지인 성남 중원에서 이상락과 비슷한 나이대의 주산고 출신자가 있을 가능성도 희박했다. 하지만 이런 거짓말은 점점 커져만 갔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는 선관위에 학력을 기재할 때 '''독학'''이라고 제대로 기재했다. 당연한 것이 일개 지방의회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차원이 다르다. 주요 정당 내부에는 상대방 후보에 대한 검증팀이 따로 존재할 정도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마저 학력을 허위기재해버리면 상대당이 매의 눈으로 검증해서 바로 소송에 들어가는 것이다. '''문제는 학력을 독학으로 기재함으로서, 지방선거때 선관위에 제출한 고졸 학력과 배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TV 토론회에서 상대 후보들은 이러한 맹점을 물고 늘어졌고, 기존의 학력위조를 인정할 수 없었고, 초졸 트라우마까지 겹친 이상락은 결국 '''위조된 주산고[2] 졸업증명서'''를 꺼내어 보여주기에 이른 것이다.[3][4] 상대 후보들은 주산고에 이상락이라는 졸업생이 있는지 문의했고, 그런 졸업생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선관위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를 해버렸고 2004년 12월 10일, 17대 국회의원 중 처음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학력위조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을 선고받고 2005년 12월 9일이 출소 만기였지만 모범수로 뽑혀 10월 초에 석방됐다. #
그의 사례는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학력차별, 그리고 그 당사자들의 컴플렉스, 그리고 높아진 한국 정치계에 대한 도덕성 기준을 동시에 보여준 경우라 할 수 있다. 당시 보수계열 언론인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마저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할 정도였다. 아울러 국회의원들의 학력위조가 만연되어 있는데 다른 거물들은 다 빠지고 '''고작 초졸을 고졸로 허위기재한 초선''' 하나 날렸다는 저격기사가 나오기도 했다.#[5] 그러나 어찌되었건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도 사실이며 그에 대한 처벌이 향후 반면교사가 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 조건으로 성남 중원 선거구를 통합진보당에게 양보하기로 하자 이에 승복하고 통진당 김미희 후보 지지를 선언한다. #
현재는 선거 출마는 하지 않고 있으며 성남시내 시민단체들의 간부를 맡으며 은수미 시장을 후방지원하고 있다.
2. 선거 이력
[1] 1991년 지방선거부터 2002년 지방선거때까지는 기초의원은 정당공천이 금지되어서 전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2]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에 위치한 고등학교이다. 신동엽 시인이 교편을 잡았던 곳이기도 하다.[3] 본인 말로는 그 위조된 증명서는 측근이 만들어왔다고 한다. 본인 주장임을 감안해서 판단하자.[4] 참고로 '''공직선거법상 공소시효는 선거일로부터 6개월'''. 이상락이 가장 마지막에 학력을 허위기재한 2002년 3회 지선을 기준으로 해도 공소시효는 이미 지난 뒤여서 여기서 그냥 '나 초졸이고 지난번에 학력 허위기재했다, 죄송하다' 하면 도의적 책임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5] 당시 대중들이 흔히 생각하는 허위학력이란 고졸을 대졸로 둔갑한다거나, 같은 대졸임에도 나온 학교나 학과를 명문대나 입결이 높은 과로 바꿔치기한다거나 대학 학부과정 단순 수료인데 졸업으로 고친다거나 하는 식이였다. 즉, 고등 학력에 대한 조작이었지 이상락의 경우처럼 초증등 학력에 대한 조작은 생각치도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상락이 당시 주류 언론이나 동료 정치인들로부터 동정여론을 받은 이유였다.[6] 무소속 강부원 후보와 동반당선 [7] 임기 중 제명[8] 일시는 불명이나 17대 총선 출마를 위해 2003년말 내지 04년 초에 사직했을 것이다.[9] 2004.12.10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으로 의원직 상실